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스포일러 있음)

제인은 이제 곧 결혼할 시기에 접어든 처녀이다. 그녀의 부모님은 이미 신랑감으로 부자집 청년을 미리 점 찍어 둔 상태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도시에서 뒹굴뒹굴 놀다가 시골로 굴러 들어오게 된 빈털털이 청년과 제인은 사랑에 빠진다. 영화 중반까지, 사랑을 시작하고 꽃 피우는 단계까지의 이야기는 모두 전주에 불과하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둘이 사랑하면서 부터가 시작이다.



제인은 그 한량과의 사랑을 굳건하게 믿고, 부자집 청년의 청혼을 거절한다. 그러면서 어머니와 다투게 되는데,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이 행복할 수 있겠느냐'며, '엄마도 사랑때문에 가난한 아버지와 결혼한 거잖아요!'라고 말 한다. 제인의 부모님이 사랑 하나만 믿고 결혼한 사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하지만 어머니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제인의 말을 한 마디로 받아친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 빌어먹을 감자나 캐고 있잖니!'. 관객인 내 가슴에도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연이어 확인사살까지 해 주신다. '애정은 있으면 좋은 거지만, 돈은 절대로 없어선 안 되는 거야!'. 네, 벌써 죽었습니다, 마이 뭇다 아이가, 그만해 주십시오. 흑흑...

그렇게 말다툼 하고 있는 모습을 아버지가 보셨다. 성직자이신 아버지는, 기품있게 조용히 딸을 불러내서 타이르신다. '가난처럼 영혼을 타락시키는 것은 없단다.'.



가슴에 비수를 꽂고, 확인 사살에다가, 꺼진 불도 다시 꽉꽉 밟아 눌러 주셨다. 아프지만, 모두 이해 되는 말들이다. 가난에 찌들려 살다 보면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다. 오죽했으면 부모님이 그랬을까, 자신들이 사랑만 가지고 결혼 해 살아보니 정말 할 짓 아니었으니까 자식에겐 그걸 물려 주고 싶지 않은 거겠지. 가난하게 살다보면 알게 된다, 사랑만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사랑보다는 적절한 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사랑 없는 결혼도 해야 된다면 해야 한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굳이 누가 말 해 주지 않더라도 말이다. 정말이지 가난은 영혼을 타락시킨다. 그래서 가난하면서도 더럽혀지지 않은 영혼의 소유자들은 성자 혹은 성인 등으로 불리며 대단하고도 고귀한 분들로 모시지 않는가. 일반인들은 할 수 없는 경지니까 그렇다.

그런데 이 딸내미는 막무가내다. 아직 가난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 한 걸까, 아니면 사랑에 제대로 빠져서 눈이 멀어 버린걸까. '부자집 아들내미 싫어, 난 한량이 좋아' 하며 사랑타령 하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벌인다. 그러다가 마침내 둘이서, 말 그대로, 야반도주를 하게 된다. 야밤에 아무도 모르게 단 둘이서 짐 싸 들고 도망친 것이다.

이제 둘이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알콩달콩 재미있게 사는 일만 남았다며 기쁨과 행복에 가득 찬 설래는 마음도 잠시. 마차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잠시 내려 쉬면서, 그 남자가 가지고 있던 편지를 제인이 우연히 읽게 된다. 남자의 가족들에게서 온 편지였다. 알고보니 모든 가족들이 그 남자 한 사람만 바라보고 있고, 그가 보내준 생활비로 목구멍에 풀칠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단 둘이 도망쳐 버리면, 그의 가족들은 그대로 굶어 죽을런지도 모른다. 그나마 제인의 가족들은 굶어 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야반도주는, 사랑의 도피는 그렇게 반나절의 해프닝으로 끝을 맺었다. 그 후 그 남자는 돈 많은 귀족 딸과 결혼하고, 제인은 소설을 쓰며 독신으로 살다가 늙그막에 유명해진다. 이 제인은 바로 제인 오스틴. 중고생 필독서로 꼽히는 '오만과 편견'을 쓴 소설가이다.

제인 오스틴의 일생에 대해서는 별로 밝혀진 바가 없다. 한 남자와 사랑했고, 결혼까지 하려 했지만 헤어지고 말았고, 그 후 독신으로 살며 소설을 썼다는 사실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파경의 이유가 무엇인지, 왜 헤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몇몇 추측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제인 오스틴의 사랑 이야기를 상상해서 꾸며낸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녀가 겪은 일들을 그대로 소설로 쓴 것이 아닌가하고 추측되는 '오만과 편견'의 내용을 많이 참고한 듯 싶다. 제인 오스틴이라는 작가의 실제 이야기라는 말에 끌린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 실망할 지도 모른다. 영화 '오만과 편견'의 스토리와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영화는 어떤 이에게는 가슴을 후벼 파는 영화다. 특히 금전 앞에서 무너진 사랑에 대한 경험이 있다면, 마지막 장면에서는 뒷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으로 멍하니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변하지 않는 세상의 이치. 사람나고 돈 났지만, 돈 없이는 못 사는 세상이기에 어쩔 수 없는 현실. 삼천 년 전에 태어났으면 이렇지 않을 수 있었을까. 금전과 사랑 사이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보지 말기를 권한다. 딱히 해결책이 없으니까, 가슴만 아프다. 후벼파진 가슴에서 실신할 때까지 피가 철철 흘러 넘칠지도 모른다.

신고
Posted by 빈꿈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