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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자전거길: 경주 - 포항국내여행/자전거2017 2019. 6. 11. 17:28
야간주행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대강 밤을 새고 날 밝자마자 출발하자는 생각으로 노숙을 했다. 몸이 피곤하니 어디서든 잠이 들긴 들더라.
이런 여행을 하면, 어디서든 누우면 잠이 들고, 해가 뜨면 바로 눈이 떠진다. 일어나면 딱히 할 일이 없으니 바로 달리기 시작하고, 어디선가 적당히 밥을 먹고, 그렇게 살도 빠지니 정말 좋다. 살 빼려면 여름철에 딱 한 달만 시간 내서 자전거 노숙 여행을 해보시라. 효과 만점이다.
해 뜨자마자 짐 챙겨서 새벽부터 달리다가, 자전거가 잘 안 나가서 튜브에 공기를 넣으려다보니, 타이어가 이런 상태였다. 많이 닳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어느날 보니 상태가 너무 심각했다.
고무가 닳고 닳아서 마지막 실밥이 보이는 상태인데, 두께가 1밀리미터도 안 됐다. 이건 정말 당장 대책을 세워야 하는 위급한 상황. 이대로 달리다간 튜브가 삐쳐 나올 수도 있고, 조그만 이물질에도 금방 펑크가 날 수도 있다. 경주 시내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이것부터 해결해야 했다.
그런데 이 상태로 달렸는데도 펑크가 나지 않았다는게 신기하다. 근 한 달간 여행을 하면서 펑크가 한 번도 나지 않았다. 이건 운도 운이지만, 내가 조심해서 잘 달려서 그렇다고 자화자찬 해본다.
울산에서 경주 경계를 넘어가니 이런 짝퉁 다보탑이 떡하니 서서, 여긴 경주요 하고 있더라. 하지만 이것보다 더 눈에 띄는 건, 손짜장 푯말이다. 경주만 들어서면 손짜장 광고 푯말이 왜 그리 많은지. 그나마 옛날보단 많이 없어진 편이더라. 그 많은 손짜장 광고들을 보고도 단 한 번도 먹지 않은 나도 참 징하다.
여행내내 편의점을 주로 이용했다. 사실 지방에선 편의점 도시락 사 먹을 돈으로 제대로 된 식당을 들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주문하고 어쩌고 너무 귀찮다. 편의점 도시락은 간단하게 빨리 먹고 다시 출발할 수 있어서 좋다. 가다보면 좋은 풍경을 수시로 만나기 때문에, 굳이 식당 같은데서 쉴 필요도 없고. 밥은 연료 채우는 용도로 퍼 넣을 뿐, 미식의 즐거움 따윈 없는 거다.
물론 사람마다 다른 가치관이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형태로 여행을 하면 된다. 나는 음식따윈 일상에서도 잘 찾아먹고 음미할 수 있지만, 지역의 모습이나 풍경 같은 것을 실제로 구경할 기회는 많지 않기 때문에, 길을 달리고 풍경을 감상하는데 더 중점을 둔다.
울산에서 경주 도심까지는 그냥 차도로 자동차들과 뒹굴며 간 것 밖에 없어서, 힘은 들었지만 딱히 남는 기억도 남는 사진도 없다. 그래서 다 생략하고 국립경주박물관. 입장료가 무료라서 건물 사진이나 찍어볼까 하고 갔지만, 개관시간이 오전 10시라서 아직 문을 안 열었더라.
여기는 가보자고 마음먹고 간 게 아니라, 길따라 가다가 옆에 있길래 들른 것 뿐이었다. 지도를 보면, 불국사역부터 선덕여왕릉을 거쳐서 경주 시내까지 '경주역사탐방자전거길'이 있는 것 처럼 표시되어 있어서 그 길을 타고 갔는데, 내가 갔을 땐 그냥 차도였다. 따로 자전거 타기 좋게 길이 돼 있다거나 그렇진 않았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경주 역사유적지구 구경도 해봤다. 드라마 선덕여왕 촬영지라는 푯말도 있더라. 이 일대는 자전거 타고 둘러보기 좋게 길이 나 있다. 물론 걸어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햇볕 뜨거울 때는 자전거가 아무래도 낫다.
첨성대도 보고, 왕릉도 보고. 볼 때는 좋았는데, 딱히 설명할 건 없다. 경주의 이런 분위기를 오랜만에 느껴보려고 호미곶을 포기하고 경주 시내로 방향을 잡았는데, 나름 괜찮았다. 사진으로 보면 별 거 없지만, 가끔 한 번씩 직접 가보면 마냥 좋은 곳이다.
자연스럽게 대릉원으로 길이 이어졌다. 신라의 무덤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천마총이 있기 때문에 천마 상을 만들어놨나보다. 담장 바깥쪽에서 구경했다.
대릉원은 담장따라 옆길로 살짝 구경하며 지나갔다. 이것저것 다 구경하고 돌아다니면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할 수 있기 때문에, 자세한 구경은 나중에 경주만 따로 여행가면 하기로 했다.
경주 시내 게스트하우스 같은 데서 하루 묵으며 구경을 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이때는 이런 유적보다 바다를 더 보고싶었다. 그래서 경주에서는 야외 유적지 구경만 살짝하며 스쳐 지나갔다. 그때그때 마음 내키는 데로 하는 것이 여행의 참맛이다.
그래도 담장 너머 대릉원 일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아이고 좋아라. 구경 다 했네.
대릉원 길을 지나간 이유는 하나로 마트를 들르기 위해서였다. 대릉원은 거들 뿐. 마트 들어가려고 잠시 자전거를 묶어둔 모습. 그래봤자 많이 실을 수가 없어서 물 두 통과 빵 한 뭉치를 샀을 뿐이지만, 2리터짜리 물 한 통을 육백 원에 살 수 있는게 어디냐. 편의점에 가면 무조건 천 원 이상인데.
경주역 앞쪽을 지나가려다가 자전거 가게가 보이길래 냅다 들어갔다. 실밥 다 보이는 타이어로 계속해서 달릴 수는 없었으니까. 앞 뒤 양쪽 다 가는데 4만 원 조금 넘게 나왔다. 처음엔 튜브가 아니라 타이어를 갈러 왔다는 것에 주인장도 약간 의아해했는데, 타이어 상태를 보더니 아이고 탄성을 내지르더라.
타이어 갈면서 여기저기 기름칠도 좀 하고, 기어도 약간 조정하고 했다. 가게 주인이 아주 친절하게 잘 해줘서, 우리 동네도 이런 가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작업도 많이 해 본 솜씨여서, 타이어 갈고 이런저런 정비 하는데 십 분도 안 걸렸다. 경주역 앞쪽 삼천리자전거 황오화랑점 기억해두자.
십만 원 짜리 자전거에 타이어만 약 오만 원이다. 이것이 바로 자전거보다 타이어가 더 크다는 거다. 새 타이어에 삐죽삐죽 솟은 돌기들이 바퀴가 굴러갈 때 지면과 마찰을 살짝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 듯 하다. 짐 때문에 무거워서 큰 역할은 못 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주행할 때 소리는 좋더라.
기어에 기름칠도 했고, 타이어도 새것이니 이후엔 정말 바람처럼 쌩쌩 달려서, 포항 시내를 거쳐서 칠포해수욕장까지 순식간에 달려갔다. 역시 인생은 현질이다.
경주역 앞쪽을 지나서 포항 시내까지 국도를 타고 쭉쭉 나갔다. 여기는 국도도 정비가 잘 돼 있는 편이고, 직선으로 쭉 뻗어 있어서 과속단속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며 쌩쌩 달려나가기 딱 좋았다. 물론 길이 잘 뻗어있으니 차들도 엄청난 속도로 달린다는 흠은 있지만, 통행량이 그리 많지는 않아서 그럭저럭 괜찮았다. 다만, 경주에서 포항까지 아무것도 볼 것이 없어서 지루하다는게 가장 큰 단점이다.
중간에 '아시안 하이웨이'가 보였다. 대체 표지판 글자가 왜 저 모양인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이 길은 나름 거대한 이상을 품고 있는 길이다.
아시안 하이웨이(AH: Asian Highway)는 유엔(UN)의 아시아 태평양 경제 사회 위원회에서 추진하는 프로젝트로, 기존의 도로망 등을 활용해서 아시아 32개국을 횡단하는 실크로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작은 1959년부터 했지만, 70년대까지 진척을 이루는 듯 하다가 지지부진해졌다. 그러다가 2000년 이후에 국가간 협의가 이뤄지면서 다시 불이 붙었는데, 중간에 중국이 일대일로 어쩌고 하면서 좀 이상하게 돼버렸다.
총 8개의 간선(AH1-AH8)이 있는데, 한국은 AH1과 AH6 두 개 노선이 지나간다. AH1은 도쿄를 기점으로 후쿠오카를 거쳐서 부산으로 넘어가서 베트남, 방콕, 인도, 이란 등을 거쳐서 불가리아까지 가는 길인데, 이 노선 중 일부로 한일 해저터널이 논의되기도 했다.
사진에 보이는 AH6은 부산을 출발해서, 우수리스크, 하얼빈, 이르쿠츠크, 옴스크 등을 지나서 모스크바, 벨라루스 국경까지 가는 노선이다. 그런데 둘 다 북한을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어느 세월에 이 길들이 완전히 개통될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현실은 시궁창이라도 이상은 높게 아름답게 가지자는 의미에서 나름 가치가 있다.
북한이 아시안 하이웨이만이라도 지나갈 수 있게 해준다면, 이 길 따라서 유럽까지 자전거를 타고 편하게 갈 수 있을 텐데. 그것까진 아니더라도 기차만 지나게 해 준다면 육로로 이어지니까 나름 의미가 있을 테고.
어쨌든 포항 시내 진입. 포항 시내는 길이 시원하게 쭉쭉 뻗어 있는게 인상적이다. 옛날부터 내 기억속에 포항은 햇살이 따스한 곳이라는 인상이 있고, 그것 외엔 그냥 조용한 동네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옛날에 포항이 고향인 친구에게 포항에 가면 뭘 봐야하냐 물었더니, 아무것도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허허, 아무것도 없음을 보아야하는 철학적인 동네인 건가. 어렵다. 그러니 포항은 빨리 통과하는 걸로.
포항산도 식후경. 쭉 뻗은 대로를 달려가는데, 길 가에 정말 엄청난 크기의 도날드 가게가 보이길래 나도 모르게 들어가버렸다. 더워서 에어컨 바람을 좀 쐬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사진에 가게 간판이 안 나오니까 무슨 가게인지는 모를테지만, 어쨌든 오랜만에 편의점이 아닌 곳에서 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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