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끝났다. 마지막을 아쉬워하며 허탈함에 쭈뼛쭈뼛 머물던 사람들조차 하나 둘 떠나갔고, 영원히 휘날릴 것만 같았던 깃발들도 내려져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화려했던 무대들도, 요란했던 천막들도 모두 떠나가고, 시끌벅적했던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내리던 빗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뒤에 남은 바람만, 오직 바람만이 마지막까지 남아 오래오래 그곳을 배회하며 식어버린 열기를 끝까지 보듬었다. 우리의 여름은 그렇게 끝났다.
잘 지내고 있는가. 비록 굳은 날씨에 우리 서로 모르는 사이로 우연히 만났지만, 질퍽한 땅을 밟으며 온 몸을 흙투성이로 칠갑하며 나뒹굴었던 그날의 당신, 그 여름의 열기를 아직도 꺼트리지 않고 잘 간직하며 이 추운 겨울을 잘 견디고 있는가. 나는 이미 꺼져버린 불씨에 횡 한 마음을 어찌할 바 모르고 유난히도 춥디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또 한 해를 버티기 위한 동력이 될 작은 불씨 하나를 가슴 깊이 묻어두고자, 그리도 애를 써서 멀고 먼 그 길을 매일같이 오가며 함성을 질렀는데, 세상이 참 힘들긴 힘든가 보다 이미 그 열기가 온데간데 없이 모조리 식어버리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청할 수는 없는 것, 빗속에 바람 속에 사라져간 그것을 무엇으로 대신해 다시 채워 넣을 수 있을까. 안되지, 안 돼,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 뿐, 아쉬움을 묻어둔 옛 기억의 창고를 미련으로 돌이킨다면 그건 이미 욕심일 뿐. 우리는 자연을 사랑하지 않았나,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았나, 자연스럽게 행동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추억마저도 스스로 그러하게 놓아두어야 할 뿐.
벌써부터 그 여름이 그립기 시작한다. 줄기차게 내리던 비와, 떠나지 않는 먹구름, 그 속에서 주위를 맴돌던 후텁지근한 더위와, 귓바퀴를 맴돌던 온갖 소리들. 돌이켜보면 돌이켜볼수록 더욱 깊이, 깊이 빠져드는 진창 속의 늪처럼 기억은 미궁을 맴돌고, 미처 다 하지 못한 일들로 아쉬움은 더욱 커져만 간다.
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는 일, 식어버린 사랑을 탓하지 말자, 그것은 그것대로 또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니, 툭툭 털고 일어나 또다시 새로운 나의 노래를 준비하자, 이번에는 더욱 더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을 영혼의 노래를. 때가 되면 당신도 함께 어깨동무 하고 불러주리라 믿는다, 우리가 행복했던 그 여름 따스했던 체온과 함께.
잘 지내야 한다. 이제 서로 헤어져 소식조차 모르는 한 순간의 만남이었다 하더라도, 이제 어느 길모퉁이에서 마주친다 하더라도 서로 알아보지 못하는 얼굴이 되어 스쳐 지나간다 하더라도, 애써 아는 척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는 타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한 번 스친 옷깃의 인연은 두고두고 작은 실로 연결되어 세상을 가로질러 우리를 끝까지 연결시켜 줄 테니까.
부디 그 어느 사막에 가 있더라도 아직 끝나지 않은 통신을 항상 열어놓기 바란다. 언젠가는 그 어떤 다른 모습으로라도 우리 다시 만날 날이 있을 테니.
시린 바람이 분다. 나뭇가지에 한 잎 남은 잎새마저 모두 떨어져 바람은 하늘에 운다. 아무리 옷깃을 꼭꼭 여며도 서러운 바람이 파고들어 가슴이 시리다. 다들 그런가, 그렇게 살고 있는가, 지나는 사람들 행색이 초라하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눈마저 시려 멀리 지평선 아래 희끗하게 걸려 있는 산 등성이로 눈을 돌리면, 아아 이제 곧 그 구름이 몰려올 것 같다. 눈이 내리겠지, 어느 깊은 밤에. 그 새하얀 외침들이 한 겹, 또 한 겹 쌓일 때에는 다시 푸른 불꽃이 피어나려나. 잊지 않고 살다 보면 언젠가는 한 번쯤 만나게 되겠지. 그래서 그렇게 노래는 다시 또 시작되겠지. 그 때까지 안녕,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