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가: 최근, 누군가가 한비야 등을 옹호하는 글에 이 글을 링크 걸어놨다고 하던데, 그런 사람들 쉴드 쳐 주려고 쓴 글 아님.)
최근 한국의 인터넷에 '인도에서 실종된 한국인 수' 혹은 '인도에서 실종된 나라별 여행객 수' 등의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사진이 올라왔다. 일단 사진 한 번 보자.
최근 연일 언론에서 떠들썩하게 보도하는 인도의 성폭행 뉴스들을 배경 지식으로 기초를 깔고, 그런 상황에서 이런 제목과 사진을 딱 보면, 십중팔구 '아, 인도에서 한국인들이 엄청나게 실종됐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사진을 널리 퍼트리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고.
물론 나 역시도 처음 이 사진을 봤을 땐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인이 이런 의문을 제기했다. "3년 동안 한국인 1136명이 실종됐다면, 1년에 대략 300~400명이 실종됐다는 거고, 그럼 하루에 한 명 꼴로 실종됐다는 건데, 이건 아무리 봐도 너무 많은 수치 아닌가".
그 의문을 접하고 나서야 나도 '아, 뭔가 이상하다' 싶었고, 관련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사진의 제목으로 검색하니 관련 자료가 안 나와서, 각종 다른 키워드들로 검색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지만, 마침내 관련 뉴스를 찾아낼 수 있었다.
사진의 표와 딱 맞아떨어지는 숫자를 제시하고 있는 이 기사는, 인도의 'The Times of India'라는 신문으로, 2007년에 올라온 기사였다. 기사 원문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라.
New problem: What about 'illegal' foreigners?
기사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 수치는 인도에 정상적으로 입국한 후에,
비자 만기가 끝 난 후에도 출국하지 않고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숫자인데, 이상하게도 선진국이라고 할 만 한 나라의 사람들 수가 많다. 비자 만료 이후 불법체류한 사람들을 강제 출국 시키기도 했지만, 그들이 딱히 이렇다 할 이유를 제시하지 않아서, 이런 나라 사람들이 왜 이러는지 확실한 이유도 알 수 없다. 다만 불법체류로 남거나, 후진국 사람들이 훔친 여권 등을 이용해서 입국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의심하고 있다."
물론 인도 정부에서도 딱히 이렇다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으니, 이 수치 중에는 정말 납치, 살인 같은 범죄로 인해 실종된 사람도 있을 테다. 하지만 한국의 외무부 수치에 따르면, 아직 인도는 일 년에 300여 명의 실종신고가 들어오는 위험한 나라는 아니다. 그러니 이 수치는 불법체류를 비롯한, 여권 위변조 등의 다양한 문제가 내포되었으리라 보는 것이 옳다. 즉, 이 숫자 모두가 범죄로 인한 실종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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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추가)
위 사진이 반짝 유행하고 끝날 줄 알고 글을 대강 썼는데, 생각보다 끊임없이 나돌고, 이 글 또한 관련 자료로 언급되는 것을 보고, 조금 더 자료를 추가해 넣음.
일단, '
0404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사이트를 보자. 국가별 안전정보의 '인도'편에서 사건사고 탭을 누르면 이런 수치를 볼 수 있다. (링크주소 (여기서 '사건사고' 탭 누를 것):
http://www.0404.go.kr/country/searchView.do?menuNo=2020200&country_code=285&country_group=&warning_level=&searchKeyword=인도&pageIndex=1)
2009년 이후부터 2013년 까지, 인도에서 일어난 한국인 사건사고 건수는 평균 100~150건 정도다. 강도, 절도, 사기 등등의 모든 신고된 사건사고 건수를 합친게 저 숫자니, 당연히 실종자 수는 저것보다 적을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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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의 연도는 2003~2005년이라 돼 있으니, 그 기간에는 막 한 해에 300여 명씩 실종됐을 수도 있지 않나라고 주장할 수 있을 텐데, 그 기간 관련 공식 숫자는 아직 못 찾았다. 대신 아래 신문기사를 보자.
납치,실종,감금…해외여행 갈 곳이 없네 (중앙일보, 2006.04.06)
이 기사 마지막 쯤을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발생 한국인 피해자 수는 2448명이며...". 2006년에 작성된 기사에서 '지난해'라고 했으니, 2005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문장은 이렇게 나온다. "
국가별로는 중국에서 850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탈리아 341명·미국 282명·스페인 195명·체코 100명·일본 59명·몽골 39명·러시아 38명 순이었다".
해외 한국인 피해자 수를 순서대로 꼽았는데, 맨 마지막이 '러시아 38명'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최소한 2005년에는 인도에서 한국인 피해자 수는 38명보다는 적다는 뜻이 된다. 물론 이 피해자 수도 강절도, 폭행, 돌발사고, 사망 등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
자 그렇다면 나머지 2003년과 2004년, 두 해 동안 한국인 실종자 수가 약 1,100명이 나와야, 저 숫자가 실종자 수라고 주장할 수 있을 테다. 그건 각자 알아서 찾자. 검색하다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고 막 피곤하고, 재미도 없고,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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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인도 몇 번 갔다 온 입장에서, 인도가 그리 안전하기만 한 곳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하지만 저렇게 실종자 수가 많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리고 외교부를 딱히 신뢰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자국민 실종자 수를 몇 백 단위로 틀릴 정도로 무능하지도 않다고 본다.
마지막은 인도 100배 즐기기 가이드북 저자인 환타님의 글을 참고자료로 걸고 끝내도록 하겠다. 어차피 그렇게 믿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믿을 테니, 딱히 설득시키거나 싸우거나 할 생각은 없다. 그런다고 내가 무슨 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긴가민가하는 사람들은 이런 자료들을 놓고 한 번 생각해보시라는 거다.
인도에서 실종된 한국인이 1136명? (인도 환타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