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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밀경찰과 시장, 그리고 처절한 바다 - 스리랑카, 니곰보 Negombo
    해외여행/스리랑카 2009 2012. 3. 21. 18:44

    니곰보(Negombo)는 일찍부터 서구 문물이 드나들었던 곳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찍부터 서양 열강들의 침탈이 시작된 곳이라고 해야겠다. 

    스리랑카 서쪽 해안지역은 이미 오랜 옛날부터 질 좋은 계피(cinnamon) 생산지로 알려져 있었는데, 17세기 초반 포르투갈이 니곰보를 중심으로 한 서해안 지역을 침략하면서 오랜 제국주의 통치의 막이 올랐다. 포르투갈의 침략을 보고 스리랑카 왕조는 네덜란드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이들 역시 계피 교역권을 독차지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렇게 작은 섬나라 하나를 두고 두 나라가 투닥투닥 싸우다가, 결국은 영국이 인도와 함께 스리랑카를 모두 삼켜버렸다. 그리고 1948년이 돼서야 스리랑카는 영국연방의 일원으로 독립하게 됐다. 아직도 스리랑카에 서구식 건물들이나 기념물들이 많이 있는건, 그 오랜 서양 열강의 통치 시절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니곰보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계피 교역의 교두보로 활용한 곳이라 그들의 자취도 깊이 남아 있는데, 이곳 주민들의 거의 대부분이 크리스천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스리랑카는 나라 전체적으로 불교도가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불교국가다. 하지만 니곰보는 특이하게도, 거의 대부분의 주민들이 크리스천이다.

    사실 니곰보가 자랑하는 총 길이 100 킬로미터에 달하는 운하도, 그 옛날에 네덜란드가 계피 교역을 위한 물자수송 통로로 이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 외에도 군데군데 심심치 않게 서양식 가옥들이 눈에 띄어, 식민지 흔적은 아직도 그들의 생활 주변이 많이 남아 있다.










    길을 걷다가 서양식 공동묘지가 눈에 띄길래 한 번 들어가보니, 의외로 무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게다가 비석에 쓰여진 생몰연대가 모두 오래된 것인걸 보니, 최근에는 사용하지 않고 그냥 관리만 하고 있는 듯 했다. 내전으로 죽은 사람들을 모두 공동묘지에 묻었다면 벌써 무덤으로 꽉 들어차서 발 디딜 틈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스리랑카는 사실 그 어떤 것들 보다도 내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1976년에 북부 지역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나선 '타밀 엘람 해방 호랑이(LTTE)'라는 조직과 스리랑카 정부 사이에 무려 30년에 걸친 긴 전쟁을 치렀는데, 서로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주민들을 학살하는 등 끊임없이 문제들이 불거져 나왔던 잔혹한 내전이었다.
     








    2009년 5월에 드디어 LTTE가 패배를 선언했고, 스리랑카 정부도 공식적으로 내전이 종료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이 나라 사람들도 이제, 안정을 되찾아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오고, 돈이 흘러들어 부강한 국가가 되겠다며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내가 스리랑카를 여행할 때는, 내전 종료를 선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09년 7월이었다. 마침 해외언론에서 전하는 장밋빛 전망들과, 스리랑카 정부 측에서 발표하는 밝은 미래에 대한 계획들이 막 쏟아져 나올 무렵이었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실감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다들 내전에 대한 이야기를 꺼렸고, 시내 곳곳에 무장한 군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실탄을 장전하고 보초를 서고 있었다. 

    인도와 비교해봐도, 별 이유도 없이 실실 웃는 인도인들과는 달리, 스리랑카 사람들의 얼굴에는 거의 웃음이 없었다. 흠뻑 비를 맞고 아무렇게나 구겨서 던져 놓은 옷처럼, 그들의 표정은 말 그대로 힘든 일상에 찌들었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


      







    시장을 구경하려고 한적한 골목길을 걷다가, 뜨거운 한낮의 햇살을 잠시 피해 쉬어 가려고 어느 집 문 앞 계단에 잠시 앉았다. 앉은 김에 일기 겸 메모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오토바이를 탄 험악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알아듣지 못 할 말로 뭐라뭐라 말을 했다. 내용은 모르겠지만, 뭔가 위협도 하면서 비아냥거리기도 하면서, 혼자 실실 비웃고, 화내고, 소리지르고, 완전 쌩쇼를 보여줬다.

    그러다가 영 안 되겠는지, 품 안에서 꼬깃꼬깃 한 지갑을 꺼내서 신분증을 보여주는데, 경찰(police)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그 신분증 역시도 너무나 꼬질꼬질하고 더럽고 오래돼 보이는 데다가, 인쇄도 너무 조악한 것이라, 설령 경찰서 안에서 보여줬다 해도 진짜 신분증이라고 믿기엔 어려울 지경이었다.

    게다가 이 마당에, 여기서 경찰이 신분증을 보여줘가며 원하는 것이 뭔지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세계 어디서나 그렇듯, 큰 권력 위에서 군림하며 먹고살 만 한 사람들은 외국어를 잘 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가 나타나자 근처에서 놀던 어린애들도 다 도망갔고. 그런 상황을 조합해보면, 이 사람이 경찰이 맞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도무지 알아듣지도 못 할 말을 계속해서, 무시하고 계속 내 할 일을 하는데도 떠나지 않고 계속 앞에서 혼자 화내고 떠들고 난리를 부렸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내가 해변 쪽으로 자리를 옮기니, 그 때서야 그도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갔다.









    나중에 어느 식당 종업원한테 물어보니, 골목길이나 길 가에 함부로 아무데나 멈춰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필기를 하거나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사람이 거의 없는 골목길이라도 사복을 입은 비밀경찰들이 수시로 돌아다니며 감시를 하기 때문에, 자칫 잘 못 하면 안 좋은 일을 당할 수도 있다 했다. 좀 어이가 없어서, '경찰이 갱스터보다 무서운 존재네?'했더니, 그런 말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했다. 

    그런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그 때까지도 스리랑카 내전은 아직 종료된 것이 아닌 듯 싶었다. 하나의 세력이 다른 세력을 무력으로 진압했을 때, 뒤따르는 조치는 항상 잔당 소탕 아닌가. 한국처럼 인심좋게 친일파도 그대로 놔 두는 나라는 세계에서 별로 없다. 아마 스리랑카도 그 즈음에 잔당이나 일종의 간첩 소탕을 위해 오히려 사법체계는 강화했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그렇지, 골목에서 필기 한다고 경찰에 잡혀갈 수도 있다니. 갑자기 뉴스에서 봤던 스리랑카의 포로수용소가 막 떠올랐고, 신문에 거물급 정치인을 비난하는 기사를 실었던 기자가 의문의 죽음을 맞았던 사건도 떠올랐다. '아직 그렇구나'라면서, 안 좋은 일을 당할만 한 행동은 하지 말자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던 한 편, 무서운 게 많은 정권은 오래가지 못 하던데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던 에피소드였다.









    그렇게 쉬엄쉬엄 해변을 걷다가 우연히도 뜻하지 않게 현지인들의 시장을 구경할 수 있었다. 원래 시장을 가려고는 했지만, 처음에 가려고 했던 곳은 니곰보에서 유명한 '피쉬 마켓 (fish market)'이었다. 연안에서 잡아온 싱싱한 해산물들을 그때그때 바로바로 판매하는 시장으로, 나름 규모도 있고 사람도 많은 곳이라 들어서, 구경을 가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애초 목적했던 그곳에 아직 절반도 가지 않아서 작은 시장 하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어찌보면 벼룩시장 같은 분위기의 정말 작은 시장이었는데, 시설이라는 것도 햇볕을 겨우 피할 수 있는 천막 몇 개 뿐이고, 건물이랄 것도 없어서 그 누추함이 좀 더 크게 부각되는 초라한 시장이었다.

    팔려고 내놓은 물건도 딱히 변변한 게 없는 데다가 수량도 적었는데, 그나마도 사람이 별로 없어서 거의 팔리지 않았고, 물건을 팔기보다는 오히려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혹은 낮잠을 즐기는 데 더욱 몰두해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분위기라서 손님들이 물건을 둘러봐도 별로 신경쓰지 않아서 오히려 구경하는 데는 편하고 좋았지만, 사실 구경이라 할 만 한 게 별로 없었다.



    그래도 시장이라고 사람들의 이런저런 모습들을 구경할 수 있어서, 시장 한 쪽 구석(?) 바닷가에 앉아서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뻐드렁니 할배가 마치 심심한 차에 잘 됐다는 듯이, 묻지도 않은 말을 듣거나 말거나 아랑곳 없이 내게 막 쏟아냈다.

    하루종일 앉아 있어도 하나도 못 팔 때가 많다느니, 그래도 요즘은 전쟁이 끝나서 다행이라느니, 그런데 전쟁 중에는 시체 치우는 일이라도 했는데 이젠 정말 일거리가 없어서 큰일이라느니, 한동안은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만 먹고 살아야 한다느니, 그래도 여기는 물고기라도 잡을 수 있어서 다행인데 내륙 쪽은 다 굶어 죽게 생겼다느니, 자기 집 자식도 어디 외국에 보내서 돈 벌어오게 할 생각이라느니 등등을 히죽히죽 웃으며 말 하다가, 결국 결론은 담배 있으면 한 개비만 달라는 거였다.






    솔직히 스리랑카 도착한 첫날, 반나절동안 이 시장까지 오는 과정들 속에서, '아, 여기 괜히 왔다'라는 생각을 했다. 여행을 떠나는 수많은 이유들 중 하나는, 일상의 그 어둡고 쾌쾌한 표정들로부터 벗어나서 환히 웃어보려는 이유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한국보다 더욱 어두운 표정들에 암울한 분위기에 억압적인 세상이라니. 게다가 결정적으로 물가도 높아서 돈도 많이 쓰는데 거의 빈민 수준의 여행이라니.

    그래서 '나 다시 돌아가고 싶어'를 외치며 먼 바다를 아련한 시선으로 넘겨다 보며, 피쉬 마켓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며 하염없이 밀려드는 파도만 삼키며 어둠을 맞이했는데, 이미 비행기 표는 리턴으로 끊어서 지정된 날짜에만 떠날 수 있게 돼 있음이 정말 한탄스러울 지경이었다. 

    다만, 사람들의 힘든 일상과 어두운 표정, 그리고 나의 어려움과 지루함과는 상관 없이, 바다와 해변이 만드는 풍경은 정말 처절하게도 아름답게 반짝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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