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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대만을 국가로 인정했을까 - 꿈과 희망과 현실해외소식 2019. 9. 24. 04:17
6월 초순경, 몇몇 국내 언론은 미국이 대만을 국가로 인정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해외 언론들도 그와 비슷한 논조의 기사를 쓴 곳도 있어서, 대만인들은 손녀딸을 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한다. 그런데 이게 과연 사실일까. 한 번 들여다보자.
인도 태평양 전략 보고서
2019년 6월에 나온 언론 보도들은 모두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하나의 보고서를 기반으로 한다. 6월 1일에 발표한 '인도 태평양 전략 보고서'이다.
국내 언론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 같은 해외 언론의 기사를 번역해서 소개하는 정도였는데, SCMP에서는 뉴스 소스 링크도 잘 남겨놨더만 국내 언론은 그런 것 하나도 없더라. 자기네 다른 기사들 링크는 잘만 걸어놨더만.
어쨌든 일단 SCMP 해당 기사와, 미 국방부가 공개한 보고서 링크를 걸어둔다.
> Taiwan put on US defence department list of ‘countries’ in latest move likely to goad China (SCMP)
> Indo-Pacific Strategy Report (미 국방부, pdf)
이 보고서는 호주, 일본, 대만, 동남아시아, 인도 등을 연결해서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에 관한 내용인데, 뉴스의 소스가 된 것은 이 보고서 30페이지에 있는 딱 한 문단이다.
다시 해당 문장을 아래에 텍스트로 옮겨본다. 강조하기 위해서 밑줄을 쳤다.
As democracies in the Indo-Pacific, Singapore, Taiwan, New Zealand, and Mongolia are reliable, capable, and natural partners of the United States. All four countries contribute to U.S. missions네 개의 지역(혹은 나라)를 언급하며, 믿을만하고 어쩌고 했다. 그리고 앞 문장을 받아서, 이어지는 문장을 'all four countries'라고 시작했다. 따라서 Taiwan(타이완)이 countries에 포함됐다. 즉, "Taiwan = country"라고 언급한 것이다.
그래서 미 국방부가 대만(타이완)을 국가(country)로 인정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하지만 여기서 좀 이상한 점이 있다. country, nation, state가 살짝 의미가 다르다는 것은 일단 둘째로 치자. 이 보고서에도 country와 nation을 그리 엄격하게 구분하진 않은 듯 하니까.
그런데 우리가 흔히 대만이라 부르는 곳의 정식 국가 명칭은 중화민국이다. 영어로는 'Republic of China'. 타이완은 지역 이름이고, '타이완 지구' 혹은 '대만지구'를 줄인 말이라 할 수 있다. 중화민국이 실효지배 하고 있는 지역이 타이완(대만)이다.
타이완이 하나의 행정구역인 '성(省)'이라는 것은, 중국도 대만도 생각을 같이 한다. 다만, 중국은 대만까지 모두 중국이라 생각하고, 대만은 중국 본토까지 모두 중화민국이라 생각한다는 게 약간(?) 다른 점이다.
여기서 독립분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타이완 공화국(Republic of Taiwan)이라는 개념이 있기도 하고, 타이완을 국호로 쓰기도 하지만, 대만 내에서도 이건 논란이 좀 있는 문제다.
복잡한 얘기를 집어치고, 이런 보고서에서 중화민국을 Taiwan으로 언급했다면, 지역명을 언급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타이완과 함께 나란히 언급된 곳들은 모두 국가이니, 또 국가로 취급한 건가 할 수도 있다.
바로 이거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으로 서로 살짝살짝 약을 올리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데, 전면전을 벌이기는 버겁기 때문에 애매하게 둘러치는 것이다. 타이완을 국가 처럼 언급해서 중국의 약을 올리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야 이거 타이완이라고 했지 중화민국이라고 안 했잖아"하고 한 발 뺄 수 있다.
그러니까 결론은, 국가로 부른 것일 수도 있고 아닌 것일 수도 있는데, 핵심은 중국 약올리기라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이런 전략 보고서를 일반에 공개한다는 것 자체가 보라고 전시하는 것일 테고.
하지만 조금 엄밀히 하자면,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느냐 마느냐는 국방부 보고서의 한 문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오려면 외교부가 나와야지. 확실히 자르라면 이건, 국가로 인정한 것 까지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무기도 사고 단교도 하고
미국은 중국과 수교한 이후, 대만을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대만관계법을 제정해서, 대만에 무기 판매를 언제 중단할지는 밝히지 않는다는 조항 등을 넣어서 대만도 배려했다. 그렇게 대만 문제는 중국에 예스도 노도 하지 않는다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고, 그러면서 미국은 대만을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여기며 무기를 팔아왔다.
이번에도 그런 전략적 모호성을 지키면서도 최대한 중국에 약을 올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보고서 발표 이후에 바로 또 F-16 전투기 66대를 대만에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가 대만에 무기를 판매한 것은 이번 뿐만은 아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아무에게나 무기를 팔 수 없고, 대만은 무기를 사고 싶어도 팔아주는 곳이 없으니, 서로 좋은 셈이다.
그래서 대만은 미국에서 무기도 구입하고, 미국이 국가로 인정해줬다는 생각도 가질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차이잉원 총통이 취임한 이후, 엘살바도르, 도미니카공화국, 부르키나파소, 상투메프린시페, 파나마 등이 대만과 단교했다. 그리고 9월에는 솔로몬제도와 키리바시도 단교를 선언했다. 차이 총통 취임기에 이미 7개국이 단교를 한 것이다.
이제 대만과 수교하는 국가는 15개국 뿐이다. 수교 국가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유럽: 바티칸
- 오세아니아: 나우루, 투발루, 마셜 제도, 팔라우
- 중앙아메리카: 벨리즈, 온두라스, 과테말라, 니카라과
- 카리브 제도: 아이티, 세인트루시아, 세인트키츠 네비스,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 남아메리카: 파라과이
- 아프리카: 에스와티니몇몇 국가 외에는 이름도 생소할 정도이고, 국제사회에서 영향력도 그리 크지 않은 나라들이다. 그리고 몇몇 나라들은 중국과의 관계에 따라서 대만과 수교를 맺었다 끊었다 하기도 한다.
잠시 미국이 갖다준 달콤한 꿈에 비해서 현실은 참 냉혹하다. 그래서 드러운 세상하며 끝내면 참된 배움의 자세가 아니다. 이런 국제관계를 내 인생에 갖다 놓으면서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나의 헛된 꿈과 희망으로 나 좋을대로 현실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다보면 이상한 놈에게 휘둘리며 농락당하는데도 좋아하며 또 다른 꿈을 꾸며 서서히 죽어갈 수 있다는 교훈. 지금 내게 좋은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 하루쯤은 벽을 보고 냉철하게 따져보자. 싫으면 말고.
(그냥 대충 대만 이미지)
p.s.
* 물론 2018년에 미국이 대만여행법을 통과시키고, 차이잉원 총통을 미국에 초청했고, 대만과 단교한 나라들의 대사를 불러들이기도 했다. 분명 대만 입장에서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을 정도의 화려한 날들이었다. 하지만 결국엔 대만을 지지하지만, 중국과 대만과의 관계변화는 계획하고 있지 않다는 공식 입장으로 전략적 모호성을 계속 유지하는 중이다.
* 참고로, 대만과 관련해서는 많은 나라들이 대표부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대사관 업무를 보는데, 미국과 일본도 '협회'라는 이름으로 국무부와 외무성을 대리해서 영사업무를 보는 대표부를 설치했다. 형식상이지만 비정부기구로 포장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타이베이에 설치한 대표부는 대놓고 외교부 직속이다. (이런데도 틈만나면 혐한하냐)
* 자꾸 희망고문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 적당히 끼워넣을 곳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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