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팍팍하고 재미 없을 때, 매일매일 피곤한 일상에 쩔어 오가는 길만 왔다갔다 반복되는 생활이 지겨울 때, 머리통을 톱으로 썰어 확 열어서는 찬 바람 한 번 넣고 싶은 생각 간절할 때, 그럴 땐 섬으로 가자. 거추장스런 준비물도 챙기지 말고, 없어도 그만인 것들은 모두 버려둔 채, 파랑때문에 배가 안 뜨면 어쩌나하는 걱정도 다 날려버리고, 사뿐히 혼자서 훌쩍 떠나보자. 일단 집 밖을 나선 후에는, 어떻게든 길에 휩쓸려 떠내려가겠지, 바람이 어디론가 데려다 주겠지. 아무 생각 없이 길에 몸을 맡겨보자.
우이도를 가기 위해서는 일단 목포를 가야한다. 목포에서 배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목포는 어느정도 유명한 동네이니만큼, 기차로도 갈 수 있고, 버스로도 갈 수 있다. 그런데 우이도 가는 배를 타려면 기차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 목포역에서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은 걸어서 20분 즘이면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기 때문이다.
사진은 목포역 앞 도로. 왼쪽 구석에 목포역이라 쓰여진 간판이 보인다.
오전이라그런지 거리에 인적이 드물다. 밤이 되면 붐빌 것처럼 보이는 거리에도 문 닫은 가게들만 나뒹굴 뿐, 강아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목포는 처음이다. 어떻게 생긴 동네인지 길 걸으면서 기웃거렸고, 아 여기가 목포구나, 라고 생각을 해 봤지만, 딱히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시간이 남으면 무슨 공원인가하는 곳도 찾아가 보려 했지만 그럴 시간도 없었고. 말 그대로 목포는 항구다. 배만 타면 된다(?). ㅡㅅㅡ;
목포역에서 나와서 바닷가 쪽으로 걸어가서, 여객선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걸어가면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로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물론 잘 모르겠으면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다 안다 (사실 나도 물어봤다 ;ㅁ;).
생각보다 규모가 컸던 여객터미널. 국제여객터미널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 내부는 서늘했지만 바람이 통하지 않아 조금 갑갑한 느낌. 출입구 바깥쪽에 서 있으면 바닷바람이 마구 불어서 시원하게 있을 수 있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목포에 도착했더니 배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12시 10분에 출발하는 우이도 행 배 표는 11시 30분 정도 돼야 판매를 시작했다. 혹시 휴일이라 사람이 많아서 일찍 사놓지 않으면 매진되지 않을까라는 조바심에 미련스럽게 계속 여기서 기다렸다. 하지만 여름 성수기 때 말고는 배표가 매진 될 경우는 거의 없다 한다. OTL
목포에서 우이도 가는 배 요금은 대략 13,000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몇 백 원이 붙었는데 정확히 기억은 못 하겠다. 재미있는 것은 목포에서 우이도 갈 때는 터미널 이용료가 붙는지 조금 더 비싸다. 우이도에서 목포로 오는 건 조금 싸고 (그리 많이 차이 나지는 않는다). 목포에서 표 끊을 땐 카드가 되고, 우이도에서 표 살 땐 카드가 안 된다. 딴 건 몰라도 우이도에서 나올 배삯은 미리 현금으로 충분히 준비해 가야만 한다.
터미널 주변에서 노닥거리며 배 표 팔기만을 기다렸음. 나중에 보니까 우이도 가는 배에는 사람이 열 명 정도 밖에 안 탔다. 거기서 반 이상은 우이도 가기 전에 다 내렸고. 그런 줄 알았으면 목포 시내 구경이나 좀 하다가 배 시간 맞춰서 갈 걸 그랬다. (밥도 이 근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사서 대강 때웠는데... ㅠ.ㅠ)
우이도는 작은 섬이기 때문에 원하는 물건들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거기도 가게가 있긴 있지만, 일단 필요하겠다 싶은 물건들은 목포의 수퍼마켓 같은 곳에서 미리 사 가는 게 좋다. 모기향이나, 비상식량이나, 공책이나, 노트북컴퓨터 같은 거는 미리 사 가자.
드디어 표를 사고 배에 올랐다. 섬사랑6호. 배 이름은 예쁜데 시설은 무척 낡은 편. 배에 우이도라고 행선지가 적혀 있다.
배 형태를 보면 알 수 있듯, 이 배에는 자동차도 실을 수 있다. 자동차는 여객터미널 바깥쪽에 따로 마련된 입구를 통해 표를 끊고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우이도에서는 자동차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
배 2층으로 올라가면 이런 방이 마련 돼 있다. 목포에서 우이도까지 약 3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 방에서 모자란 잠을 보충할 수 있다. 멀미 하는 분들도 방 구석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조금 나아질 수도 있고.
단체 여행자들이 있으면 어김없이 술판이나 고스톱 판이 벌어져서 차라리 밖에 나가 있는 게 더 좋지만, 사람 별로 없을 때는 방 안에서 멍하니 있어보는 것도 좋다. 방 안에서 멍하니 배의 흔들림을 느끼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색다른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예를들면 새우잡이 어선에 팔려가는 느낌 같은 거. ;ㅁ;
배에서 기름냄새와 함께 오래된 토사물 냄새도 나기 때문에 (우웩- ㅠ.ㅠ), 멀미 좀 하시는 분들은 일찌감치 멀미약 먹고 타는 게 좋다. 아아... 우이도 다시 가 보고 싶어도 멀미때문에 두려워...
멀미약 먹는 걸 잊어서 세 시간 내내 이렇게 밖에 나와 앉아 있었다. 그래도 바람 쐬니까 조금 낫긴 하던데, 자꾸자꾸 올라오려고 하는 걸 삼키느라 혼 났다. 소도 아니고 되새김질을... ㅠ.ㅠ 아 진짜, 이 배 사진만 봐도 머리가 아파온다. 흑흑
멀미 못 견디겠으면 비상탈출구로 탈출 하세요~ 비상탈출은 바다에 뛰어들기. ㅡㅅㅡ/
가는 동안 다양한 모습의 섬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섬이 워낙 많은 곳이라서 초행이라면 섬 구경만 해도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우이도 행 배는 '도초도'라는 섬을 거쳐서 간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꽤 많은 배들이 도초를 거쳐간다. 내륙과 제일 가까운 섬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큰 섬도 아닌데. 어쨌든 목포와 도초를 오가는 배편이 많은 편이므로, 우이도와 도초, 그리고 다른 섬들을 연계해서 여행 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사진의 저 다리는 육지와 연결된 것이 아니라, 섬과 섬을 잇는 다리다. 바다 한 가운데 저런 다리를 세워 놓았다. 도초에 내리면 저 다리 위도 건너볼 수 있을 텐데.
'도초도'에서 거의 대부분의 승객들이 다 내렸다. 사람들 다 내리고, 차도 다 빠지고, 내릴 물건들도 다 내리면, 배는 바로 섬을 떠난다. 오 분도 안 걸렸다.
도초도와 비금도를 넘어가면, 그 이후부터 우이도까지는 모두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가만히 스쳐 지나는 조그만 섬들을 보고 있으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 될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드디어 우이도 도착. 하지만 우이도에서는 세 군데에서 배가 정박한다. 어디어디인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모래언덕'이 보고 싶었기 때문에 맨 마지막 정박지에서 내렸다. 그냥 맨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으면, 사람들 다 내리고 종점이라고 내리라고 한다. ㅡㅅㅡ/
사진에 보이는 낚시꾼들은 앞서 내린 사람들이고, 나는 끝까지 남아있었다. 끝까지 간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단 두 명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