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텔에 묵었지만 역시 편하긴 편하더라. 돈이 아까워서 퇴실 시간까지 조금이라도 더 버티며 뒹굴거리고 싶었지만, 늦게 출발할수록 갈 수 있는 거리가 줄어든다. 그러면 얼마 못 가서 또 잠자리를 찾아야 할 테고, 시간에 쫓기면서 장소를 찾다보면 또 돈을 써야만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새벽에 일어나 길을 나설 수 밖에.

 

다행히도 오늘은 비가 뚝 그쳤다. 비는 그쳐도 구름은 좀 놔두고 갔으면 좋으련만, 구름도 다 걷어가버려서 아침부터 햇볕이 쨍쨍. 어제는 빗물에 익사할 뻔 하고, 오늘은 햇볕에 타 죽을 것 같다.

 

전날 밤부터 충주댐을 갈까말까 고민했는데, 충주댐은 따로 시간내서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곳이라서 그렇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자체가 이런 댐들을 구경하라고 만든 프로모션용 길이라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 따로 시간내서 다녀와야 하는 댐은 영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안동댐 따위는 아예 안 갈거라고 미리 결정한 상태였고.

 

근데 충주댐 인증센터는 충주역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이니, 평생에 한 번 쯤은 가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어차피 별 거 없을 것을 예상했지만, 평생에 딱 한 번일 테니까.

 

국토종주 자전거길: 충주댐 인증센터

 

그래서 얼렁뚱땅 충주댐 인증센터를 찾아가봤다. 역시나 그리 의미있는 길은 아니었다. 공업단지를 지나가는 길이라 그리 볼만 한 것도 없었고, 은근히 오르막내리막이 좀 있기도 했고. 그나마 공업단지 들어서기 전까지는 자전거길이 아니라 시내 주택가 쪽을 구경하며 달려서 충주 시내를 구경했다는 의미는 있었다. 어차피 다시 돌아와야 하니까 돌아올 때는 자전거 길을 탔고.

 

굳이 충주댐까지 가는게 무의미하다는 걸 아는 배려였는지, 충주댐 인증센터 스탬프 찍는 곳은 충주댐 관리단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곳에 놓여 있었다. 국토종주 자전거 여행을 하다보면, 이게 국토종주인지 케이워터(K-water) 순회방문인지 헷갈릴 정도인데, 그나마 여기는 대충 여기까지 왔다고 도장 찍고 돌아설 수 있게 해놔서 마음에 든다.

 

충주댐 인증센터 부스 옆에는 편의점과 꽤 넓은 쉼터도 있어서 잠시 쉬어갈 수도 있었다. 바퀴에 바람 좀 넣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되돌아나갔다. 애초에 충주댐을 볼 생각은 없었고, 인증센터만 가 볼 생각이었으니까 미련없이 돌아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처럼 여기서 다시 돌아가더라.

 

국토종주 자전거길: 충주댐 가는길

 

국토종주 자전거길: 충주 - 수안보 온천

 

자전거길을 달리다보면 정말 오랫동안 관리를 안 한 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비단 충주쪽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런 길들이 많아서 새삼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거의 십 년. 이제 붐이 좀 꺼지기도 했지.

 

더군다나 현지인들은 더 좋고 편한 길을 찾아서 하이킹을 즐긴다. 그래서 억지로 만든 자전거길은 이용도가 점점 더 떨어질 수 밖에.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공식적인 국토종주 자전거길은 유명무실해지지 않을까 싶다. 이런 길들을 보다가 자전거길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한 번 완전히 다 가봐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영 피곤한 길들은 제쳐두고.

 

국토종주 자전거길: 충주 - 수안보 온천

 

전국적으로 자전거길에 만족할 만 한 쉼터는 별로 없다. 대체로 의자만 있으면 됐지, 그늘이 왜 필요하냐라는 식으로 만들어진 쉼터가 많고, 그나마 쉼터가 있기라도 하면 다행일 정도다.

 

그래서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쉼터가 다리밑이다. 여러 사람이 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공간이 넓으면서도 그늘도 있고, 대체로 시원하기도 하고. 그래도 자전거길이라고 만들어놨으면 화장실은 좀 띄엄띄엄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국토종주 자전거길: 탄금대 인증센터

 

목행교 지나서 탄금대 인증센터까지는 강변쪽으로 길이 잘 깔려있더라. 이 앞에 충주 세계 무술공원이 있어서, 뭔가 무술적인 어떤 것들이 잔뜩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냥 공원에 경기장만 덩그러니.

 

국토종주 자전거길: 충주 - 수안보 온천

 

국토종주 자전거길: 탄금대 계단

 

탄금대가 유명해서 구경이나 해볼까 싶었는데 올라가는 계단을 보고는 포기. 힘도 들겠지만 여기 시간 쏟으면 오늘 충주를 벗어나지도 못 할 것 같다. 그냥 이 앞에서 강을 바라보며 탄금대 앞까지는 와봤다 할 수 밖에. 뭐 가야금 소리도 안 들리고.

 

국토종주 자전거길: 충주 무술공원

 

국토종주 자전거길: 충주 - 수안보 온천

 

길을 잘 못 드는 바람에 만날 수 있었던 편의점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2단 도시락이 밥은 많은데 가격은 크게 비싸지도 않아서 딱 좋던데, 이게 잘 없더라. 오늘은 점심시간 되기 한참 전에 편의점에 도착해서 남아있었던 듯.

 

이번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메이저 편의점 세 개의 거의 모든 도시락을 먹어봤다. 편의점 도시락 투어라고 해도 될 정도. 편의점 도시락 리뷰를 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다 비슷비슷하기도 하고 리뷰라고 딱히 쓸 것도 없고.

 

국토종주 자전거길: 충주 - 수안보 온천

 

충주운동장에서 차도를 건너서 좀 울퉁불퉁한 길 쪽으로 가야 새재 자전거길로 갈 수 있는데, 길을 건너지 않고 쭉 가다가 여기를 놓쳐버린 거였다. 그래도 1 킬로미터 정도 갔다가 편의점에서 밥도 먹고 다시 돌아왔으니 그만하면 됐다. 길을 잘 못 타지 않았다면 점심도 못 먹었을 테니까.

 

국토종주 자전거길: 충주 - 수안보 온천

 

국토종주 자전거길: 충주 - 수안보 온천

 

충주는 정말 다양한 자전거길들이 다 모여있다. 비포장도로인 것 까지는 괜찮은데, 뾰족한 자갈들이 많아서 여기를 자전거로 빠르게 달리면 펑크나기 딱 좋겠더라. 여기저기 움푹 파인 구덩이때문에 제대로 앞으로 나갈 수도 없었고. 자전거길이라기엔 좀 심하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충주 - 수안보 온천

 

수많은 자전거들로 인해 모서리가 자연스럽게 깎여나간 턱을 보라. 인도에 아스팔트 깔고 마크 찍어넣고 선 그을 생각은 했으면서 어떻게 이런건 어떻게 할 생각을 못 했을까. 아주 조금의 관심만 가졌어도 좋았을 텐데.

 

국토종주 자전거길: 달천

 

계속해서 달천 옆으로 난 길을따라 수안보 쪽으로 간다. 이쪽은 구불구불한 좁은 차도로 달려야 해서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좁은 길에서도 차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린다.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걸어서 가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더라. 대부분 등산복에 스틱을 짚으며 다니는데, 이날 여기쯤에서 본 두 청년은 동물 분장 옷을 입고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걷고 있었다. 대체 뭐지 싶었는데, 한창 내리막길을 달리는 중이라 그냥 보고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대체 뭐였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충주 - 수안보 온천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달천. 단맛이 나는 맑은 물이라는 달천. (...)

 

국토종주 자전거길: 수주팔봉

 

왕이 여덟개의 봉우리가 비치는 물가에 발을 담그고 논 꿈을 꾸고는 찾아왔다는 수주팔봉. 물길을 낸다고 봉우리 한가운데를 싹뚝 잘라버려서 인공 폭포가 생겨 있다. 원래 옛날엔 저 폭포가 없었다고. 보기에 따라 폭포가 있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어쨌든 영화 등에서 틈틈이 나와서 익숙한 곳.

 

사진에선 그냥 병풍 같은 돌덩어리들이 좀 놓여 있구나 정도만 느껴질 텐데, 실제로 가보면 한동안 넋 놓고 바라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기묘한 곳이다. 구불하게 돌아나오는 물길 옆으로 커다란 돌 봉우리가 길게 드러누워 있고, 그 앞쪽으론 꽤 넓은 자갈밭이 있어서 여름철에 드러누워 있기 딱 좋다. 아마도 달밤에 꽤 아름다운 모습을 할 것도 같은데, 아직 그 풍경을 볼 기회는 없었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수주팔봉

 

수주팔봉이 내려다보이는 길 가에는 팬션 같은 것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팔봉교 아래쪽 자갈밭은 여름철에는 누구나 야영을 할 수 있는 야영장으로 개방한다고 한다.

 

시간이 아니라 돈만 좀 여유가 있었다면 이런데서 하룻밤씩 야영해보며 다니면 좋을 텐데, 시간이 있어도 돈이 없어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물론 야영하는데는 돈이 안 들겠지만, 물과 컵라면이라도 사먹어야 할 테고, 쉬었다가면 그만큼 일정은 늘어나고, 일정이 늘어나면 그게 또 다 돈이고. 아이고 돈.

 

국토종주 자전거길: 충주 - 수안보 온천

 

수주팔봉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좁은 차도를 달려서 산 허리로 난 얕은 고개를 넘어가면 드디어 수안보. 살면서 한 번 쯤은 들어봤을 온천으로 유명한 바로 그 동네. 고개고개 넘어가다가 어느순간 평지가 툭 던져지는 형태로, 옛날엔 정말 첩첩산중 외딴 마을이었을 곳이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수안보 인증센터

 

수안보 인증센터는 마을 입구 수안보 물탕공원 앞에 세워져 있다. 그래서 자전거길을 살짝 벗어나서 마을 쪽으로 들어서야 한다. 자전거길에서 백 미터 정도 벗어나는 거라서 별로 부담스럽지도 않고, 이쪽길로 쭉 앞으로 나가면 다시 자전거길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다시 돌아 나가지 않아도 된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수안보 물탕공원

 

계획 없이 자전거 타고 달리다가, 대강 오후 4시쯤 되면 길에 퍼질러 앉아서 오늘은 어디서 잘까 지도보고 탐구하며 다녔기 때문에, 다른 날도 그랬지만 이날도 잠자리 계획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마침 물탕공원 앞에 다다르니 오후 4시. 지도와 검색을 동원해서 잠자리를 찾아봤지만, 이 근처에선 딱히 대책이 없었다. 게다가 조금만 앞으로 전진하면 소조령이고, 그것 넘어가면 문경새재. 딱히 잘 곳이 있어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마침 인증센터 부스 안에서 본 광고지의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애초에 수안보에서 숙박을 할 생각을 못 했던 건, 이 동네 숙박시설이 비싸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전거 여행자 1인당 2만 원'이라는 전단지를 보고는, 이 정도면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가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찾아간 코레스코 호텔 게스트하우스.

 

국토종주 자전거길: 수안보 코레스코 호텔 게스트하우스

 

겉모습만 딱 봐도 그냥 수안보의 흔한 호텔이다. 그런데 방 한 칸에 간이침대(소위 라꾸라꾸)를 몇 개 깔아놓고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한다. 그 도미토리 룸이 1박에 2만 원. 대충 잠만 자고 아침 일찍 떠나는 자전거 여행자에겐 좋은 조건이다.

 

그런데 데스크에 가서 물어보니 오늘은 게스트하우스에 손님이 꽉 찼단다. 아니 그럼 나는 어디로 가란 말이오 이 엄동설한에...는 아니지만, 어쨌든 돌아서려하니 사장님이 가족룸을 그 가격에 주겠단다. 나야 거절할 이유가 없지. 당연히 오케이.

 

국토종주 자전거길: 수안보 코레스코 호텔 게스트하우스

 

근데 방이 심하게 넓다. 대가족을 위해 만든 가족룸인 듯 하다. 거실도 있고 방도 있는데, 과장 하나 안 보태고 방에만 성인 대여섯 명이 넓직하게 누워 잘 수 있을 정도다. 아이고 부담스러워. 게다가 오늘은 단체손님도 있기 때문에 저녁에 부페 식사를 제공한다며 밥 먹으러 내려오란다. 원래 게스트하우스 숙박자는 아침만 부페식으로 주는데 말이다. 아이고 더 부담스러워. 하지만 부담은 즐겨야 제맛.

 

돈도 돈이지만, 딱히 타이밍도 잘 맞지 않고 해서 거의 여행 내내 편의점 도시락이나 컵라면만 먹고 다녔는데, 여기서 제대로 된 밥을 먹었다. 그리고 해 지기 전에 숙소를 잡았으니 저녁에는 수안보 동네 구경도 하면서 노닥거릴 수 있었고. 거지꼴 고행 여행에 가끔 있는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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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충주시 살미면 토계리 | 수주팔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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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