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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양을 향해 날아간 이카루스
    사진일기 2007. 11. 8.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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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이렇게 한없이 정지해 있을 것 같아. 빨간 불이 켜진 상태로, 건너갈 수도, 그렇다고
    되돌아 갈 수도 없는 이 상태가 계속될 것만 같아. 그렇게 우린 평행선을 긋겠지, 그리고는
    쌀쌀한 바람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겠지. 사라지면 그 뿐, 잊혀지면 그 뿐,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잊혀지는 지도 모르게 잊어가며 살다가, 어느 사람 많은 길목 한 복판에서 다시 만날
    때 가벼운 인사조차 하지 않고 스쳐 지나가겠지. 그것 나름대로 좋은 추억이겠지.

    하지만 우리 이렇게 스쳐 지나가면, 결국 그렇게 잊혀져가면, 결국 우린 숱한 시간 속에 
    몇 개 먼지처럼 그렇게 아무 것도, 아무 의미도 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혹시,
    만약, 어쩌면, 그대로 잊혀지지 못하고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살다가,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불현듯 기억이 떠오르거나
    하지는 않을까. 어느 여름날 비에 젖은 신발을 끌고 들어올 때 눅눅한 마룻바닥 위로 물에
    젖은 나무 냄새가 난다거나, 어느 가을날 시린 바람이 커피향을 타고 흐른다거나, 길을
    걷다가 갓 구워진 빵 냄새가 내 발길을 잡을 때, 그럴 때 느닷없이 내가 잘 못 걸어가고
    있다는 걸 깨닫고 주저앉아 버리면 그 때는 이미 너무 많이 늦어버린 것 아닐까.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후회하지 않게, 후회하지 않게 순간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전진,
    또는 전진, 혹은 전진을 해야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빨간불이라 할 지라도 건너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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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그 한 걸음은 영원과도 같았지.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에 가자, 가자, 그래 가자,
    다짐하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여 마침내 결심을 얻어냈고, 떨어지지 않는 내 발에 힘을 주고,
    또 주고, 젖먹던 힘까지 다 해 이를 악물어 기를 쓰고서야 마침내 한 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어. 아, 드디어 한 걸음.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넓어, 내 한 걸음은 도무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내딛는 것 처럼 보이던 그 한 걸음을 떼어놓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데, 이런,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지. 그래 이대로, 이대로 또
    한 걸음, 또 한걸음 계속해서 내딛다 보면 언젠가는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언젠가는,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지만 시간은, 허공속을 맴돌며 무한히 떠도는 방랑자처럼 보이지만,
    이런 때만은 그렇게 후하지 않아. 이런 때만은, 늘 이런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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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서웠어, 무서웠어. 바다처럼 멍 든 노을같은 사과, 동 틀 녘 어둠처럼 쉽게 남은 콜라,
    발길에 채이며 흙 속을 뒹구는 돌같은 라면, 배부른 모기가 앉아 쉬는 모기약, 혼자 마시는
    소주처럼 찌든 신발, 젖지도 않지만 마르지도 않는 눅눅한 빨래더미, 양말처럼 텅 빈 물병,
    내 생각의 속도만큼 바닥을 기고 있는 이름모를 작은 벌레, 담배연기같은 빛을 내뿜는
    형광등, 이산화탄소 가득한 가방 속 작은 메모지들, 오염된 하천에 둥둥 뜬 기름같은 물감.
    그 중 가장 무서운 것은, 함께 바라볼 수 없는 우리의 미래. 세상은 무서운 것들로 가득 차
    있는데, 가만히 앉아 있어도 그것들이 다가오는데, 눈 감아도 또렷하게 보이는 것들 뿐인데,
    그런데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아무것도. 미안, 미안.

    어쩌면 이렇게 한없이 정지해 있겠지. 빨간 불이 켜진 상태로, 건너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그런 상태가 계속되겠지. 그렇게 평행선을 긋겠지, 쌀쌀한 바람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겠지.
    사라지고, 잊혀지고, 그렇게 서로를 잊어가겠지. 다시 만나도 가볍게 스치겠지. 나름 추억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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