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털터리 노숙자에서 월스트리트에 입성해, 지금은 미국에서도 손 꼽히는 부자인 크리스 가드너라는 사람의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 따라서 결말이 어떻게 날 지는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 줄거리도 뻔하고, 뭔가 특별한 영상미 같은 것도 없는 일종의 휴먼 다큐멘터리라고나 할까.
주인공 크리스가 영화 내내 중얼거리는 말이 있다, '행복 추구권'. 사람마다 저마다 가지고 있다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 권리.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도 행복 추구권은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행복 보장권'이나 '행복 소유권'이 아니라 '추구'라는 점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추구해서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한 마디로 '꿈은 니 맘대로 꿔라, 그런데 보장은 못 해 준다'가 되겠다.
이 영화가 좀 잔인하게 와 닿은 것은, 아내가 돈 때문에 떠난다는 점이다. 수많은 헐리우드 영화들이 가족이 중요해라고 말하고 또 말하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가 않다. 돈 없는 남편 따위 필요도 없고, 떠나버린 아내 따위 쓸모도 없다. 노숙자로 전락할 때까지 마누라는 혼자 잘 먹고 잘 사는지 콧배기도 내 비치지 않는다. 물론 돈 없다고 떠나 버린 무정한 아내에게 구걸할 수도 없는 노릇이겠지만. 그런 암담한 주인공에게 단 하나의 위로이자 버팀목은 아들 하나와 자신의 의지 뿐. 돈 없으면 결혼 생활 따위 파탄나게 돼 있다라는, 누구나 다 알지만 애써 외면하고픈 사실을 영화에서까지 보게 되어 참담하고 암울했다.
그래도 크리스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날마다 뛰고 또 뛴다. 물건 팔러 뛰고, 도난 당한 물건 찾으려고 뛰고, 택시비 없어서 뛰고, 잠자리 마련을 위해서 뛰고, 면접 보러 가려고 뛰고, 뛰고 또 뛰었다. 이 즘 되면 마라토너로 나가도 성공하겠다 싶을 정도로 뛰었다. 그렇게 뛰어 다녔으니 성공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크리스의 성공을 위한 발판은 그런 노력보다는 운이 좀 더 크게 작용했다. 만약 그 당시 육각형 색깔 맞추기 퍼즐인 '큐빅'이 유행하지 않았다면 그는 과연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을까. 물론 그 퍼즐을 맞출 수 있는 준비된 능력이 뒷받침 되어 있어서 가능한 일이긴 했는데, 그 능력이라는 것 또한 순전히 '타고난' 것이었다. 숱한 성공스토리처럼 기운이 빠진다. 결국은 타고난 능력이 있어서 성공했다는 이야기 아닌가. 여기서 희망을 얻은 사람들이라면, 능력은 있는데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한 사람 정도가 아닐까 싶다.
크리스가 아들을 데리고 노숙자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해 주는 곳으로 갈 때마다, 문 앞에 늘어선 긴 줄이 보인다. 그들 모두가 주인공 만큼이나 암담한 생활을 하고 있을 테고, 주인공 만큼이나 행복을 추구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에게 베풀어 주는 것은 별로 없다. 그들에게 행복 추구권이란 말은 '행복 추구 하라구. 누가 못 하게 했어?' 정도의 비아냥으로 들릴 지도 모른다. 그들을 그저 단순한 뒷 배경으로만 처리하는 이 영화의 태도는, 성공하지 못 한 사람들에겐 관심 없다라는 비정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평범한 중산층 시민이 파산 상태에 이르러 아내도 잃고 집도 잃고 노숙자가 되기까지 그 사회가 해 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난은 오로지 개개인의 문제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 또한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 노숙자 쉼터 앞에 줄 선 수 많은 노숙자들과 구별되려면 아주 열심히 뛰고 또 뛰는 노력이 필요하고, 60대 1이라는 채용 경쟁에서 이기려면 능력있고 똑똑해야 한다. 그 속에 이 사회가 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크리스가 물리친 59명의 경쟁자 중에도 그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탈락한 그 사람이 다음날 노숙자 대열에 합류했을지도 모르고. 또한 줄 서 있던 노숙자들 중에는 크리스처럼 월스트리트에 입성 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던 사람도 있었을 지도 모른다. 성공한 크리스 뒤에 배경으로 깔리는 그 사람들을 생각해 보니, 결코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이 영화의 내용에 대해 이렇게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 것은, 전반적으로 흐르는 그 중압적인 분위기 탓이 크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기서 말 하는 '행복'이란 결국 '돈'이었다. 영화 제목을 차라리 '돈을 찾아서'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 물론 인정한다, 100%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돈은 행복한 생활에 아주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하지만 영화에서까지 현실의 그런 암울한 부분들을 접하니 어쩔 수 없이 착찹하고 우울해졌다.
그런 쓸 데 없는 생각 하지 않고, 그냥 영화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성공 드라마로 큰 손색이 없다. 딱히 나쁘다거나 재미 없었던 것도 아니고, 사람에 따라서는 큰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 특히 윌 스미스가 친아들과 함께 열연한 것을 주목해서 볼 만 하다.
(www.emptydrea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