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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대 없는 날개를 섬에 접었다 - 스리랑카
    해외여행/스리랑카 2009 2011. 1. 14. 17:30

    스리랑카 국제공항은 거의 아무런 제재 없이 그냥 통과였다.

    인도의 공항들은 나갈 때도 금속탐지기와 수작업으로 짐 검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리랑카는 그렇게 깐깐하게 굴지 않았다.

    단지 조금 귀찮았던 것은, 공항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스리랑카에 왜 왔냐'고 묻는 것. 그 비행편에서 내가 유일하게 인도인도, 스리랑카인도 아닌 외국인이어서 그랬던 건지, 원래 외국인들에게 다 그렇게 묻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귀찮았다. 나도 모르는 이유를 너네가 알아서 뭐 하려고.

    그래도 입국할 때 이런 질문을 할 것을 대비해서 준비해 둔 답변이 있었다. 얘네들은 뭔가 이상하면 어떤 꼬투리를 잡을지 모르니까, 준비할 수 있는 건 미리 준비하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그다지 머리 굴리기도 싫었던 내가 준비한 답변은 그냥 '비치 beach'였다. 아무래도 섬이니까 해변 하나 쯤 있을 것 아닌가. 비키니는 없다 해도, 팬티만 입고 뛰어드는 그런 해변 하나 쯤은 있겠지. 그래서 대충 준비한 답변이 바로 '스리랑카에 바다 보러 왔다'이다. 참 아름다운 이유다. 그럴싸 하지 않은가. 후광에 화악 비치면서 바로 앞에 바다가 쫘악 펼쳐질 듯 한 에너지. 아니면 말고.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시기여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신종플루 검사를 했다. 검사는 그냥 설문지 한 장 작성해서 제출하는 것으로 끝. 전부 노노노노, 노만 체크하면 됐다. 그리고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

    입국심사는 스리랑카에 왜 왔냐 한 마디 묻고는 끝.
    세관 검사도 스리랑카에 왜 왔냐 한 마디 묻고는 끝. 
    입국장 문 앞 보안요원도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해놓구선, 스리랑카에 왜 왔냐 한 마디 묻고는 끝.

    처음엔 그냥 호기심에, 혹은 여행 목적을 알려고 묻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자꾸 당해보니 이렇게 들렸다. 별 볼 것도 없는 우리나라에 대체 뭘 보려고 온 거냐. 우리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어 이런거.



    생각해보니 나는 여기 왜 왔을까라는 의문도 들고. 쟤네들은 왜 자꾸 저런걸 집요하게 물을까 의문도 들고. 뭔가 잘 못 찾아온 건가, 내가 있을 곳이 아닌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결국 나는 왜 이곳에 존재할까,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의문도 들고. 발은 땅에 닿아 있지만, 의식은 저 멀리 아스트랄 한 세계로. 끝없는 저 우주를 유영하는 은하철도처럼, 우리 은하도 보이고, 안드로메다도 보이고, 갑자기 엄마가 보고싶고. 

    참 철학적인 공항이었다. 어쩌면 스리랑카에 왜 왔는지 대답하지 못하면, 공항 한쪽 구석에 손 들고 꿇어앉아 생각날 때까지 있으라고 할 기세. 스리랑카 가기 전에 스리랑카를 왜 가는지 철학적, 사회학적, 경제학적, 도덕적, 윤리적, 정치적, 국제적, 종교적, 정신적, 육체적, 우주적 이유를 꼭 미리 생각해 두고, 굳은 신념과 철저한 정신무장으로 가시기 바란다. 안 그러면 엄마가 보고싶어 질 지도 모른다.



    (Sri Lanka, Colombo Bandaranaike Airport, main bus station, 2009)



    스리랑카 국제공항은 그래도 대충 국제공항 느낌이 났다.

    인도와 별 다를 것 없겠지 하며, 어두컴컴하고 을씨년스러우면서도 엄숙하고 조용하고 갑갑하고 고압적이면서도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그런 공항을 상상했다. 한마디로 별 기대가 없었다.

    하지만 의외로 인도의 공항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깨끗하고 현대적인 시설들과, 넓은 실내공간이 눈에 띄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내부시설을 뽐내는 스리랑카 국제공항(콜롬보 국제공항)은, 가히 우리나라 소도시 버스터미널에 버금가는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었다. 

    우리나라 인천국제공항에서 바로 간 사람이라면 그 작고 초라한 규모와,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에 무슨 이런 공항이 다 있나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인도를 돌다가 들어간 스리랑카 국제공항은, 마치 반짝반짝 화려한 궁전에 들어선 듯 한 느낌. 다만 그 실내공간을 빼곡히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여행사들의 부스들이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어서 좀 그리 정감 가는 곳은 아니다. 여행자처럼 보이는 사람, 특히 외국인이 게이트에서 나오니까 서로 오라고 부르고 난리다.
     


    그중에 스리랑카 관광청에서 운영하는 부스로 들어갔다. 절대로 거기 도우미가 예뻐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옮겨진 건 아닐 수도 있다. 가이드북도 없고, 가진 정보도 거의 없으니 정보를 좀 얻으려고 했는데, 이왕이면 다홍치마. 스리랑카 지도와 안내책자를 얻고, 가볼만 한 곳 몇 군데만 지도에 표시해 달라고 했다.

    이녀석 잘 놀고 있는데 왜 갑자기 들러 붙어서 난리야, 지도만 얻고 냉큼 꺼질 것이지, 라는 눈빛. 하지만 정부 공식 관광안내부스에서 일하는 사람의 우아함과 친절함을 잊으면 안 된다는 직업의식으로 흘러나오는 어색한 입가의 웃음. 그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코 주변의 주름.

    아주 복잡미묘한 연극 배우같은 표정을 일단 보여주고는, 거의 기계처럼 스리랑카 관광안내를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중얼중얼 읊어줬다. 아주 책을 달달 외웠는지 끊임없는 설명을 들려 주었는데, 빵인지 건물인지 알 수 없는 낯선 지명에 나는 그만 눈 뜨고 기절 직전. 그러면서 저주의 주문을 휘갈겨 쓰는 건지, 지도는 빨간 볼펜으로 아주 시뻘겋게 칠해버렸다. 이거 다 보려면 이 나라 눌러 살아야겠다. 나랑 같이 살자는 거냐.



    그렇다고 물러설 내가 아니다. 부스 근처에서 스리랑카 론리 플래닛 책자 가격을 봤는데, 아주 조금 약간 과장해서, 거의 우주왕복선 하나를 살 정도의 가격. 그렇다고 돈 쓰기 싫어서 가이드북 안 사는 건 절대절대 아니다. 지구 환경 보존을 위해 한 번 보고 버릴 종이는 소비하지 않는다는 신념. 그래서 웬만하면 가이드북을 사지 않는 방침이라고 봐 주자. 가난한데 포장이라도 좀 하자. 다 지구환경보존 때문이다.

    어쨌든 그리 만만치 않은 나는 다시 새 지도를 뽑아들고, '자 이 지도에서 딱 세 군데만 표시해 줘' 했다. 그랬더니 스리랑카에는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그건 어렵단다. 뭐냐이건. 어쩌라고. 당황해서 말 없이 넌지시 멀뚱멀뚱 했더니, 빼시시 웃는다. 마 그래 됐다, 예쁘기라도 하니 다행이다. 결국 한쪽 옆에 비켜서서 나혼자 지도 탐구.



    공항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해변에 위치하고, 이름이 크게 표시된 곳이 하나 눈에 띄었다. 니곰보(Negombo). 그래 일단 여기로 가자. 일단 가까운 곳부터 가서 짐을 푸는 게 우선이지. 사실 이 공항은 스리랑카의 가장 큰 도시인 콜롬보(Colombo)와도 가깝다. 그래서 이 공항을 콜롬보 국제공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정식 명칭은 반다라나이케 공항이다). 하지만 새로운 여행의 시작을 대도시에서 시작하기는 싫었다.

    니곰보(Negombo) 가는 가장 싼 방법은 공항 셔틀버스를 이용해서 버스터미널까지 간 다음, 거기서 니곰보로 가는 버스를 타는 것. 버스비는 50루피.

    저 옆쪽에 있는 환전소에 가서 환전을 했다. 1달러에 113루피. 그래서 달랑 1달러 꺼내서 환전했다. 환전소 직원이 '진짜냐? Really?'라며 놀란다. 어, 나는 돈 이거밖에 없어, 환전해줘. 주변에 줄 서 있던 사람들의 눈빛에 당혹감이 맴돈다. 아, 이러면 사람들이 당황하는구나. 단돈 1달러 환전해서 걸어나가는 내 등 뒤에 느껴지던 그 시선들의 짜릿함. 상쾌해요.



    (Sri Lanka, Colombo Bandaranaike Airport, main bus station, 2009)



    출구로 나가는데 어떤 사람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문제가 있다고 잠시 들어와보란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봤던 공항 직원들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무슨 문제가 생긴건가 덜컥 겁이나서 조금 따라가다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뭣 때문에 그러느냐 따져 물었다. 그랬더니 어처구니 없게도, '여행 정보를 주려고 그런다'란다. 한마디로 여행사 직원. 나도 모르게 해변의 태양(sun of beach)을 외쳤다.

    스리랑카 국제공항은 인도와는 다르게, 택시나 각종 삐끼들의 호객행위가 그리 심한 편은 아니었다. 택시 타라고 붙긴 붙는데, '노' 한마디만 하면 그냥 물러서는 분위기다. 일단 이런 곳에서는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다'라는 모습으로 두리번거리지 않고 재빠르게 움직여야 사냥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진도 찍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공항을 빠져나와 버스를 탔다.

    공항 출구로 나가서 맨 왼쪽 끝으로 가면 무료 셔틀버스가 있다. 공항 근처에 있는 버스터미널까지 바로 간다. 중간에 사람들이 내리기도 하는데, 버스터미널이 종점이니까 그냥 넋놓고 있으면 된다. 



    버스는 해안가 도로를 느릿느릿 터덜터덜 달려갔다. 도로 바깥쪽은 자연스레 자라있는 야자수가 듬성듬성 나 있고, 그 너머엔 끝없이 백사장과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굉장히 무더운 곳이긴 하지만, 버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은 소금을 약간 뿌린 레몬 냄새가 난다.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며 버스에 몸을 맡기고만 있어도 코끝을 톡 쏘는 아릿한 여행이 되는 곳. 인위적으로 꾸민 콘크리트의 따스함과 포근함보다는, 그냥 되는데로 내버려둔 거친 자연의 비정한 매력. 니곰보의 첫인상은 그러했다.



    (Sri Lanka, Negombo, 2009)




    추가사항
     
    1)
    처음에는 공항에서 니곰보(Negombo) 가는 버스 요금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이 나라 물가가 이렇게 높은가 해서. 약 20킬로미터 가는데 버스요금이 50루피. 반 달러도 안 되는 돈이긴 하지만, 그래도 인도에 비하면 두 배 이상 비싸다. 인도에서 넘어온 나는 기겁할 만 한 수준.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거기는 공항 버스터미널이라서 버스 요금들이 좀 비싼 편이었다. 물론 전체적으로 인도보다는 물가가 두 배 정도 높기는 했다 (니곰보 시내에서 1달러(USD)는 약 114 루피).

    2)
    Negombo를 그대로 읽으면 네곰보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미감버'에 가깝게 발음한다. 편의상 영어 철자에 가깝게 한글 표기를 했지만, 네곰보라 적으면 영 엉뚱하다. 그래서 대략 가까운 발음인 니곰보라고 적는다.

    3)
    앞으로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달러는 미국 달러를 뜻하고, 루피는 스리랑카 화폐 단위를 뜻한다. 스리랑카는 인도처럼 화폐 단위가 '루피'다. 하지만 화폐 자체가 완전히 틀리기 때문에, 인도 돈을 쓸 수 없다 (공항에서 인도 돈을 환전 해 주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4)
    인도든 스리랑카든, 버스터미널이라고 하면 못 알아 듣는다. 버스 스테이션(bus station)이라고 해야 한다. 사실 버스 스테이션이라고 해도 못 알아 듣는 사람 많다. 그럴땐 그냥 '버스, 콜롬보(목적지), 버스버스, 웨얼?' 이런식으로 우아하게 대화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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