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피랑'은 '동쪽에 있는 비랑'이라는 뜻으로, 비랑은 비탈의 사투리다. 즉, 동피랑은 그저 '동쪽에 있는 비탈'이라는 단순한 의미의 산동네일 뿐이다.

이 지역은 옛부터 강구항에 일하러 온 가난한 사람들이 거주하던 가난한 동네였다. 삼십 년 전만 해도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좁고 가파른 골목길들이 실핏줄처럼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한다. 뜨내기들도 많았기에 동네 분위기도 험악했고, 돈 벌어 떠나기만을 바라는 동네였다 한다.

그런 동네인만큼 세월이 지나면서 재개발 계획이 수차례 나왔는데, 실제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마을 부지와 집들을 시에서 사들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통영의 시민단체인 '푸른통영21'과, 그와 뜻을 같이한 통영시와 통영교육청, 그리고 대학, 다른 시민단체 등이 모였다.

그들은 동피랑을 그냥 의미없이 철거하는 것 보다는, 지역의 역사와 서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독특한 골목문화로 재조명해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추진하게 된 사업 중 하나가 바로 '동피랑 벽화'였다.



동피랑의 벽화는 2007년 한차례 공모전이 있었고, 2008년 10월에 추가전이 있었다. 공식적인 행사는 그랬지만, 사람들 말로는 그 사이에도 하나씩, 하나씩 추가되기도 했다 한다.

그리고 2010년 4월 3일부터 11일까지, 전국적으로 공모전을 열어 그동안 낡은 벽화들을 다시 칠하는 동피랑 벽화 공모전 '동피랑 블루스'를 열었다. 이번 행사에서는 기존 벽화를 다시 칠하는 것을 넘어, 산동네에만 집중되어 있던 벽화들을 산 아래 동네에도 확대해서 벽화골목의 범위를 넓혔다.

아직 동피랑 벽화가 언덕 꼭대기 구판장 근처에만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번 행사를 통해 동네 전체적으로 벽화의 수가 많아졌으니 놓치지 말고 다 둘러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이런 행사가 계속되어, 앞으로는 이 동네의 모든 벽들이 형형색색 아름다운 그림들로 가득 채워지기를 바래본다.
   

















동피랑 벽화를 바라보는 마을 주민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졌다. 이렇게 아름다운 벽화를 그려주어 동네가 예뻐졌다며 좋아하는 분들과, 괜히 이런 걸 그려서 맨날 몰려드는 구경꾼들 때문에 시끄러워 죽겠다는 반응. 

어쩌면 내가 동피랑 주민이라면 후자 쪽에 좀 더 기울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동피랑을 가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주말이면 그 좁은 골목이 구경 온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여기저기 사진 찍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저마다 마음에 드는 곳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그들 중에는 마음에 드는 장소라면 남의 집 대문 안이든, 남의 집 옥상이든 가리지 않고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낮은 창문 안쪽을 기웃거리는 사람들도 있으며, 떼로 몰려와 한 장소에서 수다를 떨며 시끄럽게 머무는 사람들도 있고,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는 벽화 위에, 혹은 벽화가 그려져 있지 않은 벽 위에 낙서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어쩌다 한 사람 두 사람이지만, 매일매일 하나 둘 모으면 꽤 많은 수가 된다. 동피랑 주민들은 그런 사람들도 매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추억만들기 때문에 휴일 이른 아침에도 조용히 편히 쉬지 못하는 고통의 대가는, '아름다운 내 마을'이라는 자부심 하나밖에 없다. 
 


물론 많은 동피랑 주민들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된다고 하신다. 하지만 우리가, 동피랑을 구경가는 사람들이 조금만 더 주의하고, 조금만 더 조심하고, 혹시 보이는 못된 사람들에게 다같이 주의를 준다면, 동피랑은 좀 더 아름답고 쾌적한 마을이 되지 않을까.

여러분들이 아셔야 할 것은, 동피랑을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여러분들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동피랑을 함께 가꾸고 지키고 만들어나가는 일원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동피랑을 구경하는 순간 만큼은 이 마을 주민이 된 것처럼 마을을 아껴주었으면 싶다. 우선 골목에서 마주치는 마을 어르신들에게, 지나는 인사 한 마디 건네는 것으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 짧은 인사 한 마디의 보답으로 환한 미소를 선물로 받을 수 있을테니까. 
 














동피랑 아래동네 한 쪽 귀퉁이에는 작은 구멍가게 하나가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앞면에는 '동피랑 파고다 카페'라고 적혀있고, 옆면에는 '태인 카페'라고 적혀있다. 둘 중 아무 이름이나 상관없지만, 이 가게의 원래 이름은 태인카페라 한다. 

여기에 '파고다 카페'라는 이름을 적어넣은 사연이 참 재미있다. 어느날 동피랑을 구경 온 어떤 사람이 이 가게에 들어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여기는 꼭 바그다드 카페 같다'라고 말을 했다 한다. 주인 할아버지께서 그 말을 들었는데, 문제는 이 분이 귀가 어두우시다는 것. 그래서 '바그다드 카페'를 '파고다 카페'로 알아들으시고, 저런 이름을 적어넣었다 한다.



이름이야 어찌됐든, 이곳은 동피랑 여행자들에게 구판장과 함께 잠깐의 휴식과 여유를 주는 고마운 곳이다. 너무 조그만 가게라서 시내의 큰 가게처럼 이것저것 여러가지 물품들이 골고루 갖춰져 있지는 않다. 과자 종류만 해도 몇 개 안 되기 때문에, 딱히 취향에 맞는 맛있는 어떤 것을 찾으러 가기에는 적합치 않다.

하지만 이곳을 '바그다드 카페'에 비유한 그 여행자는, 이 곳 분위기를 제대로 음미했음이 틀림없다. 여기서는 카페라는 이름답게 커피를 판다. 그런데 커피를 주문하면, 그 때부터 커피포트로 물을 끓이기 시작해서, 주인 할아버지가 손수 종이컵에 커피를 타 준다. 

유명한 커피 메이커의 커피도 아니고, 원두커피를 정성스럽게 내려서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단순하게 본다면, 아무나 타도 괜찮은 그 흔한 커피다. 하지만 단순하고 흔한 어떤 것이, 특별한 장소에서는 특별하게 빛날 수 있다.

주인장의 그 느린 움직임을 음미할 수 있다면, 가게 옆의 허름한 의자도 정겹게 바라볼 수 있다면, 그리고 산 너머 넘어가는 석양을 혹은 야경을 조용히 감상할 여유가 있다면, 당신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그다드 카페의 향기가 어떤 색깔인지를.
 








동피랑 꼭대기는 사람들이 절대 빼놓지 않고 꼭 들르는 곳이다. 이만하면 동피랑의 성지라 불러도 될 정도다. 그 곳에 낡은 주택을 그대로 활용해서 운영중인 동피랑 구판장(매점)이 있다. 

나도 처음에는 선뜻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였다. 잠시 앉아 쉬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안에 빈 탁자 몇 개가 있는 것도 보였지만, 어쩐지 이방인이 섣불리 다가가기는 어려운 곳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반겨주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주인 할머니마저 호객행위 따윈 전혀 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낯설음에서 오는 어색함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혼자라도 좋으니 한 번 들어가보라. 인심좋은 할머니는 아무것도 사 먹지 않고 잠시 쉬어가겠다 해도 흔쾌히 받아준다. 표정이 무뚝뚝한 건 원래 그렇다, 결코 기분이 나빠서 그런 것 아니니 오해 마시라 (사실 여기 뿐만이 아니라 통영 어딜 가도 싹싹하게 어서오세요 하고 반겨주는 가게는 찾아보기 힘들다).



주인 할머니도 사실은 나름 손님을 끌기 위해 노력을 하시고, 머리를 쓰신다. 주말에 와플을 팔아볼까 하며 와플기계를 들여놓으셨고, 벽화전이 열릴 때는 특별히 비빔밥을 파시기도 했다. 그런데 비빔밥은 워낙 정성들여 제대로 해 주시는 바람에 수익이 날까 걱정될 지경이었고, 와플은 의외로 사먹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주문 들어오면 기계 전원을 넣는 정도였다. 기껏 많이 팔리는 것은 음료수 정도.

하루는 주최측 몇몇 분들과 외지에서 온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여기서 술을 마셨다. 그런데 이 가게는 술을 팔지 않는다. 술을 사 놓으면 바깥분이 다 퍼 드신다며, 술은 절대 안 판다는 철학(?)을 고수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 명 정도 모여서는 다른 데서 사 온 술을 마셨는데, 이 가게 매상은 하나도 안 올려주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기도 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안타까워서 밖에 나가 호객행위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동네 바깥보다 여기 라면이 싸다, 오늘 비빔밥 한다니 멀리 가지 말고 여기서 사 먹자라고 소심하게 홍보를 하기도 했다.



어쨌든 동피랑 구판장은 그런 곳이다. 일종의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며, 지나는 사람들 누구라도 쉬어갈 수 있는 곳. 나중에 누구에게 넘어가서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이 곳은 아늑하고 정겨운 곳이니 의심 말고 들어가시라.

혹시 가격이 비싸게 느껴진다면, 관광지라 그런 것이 아니다. 통영 자체가 물가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그렇다. 사실 이 구판장에서 팔고 있는 라면이나 몇몇 먹거리들 가격은, 통영 시내 쪽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싸다.

소문난 관광지에 으레 있는 바가지 덤탱이 가게를 생각하지 마시라. 동피랑 구판장은 절대 그런 곳이 아니다. 어머니~ 신세 끼친거 이렇게 홍보로 대신 할게요~ 저 잘했죠~? ^^/ (통영에선 '어머니'라는 호칭이 대세). 












오리엔테이션이 열리고, 자리배정이 끝난 다음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참가한 사람들이 모여서 나름 간단한 소개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할 줄 알았는데, 오리엔테이션은 참으로 싱겁게 끝나버렸다. 그림 그리시는 분들이 보통 그런 모임에 거부반응을 일으키셔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별로 한 일 없어도 해는 졌고, 사람들은 다들 어디론가 사라졌다. 일부는 다시 서울로, 어디로 자신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기도 했고, 일부는 통영시내 모텔에 묵거나 아는 사람 집에 묵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그 날 저녁부터 작업을 시작한 팀도 있었다.  

그날 저녁에 두 세 팀 정도가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다들 벽화작업을 해 본 적 있는 프로들이었다. 그러니 나같은 초보자는 아직 페인트도 못 샀을 시간에 벌써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어떤 팀은 주말에만 시간을 낼 수 있는데, 그것도 서울에서 왔다갔다 해야 하기 때문에 빨리 해야 한다며, 밤이 될 때까지 분주히 움직이기도 했다. 또 어떤 팀은 빨리 끝내고 다른 일정 잡혀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며 바쁘게 움직이는 팀도 있었다.



벽화 그리는 도중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말을 참 많이 들었다. '나도 시간만 있으면 이런 거 그려 보겠다'라는 말. 좀 늦었지만 그런 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여기 모인 사람들도 시간이 많아서 모인 건 아니라는 것. 다들 일상에서 시간 빼고, 다른 할 일 미루고, 혹은 주말에 쉬는 것 포기하고 모인 사람들이다. '시간만 있으면' 이라는 말은, 앞으로도 절대 안 하겠다라는 말과 동일하다. 그 시간, 앞으로도 절대 나지 않을 테니까.

일례로 나중에 다시 소개하겠지만, 이번 벽화전에서 눈에 띄었던 한 가족의 예를 들어보겠다. 이 가족은 소위 음악 가족인데, 딸 둘이 유럽에서 유학중이다. 마침 어찌어찌하여 한국에 잠시 왔다 갈 수 있는 시간이 났는데, 그 시간을 완전히 이번 벽화전에 몽땅 바쳤다. 귀국하자마자 벽화전에 참여해서, 벽화전 끝나자마자 출국했다. 그들이라고 한국에 친구가 없어서 안 만났을까. 이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을까. 그들 앞에서 '시간만 있으면' 이라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 부디 느껴주시기 바란다.









아직 공식적인 벽화전을 시작하기도 전에 일찌감치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 팀들의 분주한 손놀림을 뒤로하고, 나는 깊어가는 통영의 밤바다를 배경으로 장화나 찍고 있었다 (장화도 찍었다 라고 해야 할 듯).

이제 곧 사라질 벽화들이 못내 아쉬워서 낮에도, 밤에도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다. 제대로 못 찍은 사진도 있고, 흔들린 사진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도 있고, 분량 때문에 공개하지 않은 사진도 있다. 하지만 그 사진들 또한 어딘가 남아있다가 먼 훗날, 아득한 옛날을 추억하는 도구로 쓰여질 날이 있을테다.

어쨌든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벽화들을 이렇게라도 기록해 두고 싶었다. 일부는 아직 그대로 남아있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제 사라지거나 변해버린 모습을 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 모습들과 지금의 모습들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저 단순한 기록자료라고 보아도 된다. 어쨌거나 기억은, 누군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온전히 우리의 몫이니까.




p.s.
동피랑 벽화전 주체, 푸른통영21 : http://www.tyagenda21.or.kr/
동피랑 홈페이지: http://www.dongpirang.org/


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