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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크쇼 스타 되다 - GRAY 2 0614 #1/2 (인도여행)
    푸른바다저멀리 2007. 8. 22. 12:15

    푸른 바다 저 멀리 GRAY 2 0614 #1/2
     
    토크쇼 스타 되다
     
    1.
     아침햇살이 너무 밝아 눈을 떠 보니 여덟 시 반이었다. 거의 새벽 네 시 즘 돼서 잠이 들었으니 푹 잤다고는 할 수 없었다. 보통 때 같았으면 커튼 치고 다시 잤겠지만, 그 호텔에선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일어나자마자 세수하고 가방 꾸려서 곧장 나가버렸다. 마치 그 방에 폭탄이라도 설치된 것처럼 재빠르게.
     
     1층 프론터로 내려가니, 어젯밤에 숙박료로 사기 친 그 지배인이 ‘Good Morning, sir’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인사했다. 아 정말 뻔뻔하기 짝이 없다. 가까스로 진정시킨 마음이 그 녀석을 보니 다시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체크아웃 하는 거냐고 묻길래, 시큰둥하게 그렇다고 하고 나가려고 했다. 그랬더니 여권 복사 해야 되니까 여권을 달라고 한다. 내 여권으로 뭘 할 지 어떻게 믿냐면서 무시하고 그냥 문 쪽으로 갔다. 그러니까 뒤따라 나오면서 ‘정부 방침이다, 일반적인 절차다’ 하면서 계속 여권을 달라고 했다. 뭔가 신기한 일이 생겼다 싶은지, 로비에 있던 몇몇 인도인들이 쳐다봤다. 그 중 한 사람은 우리 쪽으로 다가와서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했다.
     
    “어젯밤에 니가 먹은 돈 돌려 주면 여권 주께.”
     
    그렇게 말 했더니 지배인은 ‘What’s the problem?’이라며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도 찔리는 게 조금은 있는지 한 번 째려 봐주고 나가니까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그 대신 얘기 중간에 끼어든 인도인이 날 쫓아왔다. 알고 보니 호텔에서 나가는 손님을 태우려고 기다리고 있는 택시기사였다.
     
    “무슨 문제야? 나한테 얘기해 봐. 내 택시 저기 있으니까 가면서 얘기하자.”
     
     아침부터 그 지배인을 보니 어젯밤 일들이 떠올라서 기분이 안 좋은데, 이 택시기사 녀석은 눈치도 없나 보다. 계속 쫓아오며 뭐가 문제냐고, 자기한테 얘기해 보란다. 난 결국 나지막이 내 문제를 얘기해줬다.
     
    “뭐가 문제야? (What’s the problem?)”
    “니가 문제야! (You’re the problem!)”
     
     그렇게 대꾸해 줬더니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문제 없어. 문제 없어. (No problem, no problem.)”
     
     황당해고 어이없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제 만났던 인도인들도 한결같이 그 ‘노 프러블럼(no problem)’을 입에 달고 있었다. 처음엔 무슨 유행어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인도 여행 중에 가장 흔하게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인도인들이 애용하는, 너무나 애용하셔서 정말 어울리지도 않는 때에도 느닷없이 나오는 말이 바로 이 ‘노 프러블럼’이었다. 어쩌면 교통사고로 자기가 죽게 됐을 때도 ‘노 프러블럼’하면서 죽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어쨌든 내가 그렇게 짜증 내며 한 마디 뱉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가니, 택시기사는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애꿎은 놈한테 화 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타이밍에 끼어든 자기 잘못이지. 게다가 어제 그 녀석 때문에 택시기사가 싫어진 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이 호텔과, 어제 그 사건에 관련된 그 모든 것들에게서 한 시라도 바삐 벗어나고 싶었다.
     
     
     
    2.
    아침부터 기분이 나빠져서 씩씩거리며 씩씩하게 길을 걸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 일단 여행 전에 주워 들은 ‘빠하르간지’라는 곳의 한국식당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젯밤부터 물 한 모금 마신 게 없으니까. 하지만 ‘빠하르간지’가 어디 붙어 있는지, 어떻게 가면 되는지 전혀 몰랐다. 사실은 여기가 진짜로 델리가 맞는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이거 참 낭패다. 마음 속으로 그렇게 생각 하면서 약간 초조했다. 그런데 눈은 길거리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고, 걸음도 점점 느려졌다. 지쳐서가 아니었다. 몇 시간 안 잤어도 일단 잠을 잔 게 도움이 됐는지 몸 상태는 좋았다. 걸음이 느려진 것은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흰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하는 듯 한 사람들도 많았고, 길 가의 가게에는 웃통을 벗고 있거나 러닝셔츠 바람으로 나와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인도 옷을 입은 사람들과, 차도르와 헤잡을 뒤집어 쓴 여자들이 내 눈 앞에서 막 스쳐 지나가니 구경거리가 따로 없었다. 길거리 자체가 큰 구경거리였다.
     
    이 상황에 구경할 거 다 구경하고 다니는 나도 참 대단하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즘 뒤에서 릭샤 하나가 스르르 다가오더니, 릭샤왈라(릭샤 모는 사람)가 ‘excuse me, sir’하고 나를 부른다. 릭샤 타라는 말이겠지 싶어, 뒤를 훽 돌아보며 ‘뭐! (한국말로)’라고 빽 소리치며 째려봤다. 그러니깐 이 녀석도 ‘노 프러블럼, 노 프러블럼.’하고 내 앞을 앞질러 그냥 가버렸다. 뭐냐 이 상황은. 차라리 말을 붙이지 말든지.
     
     어젯밤의 연속인가. 기분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듯 싶었다. 이래 봤자 나만 손해라며 마음을 달래고 진정하려고 필사적으로 애를 썼다. 하지만 그게 생각같이 그리 쉽지가 않았다. 일단은 그냥 그렇게 간섭 받지 않고 길거리를 구경하고 싶을 뿐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인도에서 본의 아니게 마음 수련 하는 꼴이다. 아, 그래서 인도에 도 닦으러 많이들 가는 건가. 인도 여행을 하면서 기분 상하는 일이 꽤 많이, 자주 생겼다. 웃는 얼굴로 사람 속이기는 기본이었고, 바가지 상술에 뻔뻔함까지. 여자들의 경우는 성추행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길 가는데 인도인이 가슴을 만지더라 라는 이야기는 너무 흔해서 특별하지도 않은 축에 속할 정도니까. 그런 꼴을 보면서도 다음날은 또 아무렇지도 않게 허허 웃으며 여행하는 곳이 바로 인도다. 그러고 보니 정말 인도는 도 닦는 곳이 맞긴 맞나 보다.
     
     
     
    3.
     어젯밤 택시를 타고 오면서 얼핏 큰 도로를 지나서 오는 것을 봤었다. 그래서 일단은 큰 도로 쪽으로 가면 버스라도 있겠지 하고 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나 같은 길치가 지도도 없이 생전 처음 가 보는 동네에서 길을 찾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동네를 돌고, 골목을 헤집으며 결심했다.
     
    ‘릭샤왈라가 부르면 그냥 그거 타고 빠하르간지 가자고 해야지.’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그날 내가 한국식당에 도착할 때까지 릭샤는 물론이고, 오토릭샤, 택시, 거지까지 합쳐서 나에게 말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상을 좀 많이 찡그리고 다녀서 그랬던 걸까. 나중에 그 때를 생각해 보니, ‘내가 좀 심했었나’ 라는 동시에 ‘참 신기한 일이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도에서 사람 많은 길을 세 시간 정도 다니면서, 아무도 말을 안 걸더라는 건 정말 믿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결국은 차가 많이 다니는 큰 길로 나올 수 있었다. 소 뒷걸음 치다 똥 밟은 격으로 우연찮게 그렇게 됐다. 게다가 운 좋게도 지하철 역도 발견했다! 마음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지하철이라면 최소한 사기 당하는 일은 없겠지!’ 라고.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아니면 거기가 외곽 지역이라서 그런지, 지하철 안은 아주 한산했다. 지하철노선도를 보니 역 이름들이 영어로 적혀 있긴 한데, 도무지 뭐라고 발음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사실 ‘델리(Delhi)’도 영어 철자 그대로 발음하면 ‘델히’ 아닌가. 물론 현지인들은 ‘델히’ 비슷하게 발음 한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Delhi는 그냥 ‘델리’ 라고 발음한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이태원이 ‘Itaewon’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걸 철자 그대로 읽으면 ‘아이타에원’ 혹은 ‘이타에원’ 정도가 된다. 그런 발음을 듣고 ‘아, 이 사람이 이태원을 말 하는 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지명을 영어 철자대로 읽어줘도 과연 이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낯선 지명들을 읽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엔 어느 역에서 탔는지도 기억 못 하게 돼 버렸지만.
     
     어쨌든 지하철 노선도를 뒤로하고, 표 파는 곳으로 갔다. 다행히도 표 파는 역무원은 젊은 엘리트 같은 인상이라 마음이 놓였다. 역무원에게 ‘빠하르간지 가려고 한다’ 라고 하니, 뉴 델리(New Delhi)역에서 내리면 된다고 가르쳐 줬다. 그래, 그 정도 이름이라면 쉽게 기억할 수 있지! 뉴 델리 역까지 지하철 요금은 8루피. 전날 밤 택시비 500루피에 비하면 정말 눈물 날 정도로 싼 가격이었다.
     
    돈을 내니까 동그란 동전 같은 것을 준다. 들어갈 때는 기계에 한 번 대기만 하면 되고, 나갈 때는 기계에 넣고 나가는 방식이었다. 한국에서도 대구인가에 그런 방식의 지하철이 있다고 하는데,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은 없었다. 그것 말고 나머지는 일반적인 지하철 이용법과 동일했다. 역 안은 너무 한산해서 전철을 기다리는 사람도 두어 명 밖에 없었다. 사진도 찍어가며 한참을 기다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도의 지하철(metro)은 군사시설에 속한단다. 그래서 들어갈 때 금속탐지기도 통과해야 하고, 군인들이 소지품 검사도 한다. 물론 군사시설이니 사진 촬영도 못하게 한다. 그런데 내가 탄 그 역은 금속탐지기도 없었고, 소지품 검사 하는 군인들도 없었다. 그런걸 몰랐으니 사진도 몰래 찍은 게 아니라 대 놓고 그냥 찍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던가.
     
    아까 역무원이 뉴 델리 역으로 가려면 중간에 한 번 갈아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바짝 긴장하고 안내방송과 노선도에 집중했는데, 안내방송의 발음이 노선도에 적힌 것과 좀 다른 것 같아서 긴가민가했다. 그래서 내릴 때 즘 돼서 문 앞에 서 있던 두 청년에게, 다른 라인으로 갈아타려면 이번에 내리면 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칸에 탄 모든 사람들이 합창을 했다. ‘여기서 내려! 여기서 내려!’. 안 내리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들이다. 뭐냐 이건! 당황했지만, 그래도 ‘땡큐’ 라고 외치고 내렸다.
     
    다른 전철로 갈아타러 가면서 알아챈 사실이 있었다. 내가 지나가면, 그 주위에 있던 인도인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된다는 사실. 갈아타는 곳을 놓칠까 봐 바짝 긴장하고 거기만 집중하고 있어서 몰랐었는데, 긴장이 풀리니까 보이기 시작했다. 무안할 정도로 빤히 쳐다보는 사람도 있어서 민망할 정도였다. 외국인이 지하철 타는 모습을 처음 보는 걸까.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하는 나로써는 그리 달갑지 않은 시선들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식해서 용감하게 찍은 지하철 사진. 나중에 알고 보니 군사시설이라서 사진 찍으면 안 된단다.
    놀랍게도 델리의 지하철은 서울 지하철보다 깨끗하다. 전동차 안은 에어컨도 빵빵하게 나왔다.
    서울 지하철 2호선처럼 뱅뱅 도는 노선이 있다면 무더운 날에는 인기 폭발일 것 같다.


     
     
    4.
    어쨌든 뉴 델리 지하철 역에 무사히 내렸다. 거기서 또 물어서 빠하르간지도 어렵지 않게 찾아갔는데, 처음 그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다.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길을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는 각종 가게들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빼곡히 들어섰는데, 대부분 곧 무너질 것 같이 낡고 더러운 건물들이었다. 그런 길에 자동차, 릭샤, 오토릭샤, 손수레, 소, 사람 등이 빼곡히 들어 찼다. 사람들도 서양인, 동양인, 현지인, 여행자, 거지, 장사꾼 등 다양하게 모여 있었고, 무슨 소리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귀를 멍멍하게 하는 소음들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우리나라 시장통의 정신 없는 분위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시간도 정오가 다 되어 해가 중천에 떴다. 어젯밤부터 음식은 고사하고 물 한 모금 못 마신데다가, 햇살까지 따갑게 내리 쬐니 정신이 혼미했다. 그제서야 가방에서 가이드북을 꺼내 들고 ‘쉼터’라는 한국식당을 찾아갔다. 골목길은 또 왜 그리 복잡한지, 지도에 그려진 데로 잘 찾아 갔는데도 입구를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쉼터’는 지도에 표시된 낡고 허름한 건물의 3층에 있었다. 그나마 건물 입구부터는 표시가 잘 돼 있어 찾아가기 수월했다. 좁은 계단과 통로를 오르니, 문도 없는 건물 옥상 같은 공간에 식당을 차려 놓았다. 탁자 네댓 개와 구석자리에 조그만 평상 하나가 보였다. 평상 옆의 벽면에는 책장이 있는데, 평상에서 밥 먹고 쉬면서 책장의 책을 꺼내보는 사람들도 몇 명 있었다.
     
     주인이라는 젊은 아저씨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물부터 시켰다. 1리터짜리 물을 그 자리에서 다 마시고, 비빔밥도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역시 속에 뭔가가 들어가니까 마음이 좀 푸근해 지면서 눈 앞이 밝아졌다. 신기하게도 밥 한 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는 그곳이 그렇게 밝은지 몰랐다. 소화 시키며 느긋하게 앉아 있으니, 눈을 똑바로 뜨기 힘들 정도로 햇볕 밝은 곳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때문에 더욱 그랬겠지만. 누군가가 지금 온도가 38도라고 하는걸 얼핏 들었다.
     
     그 때 즘 주인 아저씨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는데, 내게 처음 꺼낸 말이 ‘인도에 오래 계셨나봐요?’였다. 아니 무슨, 어젯밤에 도착한 사람인데! 말 나온 김에 어젯밤에 당한 일을 자세히 말 했다. 그랬더니 웃으시면서, 그 정도면 그리 많이 당한 것도 아니란다. 며칠 전에 어떤 분은 150달러를 뜯겼는데도 호텔에서 싸게 잘 묵었다며 좋아 하시더라나. 나중에 다른 사람 얘기로는 400달러까지 당한 사람도 있다 하니, 난 그래도 크게 당한 건 아니었다. 적게 당했건 크게 당했건 당했다는 사실에는 차이가 없지만, 그래도 약간 위안이 되긴 했다.
     
     어디선가 나타난 안주인에게 아저씨가 ‘이 분, 어제 사기 당하셨대.’라고 나를 소개했다. 그러니까 안주인은 물론이고 아까부터 평상에서 책 읽던 사람들까지 관심을 보이면서 그 얘기를 해 달란다. 앞서 한 이야기와 거의 비슷하게 반복했다. 얘기 끝날 때 즘 안주인의 아는 사람이 나타나서 다시 나는 그렇게 소개됐고, 난 또 그 얘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런 식으로 그 날 하루 동안 사기 당한 이야기를 한 열 번은 반복해서 얘기했지 싶다. 사기 한 번 당하고 토크쇼 스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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