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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지막이 일어나 산과 바다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섬 - 인천 무의도 국사봉
    취재파일 2011. 11. 12. 17:24


    여행하다가 만난 캐나다에서 온 노인은 육십 년 넘게 록키산맥 바로 아래 마을에서 살았다고 했다. 눈만 뜨면 록키산맥의 높고 우람한 모습이 보였다고 했는데, 하지만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그 산에 올라가 본 적 없다 했다.

    나중에 전혀 걷지 않고 산을 올라갈 수 있으면 그 때서나 한 번 올라가 볼 계획이라며, 비행기 타고 오가며 내려다볼 수 있는데 힘들게 거길 왜 올라가냐고, 자기는 힘 들이지 않고도 여유롭게 시간을 만끽할 수 있는 바다가 좋다고 했다. 그래서 매달 나오는 연금으로 동남아 해안 여기저기를 여행하며 다니고 있었다.



    선배들 중 한 사람은 이제 나이가 어느 정도 드니까 산에 오르는 것이 좋다며, 산이 주는 그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과 정직하게 땀 흘린 만큼 돌려주는 그 자연의 이치가 좋다고 했다. 이제서야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쏙 들어가서 파묻히는 거라는 걸 깨달았다며, 자연은 유리 벽을 사이에 놓고 구경하는 것이 아니고, 들어가 함께 동화되는 것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었다 했다.

    진정한 산행은 홀로 외로이, 하지만 자연을 벗삼아 조용하고도 아름답게 하는 것이라며, 주말마다 홀로 등산을 즐기다가 요즘은 가족과 함께 캠핑장을 찾는 것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무래도 홀로 훌쩍 떠나는 산행이 좋긴 했지만, 가족들의 원성을 이겨낼 순 없었던가 보다. 하지만 캠핑도 즐기다 보니 가족들과 함께 산을 즐길 수 있어서, 그 나름 운치와 묘미가 있다 했다.



    산이 좋은 사람도 있고, 바다가 좋은 사람도 있다. 저마다 좋은 곳을 찾아서 각자 즐거운 시간을 즐기면 될 뿐, 어떤 것이 더 좋고, 어떤 이득이 있고 하며 따질 것은 못 된다. 그런데 산도 좋고, 바다도 좋아서 둘 다 한꺼번에 보고 싶다거나, 산도 즐기고 바다도 즐기고 싶다면 어디로 가면 좋을까.

    세상에 그런 곳들은 찾아보면 많고도 많지만, 특히 서울 사는 사람들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아름다운 여행지가 있다. 바로 무의도다.
















    무의도는 인천국제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잠진도 선착장에 내려, 배를 타고 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섬이다. 공항까지 가는 시간을 대략 한 시간으로 잡고, 공항에서 섬까지 가는 시간을 대략 한 시간으로 잡으면, 서울 시내에서 두어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비교적 가까운 섬이다.

    10월 말까지는 주말마다 용유임시역까지 공항철도가 운행되고, 여름철에는 주중에도 이 역에 공항철도가 가지만, 시기가 지나면 열차가 운행되지 않는다. 그래서 평일이든 주말이든, 계절에 상관없이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인천공항에서 302, 306번 버스를 이용해서 거잠포에서 하차한 뒤, 잠진도 선착장까지 다소 먼 거리를 걸어가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잠진도 선착장에서는 무의도를 오가는 배편이 30분 간격으로 있으니, 배가 들어오나 잘 지켜보고 있으면 된다. 오후 7시 마지막 운항시간을 잘 지키면 하루 코스로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데, 이것이 무의도의 장점 중 하나다.

    주말 아침을 게으르게 늦잠으로 보내고 나서, 문득 이렇게 주말을 다 보내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고 좀 처량한 느낌이 든다 싶을 때, 느지막이 집을 나서서 무의도를 찾아가면 섬의 산이든 바다든 하나 정도는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마을버스로 선착장으로 이동해 배를 타면, 알차게 한나절 보내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무의도에서 산행은 선착장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선착장 바로 앞쪽에 ‘당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보이는데, 이 등산로를 선택하면 당산에서 시작해, 국사봉, 호룡곡산, 하나개해수욕장에 이르는 약 네댓 시간 풀 코스를 밟아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국사봉이나 호룡곡산 등산로를 택해서 오른다. 각자 취향과 체력 상황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무의도의 산은, 대부분의 섬 산들이 그렇듯 그리 높지 않아서, 가족들과 함께 등산 초보자들도 쉬엄쉬엄 오를 수 있다. 가장 높은 호룡곡산이 264미터, 그 다음으로 높은 국사봉이 236미터다.

    육지의 산들은 숫자상으론 천 미터가 넘어도 거의 절반 이상 올라간 상태에서 산을 타기 때문에 숫자가 큰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섬의 산들은 해발고도 제로(0)에서 시작해서 그 높이만큼 그대로 발로 다 밟아야 하기 때문에, 육지의 산들과 비교하면 좀 더 높게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험하진 않아도 경사가 가파른 경우도 많기 때문에, 너무 쉽게 얕봐서는 안 된다.

    무의도에서는 국사봉이 호룡곡산보다 다소 경사가 가파르고 등산로가 험한 편이다. 물론 그것도 어느 등산로를 선택해서 오르느냐에 따라 조금 달라지겠지만, 대체로 호룡곡산보다는 편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꼭대기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국사봉이 더 낫다고 하니, 힘들여서 한 번 올라가 볼 만 하다.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어서 국사봉만 간신히 올라가봤는데, 그것도 꼭대기로 향하는 가장 짧은 등산로를 택했기 때문에 아주 가파르고 힘든 돌길을 걸어야만 했다. 힘들기가 거의 관악산 수준이랄까. 산 많이 타는 사람들에게는 적당히 즐거운 땀을 살짝 흘릴 수 있는 코스고, 평소에 산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힘들 수 있는 길이었다.

    섬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바다가 등산길을 함께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일단 등산로를 들어가면 여기가 섬인지 육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우거진 나무와 수풀들 속에서, 흙먼지를 마시며 울퉁불퉁 다듬어지지 않은 돌들을 밟으며 오를 수 밖에 없다.

    내가 여길 왜 왔나, 방에서 못 잔 잠이나 더 잘 것을, 아니 섬에 왔으면 바다나 실컷 보고 갈 것을, 뭐하자고 섬까지 와서 산에 오르고 있나, 이게 정말 뭐 하는 짓인가 하며 땀을 찔찔 흘리다가,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싶은 생각이 들 때쯤, ‘어서 올라오라’는 바람의 손짓이 이마를 스친다.

    어느새 바람의 맛이 바뀌어 있다, 상쾌한 공기가 온 몸을 감싸고, 내 몸 구석구석 깨끗한 바람이 들어가고 있다는 걸 느낄 때, 어느덧 다시 바다의 냄새가 코끝을 찌르고, 넘실대는 파도소리가 하얗게 다가와 눈 앞에 펼쳐진다.

    이쪽 옆으로는 실미도와 하나개해수욕장이 보이고, 저쪽 옆으로는 작은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날이 맑으면 그 너머로 먼 바다와 가까운 섬들이 보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안개 낀 날에는 그리 멀리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먼 곳을 조망할 수 없다 해도, 안개 낀 바다 또한 그 나름의 운치가 있으니 실망스럽지는 않다. 어쩌면 다음에 다시 한 번 더 찾아오라는 섬과 바다의 따뜻한 마음이겠지.















    돌아오는 배편에 몸을 기대고 선 난간 가까이 갈매기 한 마리가 의젓하게 내려앉아 내게 말을 건다. 이번에 못다 본 것들, 못다한 것들을, 생이 바뀌듯 철이 바뀌면 다시 찾아와 느껴 보라고. 그 때는 또 다른 것들을, 새로운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무의도는 그렇게 춤 추는 파란 갈매기 같은 섬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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