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 관절염으로 몸이 불편한 여자 모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친오빠가 모든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그걸 다 날려먹고 집을 팔아버려 고모댁에 얹혀 산다. 딱히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친척집에 얹혀 산다면 대략 어떤 생활이 펼쳐질지 안 봐도 뻔하다.

 

어느날 동네 가게에서 가정부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임 없이 에버렛의 집으로 간다. 에버렛은 고아로 조그만 집에서 살며 물고기와 장작 등을 팔면서 생활하는 남자. 괴팍하고 사회성 없는 성격으로 동네 사람들이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둘이 만나서 조금씩 천천히 서로에게 물들어가는 사랑 이야기.

 

 

영화 '내 사랑', 원제 '모디(Maudie)'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캐나다 전통 화가로 평가받고 있는 모드(Maud)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겼다.

 

모드가 남편을 만나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할 때를 뚝 잘라내어 보여주기 때문에, 예술보다는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아티스트의 사랑이라는 것이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형태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도 그렇다. 그래서 흔하지만 흔하지 않은 사랑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세상이 좀 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이제는 방구석 외톨이조차도 완전히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지 않는 시대다. 인터넷으로 커뮤니티나 SNS, 메신저 등을 거의 대부분 하는 세상이라, '일반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생각들이 더욱 큰 파장으로 펼쳐지고, 이것이 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이어서 일반적인 건지, 일개 집단이 큰 파장을 일으켜 널리 퍼뜨릴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이라 여겨지는 건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행복이나 사랑이라는 감정마저도 일반적인 개념이 널리 퍼져있다. 대체로 행복이란 즐겁고 아름답고, 편안하고 풍족한 상태에서 온다고 믿어진다. 그런 행복을 가져다주거나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해야만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는 '조건부 사랑에 대한 믿음' 또한 널리 퍼져있다.

 

이런 세상에서라면 모디와 에버렛은 지지리 궁상 찌질이 커플일 뿐이다. 영화의 대사처럼, '낡은 양말 한 쌍 같이' 말이다. 모디가 화가로 성공하기 이전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림 교육을 받은적도 없는 너무 단순하고 희한한 어린아이 같은 그림을 고작 판자나 껌종이 같은 것에나 그리고 있는 때 말이다.

 

누군가는 모디에게 너는 고작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조건으로 무급 식모살이를 하고 있을 뿐이라며 떠나라고 조언할 것이고, 누군가는 에버렛에게 집안 일은 거의 안 하고 그림이나 그리는 여자를 뭐하러 먹여 살리냐고 핀잔을 줄 것이다.

 

하지만 그 둘에겐 그것이 더 할 나위 없는 행복이고 사랑이다. 고통과 슬픔 그리고 부족함 속에서도 행복이 있을 수 있고, 미움과 연민, 마음에 들지 않는 수많은 조건들과 가난, 그리고 같음과 다름과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것조차 받아들이는 그 모든 것들의 총합이 사랑일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사랑은, 집에서 기르던 개보다 못한 존재에서 나보다 소중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는 그 과정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시종일관 담담하게 둘의 사랑이 커져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너무나 슬프다. 특별히 슬픈 장면이 나오지도 않는데도 그런 것은, 비단 이 영화가 아일랜드 감성으로 만들어져서 그런 것만은 아닐 테다.

 

너무나 많은 일반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 속에서, 사회적 관념 속에 침몰해버린 행복이나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시 개인적인 영역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돼서 그런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이해할 수 없는 삶일 테고, 누군가는 현실에 묻어둬야만 하는 이야기일 테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아픈 사랑도 사랑일 수 있다.

 

p.s. 참고

* Maud Lewis: From the Permanent Collection - Art Gallery of Nova Scotia

 

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