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저 대나무처럼 살자 했다.
사시사철 곧고 푸른 저 대나무처럼, 비가 오고 눈이 오면 더욱 빛나는 그 기상을
여린 바람에는 흔들릴 줄도 알지만, 거센 바람에는 허리가 꺾여도 굴하지 않는 그 줏대를
잔가지 수없이 드리워도 어린 싹 키워내고, 햇볕 한 줌으로 기어이 자라고야 마는 그 투지를
새벽녘에 한 줌 이슬 드리울 줄 아는 여유와, 바람으로 노래할 줄 아는 풍류를
너는 닮고자 했다, 나도 닮고자 했다.
모진 세파를 맞아야만 했다.
누군가 더 강한, 더 질긴 사람이라면 참아낼 수도 있었을 시련이었을지도 모른다.
너와 나에게는 견디기 힘들었던, 그래서 변할 수 밖에 없었던 아픔이었지만 말이다.
너는 오동나무로 변했다. 그래 비난할 이유도, 미워할 필요도 없다,
그건 그 나름대로 사람들에게 많은 쓰임이 있으니 오히려, 반가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너와 같은 길을 걷기 싫었다. 나는 나의 길을 가야한다 다짐하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리고 바람에 깎이고, 사람에 치이고, 햇볕에 그을고, 추위에 떨어야 했다.
그러면서 내 안에 날카롭고 뾰족하고 불같은 그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나는, 그래 나는, 타협하지 않기 위해 세상에 칼날을 휘둘러야만 했다.
때로는 모르고, 때로는 알고도 그리 해야만 했다, 그건 마지막 저항이었고
그 저항은 세상을 향한 유일한 소통이었다. 세상에 발을 딛고 있는 이유였다.
어느날 눈 떠 보니 나는 죽창이 되어 있었다.
정말 이것이 내가 바라던 것이었는지 알 수 없다, 아니 아마도 아닌 것 같다.
기쁘지 않다, 즐겁지 않다, 그렇다고 슬프지도 않다. 이제
무감각해진 나의 창 끝으로 하늘을 찌르는 것 외엔 별 의미도 없다.
우린 어쩌면 대나무가 되려하면 안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린 어쩌면 일찌감치 그 자리를 다른 이에게 넘겨주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후회가 코끝을 울린다. 이제라도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할까.
정말 이제 알 수 없다, 하지만 남은 시간은 그래도 죽창으로 살아 보련다.
안타깝게 보지마라, 나는 누군가의 심장을 도려파서 사랑을 전할 수도 있고,
누군가의 등허리를 노리어 잠시 잠깐이나마 꼿꼿하게 펴 줄 수도 있다.
안타깝게 보지마라, 내 창 끝에 묻는 피는 나의 피가 아니니
안타깝게 보지마라, 나는 아직 이슬을 머금을 수 있다.
이것이 운명이 아닐 수도 있다, 이것이 임무가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되돌릴 순 없지 않는가.
안타까운 후회가 코끝을 울린다. 이제라도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할까.
이제 정말 알 수 없다, 하지만 남은 시간은 그래도 죽창으로 살아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