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갑자기 금융위원회가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 폐지"를 발표했다. 발표하는 순간 "오늘부터 시행"이라며 후다닥 해치웠다.

 

사실 공인인증서 의무 폐지는 미리 예고된 계획었고, 그걸 조금 앞당겨 발표했을 뿐이라서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일단 어떤 내용으로 발표했는지를 알아보자.

 

 

 

(너무나도 익숙해서 지긋지긋한 공인인증서 확인 창)

 

 

 

금융위원회, 전자금융감독규정 일부 개정

 

 

금융위원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오늘 한 일은 '전자금융감독규정'을 일부 개정한 것이다. 개정 이유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IT-금융융합지원방안'의 일환으로

 

* 전자금융거래의 기술 중립성을 구현하고,
* 전자지급수단의 사용 활성화를 위함.

 

즉, "전자금융거래가 특정 기술에 얽매이지 않도록 하고, (콕 찝어서)'핀테크'를 활성화 시키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고 볼 수 있다.

 

 

 

주요 개정 사항은 이렇다.

 

* 전자금융거래시 공인인증서 등을 사용하도록 한 의무 폐지.

* 인증방법의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한 인증방법평가위원회 폐지.

* 국가기관 인증 정보보호제품 사용의무 폐지.

* 직불전자지급수단 이용한도 상향.

 

 

금융위원회 자료를 토대로 약간 설명을 붙이자면,

 

공인인증서 사용을 의무화 한 규정을 삭제했고,

이 인증방법(수단)이 안전한가를 평가하던 위원회를 폐지했다.

그리고 직불 전자지급 수단의 이용한도를 기존 1일 1회 30만 원에서 200만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페이팔 메인 화면. 한국어를 보여주고 있다)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 폐지

 

 

기존 전자금융감독규정 '제37조'는 이랬다.

 

"모든 전자금융거래에 있어 「전자서명법」에 의한 공인인증서 또는 이와 동등한 수준의 안전성이 인정되는 인증방법(이하 "공인인증서등”이라 한다)을 사용하여야 한다."

 

 

오늘 금융위원회는 이 규정을 이렇게 고쳤다.

 

"금융회사 또는 전자금융업자는 전자금융거래의 종류, 성격, 위험수준 등을 고려하여 안전한 인증방법을 사용하여야 한다."

 

 

즉, "공인인증서를 사용하여야 한다"는 말을 없애버리고, "안전한 인증방법을 사용하여야 한다"라고 고친 것이다.

 

 

참고로, 이와 관련해서 미래창조과학부의 '전자서명법'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조항이 있었다.

 

"공인전자서명외의 전자서명은 당사자간의 약정에 따른 서명, 서명날인 또는 기명날인으로서의 효력을 가진다." (전자서명법 제3조 3항)

 

 

그동안 공인인증서 논란이 있을 때마다 미래창조과학부에서는 "우리는 공인인증서 사용을 강제하지 않는다, 각 해당 기관에서 규제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해명하며 억울함을 호소했었다. 이제서야 억울함이 조금은 해소 되는걸까.

 

 

 

의무는 아니지만 계속 사용해도 되는 공인인증서

 

 

조금 비판적으로 보자면, 이번 금융위원회의 개정은 "공인인증서를 꼭 사용할 필요는 없다"라는 정도다. 공인인증서를 사용하지 말라고 못 박은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공인인증서를 사용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기술 개선에 별 의지가 없거나, 딱히 새로운 인증 제도를 만들기 위해 돈을 투자할 마음이 없는 업체들은 기존의 공인인증서 방식을 그대로 사용해도 된다.

 

 

여기까지만 하면 '뭐야 이거, 여론이 들끓고 귀찮으니까 금융위원회는 그냥 발 뺀 거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상황이 별 변화가 없다면 이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IT 쪽 뉴스를 조금이라도 접했다면 아시다시피, 세상이 바뀌고 있다. 바로 '핀테크'다.

 

 

 

(알리페이 메인화면)

 

 

 

이미 해외에서는 애플페이, 구글월렛, 페이팔, 알리페이 등의 핀테크 시장이 활발히 구축되고 있는 중이다. 페이팔은 얼마전에 웹 사이트에서 한국어를 보여주기도 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리고 국내 기업들도 라인페이, 카카오페이 등의 상품들을 선보이며 핀테크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기존에 핸드폰 결제를 하려면 공인인증서를 받고, 인증 모듈을 설치하고 기타등등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 공인인증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면 모바일 결제에서는 좀 더 편리한 다른 방법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핀테크가 기세를 올려가면 기존 은행들도 점점 추세에 밀려서 공인인증서를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핀테크, 핸드폰 결제 그 이상

 

 

핀테크를 모바일 결제 정도로만 본다면, 그냥 교통카드에 돈 충전해서 편의점 가서 과자 사 먹는 정도로만 생각된다. 하지만 핀테크는 그것보다 훨씬 다양한 방식의 사업들이 가능하다.

 

예를 들자면 영국의 트랜스퍼와이즈 같은 것.

 

한국에 있는 A가 미국에 있는 B에게 달러를 송금하려 한다. 

한국에 있는 C는 미국에 있는 D에게 한국돈을 받아야 한다. 

 

이때, 각자 환전해서 상대방에게 돈을 보내면 손해가 많다. 어차피 서로 돈만 주고받으면 되니까 A가 C에게 한국돈을 보내주고, D가 B에게 달러를 보내주면 된다. 이들 사이에서 이런 거래를 중계하는 업체는 해외 송금 수수료와 환전 수수료 등을 합친 것보다 저렴한 수수료를 받으면 서로서로 좋은 일이 된다.

 

이것도 핀테크의 일종이다. 물론 지금 한국에서는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불법이다.

 

 

 

(트랜스퍼와이즈 메인 화면)

 

 

 

 

이런 형태의 사업을 국내에서만 막을 수만 있다면야 그냥 이대로 쭉 가도 큰 상관 없을 테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해외 업체의 이런 서비스들을 사용한다면 단속할 수 있을까.

 

전세계적으로 부는 핀테크 바람에 발 맞추기 위해서라도 금융 당국과 정부가 각종 규제를 철폐하거나 재정비 할 때가 온 거다. 과연 이번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 폐지가 이런 핀테크와 관련된 규제들을 철폐하는 신호탄일까. 아무쪼록 현명하게 빨리 움직였으면 싶다. 그렇지 않다면 해외 직구족들이 생긴 것 처럼, 해외 핀테크 족들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p.s. 참고자료

* 전자서명법 전문

* 전자금융감독규정 전문

* 금융위원회, 전자금융감독규정 개정 내용

 

 

p.s.2

금융 당국의 규제가 아니냐며 논란을 빚었던 P2P 대출 중개 사이트 '8퍼센트'는 사이트가 폐쇄되는 해프닝을 겪었지만, 제대로 대부업 등록을 해서 다시 오픈 한 상태다.

 

P2P 대출은 개인들에게 돈을 받아서 다른 개인에게 대출을 해주는 방식. 돈을 넣은 사람들은 은행보다 약간 높은 이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고, 돈을 빌린 사람들은 낮은 금리의 대출 이자를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이것도 핀테크의 일종이다.

 

 

p.s.3

"페이팔 기부하기"로 핀테크를 경험해보고 싶어 미치겠는 분들은, 아래 기부 버튼을 눌러서 한 번 경험해보자. 버튼 누르면 입금하는 화면이 나와서 즐거운 입금이 가능하다. -ㅅ-/

 

 

 

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