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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괴물은 가까이 있었다리뷰 2007. 2. 27. 17:30
(결말을 알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읽지 마세요)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평화로운 한강에 느닷없이 괴물이 나타났다. 괴물은 사람들 속에서 일대 혼란을 일으키고는 한 여중생을 잡아 갔다. 나름 평화로웠던 한 가정은 이로 인해 파탄 지경에 이르렀고, 아직 이 소녀가 살아 있다는 희망을 얻자 온 가족이 소녀를 찾아 나선다. 아슬아슬한 모험 끝에 소녀를 찾아 냈지만 결국 소녀는 괴물에게 죽고, 처음 보는 어린 소년을 아들로 삼아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 집안은 겉보기엔 평화로웠지만 사실은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절뚝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자식들 걱정에 안타까움을 늘 품고 사는 할아버지, 아버지 아래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지키며 딸 휴대전화 하나 성큼 사 주지 못하는 아버지. 늘 마지막 순간에 흔들려서 최고의 자리를 놓치는 양궁선수 고모. 학생운동에 참여한 여파인지 자발적인 실업인지는 모르겠지만 백수 생활을 하고 있는 삼촌. 그리고 중학생 딸. 잔잔한 수면을 깨고 이들 앞에 나타난 괴물은 어쩌면 아닌 밤중의 홍두깨가 아니라 이미 예정된 사건이었는지도 모른다.
괴물에게 납치된 소녀. 그 소녀를 되찾기 위해 불협화음을 이루던 가족이 모두 뭉쳐 사투를 벌이지만, '우리 것'을 찾기 위한 당연한 노력에도 사람들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는 커녕 위험한 존재로 낙인 찍고 이들의 행동을 방해한다. 있지도 않은 바이러스를 소문 내어 희생양을 만들고, 사람들의 반대에도 위험한 약을 살포하고 마는 세상(미국이라는 구체적인 나라로 제시 된다). 음습한 괴물의 소굴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는 소녀. 그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소녀는 죽고, 소녀가 목숨 걸고 보호한 어린 소년은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 된다.
결국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문제와 함께 서로 얽힌 관계들과 그 속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큰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일까. 그만한 희생을 치루고 나서 얻는 어린 소년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가족 모두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마지막 장면). 작은 문제들은 그대로 안고 있지만, 큰 문제 하나(괴물)를 해결하고 다시 또 그럭저럭 삶을 이어 나가는 것, 그것이 가족이고 인생이고 삶이라는 것일까.
초록빛 찬란한 잔디밭 펼쳐진 한강변에 삼삼오오 무리지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저 사람들 중에 과연 나름 아프고 힘 든 사연 하나 안 가지고 정말 백 퍼센트 순수하게 평화롭고 여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 사람과 사람들로 이루어진 강 속에는 이미 한 마리 흉칙하고 무서운 괴물이 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소녀를 가져간 괴물은 어쩌면 추악하고 더러운 세상의 상징이 아닐까.
괴물이 나타났고, 소녀가 납치됐고, 그 때문에 한 가족이 상처받고 사투를 벌이지만, 그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 없는 세상. 오히려 그 와중에도 그들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챙기려는 또 다른 괴물들. 세상에서 한 가족이 함께 살아가기란 이처럼 힘 든 일일 수도 있다. 아무쪼록 수면 아래 떠돌고 있는 그 괴물을 잔잔한 수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꾹꾹 눌러 가며, 아무 일 없다는 듯 푸른 잔디에 앉아 평화롭게 하루 또 하루 살아가는 수 밖에.
p.s.
짧지 않은 인도 여행 중에 이 영화가 개봉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한국에 들어오자 마자 극장에 달려가 이 영화를 보았다. 다른 이유는 전혀 없고, 배두나씨가 나온 영화라는 이유 뿐이었다. 오랜만에 출연했고, 오랜만에 히트 쳐서 정말 다행이었는데, 역할이 너무 작아서 많이 나오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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