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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고궁 입장료가 너무 싸서 가치가 낮게 평가됐다는 말의 어리석음 - 문화재 입장료는 낮을수록 좋다
    잡다구리 2019. 10. 24. 14:29

     

    며칠 전 국감에서 좀 어이없는 지적이 나왔다. 외국 궁전들의 입장료에 비해 경복궁 입장료가 너무 싸다는 것이다. 일단 그 소식을 먼저 간단히 알아보자.

     

    "경복궁 입장료가 3000원 정도이고 능묘는 1000원 정도인데, 외국의 경우 영국 버킹엄궁전 2만6600원, 프랑스 베르사유궁전 2만3900원, 중국 자금성 1만2800원, 태국 방콕왕국 1만9000원으로 우리나라보다 3~8배 받는다"

     

    "지나친 물가인상은 자제해야 하지만 우리나라 고궁이 외국보다 수준이 떨어지거나 역사적 가치가 떨어지는 게 아닌데 지나치게 저가정책을 통해 가치를 낮게 평가했다"

     

    (우상호 "경복궁 3천원, 英버킹엄궁 2만6600원..입장료 낮다" (뉴스1, 2019.10.07.))

     

    이러면서 국내 궁능 입장료를 점진적으로 인상하자는 주장을 했다. 정말 할 말이 많은데, 결론부터 말 하자면 입장료 인상에 반대다.

     

    문화재청에 학식있고 교양있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알아서 잘 판단하리라 생각하지만, 이런 의견도 있다는 걸 알리고자 (귀찮지만) 간단히 글을 써본다.

     

    우리나라 고궁 입장료가 너무 싸서 가치가 낮게 평가됐다는 말의 어리석음 - 문화재 입장료는 낮을수록 좋다

    (궁궐 입장료가 저렴해야 나 같은 가난뱅이도 심심하고 어디 갈 데 없으면 수시로 찾아가본다. 개나소나 궁궐을 아무때나 방문하는게 그리도 못마땅하냐.)

     

    외국의 경우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우상호 의원의 발언에 나온 외국의 입장료 사례를 한 번 짚고 넘어가겠다.

     

    영국 버킹엄궁전 입장료가 2만 6600원이라 했는데, 이건 아마도 콤비 티켓 16.75파운드로 계산한 것 같다. 콤비 티켓은 왕립 마구간 로열 뮤즈와 퀸스 갤러리 두 군데를 입장하는 티켓이다.

     

    베르사유 궁전은 가격을 보니, 정원과 트리아농은 빼고 궁전 입장료만 계산했나보다. 그리고 중국 자금성은 성수기 60위안, 비수기 40위안인데 어째서 1만 2800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아마 환율이 변해서 그런 듯 하다.

     

     

    여기까지는 간단한 체크였는데, 태국 방콕 왕궁으로 가면 조금 달라진다. 우상호 의원은 방콕 왕궁이 1만9천원이라고 했는데, 외국인 입장료는 500바트니까 일단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방콕 왕궁(The grand palace)은 자국민, 즉 태국인들은 '무료' 입장이다. 국내 궁능 입장료 인상은 한국인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건데, 이 부분을 생략하면 안 된다.

     

    그리고 내가 하나 다른 사례를 덧붙여보겠다. 일본의 경우, 교토의 옛 왕궁(교토고쇼)와 도쿄의 왕궁(고쿄)는 모두 입장료 '무료'다. 내외국인 상관없이.

     

    우리나라 고궁 입장료가 너무 싸서 가치가 낮게 평가됐다는 말의 어리석음 - 문화재 입장료는 낮을수록 좋다

    (왕궁이 무료라서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는 태국 국민)

     

    문화재에 자본의 논리를 갖다대지 마라

     

    앞서 알아봤듯, 태국 방콕 왕궁은 자국민에게 무료고, 일본 왕궁은 내외국인 모두 무료다. 그럼 태국이나 일본 왕궁은 수준이 떨어지고 가치가 떨어져서 입장료를 무료로 하는 걸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궁궐을 비롯한 문화재들은, 자국민의 문화적 공통성의 밑바탕 중 하나가 된다. "당신 한국인? 나 한국인. 그럼 우리 대충 쌀밥에 김치를 먹자" 이게 가능한 것은, 공통의 문화적 바탕이 있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문화재에 대한 경험과 지식은 한국인 공통 문화 중 하나로 알게모르게 자리잡는다.

     

    게다가 우리의 것을 배우고 탐구하는게 좋은 거라고 학교에서도 가르치고, 사회적으로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지 않나. 그렇다면 우리 문화재를 수시로 아무때나 부담없이 방문할 수 있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큰 마음 먹고 단단히 준비해서 어쩌다 한 번씩 방문해야 좋을까.

     

    답은 이미 나와있지만 부연 설명을 조금 더 해보자. 한 초등학생이 책을 보다가 경복궁에 어처구니 잡상이 있다는 걸 보고는, 진짜로 그런게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이럴 때, 버스비만 있으면 당장 찾아가서 그걸 확인할 수 있어야 좋은 것 아닐까.

     

    그리고 나중에 또 다른 어떤 것이 궁금해졌을 때, 일주일 전에 갔다왔지만 또 부담없이 방문해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 그게 좋은 것 아닌가.

     

    다른 나라야 돈에 환장해서 비싸게 받든지, 비싸게 받아도 볼 사람 많으니까 그렇게 받든지 하겠지. 그건 우리나라의 문화재 입장료 정책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문화재가 무슨 핸드백인가, 가격이 낮아서 품격이 낮아지게.

     

     

    고궁에 개나소나 좀 들어가면 안 되나

     

    2005년에 고궁 입장료 인상을 하면서 별의 별 이야기가 다 나왔다. 그때 나왔던 말들 중에 정말 어이없던 게 있었는데, "낮은 입장료 때문에 어린이들이 공원으로 인식하고 뛰어다니는 등의 행동을 해서(...중략...) 문화재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고 있다"라는 말이었다. 정말 황당해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아니, 고궁에서 어린이들이 공원처럼 좀 뛰어놀면 어떤가. 문화재 상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즐겁게 놀다가면 그 또한 좋지 아니한가. 그렇게 고궁에서 뛰놀고 즐기며 우리 문화재를 친숙하게 여기면 오히려 좋은 것 아닌가. 고궁에서 무조건 조용히 해야하고 엣헴하고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은, 지나친 엄숙주의다.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엄숙주의를, '입장료가 낮아서 개나소나 들어온다'라고 압축할 수 있는, 어이없는 논리에 갖다 붙이고 있다. 정말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어서, 글을 쓰면서도 갈피를 못 잡겠다. 이 쯤 되면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에 매몰되어, 모든걸 돈으로만 생각하는 행태다.

     

     

    외국인 차별은 하지말자

     

    어떤 사람들은 외국인 입장료만 올리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건 오히려 국격에 먹칠을 하는 행태다. 내국인과 외국인의 입장료를 달리 하는 것은 후진국이 조금이라도 외국인의 돈을 더 빨아내기 위해 하는 짓이다.

     

    중국 같은 경우, 걸핏하면 자기들이 세계 경제 순위 2위라고 자랑하면서도, 아직까지도 많은 문화재 입장료를 외국인과 내국인을 차별해서 받고 있다. 이런 행태를 보이는 이상, 이 나라는 후진나라 후진국일 뿐이다. 덩치만 크면 뭐 하나, 정신이 어린데.

     

    후진국이야 돈이 필요해서, 돈에 환장해서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가만 생각해보시라, 이건 엄연히 인간 차별이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을 차별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다른나라는 지들 알아서 한다고 치자. 그런데 우리나는 애초에,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라는 홍익인간 정신으로 건국됐지 않은가. 이롭게 할 대상이 '내국인'이 아니라 '인간'이다. 전 인류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외국인을 차별하면 건국 이념에도 맞지가 않다.

     

    우리나라 고궁 입장료가 너무 싸서 가치가 낮게 평가됐다는 말의 어리석음 - 문화재 입장료는 낮을수록 좋다

    (국민들이 궁궐을 친숙하게 여기고 자주 찾으라고 조금이라도 입장료 부담을 낮춰주려고 이런 특별권을 판매하고 있는데, 이 와중에 입장료 인상 운운하니 얼씨구 조쿠나)

     

    오히려 입장료는 낮아져야 옳다

     

    문화재는 국민의 것이다. 보존을 위해서 국가가 관리를 맡고는 있지만, 원칙적으로 문화재는 국민이면 누구나 아무때나 부담없이 가볼 수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에게 3천 원은 하찮은 가치의 의미없는 돈일지 몰라도, 어떤 국민에겐 몇 끼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라면 4개 값이다. 입장료를 올리겠다는 것은, 이런 사람들은 오지 말라는 말과 같다. 이게 과연 옳은 일인가.

     

    물론 운영과 관리의 문제로 돈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일단 판매용 상품 개발 같은 것으로 수익을 내도록 해봐야 한다. 최근 자금성이 고궁 컨셉 상품들로 히트를 쳤듯이 말이다. 그래도 재원이 부족하다면, 정부 예산 확보나 기부, 후원 등으로 충당할 노력을 해야 한다.

     

    입장료 인상은 최후의 보루로,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능력이 안 돼서 어쩔 수 없었다고 사과하며 해야하는 행위다. 절대 당당하게 개나소나 아무나 못 오게 하기위해 값 올린다고 떠들게 아니다. 학식과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무식하고 막되먹은 소리인지 알 거다.

     

    제발 공공의 자원을 먹고 살만 한 사람들의 잣대로 들이대서 그들만의 향유 공간으로 만들려하지 마라. 문화재는 노숙자도 어느 맑은 날 기분전환을 위해 부담없이 들어가 볼 수 있는, 그런 곳이 되는게 바람직하다.

     

     

    p.s.

    * 외국인을 위한 해설사가 부족하다는 건 공감한다. 이 인원을 충당하려면 돈이 필요한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면 해설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해설비를 따로 받자.

    요즘 고궁에서 보면, 검증되지 않은 여행사 소속 외국인 가이드가 주먹구구로 말도 안 되는 설명을 하는게 보이는데, 이런걸 아예 금지시키자.

    그래서 관리소에서 인정한 정식 해설원만 해설이 가능하도록 하는 거다. 이러면 제대로 된 해설도 해줄 수 있고, 또 하나의 수익원이 될 수도 있다.  

     

    * 과연 외국인 관광객에게 서울의 궁이 싸게 느껴질까. 외국인에게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덕수궁은 한 세트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 모두를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통합관람권은 1만 원이다.

    물론 우리 입장에선 4대궁이 다 다르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은 그렇지 않다. 다 비슷비슷한 곳을 다 제각각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우리가 태국 같은 곳에서 사원을 관람할 때를 생각해보자. 이름도 기억 못 할 곳들이 줄줄이 있지만, 몇 개만 보면 다 비슷해보이지 않는가. 그것과 똑같은 거다.  

     

    * 이따위로 할 거면 자본주의 망해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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