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 내 마음 한쪽 구석 저 어두운 틈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희망을
갉아먹고 사는 벌레가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어. 이미 먹을 것 없는
벌레는 굶어 죽은지 오래라는 것도. 그 때부터였지 내 심장은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어.
더이상 내 가슴을 뛰게 할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은 삶에 빠싹 매마른 심장에 금이
가기 시작했던거야. 내 심장이 갈라지고 있어, 내 심장이 갈라지고 있어. 나는 외쳤지.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런 거라고,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매마른 목소리로
아무렇지 않은 듯 내게 말 했어. 대체 그러면 희망을 갉아먹고 살아가는 벌레와 다를 게
뭐가 있냐고 울부짖었지. 들려오는 소리는 똑같았어.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다고.
세상이 너무 어두워. 캄캄해서 앞이 보이질 않아. 이 암흑 속에서, 심장은 갈라지고 있는데,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냐고, 어떻게 발걸음을 옮길 수 있냐고, 그렇게 헤메이며
이게 길이다 싶은 곳을 장님처럼 더듬으며 누군가의 발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그렇게
줄 서서 쫓아가야 하는 거냐고, 그렇게 빛 없는 희망 속을 암담하게 걸어가야 하냐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있음에 기뻐하며 숨 쉬어야 하냐고, 그렇게 바싹 마른 가슴으로,
그렇게 찢어진 심장으로, 그렇게 얼어붙은 영혼으로, 그렇게 턱턱 막히는 숨을 참으며,
오늘 하루도 오늘 하루도, 언젠가 막이 내릴 그 날까지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되뇌이고 되뇌이고 또 되뇌이고 되뇌이며 살아가야 하는 거냐며
더이상 참을 수 없어 피눈물을 흘리며 외쳐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어. 이미 누군가에게
들려줄 내 목소리는 바닥난 상태였고, 이미 누군가에게 들려줄 소리를 낼 필요도 없었거든.
저 갈라진 내 마음 길에 한 포기 민들레라도 피어 활짝 웃어 주었으면 했어. 아무리 암담한
가시밭길 속이지만 그 작은 풀잎 한 포기, 씨앗 하나가 가뭄에 작은 단비가 되어 주었으면
했어. 그 틈을 비집고 곱게 감싸 안으며 그래도 이 길이, 그래도 이 길이 허무하지만은
않다는 그 어떤 사소하고도 자그마한 삶의 증거나마 찾고 싶었어. 하지만 꿈은 꿈일 뿐,
헛된 꿈은 눈을 더욱 멀게 했지. 텅 빈 눈으로 고개를 들어 어둑한 하늘 그 깊은 심연을
보았을 때, 그제서야 알게 되었어. 꽃은 웃어주지 않아, 특히 내가 가는 이 길에선.
이미 모두 죽어버린 그들의 눈동자 속에서, 비가 오려나, 비가 오려나, 아 이제 검은 흙에
비가 오려나. 하지만 이미 조각난 심장은 다시 뛰지 않아.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