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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하해방전선] 하루 10분 우주영웅적 사랑연습
    리뷰 2008. 1. 4.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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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짜 영화감독 '영재'는 사랑도 영화도 입으로 다 한다, 말로는 이미 영화 한 편이 다 구상되어 캐스팅과 투자 계획을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직 시나리오 작업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상태.

    게다가 그 화려한 말발로 진행중이던 연애질도 이젠 끝이 나서, 애인 '은하'도 떠나버린다. 그 와중에 갑자기 실어증이 걸려 버린 영재. 투자자들도 만나야 하고, 캐스팅도 해야 하는데 입에선 말이 나오지 않는다.



    말로는 뭘 못 해

    어느 분야든 어떤 바닥이든 그 '이빨 까기'가 중요하다. 알고보면 별 거 없으면서도 뭔가 있는 척 대단하게 이빨을 까면, 사람들은 또 거기에 혹하고, 그래서 그런 놈들이 성공하고, 그걸보며 말 하기가 중요하다고 사람들은 또 겉치레를 하고.

    그래서 술자리도 시끄럽다, 쓸 데 없이 시끄럽다. 뭔가 형이상학적인 거창하고도 대단한 말씀들을 나누느라 그렇다. 별 것 아닌 조무래기 음향기사가 '그래서 그게 뭔데요?'라는 한 마디에 다들 숙연해지는 주제에. 그러면서 기껏 한다는 말이 '여기 경험 많은 사람들이 얘기 하는데 니가 낄 데냐?'라며 버럭 화 내기. 사실은 자기들도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면서. 그냥 서로 이빨 까기 하며 대단한 척, 있는 척, 아는 척, 척척박사인 척, 쿵짝 박자 맞춰가며 노는 것 뿐이면서.

    초짜 영화감독 영재도 그런 면에서는 타고난 인물이다. 그래서 초짜인 주제에 투자 받아 영화도 찍게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랑도 일도 말로 다 하는 대단한 인물. 말발 하나로 세상을 살아가는 인물. 주위에도 다 똑같은 사람들, 입만 살아있는 녀석들이 포진해 있다. 그 화려한 말발들의 세상 속에서 덜컥, 실어증이 걸려버리는 것이다.




    은하해방전선

    사랑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그의 실어증은 오히려 득이 되었다. 영재는 실어증을 겪으면서 애인인 은하와 대화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까. 그건 어쩌면 우리 사회 사람들 모두의 공통적인 특징인지도 모른다. 그저 내가 말 할 차례를 기다릴 뿐, 남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 것.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느낌을 느끼는지 내게 말 해 주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단지 내가 듣지 않았을 뿐, 들으려 하지 않았을 뿐, 제 할 말만 하고 싶었던 것 뿐.

    그렇게 은하는 '해방'되고, 영재는 영재 2호로 다시 태어난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자와 함께. 이제는 그도 대화라는 걸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려버리는 대화를 가장한 내 목소리 높이기가 아닌, 서로의 눈빛을 보고, 입 모양을 보면서 교감할 수 있는 진짜 대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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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일에서도 과연 그럴까? 당장 그가 말을 하지 못 하니 그의 위치는 점점 더 위태로워진다. 영화에서는 '그래도 진심은 통한다'라고 말 하고 싶었는지 몰라도, 과연 현실은 그럴까. 밥그릇 싸움 치열한 현실의 진검승부에서 이심전심 진심이 그렇게 통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일에 있어서 진심을 통하려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은 달라라고 외치며 선뜻 동의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멜로가 되고 싶은 영화이니까 멜로만 집중하고 대강 넘길 수 밖에.



    멜로 또는 코미디

    영화 초반에 영재와 은하의 사랑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채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물론 다른 등장인물들도 각자의 몫이 있긴 하지만, 다양한 에피소드들과 함께 영재의 화려한 말발이 쏟아지면서 영화가 다소 산만하게 느껴졌다. 주인공 뿐만 아니라 다른 등장인물들을 통해서도 '소통'을 합창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차라리 영재의 러브스토리에 좀 더 치중하면서 과감한 가지치기를 했으면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물론 뭔가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많아서 준비해 둔 장치들인 것 같기는 하다. 영재가 내뱉는 수많은 말들이나 주변 인물들의 설정들도 의미를 두고 본다면 나름 의미가 있을테다. 하지만 영화 분석에 큰 흥미가 없는 나 같은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런 부분들은 그저 장식물이나, 소비를 위한 아이템 정도로 여겨도 큰 무리는 없을 듯 싶다.

    '코미디가 될 뻔 했던 멜로 영화'로 괜찮은 장편 독립영화라고 추천하고 싶다. 독립영화라는 타이틀이 안겨주는, 다소 난해하고, 어렵고, 복잡하다는 인식을 이 영화를 통해 어느정도 깰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듯 싶다.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다소 친숙한 이야기를, 독립영화의 독특한 맛으로 즐길 수 있으니까.



    p.s.
    2008년 1월 3일 현재,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http://indiespace.tistory.com)에서 상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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