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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테말라의 걱정인형을 만들어보자
    웹툰일기/2011~ 2012. 1. 25. 01:42








    멕시코 바로 아래에 조그만 나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그 중에 '과테말라'라는 나라가 있어. 자연경관도 아름답고, 커피 생산지로도 유명하다고 해. 하지만 빈민들의 가난한 삶과 함께, 쓰레기 산과 총기난사 같은 걸로도 유명하지.

    그 중 '걱정인형 (worry doll)'은, 지금은 거의 대부분 빈민으로 전락해버린, 과테말라 고원지대 인디언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 속의 인형이래.  



    조그만 인형에게 걱정을 말하면, 자는동안 그 인형이 걱정을 대신 해 주고, 걱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잠시나마 깊은 잠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거지. 어쩌면 일종의 주술 인형 같은 종류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확실한 건 알 수 없어.

    하지만 그냥 아무렇게나 만들거나, 어디서 주워서 쓰는 것 보다는, 자신의 걱정이나 소망, 기운 등을 불어 넣으면 더욱 효과가 좋다는 말이 있어. 아동 심리 치료를 할 때 이 인형을 쓴다고도 하는데, 아직 확인해 보진 못했어.




    어쨌든 내 걱정을 잠시나마 누군가에게 떠맡기고, 잠이라도 푹 잘 수 있다는 것, 너무 멋지지 않아? 어느날 소리 소문 없이 인형이 사라지면 내 걱정도 함께 가지고 사라진다니, 밑져야 본전이지. 해가 될 것은 없어. 

    그러니까 한 번 만들어 보는 거야.






    과테말라 전통 방식은 철사로 인형을 만드는 거래. 거기다가 과테말라 전통의상 같은 화려한 색깔의 실로 알록달록하게 인형을 만들어야 원조 걱정인형.

    하지만 귀찮아. 걱정하기도 바쁜데 걱정인형을 그렇게 아름답게 만들 시간이 어디 있니? 그리고 재료도 없다 뭐. 그냥 주위에 있는 것들로 만들자, 그렇다고 여기 불어넣는 기운까지 허름한 것은 아니니까. 어떻게든 될 거야, 여기서까지 또 걱정을 할 필요는 없잖아?



    그래서 이번에 이 걱정인형을 만들면서 새로 산 것은 실과 딱풀 밖에 없어. 실은, 여행 갈 때 준비용으로 쓰던 것이 있긴 있는데, 너무 얇아서 그걸로 만들다간 밤 샐 것 같더라구. 그래서 동네 수퍼에 갔더니 이불 꼬매기 용 실이 있길래 덥썩 집어 들었지. 그리고 풀도 원래는 밥풀로 하려고 했는데, 마침 밥이 다 떨어졌네. 어쩔 수 없이 딱풀을 샀어. 






    초콜렛 까먹고 남은 두꺼운 종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반으로 접어. 그리고 성냥을 똑똑 뿐질러서 팔다리를 만들었지.

    아까도 말 했지만, 원래는 철사로 만드는 거고, 철사로 만드는 것이 좀 더 견고하긴 해. 하지만 철사 없어. 철사로 만들려면 철사 자르는 니퍼도 필요해. 돈 없어. 안 해.



    원래는 면봉으로 하려고 했는데, 대 보니까 팔다리가 너무 굵은거라. 뚱띵이 걱정인형을 보고 있으면, 내가 더 걱정스러울 것 같아서 성냥개비로 급 선회.

    얼굴 부분은 보통 솜을 넣는데, 그런거 없어! 솜 없으면 뭐 어때, 화장지가 있잖아. 화장지나 솜이나 그게 그거지, 어차피 인형인데. 기운을 불어넣기 위해서 코 한 번 푼 화장지로 딱, 접어 넣는 거야. 내 걱정 묻어가라~ 하면서.






    이불용 실을 한 움큼 샀더니 너무 많아. 걱정인형 이불 해도 되겠어.
    어쨌든 뼈대가 만들어지면 이제 복잡한 건 없어, 실로 칭칭 감기만 하면 돼. 미이라 처럼 꼼꼼하게 돌돌말아 쭉쭉 감으면 되는 거지. 의외로 실이 많이 필요하니까 넉넉하게 준비하기 바래.
     






    요렇게 샬샬샬 감아주면 됨. 꼭 이런 식으로 감을 필요는 없고, 딱히 감는 방법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맘 내키는 대로 감으면 됨.

    그런데 실을 중간중간 잘라가며 감는다든지, 느슨하게 감는다든지 하면, 중간에 풀리는 수가 있으니까, 한 번에 쭉쭉 감아주는 게 좋아.







    실을 감을 때 내 걱정을 한올한올 불어 넣어주면 더욱 주술적인 걱정인형이 될 거야. 감다보면 무아지경에 빠져서 어느새 걱정이 사라지기도 하고.

    근데 신나게 감다보니, 실이 엉켰어! 인형 만드는 시간보다 엉킨 실 푸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고! 이거 뭐 이래. 실이 걱정같잖아!
     






    어쨌든 몸통을 제법 빽빽하게 다 감아준 다음, 다리 부분에서 실을 딱 묶고, 풀로 딱 붙여서 마무리. 

    이제 머리카락을 동글동글 곱슬머리로 만들기 위해 빨대를 준비했어. 빨대에 동그랗게 감아서 곱슬머리를 만들려고 했지.






    우쒸. 빨대에서 실이 잘 빠지지가 않아. 막 헝클어진 이상한 헤어스타일이 나오네. 뭐냐 이게, 널 뛰는 미친년도 아니고. 포기. 






    역시 머리는 단정한 게 좋지. 머리도 그냥 실을 칭칭 감아서 완성~!
    근데 머리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보니까, 얘 너무 찐따같에.
    그래서 니 이름은 찐따. 찐따 걱정인형.






    자 이제 색칠을 하자~♡
    모두들 집에 이 정도 매니큐어는 다들 가지고 있겠지? 남자라도 가끔 우울해질 때면 손톱에 매니큐어 바르고 싶을 때가 있잖아. 그러니까 매니큐어로 색칠을 하자구. 



    아니 갑자기 처음엔 없었던 준비물이 이렇게 툭툭 튀어나오면 어쩌냐고 할 수 있겠지만, 세상이 다 그런걸.

    요리책이나 요리 프로그램을 봐봐. '자~ 오늘은 우거지 국을 만들겠어요~' 해놓고는, 나중엔 결국 '자~ 다들 집에, 용의 발톱, 이무기의 이빨, 천 년 묵은 지렁이 정도는 가지고 있죠~? 이걸로 간을 해야 맛있어요~' 이 지랄 한다구. 세상이 원래 그래, 만만치가 않지. 그래서 이런 걱정인형을 만들고 있는 것 아니겠어.




    뭐 어쨌든, 원래는 색실을 써서 예쁘게 만들어야 하지만, 하얀색 실 밖에 없어서 색칠을 하는 거니까, 색칠은 알아서 하도록 해. 물감을 쓰든지, 볼펜으로 칠하든지, 간장과 케찹을 바르든지. 마음대로~ 참 쉽죠~?






    머리카락은 당연히 보라색.






    옷도 나름 입히고~ 매니큐어는 무조건 펄 들어간 걸로~ 반짝반짝 블링블링 너무너무 좋아좋아






    완성~!
    이제 걱정인형을 딱 세워놓고 소리내어 걱정을 말 해 보자. 오늘 밤엔 편하게 잠 들 수 있도록.

    찐따야, 찐따야, 내 걱정 가져가라ㅇ~ 뾰로롱~






    아, 그렇다고 백년동안 걱정 할 필요는 없어, 얘~

    인상 구기니? 팔을 확 분질러뿔라! 농담인 거 알지~? 뿌잉뿌잉~

     


    걱정인형에게 걱정을 말 할 때는 소리내어 말을 해야 한다고 해. 그렇다고 동네방네 외칠 필요는 없어. 니 걱정 많은 거 동네 사람이 알아봐야 좋을 건 없잖니? 그냥 걱정인형이 들을 수 있도록만 말 하면 돼. 안타깝게도 걱정인형은 텔레파시 능력이 없다니까, 마음 속으로 백 날 떠들어봐야 걱정인형에게 걱정이 전달되지는 않아. '소리'가 중요해.

    일단 그렇게 걱정을 털어놓고 나서는 걱정인형을 항상 잘 들고 다니기만 하면 된데. 잘 때는 베개 밑에 넣어두고 자면 효과가 더 좋다고 하는데, 이렇게 나무와 종이로 만든 걱정인형은 부러질 수도 있으니까 그냥 머리맡에 두도록 하자. 어쨌거나 근처에 있기만 하면 되니까.



    오늘 만든 걱정인형은 좀 큰 편에 속해. 내 걱정이 큰 만큼 크게 만들었지 뭐야 (그래서 찐따가 됐지만). 원래 걱정인형은 상당히 작은 편이야. 기껏해야 새끼손가락 크기 정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애게, 이게 뭐야!' 하는데, 사실 걱정인형은 슬프게도 태어날 때부터 사라질 운명을 가지고 세상에 나오는 인형이야. 내 걱정을 가지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임무를 가진 인형이니까. 어느날 눈 떴을 때, 갑자기 걱정인형이 보이지 않는다면, 내 걱정도 사라져 버렸다는 걸 알 수 있을 테지.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까지 잘 부탁해, 내 걱정인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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