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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마도 자전거 여행 (2005.08.02) 1/7
    해외여행/대마도 자전거 종단 2005 2007. 7. 2. 01:53

    대마도 자전거 여행
    (2005. 08. 02 ~ 2005. 08. 05)


    1. 부산 -> 이즈하라



    부산 출발


    2005년 8월 2일.
    배는 10시 반에 출발한다.
    최소한 10시 까지는 부산항 국제 여객 터미널에 도착해야 표도 사고, 출국 수속도 밟을 수 있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밤을 거의 꼬박 새듯 했다.
    새벽 6시부터 일어나 씻고 가방을 챙겼다.
    전날 밤에 일찍 자야지 생각하고 그냥 잔 덕분에 가방을 챙기지 않은 것이다.
    짐 꾸리는 데만 한 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왜 평소엔 잘도 보이는 것들이 꼭 찾으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을까.

    겨우 세시간 쯤 잤을까, 잠이 부족한데다 날씨까지 흐리니 괜히 짜증이 난다.
    생전 처음 자전거를 가지고 지하철을 탄다는 부담감 때문에 더욱 그랬던 듯 싶다.
    그래도 막상 해 보니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개찰구를 통과할 때, 무거운 짐과 자전거를 번쩍 들어서
    안으로 들여 놓아야 하는 것이 좀 힘들고 짜증스럽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할 만 했다.


    대강 어림짐작한 시간 계산도 크게 엇나가지 않아서,
    9시 30분 쯤에 부산 국제 여객 터미널에 도착했다.
    2층으로 올라가서 대마도 왕복 표를 샀고, 10시 쯤에 출국 수속을 밟기 시작했다.

    이미 대마도에 자전거를 끌고 간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자전거를 끌고 나가는 데 불편한 점은 별로 없었다.
    단지 출국 수속 하는 곳 통로가 좀 좁은 것이 약간 불편했을 뿐.



    어쨌거나 나는 8월 성수기 때 대마도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마도 가는 배는 예상대로 거의 반 이상 비어서 출발했다.
    날씨도 날씨지만, 원래 이 배는 꽉 차는 경우가 거의 없지 싶다.

    부산에서 이즈하라까지는 두시간 반, 히타카츠까지는 한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배 타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가까운 히타카츠로 가려고 했으나,
    히타카츠로 들어가는 것은 아무래도 일정을 짜기 힘들어서 이즈하라로 갔다.

    대마도 여행을 위해 배 시간이나 가격을 알아보려면
    대아해운 홈페이지를 이용하면 된다. ( www.daea.com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전거 여러 대를 한꺼번에 실을 때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가는 날은 자전거가 내 것 한 대 밖에 없어서 이렇게 짐칸에 넣었다.

    배 갑판에 두면 소금기 때문에 자전거가 상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선내 짐칸에 실을 수 있어서 바닷바람 걱정은 안 해도 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잔뜩 흐린 날씨였지만, '자전거 타기엔 흐린 날이 더 좋아'라며 애써 좋게 생각하려 했다.
    땡볕에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달리는 것보다는 흐린 날이 자전거 타기에 더 좋긴 하다.
    문제는, 흐리기만 하면 다행인데 비가 내리면 힘들어 진다는 것이다.

    어쨌든 일단 출발 했으니 그냥 가는 수 밖에.
    비가 오면 오는 데로 그것 또한 좋은 추억이 될 테니까.



    사실 이 여행은 날씨와 배 운항 일정이 잘 맞지 않아서 자꾸 연기됐다.
    애초에 맘 먹었을 때 떠났다면 보름전 쯤에 이미 출발했어야 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계속 연기된 것이다.

    결국엔 '비 쯤이야 그냥 맞고 가지 뭐.'라고 생각하니 출발할 수 있게 됐다.
    아무래도 섬으로 떠나는 여행은 일정과 날씨 모두를 딱딱 잘 맞출 수는 없나 보다.
    이후, 제주도도 그랬고, 울릉도도 그랬고, 날씨는 내 입맞대로 골라잡을 수 없었으니까.



    반 이상 비어있긴 했지만, 그래도 성수기라고 배에는 꽤 많은 여행객들이 탑승 했다.
    대부분이 낚시하러 가는 사람들인 것 같았고, 간혹 그냥 여행으로 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부산 낚시꾼이 대마도를 자주 찾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전국적으로 낚시꾼들에겐 꽤 유명한 곳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얼마나 유명하냐면, 울릉도 낚시꾼들도 대마도로 낚시를 가려고 할 정도.

    낚시 다음으로 한국인들이 대마도에서 주로 하는 여행 형태는 바로 '랜트카'이다.
    미리 차를 빌리기로 예약 해 놓고 대마도에 도착하면 바로 차를 몰고 여행하는 형태.
    아마 낚시꾼 수와 랜트카로 여행하는 사람들의 수가 엇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대마도를 돌아다니다가 좀 좋은 차다 싶으면 대부분 랜트카로 여행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랜트카로 대마도를 돌아보는 것은 나도 한 번 쯤 해 보고 싶다.
    하지만 낚시나 랜트카나, 둘 다 싸게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그런 여행이라면, 3박 4일에 배삯 포함해서 23만원 경비로는 어림도 없다.
    배에서 어렴풋이 들었는데, 3박 4일 낚시 패키지 여행이 일인당 약 60만원 이란다.
    나중에 돈 좀 많이 벌면 대마도에서 랜트카로 여행을 한 번 해 보고 싶다. (어느 세월에 ㅠ.ㅠ)




    더러운 자전거 입국 불가


    두 시간 반이 지나고 배는 이즈하라 항에 도착했다.
    여기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는데...

    대마도 출입국 관리 직원인 듯한 사람이 와서 말하길,
    내 자전거에 흙이 많이 묻어 있으니 그걸 다 씻어 내야 입국이 가능하단다.
    자연보호 차원이라나.
    아, 정말 자연보호를 엄격하게 하긴 하는구나.
    외부 흙이 섞여 들어오면 토양이 훼손되긴 하겠지만, 겨우 이 정도를 가지고... ㅡ.ㅡ;;;

    아침부터 잠도 모자라고 해서 약간 짜증이 난 상태에서 이런 지시를 들으니 기분이 좋진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 신발도 씻고 들어오라고 하지 왜!' 라고 혼자 궁시렁거렸다.
    투덜대긴 했지만 어쩌겠어, 하라는 대로 해야 들여 보내 준다는데. ㅠ.ㅠ



    제법 굵은 빗방울 떨어지는 배 갑판에 자전거를 꺼내 놓고 씻기 시작했다.
    배 선원 아저씨들께서 화장실 청소하는 도구와 양동이를 갖다 주셨고,
    어떤 분은 바퀴를 돌려 주시며 도와 주시기도 했다.
    (친절에 정말 감동했다.)

    옆에 출입국 관리 직원인 듯한 아저씨가 계속 서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구석구석 꼼꼼하게 바퀴에 끼어 있는 흙까지, 흙이란 흙은 다 씻어 내야만 했다.
    에잉...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씻어 오는 건데...

    어쨌거나 마침내 감독 아저씨의 OK 사인이 떨어졌고,
    이미 다른 여행객들은 다 내린 지 오래인, 사람 하나 없는 복도로 걸어 들어갔다.
    들어가니 세관 아저씨가 딱 보고는 '지뗀샤? 캠뿌?' 라고 묻더니 그냥 통과시켜 준다.

    덕분에 깨끗이 씻어서 반짝반짝 빛나는 자전거를 몰고 대마도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ㅡ.ㅡ;



    참고로, 대마도에 고기류는 일체 반입 금지라고 한다.
    이것도 자연보호 차원에서 그렇게 하는 듯 싶다.

    대마도가 얼마나 자연보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지 한 예를 들려 주겠다.
    예전에 이즈하라에 당일관광을 갔을 때였다.
    (당일관광 할인 배 값이 있길래 재미 삼아 바람 쐬러 갔었다)

    배가 항구에 들어가려고 속도를 조금씩 줄이고 있을 무렵,
    어떤 낚시복 차림의 아저씨가 배 갑판에서 담배를 피다가 담배꽁초를 바다에 던져 버렸다.
    나중에 입국 수속 밟으러 갈 때, 그 아저씨는 따로 조용히 불려 갔다.
    바다에 담배 꽁초 버린 죄로 벌금을 물었다고 한다.

    좀 귀찮을 정도로 까다롭게 구는 것 같긴 하지만,
    이렇게 하니까 그런 자연을 유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국립공원에서도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한국 상황과 많이 비교돼 보인다.




    대마시, 이즈하라 마치


    여기저기서 긁어 모은 자료들로 추측컨데, 대마도가 '시'로 승격한 것은 2004년도인 것 같다.
    최근에 시로 승격했다는 것은, 섬에서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증거 아닐까.
    어업과 관광상품 말고는 특별한 수입도 없어 보이는 섬인데도
    사람들이 큰 도시로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것은 솔직히 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가까운 곳에 후쿠오카도 있는데 말이다.
    이곳 사정이야 제대로 알 수가 없으니 그냥 그렇구나 하고 지나갈 수 밖에.


    어쨌든 입국 수속을 모두 마치고 이즈하라 항 터미널 밖으로 나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웬만한 빗줄기라면 무시하고 그냥 바로 출발하겠는데,
    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어서 잠시 비 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서 이미 자전거로 대마도를 한 바퀴 돌고 왔다는 아저씨 한 분을 만났다.
    이즈하라에서 출발해서 히타카츠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이라고 한다.
    방금 여행을 마치고 이제 부산가는 배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아저씨 왈,
    대마도에 자전거 여행자가 많다고 들었는데,
    여행중에 자전거 여행자는 하나도 못 봤다고 한다.

    그리곤 흘끗 내 자전거를 보더니 대뜸 하는 말.
    '이걸로 대마도 종단을 하겠다고?'
    걱정스럽게 몇 마디 더 덧붙여 주신다.
    '대마도는 자전거 전용 도로도 별로 없고, 산이 높아 언덕도 많아서 힘들어.'
    난 그냥 씩 웃어 주었다.


    대마도에 언덕이 많아서 자전거 타고 다니면서 고생했다는 말을 듣긴 들었다.
    사실 나도 처음 출발할 때 그 부분이 약간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대마도 자전거 여행을 해 보니, 역시 크게 걱정할 것은 아니었다.
    경주보다 자전거 타기 좋고, 남한 땅 횡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으니까.

    사실 '힘든다, 힘 들지 않는다'라는 판단은 굉장히 주관적인 것이라서,
    남의 말만 듣고 '힘 안 든다더라'하고 가서도 엄청 고생할 수 있다.

    제주도를 자전거로 일주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어떤 여자들은 이를 악물고 삼 일만에 일주를 성공하는 반면에,
    중간에 포기하고 버스 타고 나머지 길을 가는 남자들도 있다.

    따라서 내 주관적인 판단으로 말 하자면,
    전체적으로 봤을 때 대마도는 자전거로 여행하기 편한 곳이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말 하자면,
    제주도보다는 조금 힘들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것보다는 쉽다라고 말 하겠다.




    이즈하라 시내로


    거친 빗방울이 계속 떨어졌고 비는 잦아들 기미가 안 보였다.
    마냥 한 곳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어서 일단 이즈하라 시내로 들어갔다.

    비닐 비옷을 걸쳐 입었지만, 바람 때문에 비옷이 날려서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비옷으로 가방이나 비에 안 젖게 잘 쌌어야 했는데,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해 가방을 비에 젖게 만드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나중에야 왜 그랬을까 하며 후회를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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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내에서 맨 처음 한 일은, 관광 안내소에서 지도를 구하는 것이었다.
    전지 정도의 큰 종이에 인쇄된 지도인데, 대마도 전체 도로가 상세히 잘 나와 있다.

    처음에 그냥 들어가서 '지도 주세요' 하니까 일반 관광 지도를 주던데,
    밖에 세워둔 자전거를 가리키면서 자전거 여행용 지도를 달라고 해서 이 큰 지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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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부산 대마도 사무소에서는 구하기 힘든 것 같다.
    게시판에 이런 지도를 요청하는 글은 많이 올라와 있지만,
    거의 늘 지도가 부족하다는 답변이 달려 있다.

    하지만 아무리 세밀하게 계획을 짠다 해도, 계획 단계에서는 이 정도 지도까지는 필요 없다.
    이 지도는 대마도에 가서 구하기로 맘 먹는 게 편할 듯 싶다.



    시내 슈퍼마켓(?)에서는 봉지 라면을 몇 개 샀다.
    배 타러 가는 중간에 마시기도 해야 하니까 생수는 한국에서 들고 갔는데,
    라면은 부숴질 것도 걱정되고, 일본 라면 맛도 보고 싶고 해서 현지에서 구입했다.

    라면을 구입한 가게 앞에서 비를 피해 지도를 펼쳤다.
    대충 길을 파악하고 곧장 이즈하라 시내를 벗어날 요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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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는 웬만한 비는 그냥 맞으면서 이즈하라 시내를 구경하려고 했다.
    여러 유적지도 직접 찾아보고 사진도 찍고 할 계획이었지만,
    워낙 비가 많이 내려서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비가 이리도 퍼부으니, 빨리 숙소를 구해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잤지, 배도 많이 흔들렸지, 비도 오지,
    여행 컨디션으론 가히 최악이었다.

    내 카메라가 워낙 고물이라
    그냥 얌전히 찍은 사진으로는 비가 얼마나 왔는지 알 수 없을 듯 싶어,
    시간을 좀 투자해서 이런 사진을 찍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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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물벼락을 다 맞으면서 다녔다고 생각해보라.
    아마 이틀 연속으로 이랬다면 자전거 여행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물길을 달리니 아늑한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이 너무너무너무 부러웠다.

    하지만 그럴 수록 스스로를 위안하고 부추겨 줘야 힘이 난다.
    '그래, 나는 대자연을 온 몸으로 만끽하며 즐기고 있는 거야!!! 음하하하하!!!'
    처절한 위안이었다. ㅠ.ㅠ




    오우라 해수욕장으로


    첫날은 배가 도착해서 입국 수속 밟고 나오니 시간이 이미 오후 두 시가 넘었고,
    아직 자전거에 몸이 적응하지 못 하기도 했으니 그리 멀리 갈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첫날 목적지로 정한 곳은 오우라 해수욕장이었다.
    이즈하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캠프장까지 있다고 해서 그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그런데 이즈하라 주변의 길은, 나만 그런지는 몰라도, 좀 이상하게 돼 있었다.
    분명히 지도에 나와 있는 길을 따라갔는데도 지도엔 없는 길이 마구 나온다.
    지도 보면서 대충 감으로 짐작하고 길을 택해서 갔는데,
    엉뚱한 곳으로 가서 다시 돌아 나온다거나
    아까 갔던 길로 다시 빙 돌아 나온다거나 하는 일이 많았다.

    심지어 어느 언덕에 있는 주유소를 세 번이나 들르기도 했다.
    가다 보니 그 주유소가 나왔고, 또 가다 보니 그 주유소가 나왔다. ㅠ.ㅠ
    아무리 내가 길치이긴 하지만, 이건 좀 심하다 싶다.
    아무래도 비가 와서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는 상황도 한 몫 하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똑 같은 주유소를 세 번이나 들르고 나서야,
    길을 찾는 가장 안전하고도 무식한 방법을 택했다.
    모든 길을 일단 다 가 보는 것이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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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얼마나 퍼부었는지 길이 물바다가 돼 있다.
    하수구 구멍에서 물이 온천처럼 솟아오르고 있고,
    옆으로 지나가는 차들마다 물벼락을 쏘아 댄다.

    설상가상 도무지 어떤 길로 가야 할 지 몰라서 산길로 접어들기도 하고,
    막다른 골목으로 갔다가 되돌아 나오기도 하고,
    엉뚱한 동네를 한 바퀴 빙 돌기도 하고,
    어딘가로 가니까 경찰들이 쭉 서서 작업하고 있는 곳도 나오고,
    공사장 한가운데를 지나가기도 하고...

    그래도 결국엔 오우라 해수욕장 가는 길을 찾아 냈다!
    손발이 고생하긴 했지만, 무식한 방법이 먹히긴 먹혔던 것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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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길을 올라가서 터널을 지나고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오우라 해수욕장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진으로도 보이듯, 길이 엉망이다.
    산에서 토사와 물이 흘러내려, 조그만 승용차는 아예 오르기를 포기하고 갓길에 차를 세울 정도였다.
    이런 길을 자전거로 오른다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 아닐까 싶었다.

    마티즈처럼 생긴 빨간 차 하나는 결국 올라가기를 포기하고 다시 내려갔다.
    이런 날씨에 캠프장을 간다고 해도 텐트나 제대로 칠 수 있을까 걱정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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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은 어두워지고, 비는 그쳤다 쏟아지기를 반복하고 있고, 물은 계속 흘러내렸다.

    이 사진을 찍고 있었던 곳은 어느 가게 앞이었다.
    자동차를 팔기도 하고, 수리도 해 주는 꽤 큰 자동차 판매 겸 수리 업소였다.
    가게 앞에서 자판기 콜라를 빼 마시며 넋 놓고 사진이나 찍고 있는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안에 있던 아저씨, 아줌마가 가게 안으로 들어와 있으라고 한다.
    (물론 일본인이다. 이제부터 특별한 언급이 없으면, 만난 사람은 모두 일본인이다.)

    '자전거 여행 중인가보네. 오늘 어디 가려고?'
    '오우라 해수욕장요.'
    '거긴 저 언덕 너머 터널만 지나면 되긴 한데, 저래서야...'
    '저두 갈 엄두가 안 나서 지금 이러고 있어요.'
    밝게 웃으며 말 하긴 했지만,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래서는 노숙을 하기도 어렵지 않은가.

    뭐, 어떻게든 되겠지!
    걱정을 일단 접고 그 가게에서 일 하는 아저씨들과 몇 마디 나누었는데,
    놀랍게도 한 아저씨(노인에 가까운)의 고향이 안동이란다.
    어려서부터 일본에서 자랐는지, 한국어는 거의 모른다.
    아마 이야기 보따리를 펼치면 하룻밤은 훌쩍 지날 듯 싶지만,
    내 짧은 일본어 실력으론 알아들을 수도 없을 테고,
    무엇보다 한 사람의 인생은 남의 호기심거리가 될 수 없으니 좀 궁금해도 참았다.


    말 나온 김에 내 일본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말 하자면,
    일본어 학원 초급반 석 달 다닌 것이 정식으로 배운 전부였다.
    나머지는 일본 여행 다니며 여기저기서 주워 듣고 대충 알아듣는 수준.
    굶지 않을 정도의 의사소통은 하지만, 일상 회화도 어려울 정도의 실력이다.

    이 말을 하는 것은, 일본어를 몰라도 일본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여행하는데 큰 지장은... 있지만(ㅡ.ㅡ;;;), 그래도 밥 안 굶고 잘 다닐 수 있다.

    '그래 맞아, 일본어 모르면 영어로 하면 되지 뭐.'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마음 고쳐 먹으셔야 한다.
    영어는 일본인들이 못 알아 듣는다.
    기껏해야 관광 안내소 직원 정도나 영어를 알아들을까, 일반 시민들은 영어 거의 못한다고 봐야 한다.

    영어보다는 차라리 한국어를 쓰는 것이 의사소통에 더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일본어와 발음이 비슷한 단어들이 한국어 속에 꽤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눈치와 감각이다~!
    ('배고파 죽겠어'같은 절박한 심정에 달하면 감각은 놀랄 정도로 예민해진다. ㅡ.ㅡ;)



    어쨌든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남의 가게 앞에 한 시간 넘게 쭈그리고 앉아 있기도 지쳤다.

    염치불구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방금 몇 마디 나눴을 뿐인 아저씨 아줌마께 부탁을 했다.
    '여기 전화로 근처 호텔이나 민박 좀 알아봐 주시면 안 될까요?'
    대충 이런 뜻으로 말을 했다(일본어로).
    제대로 말 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ㅡ.ㅡ;
    그래도 그분들은 용케 내 말을 알아 들었고, 전화번호부를 뒤적이며 여기저기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한 고비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어느 호텔로 전화를 한 아줌마께서 호텔 직원과 통화를 하고는 이런 말씀을 하신다.
    '지금 마쯔리 기간이라서 시내 호텔에 빈 방이 없다고 하네. 전부 다 그럴 거라는데...'
    이...런... ㅠ.ㅠ


    사실 마쯔리(축제) 기간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왔다.
    매년 8월 첫째 토, 일요일에는 '아리랑 축제 (아리랑 마쯔리)'가 이즈하라에서 열린다.
    조선통신사 행렬을 제현하며 각종 행사를 벌이는 이 축제는, 대마도의 가장 큰 축제라고 한다.

    여행 떠나면서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운 좋으면 아리랑 축제도 구경할 수 있겠다라는 속 편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지에 가 보니, 의외로 아리랑 축제에 참가하는 한국인들이 많았고,
    이 한국인들 때문에 이즈하라 시내의 모든 호텔은 이미 꽉 찬 상태였던 것이다.
    호텔 뿐만 아니라, 시내에 있는 민숙(민박)도 남는 방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아... 내 무대뽀 정신에 일격을 가하는 심각한 사태를 맞이한 것이다.
    트레블(travel)이 아니고 트러블(trouble)을 찾아 온 거잖아!
    아침부터 별로 기분이 안 좋더니만 결국 문제 덩어리 여행이 돼 버린 것 같다.


    어쩌지, 어쩌지...
    이대로 저 산을 넘어야 하나?
    이 가게에서 자게 해 달라고 할까?
    가게 앞에 텐트 치고 잘까?
    가까운 경찰서로 데려다 달라고 할까?
    터미널 대합실에서 하룻밤 노숙하고 내일 부산으로 가버릴까? ㅠ.ㅠ

    온갖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한데,
    이 아저씨, 아줌마도 자기 일인 것처럼 '어쩌지, 어쩌지'하면서 고민을 하신다.

    그러다가 아저씨께서 슬며시 아줌마께 뭐라고 말을 하시는데,
    'XXX 노인네 집은 어떨까? 거기라면...'
    아줌마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할 수 없지, 거기라도...'하며 전화기를 들었다.

    그 내외분이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는데,
    어쩌면 이즈하라에서도 좀 비싼 곳에 속해서 그랬던 것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아니면 뭔가 동네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집이라던가,
    이 가게 내외분과 그리 좋지 않은 사이라든가...
    혹시... 귀신이 나오는 집이라든가!!! 0.0;;;


    어쨌든 그 민숙집엔 빈 방이 있다는 답변을 받았고,
    그 내외분은 '그나마 다행이네!'라며 환히 웃으셨다.
    나 역시도 지금은 가격이고 뭐고를 따질 때가 아니니,
    방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날아갈 듯 기뻤다.

    '거기가 어딘가요? 위치를 알려 주세요.'
    라며 방금 전 관광 안내소에서 받은 지도를 꺼내서 펼치려고 했더니,
    밖에 나와 가게 문 앞에 서 있으란다.

    가게 문 앞에 잠깐 서 있었더니, 아저씨께서 소형 용달차를 몰고 오셨다.
    자전거까지 직접 실어 주려고 하시는 걸 뿌리치고 내가 직접 실었다.
    아... 감격! 감격! ㅠ.ㅠ

    짐칸에 자전거를 싣고, 조수석에 몸을 싣고, 그 민숙집으로 갔다.




    민숙은 너무 비싸


    차를 타고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이즈하라 시내 근처로 가는 듯 싶었다.

    다음날 아침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그 민숙집은 이즈하라항 터미널 뒷편 쪽에 있었다.
    시내 중심지까지 걸어서도 십 분도 안 되는 거리.
    그런데 얼마나 정신 없이 갔는지, 그 날은 거기가 어딘지 전혀 짐작도 못했다.
    시내 근처인 것을 미리 알았다면, 비 그쳤을 때 시내 구경이라도 갔을 텐데.

    어쨌든 아직도 퍼붓는 빗줄기 속을 달려 민숙집에 도착했고,
    아저씨는 바로 차를 돌려 다시 그 가게로 돌아가시려 했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게 아니고, 나 때문에 일부러 여기까지 오셨던 거였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해서, 담배 세 갑을 선물로 드렸다.
    (가방에 손을 넣어 집히는 데로 꺼낸 것이 담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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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국할 때 면세점에서 두 보루를 사 갖고 나간 것이었는데,
    특별히 드릴 것도 없고 경황도 없고 해서 담배 세 갑을 드렸다.
    아저씨는 무척 좋아하시며 고맙다면서 가게로 돌아가셨다.

    내가 피우기도 하고, 선물 할 상황이 되면 선물도 하자라는 생각으로 사 간 담배였는데,
    의외로 일본인들이 이 담배를 좋아했다.
    일단 한국 담배라서 신기해 했고, 담뱃갑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어서 더 좋아하더라.

    네코 타바꼬(고양이 담배)라며 기쁘게 받아 주어서 주는 입장에서도 기분이 좋았는데,
    문제는 이 담배를 너무 좋아들 하셔서 여기저기 주다보니 한 보루나 선물로 줘 버렸다.
    일본인 입장에서는 한 갑에 200엔 정도 하는 싼 담배지만, 내 입장에서는... ㅠ.ㅠ

    한 가지 아직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데,
    이 날 차로 민숙집까지 데려다 준 아저씨께 드린 담배 세 갑 중에는
    내가 피던 담배도 한 갑 섞여 있었다는 것.
    두 개비 밖에 안 폈기 때문에 거의 새거나 다름 없었지만,
    그래도 포장 뜯고 쓰던걸 드리다니...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날 내내 그게 마음에 걸렸다.



    어쨌든 민숙 안으로 들어서니 꽤 연로하신 할아버지, 할머니 내외분께서 맞이해 주신다.
    두 분 다 약간 무뚝뚝한 편이었지만, 크게 문제 되진 않았다.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지만, 저녁 먹을 때였는지 식당에서 맛있는 냄새가 났다.
    식당에는 일본인 관광객 네 명이 이미 식사를 하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나를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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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쓰기는 굉장히 넓은 방이었다.
    남자 여섯 명이 누워도 팔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을 정도의 넓이였으니,
    이런 방에서 혼자 잔다는 것이 좀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방이 넓은 만큼 너저분하게 어질러 놓기 딱 좋아서,
    씻기도 전에 젖은 가방 안의 물건들부터 풀어 놓기 시작했다.
    돈이고 여권이고 모조리 다 젖은 상태여서
    여기저기 널부려 놓고 에어컨을 세게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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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물건들과 옷가지를 잘 마르게 해 놓은 다음에 씻으러 갔는데,
    화장실과 샤워실은 방에 딸려 있지 않고, 공동으로 사용하게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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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이 방 수에 비해 규모가 좀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실은 겨우 한 사람 앉을 수 있을 만한 공간이었고, 남녀 각각 한 개씩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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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씻고 나니 배가 고팠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은 거라곤 물과 콜라 밖에 없었다.
    아마 배가 고파서 더 기운이 없었나 보다.

    바로 식당으로 내려가서 저녁을 먹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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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 세상에... 민박집 저녁밥에 회가 나오다니! 0.0;;;
    오징어 회랑 무슨 회인지 모르겠지만, 몇 가지 종류의 회가 반찬으로 나왔다.
    오징어를 살짝 데친 것과, 계란말이, 셀러드(?) 등의 반찬도 있었다.
    종류는 몇 가지 안 되지만, 이 정도면 진수성찬이었다.
    밥 모자라면 더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나온 반찬 다 먹기도 힘 들 정도였다.



    배 부르게 먹고, 씻어서 상쾌하기도 하고, 집 안이 시원하기도 하고 하니까
    슬슬 가격이 얼마일까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때마침 한쪽 벽에 걸려 있는 가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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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헉!!!
    1박에 저녁까지 먹으면 5400 엔!!!   ㅡ0ㅡ;;;
    한국돈으로 약 오만 사천 원!!!
    뭔 민박이... ㅠ.ㅠ

    1박 2식을 하면 6000엔이라고 적혀 있었으므로, 내일 아침은 안 먹기로 했다.
    원래 아침은 잘 안 먹는 편이지만, 내일 자전거를 타려면 아침을 먹는게 좋긴 하다.
    근데 한 끼 식사에 600엔이라니! 육백 엔이면 봉지라면이 여섯 개다!!! ㅡ.ㅡ;


    숙박요금은 선불.
    내일 아침은 안 먹겠다고 하니, 5700엔을 내란다.
    샤워비 300엔이 추가된 요금이란다. ㅠ.ㅠ
    (여기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민숙도 대부분 샤워 요금은 별도로 받는다고 한다.)

    하룻밤에 약 육만 원 돈을 민박비로 날렸다. ㅠ.ㅠ
    이 돈이면 한국에선 할인기간엔 호텔에도 묵을 수도 있는 돈인데.

    뭐 이미 엎질러진 물, 어쩔 수 없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는 거겠지.
    내 생에 가장 비싼 민박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후에 안 사실인데, 대마도 민숙(민박)집은 가격이 다 이 정도라고 한다.
    시설이 비즈니스 호텔보다 좋은 것도 아닌데, 가격은 비즈니스 호텔의 두 배 이상이다.
    민숙아~ 왜 이러니~ 왜 이렇게 비싸게 구는 거냐, 민숙아~~~! ㅠ.ㅠ




    비가 그쳤다


    식당은 1층 현관 문을 열고 안으로 쭉 들어가면 있었고,
    현관 바로 앞쪽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2층은 모두 여행객들을 위해 빌려주는 방들만 있었고,
    방은 대략 열 개 정도 있었다.

    일본인 여행객 4명이 방 두 개를 차지하고 있었고,
    내가 방 하나를 차지해서 총 3개의 방에만 사람이 있었다.

    아마 한국에서 온 손님들은 단체로 호텔을 예약하고 이용하기 때문에,
    시내의 일반 호텔이나 비즈니스 호텔이 꽉 차도
    조금만 시내에서 벗어나면 이렇게 텅 빈 민숙들이 많이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배 터지게 저녁을 먹고 나서는 방에 올라가서 다시 젖은 물건들을 잘 펴 놓았다.

    여권과 돈은 작은 가방에 넣어 다녔기 때문에 비닐봉지로 싸지 않아 흠뻑 젖어 있었다.
    돈은 그렇다 쳐도, 여권은 젖으면 좀 문제가 될 수도 있는데,
    다행히 속지까지 완전히 젖지는 않아서 스템프 찍힌 부분은 온전했다.
    이날 배운 교훈으로, 이후에는 항상 여권은 따로 비닐에 넣어 다니게 됐다.


    한가지 문제는 핸드폰이 완전히 흠뻑 젖어서 전원이 켜 지지 않는다는 것.
    전화기는 이후에 대마도를 나올 때까지 켜 지지 않았다.
    일본 지역 로밍을 해 간 것은 아니었지만,
    히타카츠 쯤에선 한국 핸드폰이 터진다고 해서 실험 해 볼 생각이었는데 안타깝다.

    샤워할 때 젖은 옷들도 대충 빨았기 때문에,
    남은 것은 옷을 비롯한 물건들이 빨리 마르기를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다.


    이렇게 대충 정리가 되자 심심해져서 방 구석의 TV로 다가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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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너무하다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다.
    100엔에 2시간 이라니...
    비즈니스 호텔 같은 델 가도 웬만하면 TV는 공짜로 볼 수 있는데. ㅠ.ㅠ

    100엔이면 라면이 한 개고, 콜라가 하나고, 싼 생수가 한 병이다.
    한국에서도 잘 안 보는 TV를 보려고 100엔이나 쓰고 싶진 않았다.
    틀어봐야 알아듣는 말도 별로 없을 텐데 뭐.
    그래서 TV는 포기하고 일찌감치 자리 깔고 누웠다.


    잠시 누워 있으니 밖이 이상하게 환하고, 빗소리도 안 들리는 게 아닌가.
    창 밖을 내다봤더니 비가 완전히 그쳤다.
    게다가 아직 해가 지지 않아서, 이제서야 조금씩 어스름이 드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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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까지만 해도 자동차 불빛이 없으면 앞이 제대로 안 보일 정도로 깜깜했는데,
    해가 져서 그렇게 깜깜한 줄 알았더니 비구름 때문이었던가 보다.
    여름 해가 참 길긴 길구나.

    사진으로 보이는 저 길을 따라 쭉 내려가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바로 이즈하라항 터미널이 나오는데, 이 때는 그걸 몰랐다.
    별로 멀지도 않은 저 길 끝까지만 가 봤어도,
    아직 남은 해를 아깝게 방 안에서 보내지 않고 시내구경을 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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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아침까지 여기가 어딘지 전혀 몰랐으므로,
    이 날 저녁은 이 민숙집과 그 주변만 대충 둘러보는 정도로 산책을 끝냈다.

    해 지기 시작할 때 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누웠다.
    부족한 잠과 비 속에서 동분서주한 피로가 겹쳐서 쉽게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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