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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고통은 항상 새롭다
    사진일기 2011. 4. 25. 01:58








    #1.
    며칠 전 동네에 작은 소란이 있었다. 월세가 꽤 밀린 세입자를 쫓아내려는 주인과, 더 버티려는 세입자 간에 몸싸움이 있었던 것. 그런데 이 세입자는 평소에도 자주 술 먹고 취해서 동네에서 소란을 피우던 사람으로, 이미 주위 사람들 중에는 그의 편이 없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밤, 집주인은 구경나온 동네 사람들에게 좀 도와달라 했고, 사람들 몇몇은 집주인을 도와 그 취객의 짐을 길거리로 끄집어 내는 데 합세했다. 더 소란 피우지 말고 멀리 좀 떠나라는 말들과 함께.

    나 역시도 그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가질 수 없었다. 그 사람 술주정 때문에 밤잠 설치고 회사에서도 제대로 일을 못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잘 풀리지 않는 글을 끄적거리며 빗소리와 함께 그 소란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문득 깨달았다. 한 사람이 철저히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여 세상으로부터 외면받고 길거리로 나동댕이 쳐 지는 것이 한 순간이라는 것을. 무서운 세상이고 두려운 사람들이며 짜증나는 동네다. 동네 이름과는 정 반대로 이 동네에 있으면 굳이 힘들이지 않고도 세상의 지저분한 면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등산객들의 일탈현장도 수없이 많이 볼 수 있고, 각종 취객들과 무서운 십대들, 어이없는 대학생들, 위험한 외국인들이 득실득실한 동네. 어서 빨리 이 동네를 떠나고 싶다. 한동안은 조용하겠거니 했던 동네는 쫓겨난 술중독 아저씨가 다시 그 집에 계속 살게 되면서 더더욱 시끄러워졌다. 그래서 더더욱 빨리 이 동네를 떠나야만 한다.
     


    #2.
    타로를 보기 시작한지 거의 십년이 되었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타로카드를 가지고 놀게 됐는지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2002 월드컵 이전부터 봤던 것은 확실하다. 그당시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타로를 봐주고 했던 기억이 있으니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타로를 봐 주는 데 적극적이었다. 아직 수련이 필요하고, 감각을 잃지 않아야 하고, 또 더 배울 것들이 항상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젠 그러지 않기로 했다. 보기보다 꽤 정신노동이 들어가는 작업이라는 것도 있고, 귀찮아진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젠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즐겁지가 않다. 어차피 평생 다시 만나 이야기 나눌 일 없을 사람들을 위해, 몇 십 분이나마 마음을 쏟아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들어 준다는 것, 분명 의미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쌓이다 보면 많은 마음의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다.



    #3.
    호주에서 해나가 그 비싼 국제전화를 걸어서 뜬금없이 훅을 날렸다. "난 말야, 내가 자진해서 일을 꼬으는 편인데 말이지, 오빠는 자의도 있고 타의도 있고 둘이 범벅으로 섞여서는 정말 다이나믹하잖아? 그래서 오빠 인생을 제 3자 입장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참 재밌단 말야. 으하하하하". 얘는 정말 사람 속 긁는 데 천부적인 재질을 타고 났다. 그래도 자기 말에 따르면, 자기는 밉지 않게 긁어서 삶에 활력을 준다나. 그래, 이번엔 그 비싼 전화비를 니가 냈으니 참아 주겠어.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긴 맞다. 난 정말 좀 정착 해 보고 싶어서 온갖 노력을 다 해도, 언제나 상황이라는 것이 나의 등을 떠민다. 그러면서도 한쪽 발엔 족쇄를 채워서 쉽사리 떠나지도 못하게 딱 잡아 놓으니, 참 웃기는 팔자다.



    #4.
    가회동에 갔다가 우연히 지나는 길에 타로를 보러 들어갔다. 타로를 봐 주는 사람이 타로를 보러 간다는 건 좀 웃기는 일이지만, 아주 가끔씩 이러는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을 써 주는 그 약간의 시간마저도 내 자신에게 내지 못 한다는 것이 참 웃기고도 서글프지만, 내 스스로 카드를 보는 것은 왠지 썩 내키는 일이 아니다. 이런건 남이 봐 줘야 더 수긍이 가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 확인을 받고 싶기도 하고. 아마도 그런 마음일 테다.

    밖에 쓰여진 오천 원이라는 글자와는 다르게, 실제로 제대로 볼 만큼 펼치는 데는 만 원이 들었다. 그래도 뭔가 부실한 펼침이었지만, 이 사람들은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니 나보다 경험치가 많을 거라는 것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결론은 내 스스로 봤던 것과 똑같지만, 좀 더 비극적으로 나왔다. 하지만 타로를 봐 주는 처자 혹은 아줌마가 상당히 호쾌한 타입이라, 걱정하지 말고 원하는 걸 하라며 부추겨 주었다.

    사람들은 그런걸 듣기 위해 일부러 이런 곳을 찾는 건지도 모른다. 문 밖을 나서면 다시 똑같은 세상이 펼쳐지지만, 적어도 그 순간 만큼은 누군가가 내 고민과 걱정을 진심으로 진지하게 들어주며 함께 해결책을 고민해 준다는 그런 위안. 그래서 나 역시도 타로를 점술보다는 심리상담 쪽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그게 마음이 평안하지 않은 사람이 상담을 해 줘서 제대로 상담이 될 리가 없다. 최소한 타로를 봐 주는 입장에서는, 봐 주는 그 순간 만큼은 행복해야 할 텐데 말이다. 어쨌든 이번에 카드를 읽어준 분은 상당히 호쾌하고 활발한 성격이라 다소 위안이 되었다.



    #5.
    아무도 모른다. 당신도 당신을 모르고, 나도 나를 모른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고통은 항상 새롭다. 소의 등을 부러뜨리는 마지막 한 줄기 지푸라기가 있듯이, 삶 또한 그러하다. 죽을 것 같은 힘겨운 상황을 아무리 많이 이겨냈다 하더라도, 앞으로 닥쳐올 시련을 그와 똑같이 다시 이겨낼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게 가능한 일이라면, 시지프스는 지금 쯤 실실 웃으며 바위를 굴리고 있겠지. 아니 애초에 그에게 그런 벌을 내리지도 않았겠지. 가난은 영혼을 병들게 하고, 고통은 육체를 파괴시킨다. 어떻게든 빨리 사슬을 끊고 벗어나지 않으면 영원한 어둠의 나락에 빠져들고 만다. 그래서 일천한 내 지식에 옛사람의 지혜를 덧붙인다. 튜링의 말이 가장 적당하다. '해답에 달하는 수많은 길이 있다면, 가장 간단한 길이 정답이다'. 그래서 가장 간단한 길을 찾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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