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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환상 자전거길: 성산일출봉 인증센터 - 하도해변
    국내여행/자전거2017 2019. 2. 25. 12:29

     

    성산 고성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일어나긴 일찍 일어났는데 아침부터 장대비가 퍼부어서 우물쭈물했다.

     

    결국 아무래도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그냥 비를 맞으며 라이딩을 시작했다. 아침부터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면 정말 시원하고 상쾌하고 진정한 라이딩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고 꼬셔봐도 넘어가진 않겠지.

     

    간만에 제대로 된 시설에서 샤워한 것이 몇 시간도 안 지나서 말짱 도루묵이 돼 버렸다. 그나마 그동안 날이 맑았던 것이 운이 좋았던 것이라 생각하는 수 밖에. 그런데 아침 출발부터 비를 맞는 건 좀 아니지만, 여름엔 한 번 쯤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 될 수는 있다. 부슬비 정도라면 땡볕보다는 자전거 타기가 더 나을 수 있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섭지코지 근처 - 하도해변

     

    새벽에는 정말 장대비가 쭉쭉 퍼부어서, 이대로라면 숙소에서 하루 더 묵어야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나마 빗줄기가 조금 잦아들었을때 재빨리 길을 나섰는데, 나온지 얼마 안 돼서 또 장대비가 쫙쫙 퍼부었다. 결국 어느 버스 정류장에서 비를 피해서 한참을 또 노닥거렸다.

     

    바로 북쪽으로 올라갔으면 금방 비구름을 벗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인증센터를 들르려면 성산일출봉 입구를 지나가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그래서 그쪽으로 길을 둘러갔더니 빗속을 수영하듯이 헤치며 나가게 됐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은, 푸른 하늘에 예쁜 구름 둥둥 떠다니는 맑은 날씨에 푸른 옥색 바다를 바라보며 달렸던 시간보다, 이렇게 우중충한 어느 구석 아무것도 볼 것 없는 정류장에서 비를 그으며 먼 산 구름을 바라봤던 시간이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더라.

     

    힘들게 근 한 달을 자전거 타고 전국을 누볐지만, 자전거 타고 달리면서 보고 느꼈던 것들은 별로 남지가 않았다. 오히려 어느 시골 구석에서 쉬면서 노닥거리거나, 동네를 슬슬 마실다녔던 기억들이 더 오래 남더라. 그러니까 사서 고생 해봤자 남는건 사진 뿐이라는 결론인가. 남는게 있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일지도.

     

    제주 환상 자전거길: 섭지코지 근처 - 하도해변

     

    제주 환상 자전거길: 섭지코지 근처 - 하도해변

     

    근 한 시간을 버스정류장에서 비를 긋고 있는데, 갑자기 근처에 승용차가 멈춰 서더니, 여자가 뭐라뭐라 소리를 지르며 내려서는 문을 쾅 닫고는 우산도 없이 시내 쪽으로 휘휘 걸어가는 모습도 봤다. 아마 차 안에서 싸우다가 내려서는 각자 갈 길 갔나보다. 비 오는 날은 좀 참아야 하는데.

     

    제주 환상 자전거길: 성산일출봉

     

    비를 피하느라 시간을 허비했지만, 어쨌든 성산일출봉 입구까지 갔다. 고성에서 성산일출봉까지는 약 3킬로미터 정도로 가까운 거리라서, 비만 안 왔다면 한 시간도 안 걸렸을 테다.

     

    이날 비를 맞으면서도 똑딱이 디카를 꺼내서 사진을 찍고 돌아다녔더니, 카메라 상태가 아주 안 좋아졌다. 집에 올 때까지는 그럭저럭 버텨주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산지 삼 년 밖에 안 된 십만 원짜리 디카였는데.

     

    제주 환상 자전거길: 성산일출봉

     

    성산일출봉 올라가는 입구. 저기를 올라갔다오면 오늘 자전거를 더 타기는 힘들어진다. 이 정도만 와서 구경해도 충분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돌아나간다. 여기는 오전 시간인데도 관광버스로 길이 꽉 막힐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가더라.

     

     

     

    그냥 떠나기는 아쉬우니까 성산의 맛집에 들어가서 우아하게 브런치를 즐겼다. 간판을 가렸으니 어딘지 모르겠지.

     

    아침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셀프로 퍼먹는 토스트를 많이 먹고 나왔지만, 보니까 또 먹고싶어지기도 하고, 이 날씨에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기운이 축 처지기도 해서 낭비를 해봤다. 돈이 아까워지면 본전 생각나서 달리게 되는 그런 효과를 노렸으나, 별 의미는 없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을 봤는데, 중국인이 영어로 주문을 하니까, 카운터에서 갑자기 다른 직원을 찾아서 불러오던데, 정작 불러온 그 직원은 한국어로 주문을 받더라. 그런데 센스가 좋아서 척척 주문을 받아내는 모습. 역시 언어보다 센스가 중요하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성산포

     

    제주 환상 자전거길: 성산일출봉 인증센터

     

    '성산일출봉 인증센터'는 성산포항으로 가는 다리 앞에 설치돼 있다. 바다 너머 성산일출봉을 바라보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편한 길을 택하자면 굳이 성산일출봉 입구를 지나가지 않아도 다른 길이 있지만, 겸사겸사 정석대로 길을 달려봤다.

     

    그리고 자전거 여행을 할 때, 비옷은 두 개 이상 챙긴다. 하나는 비올 때 입을 것이고, 또 하나는 가방이 젖지 않게 감싸기 위한 용도다. 좀 더 넉넉하게 챙기면 텐트 밑바닥에 깔아서 습기를 막는 용도나, 쌀쌀할 때 이불 대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성산일출봉 인증센터

     

    제주 환상 자전거길: 성산일출봉 인증센터

     

    인증센터 부스가 놓여 있는 곳은 쉼터로 꾸며져 있었다. 특별한 시설은 없는 빈 공간인데, 바다와 함께 성산일출봉을 넋놓고 바라볼 수 있다.

     

    여기서 이십대 쯤 돼 보이는 한 사람이 한참동안 난간 앞에 서서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며 환희에 찬 표정을 하고 있는걸 봤다. 이 길이 올레길이기도 해서, 걸어서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도 좀 있었는데, 그 여인은 정말 자기가 여기에 온 것이 여태까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라도 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다시 성산일출봉을 바라봤는데, 딱히 특별한 감흥이 느껴지진 않았다. 아까 먹은 햄버거나 떠오르고. 이것저것 많이 보고 다니다보면 이게 문제다. 시큰둥해지는게 점점 많아진다. 생전 처음 앙코르와트를 봤을 때는, 아아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유적지 속에서 신비한 기운도 느꼈는데, 이제는 거기 가봤자 아이고 입장료 또 올랐네 싶기만 하고. 웬만한 풍경은 이제 가슴이 설레는 느낌 같은 것도 별로 없다. 가슴이 설레지 않으니 지구를 버려야 할까. 아이고 슬퍼.

     

    옛날 같았으면 이 글도 이렇게 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소녀의 환희에 찬 표정을 보고는 가슴 속 어딘가 잠들어 있던 나의 여행 감성이 꿈틀대며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고, 그때 다시 성산일출봉을 봤더니 아까 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산이 거기에 있었다. 잃어버린 나의 감성을 되찾아준 아름다운 소녀를 뒤로하고, 나는 다시 이 즐거운 여행을 씩씩하게 이어나갔다. 이렇게 풀어가야 뭔가 있어 보이고, 또 뭔가 있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감성 섞인 찬사가 쏟아지고, 인기도 얻고 책도 내고 지글지글 하겠지. 아이고 이놈의 세상. 다 필요없다. 귀찮아.

     

    제주 환상 자전거길: 성산

     

    제주 환상 자전거길: 성산

     

    경치고 나발이고 그냥 이런 집에 살았으면 싶더라.

     

     

    이동중인 차 아님. 주차 돼 있는 상태임.

     

    제주 환상 자전거길: 성산

     

    제주 환상 자전거길: 섭지코지 근처 - 하도해변

     

    제주 환상 자전거길: 섭지코지 근처 - 하도해변

     

    제주 환상 자전거길: 섭지코지 근처 - 하도해변

     

    제주 환상 자전거길: 섭지코지 근처 - 하도해변

     

    오늘도 바닷가로 빙빙 둘러가는 길을 택했다. 성산포 일대를 벗어나니 비도 그쳤다. 사진은 웬지 저녁 같은 느낌이 나지만, 아직 오전이다. 슬슬 우도가 보인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우도 선착장

     

    우도 도항선 선착장. 우도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곳이다. 제주도 여행 내내 밤마다 우도를 갈까말까 고민했다. 자전거를 끌고 우도를 간 적은 없었기 때문에, 저기 들어가서 하룻밤 야영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여기 도착할 때까지 우도에 갈지말지 결정을 못 하고 있었는데, 딱 도착하자마자 결정을 했다. 귀찮다. 역시 배의 기름 냄새를 맡으니 만사가 귀찮아지면서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배 기름 냄새에는 살짝 구토 냄새가 섞여 있어서, 냄새를 맡기만해도 속이 매쓱거리고 어지러워진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우도 선착장

     

    섬에서 배 타고 또 섬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보다가 뭘 먹을까, 왜이리 비싸지, 조금 참았다가 나가서 먹을까, 여기까지 왔으니 여기서 먹는 것도 좋겠지, 그런데 오늘은 어디서 잘까, 바람 조금 덜 부는 곳은 어딜까, 사람 조금 없는 곳은 어딜까, 여기는 안전할까, 저기는 불안할까 기타등등 아이고 귀찮아라. 빨리 여기를 벗어나자. 옳은 선택을 하려면 미련을 두지 않으면 된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우도 선착장

     

    제주 환상 자전거길: 우도 선착장

     

    우도에서 점점 멀어져간다. 어쩌면 다시는 이런 기회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면 그것도 운명이겠지.

     

    제주 환상 자전거길: 우도 선착장

     

    제주 환상 자전거길: 섭지코지 근처 - 하도해변

     

    제주 환상 자전거길: 섭지코지 근처 - 하도해변

     

    제주도 자전거길. 제주도 해안쪽 자전거길은 대체로 이런 상태다. 크게 나쁘지는 않지만, 그다지 좋지도 않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섭지코지 근처 - 하도해변

     

    제주 환상 자전거길: 하도해변

     

    여긴 아마도 하도해변. 우도가 보인다는 것 외에는 크게 특별한 것 없는, 조용한 해변이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하도해변

     

    제주 환상 자전거길: 하도해변

     

    제주 환상 자전거길: 하도해변

     

    제주 환상 자전거길: 하도해변

     

    제주 환상 자전거길: 하도해변

     

    제주 환상 자전거길: 하도해변

     

    제주도 북동쪽 동네들은 이렇게 해안가에 의자를 내놓은 카페들이 많더라.

     

     

     

    제주 환상 자전거길: 하도해변

     

    하도해변에서 세화해변으로 향한다. 성산포 일대를 벗어나니 더이상 비가 내리지 않았고, 점점 맑은 하늘이 나왔다. 이래서 자전거 여행을 할 때는 비가와도 달려야 할 때가 있다. 제주도라는 섬을 여행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내륙에서 여행할 때도 몇십 킬로미터만 이동하면 날씨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어서, 일단 길 위에 섰다면 달려보는게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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