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세계 13대 마경'이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마경(魔境)'은 '악마들의 세계'라는 뜻인데, 여기서 쓰인 마경은 꼭 그 단어인 건 아닌 듯 하다. 마귀스러운 경치 정도랄까. 실제로 '세계 13대 마경'은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곳'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고 있다.

 

어쨌든 이건 두 가지 면에서 흥미로웠다. 여행이라는 소재와 이상한 세계라는 두 가지의 조합이므로, 이 둘을 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확 끌릴 수 밖에 없다. 일단 그 리스트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세계 13대 마경 중 1위. 인도 자이푸르 반가라 성. 사진: A Frequent Traveller)

 

 

 

세계 13대 마경

 

열 세 개의 지점을 순위별로 나열해놨다. 누가 이런 걸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간략하게 알아봤다.

 

13위 :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프리피야트 (Chernobyl, Pripyat, Ukraine)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건으로 폐허가 된 유령도시. 이건 뭐, 무섭다기보다는 접근 자체가 위험한 곳.

 

12위 :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메리 킹스 클로즈 (Mary King's Close, Edinburgh, Scotland)

흑사병이 돌던 시절에 감염자들을 모아 격리시킨 지하 도시. 요즘은 관광지가 되어 들어가 볼 수 있다 한다.

 

11위 : 이탈리아 시칠리아 텔레마 사원 (Abbey of Thelema, Cefalù, Sicily)

그 유명한 크로울리가 흑마술을 시전한 사원이라고. 이것만으로도 마경으로 꼽을 만 하다. 동물의 피로 제사를 지내는 등 희한한 흑마술 기법들을 많이 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위 : 헝가리 부다페스트 동상공원 (Szoborpark, Budapest, Hungary)

공산주의가 붕괴되어 쓸모없는 공산주의자들의 동상들을 모아서 공원으로 만든 곳이라고. 특별한 전설 같은 건 없고, 그냥 밤에 무섭기 때문에 이름이 올라와 있다 함.

 

9위 : 미국 캘리포니아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 (Winchester House, San Jose, California)

미국에서 유령의 집으로 가장 유명한 곳들 중 하나라고. 총기회사 윈체스터 가의 저택. 지금은 기념품도 파는 관광지라고. 

 

8위 : 프랑스 파리 지하 카타콤 (Paris Catacombs, Paris, France)

18세기 파리에 조성된 지하 공동묘지. 총 길이가 300킬로미터가 넘는다고 하는데, 멋 모르고 샛길로 빠지면 다시 돌아 나오기 어렵다고. 지금은 일부 구간만 관광지로 쓰이고 있다 한다. 참고로 카타콤은 지하 묘지를 뜻하는 단어다. 여기서는 콕 찝어서 프랑스 파리 카타콤을 말한다.

 

7위 : 루마니아 브란 성 (Bran Castle, Bran, Romania)

드라큘라 이야기의 모태가 된 블라드 체페슈가 살았던 성. 사람들을 꼬챙이에 꿰어 죽이는 등 잔인하게 죽인 것으로 유명하다. 드라큘라 매니아들의 성지로 당연히 관광지.

 

6위 : 미국 뉴올리언스 맨착 늪지대 (Manchac Swamp, Louisiana)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있지만 결론은 귀신이 나오는 늪지대라고. 특히 1915년 허리케인에 희생된 사람들의 유령이 나온다 함. 의문의 시체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 때 희생된 사람들이 늪에 빠졌다가 나온 게 아닌가 추측 함.

 

 

(프랑스 파리 카타콤. 사진: 위키피디아)

 

 

 

5위 : 칠레 이스터 섬 (라파누이) (Easter Island (Rapa Nui), Chile)

이건 좀 의외인데, 이스터 섬의 석상들이 밤에 보면 무섭다는 이유로 마경 중 하나로 들어가 있다고.

 

4위 : 멕시코 소노라 주술시장 (Sonora Witchcraft Market, Mexico City, Mexico)

온갖 주술 용품이나 기괴한 물건들을 판매하는 시장이라고. 판매하는 물건들이 희한해서 무서운 곳이라 함.

 

3위 : 미크로네시아 추크 라군 (Truk Lagoon, Chuuk, Micronesia)

2차대전 때 일본군들이 미군 공격에 의해 수장된 곳. 함선 50여 척과 모든 일본군들이 그대로 수장됐다고. 물론 여기는 물 밑이다.

 

2위 : 미국 필라델피아 무터 박물관 (Mütter Museum, Philadelphia)

시체나 여러가지 해부된 것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라고.

 

1위 : 인도 자이푸르 반가라 (Bhangarh, India) 

무서운 곳이라 일몰 후부터 일출 전까지는 출입이 금지된 곳이라고. 세계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곳 1위로 꼽는 곳이라는데...

 

 

 

(인도 반가라 성. 입구의 사람들은 관광객들. 사진: 위키피디아)

 

 

 

인도 자이푸르 반가라

 

세계 13대 마경 리스트를 보면 좀 의아한 것들이 있다. 헝가리의 동상공원이나 이스터 섬 같은 경우는 뭐 딱히 별 이유도 없다. 그냥 가만히 보고 있으면 무서운 기운이 느껴진다는 이유만으로 들어가 있는 듯 하다. 이곳들이 왜 마경에 포함됐는지 이해가 안 된다.

 

어쨌든 전세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최고의 마경이라 꼽는다는 1등 '반가라'에 관심이 갔다. 여기는 왜 마경일까. 그래서 직접 가 볼 돈은 없으므로 인터넷으로 몇 시간 조사해봤다. 그 결과, 여기도 딱히 이유는 없다는 결론이다.

 

물론 마경으로 알려졌기때문에 티비나 신문 등 각종 미디어들이 찾아와서 '우와 여기가 그 유명한 무서운 곳이에요'하고 사람들에게 알렸고, 그렇게 알려지니까 또 그렇게 알려졌다는 이유는 있다. 정리하자면, 그냥 마경이라서 마경인 곳이랄까.

 

 

 

 

 

일단 그냥 '반가라'라고 하면 이 동네 이름이고, 정확히는 '반가라 성 (Bhangarh Fort)'이 마경으로 찍힌 곳이다. 이곳은 인도의 수도로 유명한 뉴델리(New Delhi)에서 23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고, 타지마할로 유명한 아그라(Agra)에서도 그 정도 거리만큼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자이푸르(Jaipur)에서는 대략 5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이 지역이 호랑이 보호구역이라고 잘 못 알려져 있는데, 정확히는 호랑이 보호구역 끄트머리 쯤에 붙어 있다. 바로 근처에 사리스카(Sariska) 국립공원이 있고, 거기에 호랑이 보호구역이 있다. 따라서 어쩌면 가끔 구역을 벗어난 호랑이가 나타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지역 자체가 호랑이 보호구역인 것은 아니다. 각종 동영상들을 보면 이 성 근처에도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반가라 유적지. 위키미디어)

 

 

 

반가라 성은 17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만 싱 1세가 그의 손자인 마도 싱 1세를 위해 지어준 것이라 한다. 만 싱은 무굴제국 악바르 황제 궁정에서 9인의 보석(navratan)으로 꼽히던 사람 중 하나였다 한다.

 

 

이곳에 대한 전설 중 하나는 이렇다. 옛날에 이쁜 공주가 있었는데, 이 공주를 가지고 싶었던 마법사가 물약을 만들었다. 이 물약을 공주가 몸에 바르면 스스로 마법사에게 와서 결혼하자고 엉겨 붙게 되는 것이었다. 근데 공주가 이걸 알아채고는 그 물약을 큰 바위에 뿌려버렸고, 그 바위가 마법사에게 굴러가서 마법사가 깔려 죽게 됐다. 죽기 전에 마법사는 모두 저주하겠어 했고, 이후 적의 공격으로 이 성 사람들 모두가 죽어버렸다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마법사가 돌에 깔려 죽은 건 아닌데 그냥 마을에 저주를 걸었다고만 하고 끝나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전설은 이렇다. 옛날에 이 성 일대 마을의 건설을 총괄하던 성스러운 사람(holy man)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내가 사는 지역에 건물 그림자가 들어오면 온 마을 사람들이 죽어버릴 것이야!'하고 주술을 걸어뒀다 한다. 나중에 시간이 지난 뒤에 한 왕자가 왕궁을 좀 높게 올리다가 그 마법사 영역에 그림자가 들어가게 되자 저주가 발동됐다고.

 

두 전설의 공통점은 좀 이상한 인간이 저주를 걸었다는 것 되겠다.

 

 

 

그런 전설들이 있다 해도 여기가 기괴한 곳이 됐다는 이유로는 좀 부족하다. 그런데 여기가 마경 1위가 된 이유로는 그런 전설 말고는 또 딱히 특별한 뭔가가 없다.

 

소문에 따르면 밤에 반가라 성과 그 일대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이상한 형체가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낮에는 그냥 관광지로 개방돼 있고, 실제로 사람들이 관광으로 둘러보기도 한다. 여기에 여러번 갔다 왔다는 한 인도인 여행자는 꼼꼼히 둘러봐도 서너시간이면 되고, 밤에도 친구들과 캔맥주 까먹으면서 주차장에 차 대놓고 있어봤지만 딱히 별다른 일은 없었다고 한다.

 

 

(반가라 유적지. 서너시간 잡고 둘러보면 충분하고 딱히 재밌게 할 건 없다고 함. 사진: 위키미디어)

 

 

 

사실 유적 입구에는 '일몰 후부터 일출 전까지 출입을 금지한다'라는 인도 정부부처 공식 표지판이 서 있다. 근데 이게 귀신이 나와서 그런 건지, 유적 관리를 위해 그런 건지는 알 수 없다. 이 일대가 전기가 전혀 안 들어오는 곳이라서 밤엔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그냥 그런 경고 표지판을 붙여놓은 게 아닐까.

 

이곳을 연구하는 연구소도 이 유적으로부터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며 이상하지 않은가라고 주장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 일대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그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보면, 그냥 소문이 소문을 만들어낸 곳 아닌가 싶다. 실제로 많은 여행자들의 글들을 읽어봐도 별 일 없었다는 내용이고. 유튜브 동영상 중 하나에는 인도의 한 티비 방송이 여기를 찾아와서 이상한 기계를 들이대면서 '앗! 네가티브 에너지가 느껴진다!'하는 동영상이 있다. 아마도 이런 미디어의 활약으로 소문이 점점 확대된 것 아닐까.

 

물론 인도 시골동네의 황량한 곳들은 무서운 곳이기도 하다. 도적이나 강도나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무섭다고 하면 동의하고 수긍할 수 있다.

 

 

(반가라 유적지. 사진: 위키미디어)

 

 

비단 핫스팟이라고 소문 난 곳들이 아니더라도, 그냥 인적 드문 곳의 아무 건물에나 들어가서 전기 없이 밤에 혼자 있어보면 무서울 수 밖에 없다. 이 반가라 유적지도 아마 그냥 그런 곳들 중 하나로 소문이 난 것 뿐 아닐까라는 게 종합적인 내 판단이다. 물론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뭔가 괴이한 어떤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나에게 여비를 대주면 내가 직접 한 번 가보도록 하겠다.

 

 

p.s. 참고자료

* Bhangarh Fort (위키피디아, 영어)

* Bhangarh Fort: The 'most haunted' place in India? (The times of india)

* Bhangarh Fort Haunted: Stories  Behind this Mysterious Place

* Bhangarh Fort : India's most haunted place

* Bhangarh : The most haunted place on earth (India Travel Forum, 직접 다녀온 사람)

* 세계 13대 마경 (나무위키)

* Mystery of Bhangarh Fort--India's most haunted place (유튜브 동영상, 네가티브 에너지 볼 만 함)

* Another Night at Bhangarh (유튜브 동영상. 한 무리 사람들이 찾아가서 밤에 있어봄. 주의!: 아무 일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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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