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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깊은 밤 파리지앵 여인을 기억하며
    잡다구리 2017. 8. 9. 02:33

    프랑스 파리, 어느 기억도 나지 않는 동네. 마치 힘겨운 일처럼 이어진 하루치 관광을 끝내고, 일행 중 일부와 함께 숙소 근처 어느 골목 모퉁이 술집에서 간단하게 맥주 한 잔을 기울였다. 술집 바깥쪽 벽에 마련된 작은 테이블과 의자에 나란히 앉아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깊어가는 밤을 아쉬워하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대화로 파리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일정 빡빡하게 진행된 스케줄 속에서 서로 어느정도 친해지긴 했지만 시간에 치여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누지도 못했던 터였고, 밤이면 낮의 강행군에 지쳐 숙소에 들어가 각자 남은 작업을 하고 씻고 자기에 바빴다. 그래서 나도 마지막 밤에서야 카드를 꺼내서 서비스 겸 일행들에게 가볍게 타로를 봐줄 수 있었다.

     

    그때 쯤엔 여행을 갈 때 항상 타로카드를 가지고 다녔다. 국적 불문하고, 심지어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여행지에서 친구를 사귀기 좋은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손짓, 발짓, 혹은 그림을 그려서 이해시켜줘가며 대화를 하다보면 친해지기도 하려니와,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는 내게도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재미로 생각하라'는 말과 함께 가볍게 한 명씩 타로를 봐주고 있던 때, 저 깊고 어두운 골목에서 할머니 두 분이 각각 와인 병 하나를 손에 들고 때때로 병나발을 불면서, 서로 장난을 쳐가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우리 일행 옆을 지나치려는 순간, 한 할머니가 대뜸 일행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때 한창 누군가의 타로를 봐주고 있던 때라서 그쪽에 신경을 못 쓰고 있었고, 마침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기에 성의껏 봐주느라 시간이 꽤 흘렀다. 그동안 두 할머니는 계속 우리 일행과 무슨 얘기를 하며 서 있었는데, 내 앞에 앉은 사람의 타로 봐주기가 끝나자 옆에서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말을 전했다. 저 할머니가 타로를 보고 싶어 한다고.

     

    한 할머니는 프랑스 인이었고, 다른 할머니는 벨기에 인이었다. 둘은 친구사이였고, 일년에 한 두 번 이렇게 만나서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논다 했다. 마침 그날이 그런 귀한 날들 중 하루였고, 마침 거기서 내가 타로를 보고 있었으며, 마침 프랑스인 할머니 눈에 그게 들어왔던 것이다.

     

    프랑스인 할머니는 영어를 못 했다. 나는 불어를 못 한다. 벨기에 할머니가 약간 영어를 할 줄 알아서, 중간에 통역 역할을 했다. 하지만 말하는 내내 제대로 번역을 못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어떻게든 제대로 전달하려고 말을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이미지를 보여주며 이해시켜야만 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것 쯤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을 많이 접해봤기 때문에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간에 통역이 끼어 있으면 좀 곤란해질 때가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

     

    프랑스 할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 싫어했다. 절친인 벨기에 할머니에게도 알리지 않은 상태. 따라서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됐지만, 통역에게 그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걸 전제로 깔고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 대화는 마치 암호처럼 진행됐다.

     

    - 만약 내가 올해 겨울에 파리를 떠나게 된다면, 여기를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프랑스 할머니가 물었다. 시골에 사는 자식들이 자꾸 파리를 떠나서 자기들 곁으로 오라고 해서 고민이라 했다. 이미 우린 서로 알고 있다. 다시 돌아온다는 건 아마도 봄 쯤일 테고, 바로 내년 봄을 걱정하는 건 아닐 테다. 그렇다면 후내년 봄 쯤. 앞으로 2-3년 정도는 더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대답했다.

     

    - 떠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어요.

     

    벨기에 할머니는 옆에서 일행들과 수다를 떨며 그 말을 유쾌하게 통역해줬다. 경치 좋고 공기 좋은 시골 자식네 집에서 오래오래 살면 더 좋지 뭐가 걱정이냐며 말 해줬다고 내게 전해주기도 했다. 참 유쾌한 할머니다. 물론 프랑스 할머니의 표정은 무척 어두워졌다. 물론 입가엔 미소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 이제 늙었으니 자식들에게 가는게 아무래도 좋으려나?

     

    어느정도 신뢰의 토대가 쌓인 다음 진짜 고민이 나오는 건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였다. 난 이미 아까 같은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싹 걷어내고, 그 어느때보다 진지하게 온 몸의 에너지를 집중했다. 흔치 않은 케이스였다.

     

    - 마드모아젤, 당신은 파리지엔느에요.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면 당신 뜻대로 하세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이제와서, 그 나이에, 당신의 삶을 포기할 필요는 없을 거에요.

     

    최대한 우회해서, 최대한 공손하게, 최대한 부드럽게 말을 했지만, 첫 마디 말, 마드모아젤 부 제또 빠히지앙 할 때만 씩 웃었을 뿐, 나머지는 벨기에 통역사에게 제대로 전달됐는지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확신했다. 첫 한 마디로 내 의사는 충분히 전달됐으리라.

     

    - 사실 나도 자식들에게 가는게 내키지는 않아. 부담스럽고...

     

    - 당신도 이미 알고 있어요. 자식들이 원하는 게 당신 뿐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깊은 이야기를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로 대화하는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바디랭귀지는 이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어떻게든 통역을 부탁해가며 꽤 오랜시간 대화를 나눴다. 심지어 어느 순간에는 프랑스어로 한 질문에 곧장 대답하기도 했다. 수많은 질문들 속에 그 질문도 섞여서 기억되고 있을 텐데,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불어를 못 한다.

     

    - 난 아무래도 내 자신 다음으로 파리를 사랑하는 것 같아.

     

    - 저는 그걸 이해할 수 없지만, 파리를 애인이라 생각하면 알 것 같기도 하네요.

     

     

    그렇게 밤이 깊어갔고, 술집의 사람들도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할 때 쯤,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며 고맙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조금 더 앉아서 우리 일행과 벨기에 할머니와 섞여서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일어났다. 그들이 떠나기 전에, 나는 잠시 벨기에 할머니를 따로 불러서, 올해와 내년에는 조금 더 자주 파리로 오는게 좋겠다, 저 할머니가 외로워하는 듯 하다고 말 해줬다. 유쾌한 벨기에 할머니는 나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며 그렇게 하겠다고 유쾌하게 웃었다.

     

    그리고 프랑스 할머니는 안 받겠다고 세 번이나 거절한 내 손에 20유로를 꼭 쥐어줬고, 미안하지만 지금 가진게 이것 밖에 없지만 이거 꽤 비싼거라며 마시던 와인도 주고 갔다. 그렇게 파장 분위기가 일어서, 이내 우리 일행도 계산을 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때도 그 여운이 남아 그날 밤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하지만 또 관광이 시작되었고, 한국으로 돌아오고, 바로 일에 치이고 하다보니, 그 기억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일 년, 또 일 년 지날 때마다 문득, 어느 달 밝은 밤, 골목길을 걷다보면 그 할머니 생각이 난다.

     

    처음 일 년, 또 일 년이 지날 때는 단순히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겠지'라는 감상 뿐이었지만, 그 다음 일 년, 또 일 년이 지날 때는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밤샘하는 사람들 그림 같았던 그날의 이미지가 떠오르면서 온 동네 가득했던 샤프란 향기가 기억났다. 그 다음 또 일 년과 일 년이 지날 때는 다시 그런 기회가 온다면 좀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싶었던 여행 전체 모습이 서서히, 하지만 또렷하게 기억났다.

     

    물론 아직도 '나 자신 다음으로 파리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에 파리지앵의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시켜준 사람으로써, 그 여행을, 프랑스를 떠올릴 때마다 그 여인은 항상 함께 기억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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