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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과 변기
    잡다구리 2016. 12. 16. 01:51

    전라북도 익산시에는 '왕궁리 유적'이 있다. 정식 명칭은 '익산 왕궁리 유적'인데, 백제 무왕대에 왕궁으로 건립되어 사용하다가 후대에 중요 건물을 헐어내고 사찰을 건립한 것으로 확인된 장소다. 대략 백제 후기부터 통일신라 후기 때까지 존재했다고 한다.

     

    큰 규모의 백제 왕궁 터라서 발굴조사 작업도 근 20년간 했을 정도다. 왕궁을 완전히 옮긴 천도였는지, 아니면 행정수도 성격의 별도였는지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어쨌든 백제시대 중요한 왕궁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왕궁리 유적에서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화장실 터도 발굴되었다는 점이다. 칸막이 없이 몇 개의 구멍이 나 있고, 거기서 볼일을 보면 구덩이 아래에 변이 쌓였다. 그렇게 일정정도 쌓이면 수로를 통해 물과 함께 흘러 나가도록 설계 돼 있다. 지하수로 오물이 흡수되지 않도록 처리한 것도 특징이다.

     

    여기서는 화장실 터와 함께 '변기형 토기' 2점도 발굴됐다. 지금 흔히 말 하는 '요강'이라고 보면 되겠다.

     

    (왕궁리 유적의 대형 화장실 터. 이 위에 나무판을 깔았을 것이다. 사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왕궁리 유적에서 출토 된 뒤처리용 나무막대 (똥 닦는 나무). 사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이 시대 왕과 왕비가 이 화장실을 이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요강은 사용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무래도 뒷간까지 오가기 영 귀찮으니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요강은 '충남 부여군 군수리'에서 발굴됐다. 남성용과 여성용이 나왔는데, 남성용은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라 하여 '호자'라고 한다. 여성용은 큼지막한 입구 위에 걸터앉기 좋게 만들어 놓은 특징이 있다.

     

    왕궁리 유적에 건립된 '왕궁리 유적 전시관'에서는 몇 년 전에 이런 요강들을 모아서 '변기형토기'라는 제목의 특별전시를 한 적이 있다. 옛날 요강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지금은 팜플렛만 남아있다.

     

    (변기형토기 특별전시 팜플렛. 이미지: 왕궁리유적전시관)

     

    여기서 '매화틀'은 조선시대 왕이 사용한 이동식 변기다. 예전에 영화 '왕의 남자'에 나와서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아는 도구다 (매화틀 또는 매우틀이라 한다).

     

    나무로 된 틀 아래 청동그릇을 놓고 변을 보는 형태로, 왕 전용 매화틀이 궁궐에 세 개가 비치되어 있었고, 왕비도 자신의 매화틀을 이용했다고 한다.

     

    (매화틀.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시대에 높은 신분의 사람들은 가마를 타고 행차할 때 요강을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한다. 먼 길을 갈 때 가마 안에서 일을 본 것이다. 남성 뿐만 아니라 여성도 그랬다 하고, 요강 중에는 똥도 받아내는 것이 있었다 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는 변을 볼 때 소리가 나지 않도록 천으로 감싼 것도 있었다 한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볼 때, 아마도 왕도 공식적으로 어딘가 행차할 때 매화틀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을까 싶다. 왕인데 갑자기 급하다고 숲 속을 뛰어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건강상 이유로도 자신이 사용하던 변기를 사용하는 게 여러모로 안전하고 편안하지 않았을까.

     

    이런 역사를 떠올려보면 최근 어떤 분의 행태는 좀 이해하기 어렵다. 자신이 사용하던 변기를 사용한다는 면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는데, 전용 변기를 들고 다니지 않고 남의 집 변기를 뜯는 것은 좀 이해하기 어렵다.

     

    > 인천 시장이 박근혜 대통령 때문에 변기 바꾼 사연 (YTN, 2016.12.09.)

     

    > 박 대통령의 유별난 위생관념 '군 부대 변기도 뜯어 고치게했다?' (국민일보, 2016.12.15.)

     

    > 변기공주, "박근혜 대통령 하룻밤 묵는 영국호텔에 매트리스와 샤워꼭지 바꿔..연예인 메이크업 부스처럼 거울과 흰 장막도 요구했다" 논란 (조선일보, 2016.12.14.)

     

    매화틀이나 요강을 몰랐던 건지, 아니면 어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요강 하나 들고 다니면 해결 될 문제를 참 어렵게 해결했다는 생각이 든다.

     

    (요강. 사진: e뮤지엄)

     

    요강을 사용했더라면 세계 정상들이 그걸 보고는, "오우, 추운데 화장실 안 가고 안방에서 볼 일을 볼 수 있어! 원더풀!"하며 감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요강이 또다른 한류 문화가 됐을 수도 있었는데 참 안타깝다.

     

    이참에 옛날 생활용품 중 하나였던 요강을 21세기적으로 재해석해서, 뭔가 IT 비슷한 것도 융합할 테면 융합해서 멋있고도 실용적으로 한 번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공공화장실을 가면 되기 때문에 별 필요가 없겠지만, 상위 0.0001%만 사용하는 럭셔리 부띠끄 잇템이 될 수도 있지 않을 수 없지 않을 것 만은 아니지도 않을 수 있지 않지 않을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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