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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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작은 숨결 - 공기인형리뷰 2010. 5. 9. 16:10
실연의 상처를 가지고 프리터로 혼자 사는 남자, 하루종일 어두운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히키코모리, 젊은 사원의 등장으로 스스로 위축된 직장인 노처녀, 혼자 사는 비디오 가게 주인, 엄마 없는 부녀, 하루종일 공원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노인, 세상 모든 일을 자신과 연관지으려는 할머니 등.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부족한 '무엇'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마음(고코로)을 가져버린 공기인형 '노조미'. 어느 햇살 맑은 날 동화같이 피어나 활기차게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한다. 스치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마주치는 모든 것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조미. 하지만 그녀는 '그런 사람들'을 통해, 자신은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대용품일 뿐이라는 사실을 수시로 깨닫는다.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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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미친 세상의, 목숨보다 중요한 책 - 일라이리뷰 2010. 5. 9. 03:21
* 스포일러 있음. 전쟁으로 세상이 멸망한지 몇십년 후, 주인공 '일라이'가 서쪽으로 책을 운반한다는 내용의 영화. 영화 초반에는 책의 존재를 감추지만, 그 책이 무슨 책인지는 금방 드러난다. 물 한 모금 얻어 마시기도 어려운 멸망한 세상 속에서, 목숨 걸고 지키려는 책이 설마 요리책은 아닐 테니까. 일라이는 소위 말하는 계시를 받고 그 책을 서쪽으로 운반하는 소임을 맡았다. 마치 그 일을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된 전사처럼, 다가오는 많은 적들을 혼자서 무자비하게 무찌르면서 말이다. 강도 셋 정도는 눈 깜빡 할 사이에 해치울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의 고통에는 무심하다. 자신의 임무는 오직 책을 운반하는 것 뿐이니까. 카네기는 그 책의 위력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 책을 이용하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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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진실 또한 미국식 진실 아닐까 - 그린존리뷰 2010. 5. 8. 17:46
제작진과 주연배우를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사람들이라면 다소 난감할 수도 있는 영화다. '본' 시리즈의 제작진과 감독, 그리고 '맷 데이먼'까지 나오니까, 당연히 '본' 시리즈를 잇는 어떤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린존'은 그런 예상을 보기좋게 뒤엎어버린다. 어쩌면 이번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동안 그렇게 팬들을 만들어 왔던게 아닌가 싶은 의구심이 들기까지 한다. 영화 '그린존'은 전쟁 액션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전투장면에 대한 비중은 적다. 대신 '진실'을 파고드는 한 작은 '영웅'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스릴러 물이라 할 수 있다. 그것도 시원시원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갖 현실적인 장벽에 가로막힌다. 그리고 마침내 던져주는 메시지는 아주 정치적이기까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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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끝나지 않아야 아름답다 - 하프웨이리뷰 2010. 5. 5. 23:01
영화 줄거리는 굉장히 단순하다. 홋카이도에 살고 있는 고3 둘이 연애를 하게 됐는데, 남자애가 도쿄에 있는 대학을 가려고 한다. 여자애는 그를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과, 보내주어 자기 꿈을 실현하게 해 주어야겠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남자애도 역시 곁에 있고 싶은 마음과, 가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우물쭈물한다. 일종의 '사랑'과 '현실'의 대결이랄까. 한국이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현대라는 한정된 시간을 전제로 둔다면, 정답은 이미 다들 알고 있다. 평생 이어질 지 어떨 지 알 수 없는 그런 풋사랑에, 인생을 전부 걸어버린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고도 바보같은 짓이니까. 사람들은 이런 예를 들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둘이 헤어지게 되면 어쩔래, 그러면 네 인생은 네 인생대로 망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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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있는 한, 갈 수 밖에 - 허트 로커리뷰 2010. 5. 5. 21:39
영화 '허트 로커'는 다른 전쟁영화와는 다르게, 엄청난 규모의 전투장면이나 격렬한 총격전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지루할 수도 있는 폭발물 제거반 EOD의 폭탄제거 수행 행위만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영화 초반에는 다소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담백한 화면과 단순한 스토리 라인이 느껴졌다. 하지만 매번 반복될 때마다 점점 더 강도가 높아지는 에피소드들로, 큰 규모의 총격전 없이도 전쟁영화의 긴박감을 잘 살려내는 솜씨에 감탄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아카데미에서 여섯 개 부문 상을 휩쓸었다는 수식어가 전혀 무색하지 않은 영화다. 작렬하는 태양, 황폐한 사막같은 도시 그리고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기도 힘든 낯선 얼굴들의 낯선 땅. 이라크라는 이름만큼이나 생소한 지구상의 어느 한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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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유로의 압박 - 영화 2012웹툰일기/2009 2009. 11. 22. 04:21
뭐,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영화 감상문 쓰려다가 얘기가 저어 먼 안드로메다로 가 버렸다. 오래 지켜보신 분들이야 이미 익숙하실테고, 그렇지 않은 분들이라면 익숙해지셔야 할 듯. ㅡㅅㅡ; 말이 나왔으니 출산에 대해 짤막하게 한 마디 꺼내 보겠다. 이왕 세상에 태어나버렸(?)다면 그냥 즐겁고, 재밌게 살면 되는 거다.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재밌게는 살 수 있으니까. 대화하다보면 재미있게 살면 행복한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있으신데, 내 경우는 둘이 다르다. 열나게 자전거 페달 밟으며 여행하다가 밥 굶고 노숙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재미는 있지만 행복하진 않다. ;ㅁ; 뭐, 그런거다. 이왕 태어나 사는 건 그렇다 치고, '출산'은 생각을 좀 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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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의 상처, 평범의 잔인함, 희망의 절망 - 나는 비와 함께 간다웹툰일기/2009 2009. 11. 5. 17:59
이 시대, 이 세상, 희망은 어딘가 꽁꽁 숨어서 좀처럼 보이질 않는다. 어쩌면 워낙 귀한 것이라 그럴 수도 있고, 어쩌면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 희망이라는 것이 저 찬란한 태양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세상의 슬픔과 아픔과 고통과 그 모든 더러운 꼴들과 함께, 나는 비와 함께 간다. 서로가 서로를 돕지 않는 세상 속에서, 기적을 바라며 그것을 이용해 먹을려고만 하는데, 자신의 사랑과 생활의 안정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 따위는 생각지도 않는데, 주어진 일이 아니라면야 별로 애 써서 뭔가를 찾으러 나서지도 않는데, 그래도 일단 구해 놨다는 이유만으로 희망은 존재하는 것인가. 도움의 손을 내밀 때마다 상처입고,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오히려 고맙다는 말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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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9 - 외계인이 지구에 착륙하지 않는 이유웹툰일기/2009 2009. 11. 2. 19:51
인간은 어쩌면 본디 악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권익을 챙기려 애쓰고, 이 세상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존이 우선이고, 나보다 못한 것들은 최대한 이용해먹고 밟고, 상대방에게 뭐 얻어먹을 건덕지가 있으면 잘 해 주지만 아무것도 없으면 무시하고 모욕하고.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면 갈 수록 성선설을 부정하고, 성악설을 믿게 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 런지도 모른다. '디스트릭트 9'에 나온 인간 군상들이 낯설어 보이지 않는 것은, 실제 삶을 살면서 그런 류의 인간들을 많이 봐 왔기 때문일테다. 애초에 외계인들이 금은보화를 많이 갖고 있었다든지, 인류가 뭔가 얻어먹을 건덕지들을 잘 포장해서 내 놓았다면, 인간들은 외계인들을 그렇게 대접하지 않았을테지. 뭔가 얻어먹을 게 있다면 앞에서 헤헤거리고 비굴할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