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원 월드컵경기장에 갔다. K리그 개막식이라고 들었다.
사당에서 수원 가는 버스를 타려고 정류소에 갔더니,
버스 기다리는 줄이 만 리나 뻗어 있었다.
버스를 탔다. 어느 대학 사진부인가 하는 애들이 타서 카메라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한 선배가 신입부원에게 '어두운 곳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조리개를 열어야 해'라고
말 하니, 신입은 DSLR 카메라의 랜즈를 뜯어내고 조리개를 손으로 열려고 했다.
생전 처음 축구경기장에서 축구를 봤다.
축구 경기엔 치어리더가 없었고, 공이 관중석에 떨어지니 돌려달라고 하더라.
경기장에 술은 못 들고 들어가게 하면서, 경기장 안에서는 술을 팔고 있었다.
대낮부터 술 먹고 얼굴 뻘개진 아저씨들이 애는 내팽개치고 어디선가 놀고 있고...
축구는 그냥 축구스러웠다.
2.
후배 부부가 지방에서 서울로 놀러 올라왔다.
시티투어 버스를 타겠다고 하길래, 나도 한 번도 못 타 본 거라 함께 탔다.
한 시간 조금 넘는 시간동안 한강 다리만 줄창 보고 왔다.
3.
힐튼 호텔에 갔다.
고급호텔에 나도 한 번 가 보는구나 하고 가 봤더니,
이건 무슨 호텔인지 아파트촌인지...
빌게이츠 아저씨가 쏘는 밥을 얻어먹었다.
그러고보니 빌게이츠 아저씨한테 꽤 많이 얻어먹었다.
다음에 만나면 내가 한 턱 쏴야지. 맥도날드 런치 셋트로.
작년(2007년) 11월 경에 패리스 힐튼이 한국을 방문했었다.
그 때 패리스 힐튼은 힐튼 호텔의 상속녀이면서도 힐튼 호텔에 묵지 않고,
하얏트 호텔에 묵었다. 그것도 하루 숙박료가 거의 1000만 원인 스위트 룸에.
하긴, 나 같아도 해외여행 가서 내 가게에서 자고 싶지는 않을 듯.
4.
뮤지컬 햄릿을 봤다.
그것도 VIP 석에 앉아서 봤다. (자랑)
내 주위에도 가끔 이렇게 쓸 만 한 친구가 하나씩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햄릿을 비롯한 몇몇 출연자들이 다소 지친 기색이 보였지만, 그래도 꽤 괜찮았다.
특히 오필리어와 그녀의 오빠가 함께 노래 부르는 장면이 감동적이었다.
다 보고 나오는 길에 친구에게 '이걸 보니깐 락 햄릿도 재밌을 것 같아.'라고 했더니,
'이게 락 햄릿이야.' 란다.
분명히 제목은 '뮤지컬 햄릿'이라고 돼 있다. 뮤지컬이 락이냐!
그럼 트롯트는 메탈이고, 부채춤은 테크토닉이란 말이냐! 흥!
(다 보고 나왔으니 막 우기며 대 들어서 상관 없다)
5.
요즘은 뭘 해도 재미도 없고, 흥도 나지 않고, 신기한 것도 없고, 감흥이 없다.
축구는 축구스러웠고, 시티투어는 시티투어스러웠고,
힐튼은 힐튼스러웠고, 햄릿은 햄릿스러웠다.
그렇다면 '나'스러운 건 대체 어떤 걸까.
요즘은 뭘 해도 졸립고, 피곤하고, 눈이 감기고, 잠이 오고, 꾸벅꾸벅 존다.
세상은 꿈 같다.
대충대충 굴러가는 저질스런 악몽.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오는데, 영화 속 한 장면이 하루종일 떠올랐다.
영화 괴물에서 배두나가 추리닝 입고 울며불며 맨바닥을 뒹굴던 장면.
왜 그게 계속 떠오르는 걸까?
그러니까 나는 지금 잠을 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