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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자전거길: 진하해수욕장 - 울산 북구국내여행/자전거2017 2019. 6. 11. 13:57
진하해수욕장은 길이 1킬로미터, 폭 300미터 정도의 넓은 백사장을 가진 해수욕장으로, 수심이 얕고 수온이 따뜻하며 파도도 잔잔해서 여름철에 많은 피서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울산 시내에서도 가깝지만, 부산에서도 그리 멀지 않고, 대중교통으로 가기도 괜찮은 편이라 인기가 많다. 그래서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여름철에는 새로 마을이 하나 들어선 것 처럼 떠들썩해지는 곳이다.
백사장 뒷편은 삼면이 소나무로 감싸져 있어서 아늑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하고, 끄트머리엔 야영장도 있다. 무료 야영장과 유료 야영장이 좀 헷갈리게 붙어 있어서 사람들이 불만을 가지기도 하지만, 어쨌든 마음은 편하게 야영을 할 수 있다.
백사장 앞에 조그만 섬이 하나 있는데, 여기가 동해안에서 유일하게 바닷길이 열린다는 명선도다. 바위밖에 없는 무인도지만 물길이 열리면 건너갈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진하해수욕장 북쪽으로 올라가면 회야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강을 건널 수 있게 놓인 다리는 명선교다. 이 다리는 사람만 지나다닐 수 있다.
다리 양쪽에 엘레베이터가 있어서 자전거도 잘 끌고가면 될 듯 하지만, 어차피 큰 길로 나가서 북쪽으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그냥 길따라 큰 길로 나갔다.
회야강 주변까지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데, 이제 길따라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진다.
뚜뚱. 온산 국가산업단지. 여기서 정말 미칠 것 같은 라이딩을 했다. 공장 특유의 기름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쿵쿵하는 굉음이 들리는데, 그것까진 그냥 그런가보다 할 수 있다. 제일 문제는 수시로 지나다니는 엄청난 크기의 트럭들. 10톤 트럭은 그냥 애교스러울 정도다. 크고 긴 컨테이너 트럭들이 막 지나다니는데, 정말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석유화학단지, 공업단지, 미포산업단지 등등 무시무시한 공장들이 마구마구 나온다. 이건 시골 구석의 조그만 가공공장 몇 개와는 차원이 다르다. 경치고 뭣이고 전혀 없고, 무사히 이 일대를 빠져나가는데만 집중해야 하는 곳인데, 분위기마저 디스토피아적이라 마치 내가 도망자나 탈출자가 된 느낌이다. 이런 곳을 한 시간 넘게 자전거로 달리니 정신이 혼미해지더라.
기름탑인가, 여기는 근처만 갔는데도 열기가 확 느껴지고, 쉬이익 하며 불타는 소리도 엄청나게 크게 들린다. 곧 폭발하지나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위압적이라, 오르막길도 단숨에 올라가서 빨리 이 근방을 벗어나는 기염을 토했다.
자전거 타고 울산을 지나간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이런 것 때문에 울산은 정말 피하고 싶은 동네다. 좋게 생각하면 울산의 산업단지 구경을 한 셈이니까, 어쩌다 한 번 쯤은 괜찮은 구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동차로 둘러보는거라면 몰라도, 자전거로는 절대 다시 가고싶지 않은 곳이다.
원래는 적당히 공업단지를 통과한 다음, 태화강이 나오면 동쪽으로 가서 다시 바다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미 정신이 혼미해진 상황.
지도를 보니 동해로 나가려면 산을 하나 넘든지, 현대중공업을 지나가든지 해야했다. 이건 정말 죽거나 혼수상태거나 하는 상황이다. 다 싫다. 나는 제삼국으로 갈 테야.
그래서 어느 공장 정문 앞쪽에서 태화강 자전거길로 내려갔다. 이제 좀 조용하니 살 것 같았다.
명촌교를 건너서 태화강에서 북쪽으로 뻗어있는 동천강으로 갔다. 이쪽도 강변 자전거길이 잘 돼 있어서 주행하기는 좋았다.
동천강 자전거길을 따라서 쭉 올라가면, 울산공항 옆을 지나서 경주시 남쪽 경계까지 바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7번 국도를 타면 경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만 보면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문제는 이제 해가 지고 있다는 거다. 이러면 울산 시내에서 밤을 맞게 된다. 물론 오만 원 이상 하는 모텔비를 낼 수 있다면 별 걱정 없지만, 가난뱅이는 그렇게 큰 지출을 할 수 없다. 울산공항 근처까지 신나게 자전거길을 타고 나서야 큰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바닷가면 적당한 해변에서 야영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이쪽은 도심이라 아무리 살펴봐도 야영을 할 만 한 곳이 없었다.
숙소가 있는 상태에서 적당히 달리면 즐거울 수도 있는 곳인데, 이제 잘 곳 걱정이 앞서서 즐거움 따위는 느낄 수 없었다. 시골쪽으로 빠져나가야 뭔가 대책이 있겠다 싶어서, 최대한 멀리 달려나갔다.
울산공항 근처. 비행기는 보이지 않았다. 잔디밭 키우는 곳인가보다.
농소동인가 신답인가 호계인가, 이런저런 이름표들이 걸려 있지만 뭐가뭔지 알 수는 없고 헷갈리기만 하는 이름의 동네 일대에서 나름 숙소를 찾아보겠다고 모텔을 검색해서 다녀봤는데, 신기하게도 이 일대는 모텔이 세 개 정도 밖에 없더라. 그래서인지 가격도 제일 싼 게 오만 원. 오만 원이면 빅맥이 열 개다. 내가 그냥 길바닥에서 밤을 새고 빅맥 열 개를 먹고 말지, 그 돈을 하룻밤 잠자리에 쓸 수는 없다.
그렇게 근처 시내 일대를 돌아다녀서 괜히 시간만 낭비하고는 다시 자전거길로 내려왔다. 모텔 가격 알아보러 다닐 시간에 길을 조금 더 달렸으면 좋았을 텐데. 게속 달렸으면 남경주 시골 어느 적당한 구석자리로 들어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동천강 자전거길은 울산 북구 기적의도서관 앞까지 뻗어 있었다. 여기를 넘어가면 경주라서, 길은 여기서 매몰차게 딱 끊겼다.
어쨌든 이 울산 북쪽 끄트머리에 아파트 단지가 있었고, 빵집이 보이길래 아낀 모텔비로 빵을 잔뜩 오천 원어치나 사서는, 동네 외곽 불빛도 없는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먹었다. 산책한다고 지나가던 동네 주민들이 흠칫 놀라는 모습을 봤지만, 내가 뭐 시체 뜯어먹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러고는 적당히 외곽으로 벗어나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거의 뜬눈으로 보냈다. 텐트는 쳤지만 그냥 노숙이었다. 그나마 울산과 경주의 경계 지역이라, 아파트 단지만 벗어나면 수풀 우거진 시골이라 대강 하룻밤 보낼 곳은 있더라. 하지만 당연히 이런 방법은 권하지 않는다. 도시 근처 인적 드문 곳은 불량 인간들이 야간에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혹시나 동해안 여행을 할 사람이라면, 최대한 바닷가로 가도록 하자.
그나마 부산항에서 출발해서 울산 북구, 경주 경계까지 갔으니, 하루만에 부산과 울산을 모두 벗어난 셈이라, 오늘은 그것에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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