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해수욕장에서 삼양역사 올레길과 겹치는 자전거길을 타고 제주 시내 쪽으로 향했다. 제주 시내로 접어들면 캠핑에 적합한 곳이 없기 때문에, 시내를 빠르게 지나가든지, 이쯤에서 숙소를 잡든지 결정을 해야 했다.

 

아직 시간은 조금 여유가 있었지만, 빨리 결정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길바닥에서 어둠을 맞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쯤 돼서는 오늘밤을 어디서 어떻게 보낼까 고민이 많았다. 삼양해수욕장을 지나서 제주 시가지가 슬슬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는 거의 그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할 지경이었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삼양역사 올레길

 

제주 환상 자전거길

 

시내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접어들었다. 제주대학교 사라캠퍼스를 지나고, 국립제주박물관도 지나서, 제주환상자전거길이라고 표시돼 있는 길을 따라 사라봉공원으로 갔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사라봉 공원

 

제주 환상 자전거길: 사라봉 공원

 

사라봉공원은 그리 높지 않은 작은 언덕이었다. 오르막길에서 자전거를 조금만 밀고 올라가니 금방 내리막이 나오던데, 이미 뒷 브래이크 패드도 다 닳아서 제동이 제대로 걸리지 않았다. 조금만 손질을 해주면 대충 조금 더 쓸 수 있을 듯 했는데, 여기서 판을 펴기는 싫었다.

 

앞브레이크만으로는 위험했기 때문에 내리막길도 급한 경사 구간은 자전거를 끌고 내려갔다. 여기는 길도 울퉁불퉁하면서 좁고, 급커브도 있어서 까딱 잘못하면 큰일 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제주항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해수욕장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경치를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사라봉 공원

 

제주 환상 자전거길: 사라봉 공원

 

제주 환상 자전거길: 사라봉 공원

 

내리막길을 어느정도 내려간 이후부터는 사진이 없다. 자전거를 탈 수 있을만 한 곳부터는 내리막을 즐기면서 쭉 내려갔고, 내려가자마자 만나는 큰길을 직진해서 바로 '제주항 국제여객터미널'로 갔다.

 

오늘밤을 어디서 보내지 고민고민하다가 그냥, 배 시간이 맞으면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가자는 결정을 내렸고, 그런 결정을 내리니 최대한 빨리 터미널에 가서 배표를 알아보고 싶었다. 오늘 배를 탈 수 없어도, 나중에 탈 배표를 미리 사놓아야 하니까 어차피 들러야 할 곳이었다.

 

 

그런데 터미널에 도착하니, 마침 30분 후에 부산으로 출발하는 배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 배를 안 타면 모레 배를 탈 수 있었다. 격일로 운항하기 때문이다. 이미 제주도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돌았기 때문에, 이틀이라는 시간이 주어지면 여기서 딱히 할 게 없다. 그래서 바로 배표를 샀다.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조금 사고, 면세점 들르고, 화장실 가고, 짐 풀어서 자전거를 짐칸에 싣고하는 작업을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모두 해결해야해서 사진 찍고 어쩌고 할 시간이 없었다. 그 와중에 편의점에서는 계산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싸우면서 계산을 안 해줘서 시간을 뺏겼다. 다른 곳이었으면 물건 놓고 그냥 나왔을 텐데, 배를 타야하니까 기다려서 계산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제주 부산 여객선

 

거의 꼴찌로 탑승하긴 했지만, 어쨌든 페리에 탑승했다. 자전거는 사람들과 함께 출구로 나가서, 짐 싣는 쪽으로 가서 실으면 됐다.

 

목포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는 5-6시간 정도만 가면 되기 때문에, 제일 싼 맨바닥 객실을 사용해도 괜찮다. 하지만 제주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는 약 12시간 정도 걸리는데, 저녁에 출발해서 아침에 도착하기 때문에 배 안에서 잠을 자야 한다.

 

그래서 여기서 제일 싼 맨바닥 선실을 이용하면, 배 진동이 그대로 다 느껴져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돈을 조금 더 주고 침대칸을 이용하면 진동이 확실히 덜 느껴진다. 물론 그래도 기름냄새도 나고, 진동도 느껴지지만, 맨바닥보다는 훨씬 낫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부산, 제주 여객선을 탈거면 침대칸을 사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12인실 침대칸이 55,000원이었는데, 사실 이 가격이면 비행기를 타는게 낫다. 하지만 자전거를 가져갈 때는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보다 여러모로 간편하다. 무게 규정에 얽매일 필요도 없고, 자전거를 해체하거나 접을 필요도 없다. 자전거를 가지고 비행기를 탑승하려면 일단 박스를 사서 포장부터 해야하고, 추가요금 1만 원을 더 내야하는 등 이래저래 돈도 나가고 할 것이 많다. 나도 자전거만 아니었으면 비행기를 이용했을 테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제주 부산 여객선

 

승선권에 적혀있는 내 침대를 찾아가서 대충 짐을 부리고, 아침에 젖은 물건들을 빈 공간에 펼쳐놓는 등,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갑판에 나오니 석양이 지고 있었다. 배도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제주 부산 여객선

 

제주 환상 자전거길: 제주 부산 여객선

 

 

제주 환상 자전거길: 제주 부산 여객선

 

제주 환상 자전거길: 제주 부산 여객선

 

아아 배 기름냄새는 정말 아무래도 적응이 안 된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서 있어도 기름냄새때문에 어지러워 죽겠다. 빨리 잠을 자는 수 밖에 없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제주 부산 여객선

 

제주 환상 자전거길: 제주 부산 여객선

 

대충 제주도를 한 바퀴 돌기는 했는데, 출발은 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이었고, 도착은 제주항 국제여객터미널이었다. 둘 사이 거리는 약 900미터. 그러니까 정확하게 따지자면 한 바퀴에서 900미터가 모자란다. 그까짓 구백미터, 내가 제주도에서 길 잘 못 들어서 헤맨 것만 합쳐도 9킬로미터는 되겠다. 하나도 안타깝거나 하지는 않은데,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제주도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도는데 3박 4일 걸렸다. 첫날 배멀미 때문에 어지러워서 이호테우 해수욕장에서 일찌감치 하루를 마감하기도 했고, 중간중간에 퍼질러 앉아서 쉬거나 사진 찍는 시간도 많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 편이다. 그냥 자전거로 달리기만 한다면 대략 3일 정도만 잡아도 될 듯 하다. 텐트 같은 것을 가져가지 않는다면 좀 더 가볍게 잘 달릴 수 있을 거고.

 

제주 환상 자전거길: 제주 부산 여객선

 

제주 환상 자전거길: 제주 부산 여객선

 

이렇게 갑자기 제주 여행을 끝낼 줄은 몰랐는데, 어쨌든 그렇게 됐다. 이제 배 타고 있는 것 밖에 없으니, 쓸 데 없는 사진들을 나열해본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제주 부산 여객선

 

 

배가 고프니까 식당에서 밥을 사먹긴 했는데, 이게 칠천 원 짜리다. 하아, 이건 좀, 너무 좀, 아아. 어쨌든 꾸역꾸역 먹으니 배는 채워지더라. 식당 옆에 편의점도 있어서, 컵라면이나 전자렌지에 돌려 먹는 음식을 사먹을 수도 있다. 좀 비싸지만.

 

참고로 여객터미널에 있는 편의점도 시내보다는 비싼 편이니, 배를 타려거든 일반적인 편의점이나 가게에서 미리 이것저것 사는게 좋다. 보니까, 승객들 중에는 치킨과 맥주를 사서 탑승한 사람도 있더라. 비행기와 달리, 배는 이런게 가능하다.

 

비수기라 승객은 별로 없었는데, 거의 1/3 정도가 중국인과 일본인인게 좀 특이했다. 어떻게 이런 걸 용케 찾아내서 타고 다닌단 말인가. 근데 이 사람들은 자동차도 없을 텐데 왜 배를 탔지. 거 참.

 

제주 환상 자전거길: 제주 부산 여객선

 

식당에는 앉을 자리가 꽤 많았다. 식당에서 밥을 파는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시간 지나면 밥은 안 팔지만, 편의점에서 사 온 음식을 먹거나, 그냥 앉아서 쉴 수도 있다. 사진은 식당에서 사람 없는 쪽 일부 모습이다.

 

 

배 안에는 나름 목욕탕도 있었다. 탕 안에 물은 채워져 있지 않았지만, 샤워기에서 따뜻한 물은 나왔다. 배가 기우뚱기우뚱 움직이니까 샤워하면서도 어지러움이 느껴지는 산뜻한 체험이 가능하다. 따뜻한 물 샤워를 하니 배멀미가 증폭되는 느낌.

 

 

너덜너덜해진 제주도 지도. 목포에서 제주로 들어올 때 터미널에서 뽑은 관광지도다. 대충 큰 길을 파악하거나, 지도 위에 글을 적어넣고 표기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종이 지도가 유용하다. 스마트폰에 지도가 있어도, 한눈에 파악하거나, 뭔가를 빠르게 적어넣거나 할 때는 불편하니까.

 

 

로비 한쪽에는 각종 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도 있다. 핸드폰을 충전하려는 사람들이 이 앞에서 의자를 갖다놓고 하염없이 앉아서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냥 놔두고 가기엔 좀 불안하니까 핸드폰을 지켜보면서 충전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거다. 물론 나도 그랬다. 이것이야말로 기계에 종속된 인간의 모습. 멋진 신세계.

 

이되어 갑판에 나가보니, 달빛이 내려 비치는 검은 바다가 정말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배가 움직이기는 했지만 마치, 달도 바다도 정지되어 있는 느낌. 일정한 패턴으로 일렁이는 파도와 그 위로 부숴지는 달빛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알 수 없는 끌림으로 그 속에 풍덩 빠져들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여기서 사라지면 바다를 떠돌며 넓은 세상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너무 어두워서 사진도 찍을 수 없었고,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신비로운 모습에다가 기이한 느낌이기 때문에, 직접 한 번 경험해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그 로렐라이 손짓에 빨려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에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라서 권하지는 않겠다.

 

Posted by 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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