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다음날 하루종일 이어졌다. 방수 기능 없는 싸구려 텐트라 빗물이 고이는 건 이미 일찌감치 알고 있어서, 부피는 크지만 야외용 매트를 가지고 다녔다. 다이소 같은 데서 파는 올록볼록한 그 매트 말이다.

 

보통 방석 대신으로 두어 번 사용하고 버리는 거지만, 이런 여행 때는 밤에 잘 때 깔고자면 좋다. 텐트 바닥으로 물이 흥건해져도 몸이 젖지 않게 해주기 때문이다. 찾아보면 뭔가 더 훌륭한 장비들이 있겠지만, 이런 매트는 도시에선 거의 어디서나 살 수 있고, 가격도 싸기 때문에 간편해서 좋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준비물 편을 참고하자. 자전거로 동네 한 바퀴 - 준비물

 

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하루종일 자전거를 타니까 피곤해서, 텐트 바닥에 물이 좀 고여도 잠을 잘 수는 있다. 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오면 여러모로 좀 난감하다. 축축하게 젖은 텐트와 짐을 챙겨 넣는 것부터 찝찝하고, 젖으니까 무게도 좀 더 나가게 된다.

 

비옷이 있기는 하지만, 젖는 속도를 조금 늦추는 것 뿐이라, 결국엔 몸이 다 젖게 돼 있다. 달리다보면 비가 시원하게 느껴져서 괜찮아지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비를 맞으며 야생으로 나가는 건 또 조금 다른 문제. 사기가 꺾인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래서 후포해수욕장 지붕 있는 무대 같은 곳에서 한참 비를 그으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바람이 부니까 텐트를 조금이라도 말려봤고. 결국 물기만 털어내는 수준에서 그쳐야 했지만.

 

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비가 살짝 잦아들었을 때 출발했지만, 가다보니 또 퍼붓기 시작했다. 바닷가라 그런지 바람도 함께 불어서, 빗줄기가 굵어지니 앞이 안 보일 지경이었다. 중간중간 마을 정자 같은 데서 굵은 비는 피하면서 다녔다.

 

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동해안 자전거길: 울진 월송정 인증센터

 

비가 온다고 딱히 쉴 곳도 없고, 쉬면 시간만 가니까 어쨌든 진도는 나갔다. 북쪽으로 계속 달려서 울진 월송정 인증센터 도착. 인증센터 부스는 월송정 들어가는 입구에 있어서 찾기 쉬웠다. 그냥 지나는 길에 스탬프만 찍고 가면 되는 곳이다.

 

월송정은 관동팔경 중 하나로, 고려시대에 지어진 고상누각이라 한다. 평지라서 비가 안 왔으면 안쪽으로 구경을 갔을 테지만,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서 내키지 않았다. 사진도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서만 찍을 수 있는 상황이라, 이날은 길에서 찍은 것이 별로 없다.

 

동해안 자전거길: 울진 월송정 인증센터

 

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라이딩 할 때 쓰는 고글로 보면 어떻게 보이는지 한 번 찍어봤다. 빗방울이 계속해서 떨어지기 때문에, 심할 때는 이것보다 더 많이 앞을 가린다. 거의 길이냐 아니냐를 구분할 정도밖에 안 보인다. 이런 날은 낮이라도 조심해야 한다.

 

이렇게만 쓰면 비오는 날 자전거 타기가 마냥 불편하고 안 좋게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여러 불편함을 넘어서는 상쾌함이 있다. 특히 여름철엔 일단 시원해서 좋다. 길 다니면서 샤워하는 느낌. 도심이라면 많이 불편하겠지만, 이런 시골길은 비를 맞으며 달리는 것도 꽤 재밌다.

 

 

참고로, 이때 사용한 고글은 동네 마트에서 우연히 발견한 삼천 원 짜리 3M 고글이었다. 썬글라스는 싸구려를 사용하면 눈에 안 좋은 것이 확 느껴지지만, 고글은 딱히 그런게 없다고 알고 있다. 어차피 먼지나 빗물이 눈에 들어가는 것만 막으면 되니까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나중에 만 원짜리 고글도 사용해봤는데, 설명에는 겉면에 코팅을 해서 물이 흘러내리고 어쩌고 나와있지만, 비 오면 물방울이 앞을 가리는 건 똑같더라. 딱히 비싼 것을 사 쓸 필요는 없고, 겉면이 많이 긁히면 버리고 바꿔야 하니까 적당히 싼 걸로 몇 개 장만하는게 좋다.

 

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소나무 숲이 인상적이었던 구산해수욕장. 솔숲 한쪽엔 오토캠핑장도 있었는데 유료다.

 

 

여기 화장실은 천장을 높게 해놔서 마치 무슨 전시실 같은 느낌이었다.

 

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기성망양 해수욕장 근처엔 조그맣게 마을이 있었다. 한동안 비가 좀 잠잠해졌다가 여기쯤에서 다시 퍼붓기 시작해서 마을 안쪽 정자에서 잠시 쉬어갔다. 다른 가게는 다 비어있는데 다방은 사람이 많은게 신기했던 동네. 비가오면 카페에 사람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인가 싶다.

 

 

동해안 자전거길: 울진 망양휴게소 인증센터

 

조금 더 올라가니 '울진 망양휴게소 인증센터'가 나왔다. 휴게소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어서, 꼭 휴게소를 들르지 않더라도 지나갈 수 있게 돼 있다. 나도 웬만했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여기까지 편의점을 찾을 수 없어서 밥을 못 먹은 상태라, 밥 먹으러 들어갔다.

 

동해안 자전거길: 울진 망양휴게소

 

동해안 자전거길: 울진 망양휴게소

 

비빔밥이 팔천 원이었나 그랬다. 이런 걸 보면 편의점 도시락이 가성비가 괜찮다고 볼 수 있다. 이런데서 밥 먹을 때마다 우리동네 육천 원짜리 한식부페 생각이 나는데, 그러면 눈물이 난다. 아이고 슬퍼라. 가성비 좋은 동네 식당 놔두고 이 낯선 곳에서 이 비싼 밥을 먹고 뭐하는 짓이냐.

 

동해안 자전거길: 울진 망양휴게소

 

동해안 자전거길: 울진 망양휴게소

 

경치 값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밥을 먹으면서 창 밖으로 비 내리는 동해 바다를 감상할 수 있었다. 역시 비는 창 밖으로 내다보는게 제일 좋다. 하지만 밥 다 먹고 한참을 뒹굴거려도 비가 그치지 않아서, 다시 그대로 밖으로 나가야 했다.

 

동해안 자전거길: 울진 망양휴게소

 

동해안 자전거길: 울진 망양휴게소

 

동해안 자전거길: 울진 망양휴게소

 

먕양휴게소는 건물 자체는 좀 낡은 느낌이지만, 경치는 좋았다. 차 타고 가다가 잠시 쉬면서 바다 구경할 용도로는 괜찮았다. 카페도 있으니까 시간 많으면 바다를 보면서 노닥거릴 수도 있다.

 

 

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비가 쉬 그칠 기미가 안 보였고, 밥 먹으면서 시간을 좀 많이 보내기도 했으니까, 다시 비를 맞으며 길을 달렸다. 돈이 없으면 시간도 없다. 여행 기간이 하루 늘어나면 그게 다 돈이니까, 이때쯤엔 약간 서두르고 있었다. 이렇게 거지꼴로 여행하는데도 한 달 여행에 백만 원이 들어갔다. 이러니 차라리 해외로 가는게 낫다는 소리가 나오지.

 

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영신해수욕장, 덕신해수욕장 같은 길 가의 조그만 해수욕장을 지나서 울진 쪽으로 계속 올라갔다. 잠시 쉬어가기 좋은 백사장은 끊임없이 계속 나온다.

 

 

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바다는 역시 비오는 날 보는게 멋있다.

 

 

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이 있는 망양정해수욕장. 해변 바로 뒷편에 망양정이라는 정자가 있지만, 좀 기어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간단히 포기하고 바다만 구경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 하나도 없이 좋더라.

 

망양정도 있고, 울진 엑스포 공원도 있고, 울진 중심가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해수욕장이기 때문에, 아마도 평소엔 사람이 좀 있을 듯 하다.

 

여기서 조금만 북쪽으로 올라가면 울진 은어다리가 나오는데, 내륙 쪽으로 조금 돌아서 다리를 건너서 가도록 돼 있다. 직선거리는 1킬로미터 정도인데, 둘러가야해서 4킬로미터를 달려야 한다. 이래서 얼마나 달렸는지를 직선거리로만 따지면 억울해진다.

 

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동해안 자전거길: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드디어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이것으로 동해안 종주 자전거길 경북 코스는 끝이다. 경북 코스는 인증센터간 거리가 짧은 편이라서 하루만에 끝낼 수도 있다.

 

동해안 자전거길: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온 몸이 빗물에 젖어서, 스탬프를 찍자마자 물이 뚝뚝 떨어져서 다 번져버렸다. 어차피 인증서 같은 것 신청하지는 않을 거고, 재미삼아 찍는 거니까 별 상관 없다.

 

동해안 자전거길: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스텐으로 만든 것 같은 은어다리 조형물. 정말 은색으로 번쩍번쩍 빛이 난다. 햇볕이 쨍쨍했으면 눈이 부셔서 똑바로 처다볼 수도 없지 않았을까 싶다.

 

동해안 자전거길: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아무것도 없는 공터지만, 경북구간을 끝냈으니 한 단계가 완료됐다는 의미에서 주위를 둘러봤다.

 

동해안 자전거길: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정말 별 거 없더라. 진짜 빈 공터. 차라리 망양정을 올라가 볼 걸 그랬다. 그래도 여기는 평지라서 따로 기어오르고 할 게 없으니까 다행이다.

 

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은어다리를 건너가야 울진으로 계속 진행할 수 있다. 은어 조형물을 제외하면, 다리 자체는 그냥 평범한 다리일 뿐이다.

 

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비가 계속 내렸기 때문에, 은어 뱃속에서 잠시 비를 피해볼까 했지만, 속은 구멍이 숭숭 나 있어서 빗방울을 피할 수 없게 돼 있더라. 하루종일 비를 맞고 다녔더니 몸이 깨끗해진 느낌. 정화의식인가.

 

동해안 자전거길: 후포 - 월송정 - 망양휴게소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울진 쪽은 자전거길이 시내 외곽 쪽으로 진입해서 울진군청 근처를 지나도록 돼 있다. 바닷가로는 연결되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나름 울진 동네 구경도 하고 재미있었는데, 군 치고는 꽤 큰 동네였다. 나름 있을만 한 건 다 있고 조용한 동네라서, 뭔가 해 먹을 것 있으면 조용하게 살기 좋지 않을까 싶더라. 뭔가 해 먹을 것을 찾는게 제일 어려운 문제지만.

 

 

밥 먹은지 얼마 안 됐지만, 이 동네를 그냥 지나가면 또 언제 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기로 했다. 오늘은 나름 고생했으니 2단 도시락으로. 나름 푸짐하고 가격은 싸다. 이래서 여행 중 내내 편의점 도시락을 애용했다. 물론 일상으로 돌아오면 잘 안 먹지만.

 

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