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해수욕장은 이제 그냥 '하모 해변'으로 부른다. 방파제와 운진항 건설로 백사장이 많이 줄어들어서, 해수욕장으로 즐기기엔 좀 부족해져서라고. 물론 아직 백사장이 좀 있긴 한데, 그냥 제주 바닷가의 흔한 해변과 비슷한 수준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유명한 해수욕장들이 나오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해수욕을 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해수욕장을 폐장하고, 최근에는 시설도 잘 관리 안 하는 듯 하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사정 때문에 하모 해변 야영장이 야영에는 더 적합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인기 있는 해수욕장으로 가니까, 여기는 비교적 한산하기 때문이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하모해수욕장 야영장

 

하모 해변에서 알뜨르 비행장으로 이어지는 올레길을 따라서, 해변 끄트머리에 있는 언덕을 살짝 오르면 야영장이 나온다. 사람이 걸어갈 수 있게 길이 나 있기 때문에 찾기는 어렵지 않다.

 

 

야영장으로 가는 길에 화장실이 있긴 있는데, 딱 보기에도 관리가 안 되는 상태인데다가 으스스해 보이기까지 한다. 해수욕장 운영을 하지 않아서인지 화장실도 거의 관리를 하지 않는 모습이다. 외부는 뭐 그냥 괜찮네 싶을 수도 있지만, 내부는 조금 더 끔찍하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하모해수욕장 야영장

 

하모해수욕장 캠핑장. 나름 데크가 있긴 한데 간격이 너무 좁다. 한쪽을 동호회 같은 일행들이 차지해버리면 힘들게 오더라도 캠핑 하기가 마땅치 않을 수도 있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하모해수욕장 야영장

 

야영장은 규모가 아주 작지만, 의외로 분위기는 괜찮은 편이다. 바로 앞으로 바다가 보이고, 바람도 그리 많이 불지 않는 편이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곳이고, 근처에 마을이라 할만 한 곳도 없어서 크게 소란스럽지는 않을 듯 한데, 그래서 캠핑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좀 무서울 수도 있겠다.

 

이렇게 따로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 캠핑장에서는 캠핑하는 사람이 적당히 있는 것이 좋다. 딱 한 팀만 있어도 서로 불편할 수 있기 때문에, 두 팀 이상 있는 것이 좋다. 사람이 많아도 안 좋지만, 없어도 안 좋다. 아예 아무도 없는데 야영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캠핑장에서 살짝 벗어나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으로 가는게 낫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하모해수욕장 야영장

 

제주 환상 자전거길: 하모해수욕장 야영장

 

제주 환상 자전거길: 하모해수욕장 야영장

 

해변이 휑해서 크게 볼 것은 없지만, 눈높이를 잘 조절해서 수풀과 해변을 조화롭게 배치하면 나름 아름다운 경치로 조절할 수 있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하모해수욕장 야영장

 

하모해변 야영장 벤치에 앉아서 좀 오래 쉬면서 나름 고민을 했다. 이제 슬슬 해가 기울어서 잘 곳을 정해야 할 시간인데, 더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적당히 조용해 보이는 사람들이 두어 팀 있어서 야영장 분위기도 좋았고, 편의점도 걸어서 가기엔 좀 멀지만 자전거 타고 가면 그리 멀지 않고, 분위기나 경치도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 딱 하나, 화장실이 음침한데다가 물이 안 나오는 것이 걸려서 그냥 떠나기로 했다.

 

 

이렇게 제주도 여기저기 해변에서 캠핑을 하며 천천히 구경하며 다니자는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등 떠밀리듯 둥둥 떠다니다가 순식간에 제주도 한 바퀴 다 돌아버릴 기세. 결국 그렇게 한나절만에 이호테우 해수욕장에서 산방산까지 가버렸다. 타이어 다 닳은 싸구려 자전거로도 마음만 먹으면 이틀만에 제주도 한 바퀴를 도는게 가능하겠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송악산 인증센터

 

하모 해변을 뒤로하고 조금 남쪽으로 내려가니 금방 송악산이 나왔다. 주차장 들어가는 입구에 '송악산 인증센터' 부스가 있다. 길 가에 있기 때문에, 도장만 찍고 지나가기 좋다.

 

여기는 예전부터 외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라, 주변에 편의점 등 가게들도 많다. 사람 없는 모습만 찍어서 그렇지, 이날도 관광객이 꽤 많았다.

 

자전거길 달릴 때는 보이지도 않던 자전거 여행자들도 이 근처 편의점에 꽤 모여 있더라. 이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다니는 건지, 이전에도 이후에도 거의 마주치지 못 했다. 아무래도 나는 모르는 어떤 길이 있는건가 싶기도 한데, 난 분명히 유명 포털사 지도에 나오는 자전거길 표시를 그대로 달렸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송악산 인증센터

 

제주 환상 자전거길: 송악산 인증센터

 

송악산은 제주의 유명한 관광지 중에서 들어가보지 않은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인데, 관광버스 타고 온 관광객들이 우르르 올라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 틈바구니에 끼어서 올라간다는게 피곤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도 송악산은 그냥 멀찌감치서 보기만 하고 지나간다. 아마도 이후에도 송악산은 가 볼 일이 없을 듯 하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송악산 인증센터

 

이쯤되면 이제 산방산도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사실 송악산을 안 가는 이유가, 바로 옆에 산방산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송악산은 바닷가에 있는 작은 산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지만, 산방산은 정말 묘한 기운이 있다. 멀찌감치 눈에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저 기운에 끌려서 갈 수 밖에 없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산방산

 

이 일대는 자전거 도로도 잘 돼 있는 편이다. 산방산을 눈 앞에 두고, 옆으로 바다를 끼고 즐겁게 달릴 수 있기 때문에, 이 구간은 자전거 여행 코스로 추천할 만 하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산방산

 

제주 환상 자전거길: 산방산

 

 

 

제주 환상 자전거길: 산방산

 

사계리에 접어들어 산방산이 바로 앞에 보이는 동네 길을 가만 보고 있으면, 마치 울릉도에 온 느낌이 든다. 이 동네 길이 좀 가파른 오르막길이면 거의 울릉도의 도동과 비슷한 분위기다. 나보고 제주도 아무데나 골라서 살라고 하면 산방산 근처를 선택할 테다. 여긴 정말 기운이 좋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산방산

 

제주 환상 자전거길: 용머리 해안

 

용머리 해안은 지나가면서 슬쩍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저기 배 모양으로 돼 있는 곳이 하멜상선전시관이다. 이번 여행 테마는 자전거로 쓍쓍 달리며 캠핑만 하는 것이므로 일체의 관광을 자제한다. 라기보다, 어디 들어가고 올라가고 구르고 어쩌고 하는게 다 귀찮다.

 

살아보고, 느껴보고, 깊이 들어가는 여행이 있다면, 때로는 그냥 모든 것을 스쳐 지나치는 무의미 여행도 필요하다. 살다가 어느날,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질 때 말이다. 그러다보면 정말 세상 모든 것이 덧없이 느껴진다.

 

결국 언젠가 한 줌도 안 되는 우주의 먼지로 사라질 존재들. 뭐 딱히 이것저것 골머리 싸매고 고민 할 필요가 있나 싶어지기도 하는데, 그러다가도 갈치조림 만 원을 보고는 돈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다시 현실로 확 돌아온다. 존재는 의미가 없는데 돈은 중요하다. 가히 찌뿌둥한 인생이다. 개똥철학도 먹고 살아야 가능한 것을 보면, 결국 운석이 떨어져서 멸망하는 것이 궁극의 행복이겠다 싶기도 한데, 난 왜 이런 쓸 데 없는 글을 쓰고 있는 겐가. 역시 산방산은 기운이 좋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산방산

 

산방산을 한 번이라고 가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여기는 사진으로 그 느낌을 담기가 무척 어렵다. 다른 사람들의 잘 찍은 사진을 봐도, 현장에서 느끼는 그 느낌이 살아나질 않는다. 우와 싶을 정도로 우러러보게 되면서도 그리 압도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포근함이 함께 있는데, 산 위로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이 또 순식간에 분위기를 어둡게도, 밝게도 만들어준다. 이때 순간적으로 변하는 감정이 다이나믹해서, 고요하지만 역동적인 느낌이 동시에 존재한다.

 

산방산 바로 앞에 가면, 사람들 방해 안 되는 구석자리 길바닥에 드러누워 있어보라. 정적인 명상과는 또 다른 차원의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을 테다. 이걸 활용해서 역동적인 내 안의 우주를 움직이는 명상을 창시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모든건 덧 없다. 이것저것 해서 무슨 경지에 오르고 천국 가고 자시고 하면 뭐 하냐, 어차피 모든 존재의 멸점은 우주의 먼지일 뿐. 밥이나 먹고 잠이나 자자.

 

 

이제 정말 자리를 펼 시간이 돼서, '화순 금모래 해수욕장'에 들어갔다. 입구에서 처음 만난 것이 쓰레기 더미라서 첫 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아까 하모 해변과 비교하면 거의 사하라 사막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이미 시즌도 끝났기 때문에, 이 넓은 백사장 아무데나 텐트를 쳐도 괜찮을 듯 한 분위기. 그런데 사실 여기는 캠핑하기 썩 좋은 곳은 아니다. 시즌이 끝났어도 은근히 띄엄띄엄 사람들이 다닌다. 차라리 행인들이 많으면 오히려 괜찮은데, 띄엄띄엄 있으면 좀 불안하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화순 금모래 해수욕장 캠핑장

 

산방산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라, 거의 산방산 앞마당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사진으로 보면 멀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가보면 산방산이 아주 가깝게 보인다. 그래서 다른 해변과는 또 다른 묘한 느낌이 있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화순 금모래 해수욕장 캠핑장

 

제주 환상 자전거길: 화순 금모래 해수욕장 캠핑장

 

화순금모래해수욕장은 꽤 유명한 곳이고, 사람들도 많이 찾는 곳이라, 야영장도 규모가 큰 편이다. 유료캠핑장과 무료캠핑장으로 구역이 나누어져 있어서, 형편에 맞게 선택하면 되는 것도 장점이다. 유료 캠핑장은 모두 데크가 설치돼 있어서, 밤 바다의 축축함을 덜 느낄 수 있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화순 금모래 해수욕장 캠핑장

 

데크가 설치된 유료 캠핑장 바로 앞이 무료 캠핑장이었다. 무료 캠핑장은 그냥 아무것도 없는 백사장이다. 지도로 구역만 표시해놨을 뿐이지, 그냥 백사장이다. 아무런 장치도 구역 표시도 없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화순 금모래 해수욕장 캠핑장

 

무료캠핑장 모습. 앞쪽으로 광활한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근데 캠핑장이 해수욕장 끄트머리 구석자리인데다가, 큰길과 가까워서 사람이 별로 없을 때는 조금 문제가 있었다.

 

이날도 밤에 사람들이 지나다니기도 했고, 밤 늦게는 마을 노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이미 취한 상태에서 또 술을 사들고 이 근처에서 한참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신세한탄을 하고 그러더라. 그래서 주변에 캠핑하는 사람이 없을 때는 여기서 야영하는 것을 추천할 수 없다.

 

이름이 꽤 알려진 해수욕장인데도, 이상하게도 여기는 야영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다른 조그만 해변 캠핑장은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한두 팀 정도는 꼭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 동네는 펜션이나 민박 같은 것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화순 금모래 해수욕장 캠핑장

 

 

자리만 대충 봐두고, 짐을 그대로 가지고 오르막길을 올라가서 밥을 먹는다. 역시 밥집은 제주의 맛집 편의점. 여기 있는 편의점은 이것저것 충전도 할 수 있게 콘센트를 아예 빼 둬서 마음에 들었다. 안타깝게도 라면 먹고 어쩌고 해봤자 오래 머물 수는 없어서 충전을 많이 할 수는 없었다.

 

이번 여행 한다고 거금 들여서 데이터 쿠폰도 샀는데, 데이터 많이 쓸 수 있으면 뭐 하나, 핸드폰 배터리가 오래 가질 못 하는데. 해외여행 갈 때도 그렇다. 무제한 유심 사면 뭐 하나, 핸드폰 배터리가 금방 줄어드는데.

 

스마트폰이 생기고 GPS와 지도앱을 이용해서 옛날에 비하면 굉장히 편하게 여행을 할 수 있게 됐지만, 마치 불씨를 꺼트리지 않게 노심초사 했던 그 옛날 사람들 처럼, 배터리를 항상 유지해야 하는 것이 또 다른 족쇄가 됐다. 그리고 여행하면서 스마트폰 배터리가 다 닳아서 난감했던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종이 지도 정도는 항상 챙겨서 들고 다닌다. 그래도 애매한 지점에서 헤매는 경우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스마트폰 GPS는 꽤 유용한 도구이기는 하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화순 금모래 해수욕장 캠핑장

 

제주 환상 자전거길: 화순 금모래 해수욕장 캠핑장

 

화순금모래해수욕장 야영장은 대략 이런 분위기. 광활한 백사장에 커다란 산이 떡하니 박혀 있어서 분위기 참 독특하다. 바람도 세지 않고, 백사장도 밤 늦게까지 따뜻한 온도를 유지해줘서 여러모로 환경은 좋았다. 밤 늦게 술 먹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만 없었으면 정말 좋았는데. 참, 밤에는 바다에서 바람이 좀 불더라. 아침에는 여름인데도 좀 쌀쌀할 정도로 안개가 끼기도 했고.

 

제주 환상 자전거길: 화순 금모래 해수욕장 캠핑장

 

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