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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먹고 살다보면 멍청해 져
    웹툰일기/2008 2008. 9. 1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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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중고교를 차례대로 진학하면서 각 학교마다 '천재'라고 불리는 녀석들을 하나씩 만났다. 이 천재들은, 그 명성에 걸맞게, 당연히 공부로는 맨날 전교 1등을 유지했다. 옛날 어른들의 상식으로는 공부 잘 하는 애들은 체력이 약해서 운동도 못 한다였지만, 얘네들은 소위 '뉴 타입'이었다 (그 때 당시 Z건담이 유행이었음). 공부도 잘 하면서, 운동도 웬만큼 해서 체육 실기시험은 물론, 그냥 뛰어 놀 때도 다른 애들에게 뒤처지지 않았으니까.

     그 천재들은 정말 못 하는 게 없는 다재다능한 팔방미인이었다. 속으로야 어떤지 몰라도 겉으로는 인간관계도 원활했고, 남들 앞에서 말도 잘 했고, 생김새도 못 생긴 축이 아니었고, 집도 잘 사는 편이었고, 몸도 건강했다.

     게다가 세상은 그런 그들을 한없이 지원하고, 장려하고, 보호해 주었다. 그들은 항상 반장이나 총학생회장 같은 직책을 맡았고, 항상 선생님들의 관심과 보호를 받았으며, 학교에서 잘 나가는(?) 날라리 양아치들도 그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들은 정말 하늘이 내려주고 세상이 돌봐주는 지능과 운을 타고난 천재였다.



     

     애초부터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들. 가정형편 같은 것은 그냥 그렇다고 쳐도, 별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도 항상 전교 일등을 하는 그들을 보면서 난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세상에 기회의 평등이란 헛소리 일 뿐이구나.

     그래도 난 그들을 공부가 아닌 다른 쪽에서라도 한 번 즘은 꼭 이겨보고 싶었다. 준비물도 제대로 못 챙겨가는 형편으로 살면서, 불우이웃 돕기 성금 안 가져온다고 선생들한테 맞으면서, 그 당시엔 보편화 되지 않았던 중고생 아르바이트를 뛰면서,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그래도 저 놈 어떻게든 꼭 한 번은 이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차에 우연한 기회에 우연한 사실을 알게 됐는데, 얘네들은 글짓기를 썩 잘 하진 못 한다는 거. 물론 논술시험 같은 것은 높은 점수를 받지만, 백일장 같은 데서 상을 타 오지는 못 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나는 우연한 기회에 그런 대회에서 상을 탄 것에 고무되었고.

     그 때부터 나는 남들은 별 관심도 없는 글짓기 대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그런 곳에서 대충 상을 타 와서는 학교에서 조회시간 같은 때에 수상식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렇게라도 그들을 이겼다는 기쁨으로 혼자 우쭐한 기분을 마음껏 즐겼다.

     돌이켜보면 아주 유치하고 별 쓸 데 없는 짓이었다. 대학 들어가 보니, 주위 사람들 중 소싯적에 글 써서 상 한 번 안 타 본 사람 거의 없더라. 차라리 그 시간에 내신이나 수능 점수 올릴 공부를 했다면 더 나았을 텐데.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친구들과 놀러라도 다녔으면 더 나았을 뻔 했는데. 정말 웃기는 짓이었지.



     

     어쨌든 그들은 그렇게 나 혼자만의 라이벌이었고, 그래서 그들에게 쏟은 관심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급기야 나는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때마침 '나는 학교를 사랑해요'라는 다소 유치한(?) 이름의 동창 찾기 사이트를 통해 동창회를 하는 것이 유행이였다. 그래서 나는 별로 내키지도 않는 동창회에 나가서는 그들의 소식을 묻기 시작했다.

     무척 궁금했다,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대학 가서도 천재 소리 들으면서 승승장구 하고 있을지, 아니면 어디 유학이라도 가서 벌써 박사학위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천재의 끼와 함께 뒤늦게 자기 길을 찾게 되어 훌륭한 음악가가 되어 있는 건 아닌지, 혹시라도 동창회에서 그들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건 아닌지. 기대와 호기심이 교차하면서 상승기류를 이루더니 어서 빨리 그들의 소식을 듣고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여기저기 캐 묻고 다닌 끝에 그들의 소식을 모두 알아낼 수 있었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각각 한 명씩, 그 당시 학년 전체를 대표하던 그 세 명의 천재들. 그들 중 두 명은 이미 정신병원에 입원한 지 오래라고 했다. 모두 대학까지 좋은 곳으로 잘 가 놓고는 그렇게 돼 버렸다고 한다. 그래, 두 명은 그렇다치고 나머지 한 녀석은 어찌 됐을까. 사실 이 녀석의 소식을 맨 처음 접했고, 이 녀석 때문에 충격을 좀 먹었는데, 이 녀석은 이미 자살한 지 오래란다.



     

     세 명의 천재 중 둘은 정신병원에 있고, 하나는 자살했다. 이건 예상과는 너무 어긋나는 일이라서 그 당시 나는 충격을 좀 받았다. 그러면서 '나는 천재가 아닐테지? 나는 전교 일 등 한 번 못 해봤잖아, 그래 나는 천재가 아니야, 나는 멍청해, 나는 멍청해, 나는 멍청해...'라고 스스로 마인드 콘트롤을 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아직까지 정신병원도 안 가고 대충 살아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 상관 없는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
     
     어쨌거나, 그러니까 어린 자식을 가진 젊은 부모님들, 옆집 아이가 천재라고 부러워 하지 마시라. 고달픈 천재보다는 차라리 행복한 바보가 낫지 않은가. 물론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세상 돌아가는 상황에 따라 영어학원도 보내고, 이것저것 시켜야 할 테지만, 그래도 차라리 바보로 키울지언정 천재가 되게 놔 두진 않을테다. 애가 책을 너무 많이 읽는다 싶으면 책을 모조리 불살라 버릴테고,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한다 싶으면 하루종일 티비만 보게 할 테고, 한 분야에 너무 몰두한다 싶으면 게임기 같은 걸 사 줘서 다른 곳에 정신을 팔게 할 테다. 어쩌면 그런 특이한 경험에 미리 바짝 쫄아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절대, 절대, 절대 똑똑해지도록 가만 놔 두지 않을테다. 불행의 씨앗을 크지 않게 싹을 잘라 주는 것은 부모의 몫일 테니까.


     

    p.s.
    결론은 천재가 되지 말자... 랄까요... ㅡㅅ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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