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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아한 미소의 나라, 백제 - 유홍준 교수에게 듣는 백제 미술 이야기
    취재파일/인터뷰 2010. 9. 6. 18:47



    자랑스러운 우리의 고대국가


    "세계적으로 고대국가를 겪은 나라가 별로 없습니다. 프랑스나 독일도 고대국가의 역사 쪽으로는 다른 나라의 것을 갖다 쓰고 있습니다."


    백제의 미술을 설명하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대뜸 서양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와 비교했다.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 자기네 역사를 기술하면서 고대역사를 이집트 때부터 시작한다. 그 다음에 그리스, 로마 시대가 나오고, 그 후에 중세역사로 넘어가는 식이라 한다. 물론 로마시대 이전에도 그 땅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딱히 고대국가라 할 만한 것이 없어서 그런 식이라 한다.


    그에 비하면 한국사는 굉장히 깊이가 있는 편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 고조선부터 국가체계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땅의 역사를 온전히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 스스로가 충분히 자부심을 가지고도 남을 정도라고 그가 말했다.


    백제 역사를 연구하고, 배우고, 알아가는 것은, 잊혀져 버린 우리의 고대역사를 되새긴다는 의미이다. 또한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숨결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우리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일제시대 때 의도적으로 폄하되었던 한반도의 역사를 바르게 정립하는 노력이다.

    그러나 이미 멸망해버려 역사 속으로 잊혀진 국가를 현재에 다시 보여주기는 어려운 일. 더군다나 삶의 문화는 거의 남아있지 않고, 무덤 같은 것들을 통한 죽음의 문화만 남아있는 현실에서는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미술뿐이라는 생각을 가졌고, 그래서 명지대에서 교수로 초대했을 때 미술사학과를 만들어 주기를 요구했다 한다. 그래서 명지대는 우리나라 최초로 학부과정에 미술사학과를 만든 대학이 되었다.









    유홍준 교수가 들려준 백제의 미술




    검이불누 화이불치 (檢而不陋 華而不侈)


    멸망한 나라라서 그런 것인지, 수도를 세 번이나 옮긴 탓인지, 백제에 관한 것들은 현재 남아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유홍준 교수는 우리가 아는 모든 백제 문화는, 6세기경 무령왕과 성왕, 위덕왕 시절에 나온 것이라 한다. 이른바 백제의 문화전성기였다.


    "흔히들 고구려 미술은 거칠고, 백제는 우아하고, 신라는 화려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백제의 우아함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검이불누 화이불치'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검이불누 화이불치'는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백제의 우아함은 그러한 것으로, 왕궁리탑이나 서산 마애불, 반가사유상 등을 보면 그것이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특히 반가사유상은, 유명한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보고는 "나는 신을 본 적 없다. 하지만 신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라며, '현세에서 벗어난 절대자의 모습'이라고 극찬했다 한다.

    또한 서산 마애불은 당진이라는 당나라로 가는 나루터 근처에 있는데, 그 미소는 가히 백제의 미소라고 할 만큼 온화하고 아름답다. 먼 길을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이 미소를 보면서, 집에 돌아왔구나 하며 한 숨 돌릴 수 있는 그런 포근함이 녹아있다.


    이미 사라져버린, 오래된 왕국이지만, 백제는 그렇게 아직도 우리에게 우아한 자태를 내보이고 있다. 물론 백제가 해상강국이고, 활발한 무역을 행했던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온화한 미소와 포근한 마음이 더욱 와 닿는 것은, 아마도 나 역시 이 땅에 살았던 수많은 민초들과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렇게 작지만 단순히 보고 지나칠 수 없는 미술품에서 느끼는 것이 더 많은 것은, 그 속에 그들의 삶과 마음과 이야기가 녹아있기 때문일 테다. 아주아주 오래 전 이 땅에 살면서 소박한 일상을 꾸려갔던 그들의 담담한 이야기. 어쩌면 방금 전에도 일어났을 듯 한 그런 이야기 말이다.









    문화의 정체성


    백제하면 일본과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 일찍부터 ''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백제는, '일본문화의 원류'라고도 한다.

    무령왕릉으로 유명한 무령왕의 관이 금송으로 되어 있는데, 이 나무는 일본에서 들여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게다가 무령왕릉이 발굴되고 난 후에, 일본의 왕족이 무령왕릉을 찾아와 참배를 하기도 했다. 이런 사실만 보더라도 백제가 일본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한 대목이다.


    일본이 백제의 문화를 들여가기는 했지만, 그것을 그냥 그대로 쓰지는 않았다. 백제의 문화를 받아들여 완전히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백제의 문화를 '일본화'하는 데 성공했다.

    새로운 문명은 항상 오래된 것을 이긴다. 물론 중간에 저항도 받고, 꺾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이긴다. 일본의 고대국가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백제문화를 가지고 들어간 가문이, 기존 세력을 이김으로써 일본 고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셈이었다. 유홍준 교수는 이 대목에서 이런 말을 했다.


    "비록 백제의 문화를 들여가긴 했지만, 일본은 그것을 완전히 일본화 했습니다. 그 이후로 그것은 일본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이런 부분은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식민지 의식으로 인한 열등감이나, 과대한 강조로 일말의 존경도 보여주지 않는 것은 편협한 것입니다."












    일본의 예와 마찬가지로 백제도 중국에서 좋은 것을 갖다 썼다. 풍납토성에는 4세기 경의 중국 도자기가 출토되기도 했는데, 백제는 그런 것들을 거리낌없이 갖다 쓸 정도로 개방적이었다.

    흔히들 창조는 좋은 것이고, 남의 것을 갖다 쓰는 것은 그리 주목할 만 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은 것을 알고, 잘 갖다 쓰는 것 만으로도 발달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한다.


    문화의 정체성(identity)은, 좋은 것을 갖다 쓰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생기는 것이라고 유 교수는 말했다. 그리고 먼저 만든 것만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발전시키는 것 또한 훌륭한 것이라 했다. 불교미술 같은 경우도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것이지만, 우리 것으로 만들었기에 내놓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 지금의 우리 또한 그래야 할 것이다. 우리 것만 고집스럽게 지키려는 것을 넘어, 아무렇게나 갖다 쓰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가 가진 좋은 것과 다른 나라의 좋은 것을 결합시켜, 다시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해 나가야 할 것이고, 그렇게 정립된 정체성으로 우리의 삶 또한 꾸려나가야 할 것이다.












    역사문화행사에 학술행사가 없음이 아쉬워


    자신의 학생들에게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을 말 해 주었다며, 두 시간에 걸친 유홍준 교수의 백제 미술에 관한 강의가 끝을 맺었다. 강연을 끝마치며 유 교수는 이번 세계대백제전을 비롯하여 각종 역사문화행사에 학술 프로젝트가 없다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속으로 축적되어 있는 것도 문화입니다. 진심으로 역사문화를 재조명하려 한다면 장기적인 기획으로 학술행사를 함께 마련해, 인문학적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간혹 이런 행사에서도 학자들에게 의뢰해서 학술적인 자료를 모으기도 한다고. 하지만 행사에 닥쳐서 급하게 모은 자료는 큰 의미가 없다 한다. 학자의 입장에서도 연구가 아니라 단순한 자료 모으기일 뿐이라 큰 매력을 느낄 수 없다고.

    프랑스 퐁피두 센터 같은 경우는 행사 하나를 하려면 3~5년 전부터 기획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만큼은 안 되더라도, 최소한 학자들에게 2~3년의 연구 프로젝트를 주고, 그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학술행사를 하게끔 해야 인문학적 기반이 차츰 마련되지 않겠냐고 주장했다.

    가수를 초청하거나 성대한 공연을 준비하는 것처럼, 인문학적 기반을 마련하는 학술행사도 함께 준비하도록 하는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한다고 거듭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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