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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국내여행/자전거2017 2019. 6. 16. 17:29
지난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다음날 하루종일 이어졌다. 방수 기능 없는 싸구려 텐트라 빗물이 고이는 건 이미 일찌감치 알고 있어서, 부피는 크지만 야외용 매트를 가지고 다녔다. 다이소 같은 데서 파는 올록볼록한 그 매트 말이다.
보통 방석 대신으로 두어 번 사용하고 버리는 거지만, 이런 여행 때는 밤에 잘 때 깔고자면 좋다. 텐트 바닥으로 물이 흥건해져도 몸이 젖지 않게 해주기 때문이다. 찾아보면 뭔가 더 훌륭한 장비들이 있겠지만, 이런 매트는 도시에선 거의 어디서나 살 수 있고, 가격도 싸기 때문에 간편해서 좋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준비물 편을 참고하자. 자전거로 동네 한 바퀴 - 준비물
하루종일 자전거를 타니까 피곤해서, 텐트 바닥에 물이 좀 고여도 잠을 잘 수는 있다. 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오면 여러모로 좀 난감하다. 축축하게 젖은 텐트와 짐을 챙겨 넣는 것부터 찝찝하고, 젖으니까 무게도 좀 더 나가게 된다.
비옷이 있기는 하지만, 젖는 속도를 조금 늦추는 것 뿐이라, 결국엔 몸이 다 젖게 돼 있다. 달리다보면 비가 시원하게 느껴져서 괜찮아지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비를 맞으며 야생으로 나가는 건 또 조금 다른 문제. 사기가 꺾인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래서 후포해수욕장 지붕 있는 무대 같은 곳에서 한참 비를 그으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바람이 부니까 텐트를 조금이라도 말려봤고. 결국 물기만 털어내는 수준에서 그쳐야 했지만.
비가 살짝 잦아들었을 때 출발했지만, 가다보니 또 퍼붓기 시작했다. 바닷가라 그런지 바람도 함께 불어서, 빗줄기가 굵어지니 앞이 안 보일 지경이었다. 중간중간 마을 정자 같은 데서 굵은 비는 피하면서 다녔다.
비가 온다고 딱히 쉴 곳도 없고, 쉬면 시간만 가니까 어쨌든 진도는 나갔다. 북쪽으로 계속 달려서 울진 월송정 인증센터 도착. 인증센터 부스는 월송정 들어가는 입구에 있어서 찾기 쉬웠다. 그냥 지나는 길에 스탬프만 찍고 가면 되는 곳이다.
월송정은 관동팔경 중 하나로, 고려시대에 지어진 고상누각이라 한다. 평지라서 비가 안 왔으면 안쪽으로 구경을 갔을 테지만,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서 내키지 않았다. 사진도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서만 찍을 수 있는 상황이라, 이날은 길에서 찍은 것이 별로 없다.
라이딩 할 때 쓰는 고글로 보면 어떻게 보이는지 한 번 찍어봤다. 빗방울이 계속해서 떨어지기 때문에, 심할 때는 이것보다 더 많이 앞을 가린다. 거의 길이냐 아니냐를 구분할 정도밖에 안 보인다. 이런 날은 낮이라도 조심해야 한다.
이렇게만 쓰면 비오는 날 자전거 타기가 마냥 불편하고 안 좋게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여러 불편함을 넘어서는 상쾌함이 있다. 특히 여름철엔 일단 시원해서 좋다. 길 다니면서 샤워하는 느낌. 도심이라면 많이 불편하겠지만, 이런 시골길은 비를 맞으며 달리는 것도 꽤 재밌다.
참고로, 이때 사용한 고글은 동네 마트에서 우연히 발견한 삼천 원 짜리 3M 고글이었다. 썬글라스는 싸구려를 사용하면 눈에 안 좋은 것이 확 느껴지지만, 고글은 딱히 그런게 없다고 알고 있다. 어차피 먼지나 빗물이 눈에 들어가는 것만 막으면 되니까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나중에 만 원짜리 고글도 사용해봤는데, 설명에는 겉면에 코팅을 해서 물이 흘러내리고 어쩌고 나와있지만, 비 오면 물방울이 앞을 가리는 건 똑같더라. 딱히 비싼 것을 사 쓸 필요는 없고, 겉면이 많이 긁히면 버리고 바꿔야 하니까 적당히 싼 걸로 몇 개 장만하는게 좋다.
소나무 숲이 인상적이었던 구산해수욕장. 솔숲 한쪽엔 오토캠핑장도 있었는데 유료다.
여기 화장실은 천장을 높게 해놔서 마치 무슨 전시실 같은 느낌이었다.
기성망양 해수욕장 근처엔 조그맣게 마을이 있었다. 한동안 비가 좀 잠잠해졌다가 여기쯤에서 다시 퍼붓기 시작해서 마을 안쪽 정자에서 잠시 쉬어갔다. 다른 가게는 다 비어있는데 다방은 사람이 많은게 신기했던 동네. 비가오면 카페에 사람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인가 싶다.
조금 더 올라가니 '울진 망양휴게소 인증센터'가 나왔다. 휴게소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어서, 꼭 휴게소를 들르지 않더라도 지나갈 수 있게 돼 있다. 나도 웬만했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여기까지 편의점을 찾을 수 없어서 밥을 못 먹은 상태라, 밥 먹으러 들어갔다.
비빔밥이 팔천 원이었나 그랬다. 이런 걸 보면 편의점 도시락이 가성비가 괜찮다고 볼 수 있다. 이런데서 밥 먹을 때마다 우리동네 육천 원짜리 한식부페 생각이 나는데, 그러면 눈물이 난다. 아이고 슬퍼라. 가성비 좋은 동네 식당 놔두고 이 낯선 곳에서 이 비싼 밥을 먹고 뭐하는 짓이냐.
경치 값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밥을 먹으면서 창 밖으로 비 내리는 동해 바다를 감상할 수 있었다. 역시 비는 창 밖으로 내다보는게 제일 좋다. 하지만 밥 다 먹고 한참을 뒹굴거려도 비가 그치지 않아서, 다시 그대로 밖으로 나가야 했다.
먕양휴게소는 건물 자체는 좀 낡은 느낌이지만, 경치는 좋았다. 차 타고 가다가 잠시 쉬면서 바다 구경할 용도로는 괜찮았다. 카페도 있으니까 시간 많으면 바다를 보면서 노닥거릴 수도 있다.
비가 쉬 그칠 기미가 안 보였고, 밥 먹으면서 시간을 좀 많이 보내기도 했으니까, 다시 비를 맞으며 길을 달렸다. 돈이 없으면 시간도 없다. 여행 기간이 하루 늘어나면 그게 다 돈이니까, 이때쯤엔 약간 서두르고 있었다. 이렇게 거지꼴로 여행하는데도 한 달 여행에 백만 원이 들어갔다. 이러니 차라리 해외로 가는게 낫다는 소리가 나오지.
영신해수욕장, 덕신해수욕장 같은 길 가의 조그만 해수욕장을 지나서 울진 쪽으로 계속 올라갔다. 잠시 쉬어가기 좋은 백사장은 끊임없이 계속 나온다.
바다는 역시 비오는 날 보는게 멋있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이 있는 망양정해수욕장. 해변 바로 뒷편에 망양정이라는 정자가 있지만, 좀 기어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간단히 포기하고 바다만 구경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 하나도 없이 좋더라.
망양정도 있고, 울진 엑스포 공원도 있고, 울진 중심가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해수욕장이기 때문에, 아마도 평소엔 사람이 좀 있을 듯 하다.
여기서 조금만 북쪽으로 올라가면 울진 은어다리가 나오는데, 내륙 쪽으로 조금 돌아서 다리를 건너서 가도록 돼 있다. 직선거리는 1킬로미터 정도인데, 둘러가야해서 4킬로미터를 달려야 한다. 이래서 얼마나 달렸는지를 직선거리로만 따지면 억울해진다.
드디어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이것으로 동해안 종주 자전거길 경북 코스는 끝이다. 경북 코스는 인증센터간 거리가 짧은 편이라서 하루만에 끝낼 수도 있다.
온 몸이 빗물에 젖어서, 스탬프를 찍자마자 물이 뚝뚝 떨어져서 다 번져버렸다. 어차피 인증서 같은 것 신청하지는 않을 거고, 재미삼아 찍는 거니까 별 상관 없다.
스텐으로 만든 것 같은 은어다리 조형물. 정말 은색으로 번쩍번쩍 빛이 난다. 햇볕이 쨍쨍했으면 눈이 부셔서 똑바로 처다볼 수도 없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것도 없는 공터지만, 경북구간을 끝냈으니 한 단계가 완료됐다는 의미에서 주위를 둘러봤다.
정말 별 거 없더라. 진짜 빈 공터. 차라리 망양정을 올라가 볼 걸 그랬다. 그래도 여기는 평지라서 따로 기어오르고 할 게 없으니까 다행이다.
은어다리를 건너가야 울진으로 계속 진행할 수 있다. 은어 조형물을 제외하면, 다리 자체는 그냥 평범한 다리일 뿐이다.
비가 계속 내렸기 때문에, 은어 뱃속에서 잠시 비를 피해볼까 했지만, 속은 구멍이 숭숭 나 있어서 빗방울을 피할 수 없게 돼 있더라. 하루종일 비를 맞고 다녔더니 몸이 깨끗해진 느낌. 정화의식인가.
울진 쪽은 자전거길이 시내 외곽 쪽으로 진입해서 울진군청 근처를 지나도록 돼 있다. 바닷가로는 연결되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나름 울진 동네 구경도 하고 재미있었는데, 군 치고는 꽤 큰 동네였다. 나름 있을만 한 건 다 있고 조용한 동네라서, 뭔가 해 먹을 것 있으면 조용하게 살기 좋지 않을까 싶더라. 뭔가 해 먹을 것을 찾는게 제일 어려운 문제지만.
밥 먹은지 얼마 안 됐지만, 이 동네를 그냥 지나가면 또 언제 밥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기로 했다. 오늘은 나름 고생했으니 2단 도시락으로. 나름 푸짐하고 가격은 싸다. 이래서 여행 중 내내 편의점 도시락을 애용했다. 물론 일상으로 돌아오면 잘 안 먹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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