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하우스에서 편하게 잠을 자고, 약간 늦게 일어나서 아침 샤워도 하고 짐을 챙겼다. 하지만 아침부터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는 상황이라, 짐을 다 챙겨 나와서도 한동안 멍하니 비를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비가 완전히 그치지는 않을 날씨고, 조금 약해졌을 때만 열심히 달리는 수 밖에 없었다. 장대비가 잦아들고 부슬비로 변했을 때를 틈타서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아침 샤워는 말짱 도루묵. 

 

연일 비가 쏟아지니 자전거길을 달리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자전거길 주변 상인들 말이, 작년엔 여름에 비가 별로 안 와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올해는 여름 시작할 때부터 비가 많이 와서 사람이 확 줄었다고 한다. 어쩐지 부산까지 가는 국토종주 자전거길에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다 싶더니만, 모두 비 때문이었나보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강천섬 게스트하우스에서 강천섬까지는 아주 가까운 거리인데도 중간에 폭우가 쏟아져서 또 잠시 쉬었다 갔다. 오늘도 멀리 쭉쭉 나가기는 틀렸다. 무더운 여름이니까 시원하게 비 맞아가며 쉬엄쉬엄 가는 것도 즐겨보면 나름 재밌다.

 

문제는 길 중간에 카메라를 꺼낼 수가 없다는 건데, 약한 비가 내릴 때는 그냥 꺼내서 찍었다. 그러다보니 여행 끝날 때 쯤엔 카메라에 물이 들어갔다가 마르다가를 반복해서 거의 고장나버렸다. 십만 원 짜리 똑딱이를 거의 일회용 카메라 처럼 사용하게 되는구나.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강천섬은 작은 섬을 공원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었는데, 아침 8시도 안 된 시간에 이미 마을 주민들이나 관광객들이 여기저기 구경을 하고 있었고, 정자에도 사람들이 꽉 차게 모여 앉아있었다. 한쪽에서는 아침부터 풀을 깎는 등 작업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흙길이기도 했고, 작은 섬이라 자전거로 달리면 금방 끝나기도 했지만, 아침에 상쾌하게 달려볼만 한 곳이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강천섬에서 마을 쪽으로 접어들면 의외로 많은 펜션과 민박집이 있다. 이 동네가 은근히 관광지인가보다. 마을 버스정류소에서 다시 폭우를 피해 잠시 앉아있었다. 버스 시간표를 보다가, 그냥 버스 타고 집으로 가야하나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마침 지나는 버스를 보니까 시내버스 같은 것이어서 자전거를 안 실어줄 것 같다.

 

자전거 여행에서 가장 힘든 날이 삼일째 쯤이다. 첫 이틀은 집에서 나온 체력으로 버티면서, 새로운 곳들의 경치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삼일째 접어들면 다 비슷비슷한 경치에, 비슷비슷한 길이 무의미하게만 느껴지고, 체력도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자전거 여행에서는 이때쯤 슬슬 엉덩이가 아파온다.

 

하지만 오래달리기도 조금 달리다보면 죽을 것 같은 느낌을 받다가, 그 고비만 넘기면 좀 나아진다. 그 후엔 오히려 달리는 기쁨을 만끽할 수도 있다. 자전거 여행도 마찬가지다. 죽을 것 같은 고비만 넘기면 그 다음부터는 그냥 대충 다닐 만 해진다. 엉덩이에 굳은살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비슷비슷한 경치에 무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고만고만한 길들이 싫증나서 잠시 삽질도 했다. 물론 의도하고 저지른 삽질은 아니다. 부평리에서 부론면 쪽으로, 그러니까 강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되는 길에서 엉뚱하게 원주 쪽으로 가버린 것. 

 

분명히 자전거길을 잘 따라갔는데 가다보니 원주 표지판이 자꾸 나왔다. 결국 경동대메디칼캠퍼스 근처까지 갔다가 길을 잘 못 든 것을 확인하고 다시 돌아나왔다. 다 똑같은 시골길이니, 표지판도 제대로 없으면 지도를 보기 전까지는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다. 정말 표지판이 부실하구나.

 

그런데 왔던 길로 다시 나가자니, 신나게 내려왔던 내리막 길이 생각났다. 그 길을 다시 가면 오르막 길이다. 그래서 이쪽도 강 가로 가면 평지이지 않을까 싶어서 다른 길을 찾아보다가 또 다시 삽질을 했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지도를 보니 근처에 섬강 자전거길이 있길래 한 번 가보자 싶어서, 논밭 사이 길을 헤쳐서 자전거길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쪽 구간은 폭우로 인한 낙석 등으로 길을 폐쇄하니 우회해서 돌아가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알려주는 우회로는 바로 내가 왔던 그 길. 비포장 자갈길을 천천히 걸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노력한 보람도 없이 다시 돌아가야만 해서 화가 날 정도였다.

 

그냥 가볼까 싶기도 했지만, 낙석주의가 아니라 낙석으로 인해 길을 폐쇄한다니, 갔다가 또 길이 막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끗이 포기하고 다시 왔던 길로 돌아나왔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섬강교 삼거리가 섬강 자전거길과 남한강 자전거길이 만나는 곳이라서 헷갈렸던 거다. 헷갈렸다기보다도 눈에 잘 띄는 자전거길만 따라가다가 섬강 자전거길로 접어든 거였다. 남한강 자전거길로 가려면 하나로마트 4km 혹은 부론면 가는 길로 표기된 쪽으로 가야 한다.

 

미리 지도를 유심히 봐놨다면 하지 않아도 될 실수였는데, 이 삽질로 왕복 8킬로미터 고갯길을 갔다왔다. 이 삽질만 하지 않았어도 충주에서 좀 더 느긋하게 다닐 수 있었을 텐데. 모든게 고약한 운명이겠지.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이 근처 표지판에선 계속해서 부론이 나올 정도로 부론은 '리' 치고는 조금 큰 동네였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많은 뭔가가 있는 건 아니지만, 흔히 시골에서 읍내 간다고 할 때의 그 읍내 정도 규모다. 자전거길에서 약간 벗어나서 부론리 안쪽으로 들어가면 중국집을 비롯한 많은 식당들을 볼 수 있다. 전국 어디라도 하나로마트가 있는 곳이라면 근처에 중국집 정도는 있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이제 10시 조금 넘은 때라서 식사가 되는 곳이 없었다는 것. 중국집마저도 이제 준비하는 중이라고 퇴짜 맞았다. 결국 하나로마트 식단으로 빵과 우유를 먹었다. 후식은 콜라, 디저트는 오백 원 짜리 아이스크림. 하나로마트는 편의점 처럼 안에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그러면 밖에 땅바닥에 퍼지고 앉아서 먹으면 된다. 흙과 친하게 지내는 자연주의 여행, 정말 멋지다.

 

물론 큰 길 가에 아침식사 된다고 써놓은 집들이 있기는 한데, 그런 곳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침식사 된다고 써놓은 식당들이 대개 좀 비싼 면도 있고 기타등등. 물론 개인차가 있을 테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부론에서 남한강대교를 건너면 강원도에서 썩 꺼지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이 구간이 국토종주 자전거길에서 유일한 강원도 구간이다. 그래봐야 강원도 끄트머리 약간 걸치고 나오는 것 뿐이라서 별로 강원도 느낌도 안 나지만.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비내섬까지는 은근한 내리막이 많고, 강변으로 길도 잘 닦여 있는 편이다. 그런데 마땅히 쉬어갈 곳이 없다. 중간에 띄엄띄엄 어쩌다 하나씩 쉼터가 있기는 있다. 하지만 충청북도는 희한하게도 위 사진처럼 쉼터에 구멍 뚫린 천장을 설치해놨다.

 

차양막이 아니고 그냥 조형물 개념이다. 이건 비를 못 막아주는 건 물론이고, 햇볕도 못 가려준다. 즉,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예술을 사랑해서 예술 하려고 설치해놓은 설치미술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큰 나무 같은 것도 전혀 없어서, 충주시에 접어들 때까지는 쉴 때도 땡볕 혹은 비를 맞을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충주시에 접어들면 지붕 있는 버스 정류소에서 쉴 수 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쉼터에 저런걸 설치해놨는지 알 수가 없다. 덕분에 비내섬까지는 거의 쉬지않고 자전거만 탔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비내섬 인증센터 바로 옆에는 '비내쉼터'라는 가게가 있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공판장 개념인 듯 하다. 부론면과 충주시 사이 자전거길에서 거의 유일한 가게다. 그래서 이쪽 길을 달리는 자전거들이 일단 여기서 잠시 쉬어간다.

 

한여름인데도 바람이 미친듯이 불어서, 세워놓은 자전거가 바람에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일단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쉴 수 밖에 없는 상황. 지구 멸망의 날에 마지막 남은 가게 같은 독특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가게 내부도 뭔가 휑한 분위기이기는 한데, 안쪽에 앉을 자리가 많이 있어서 이래저래 쉬어가기는 좋다.

 

컵라면을 먹으면서 잠시 쉬면서 이쪽 길을 오가는 자전거족을 많이 봤는데, 삼십 분 가량 되는 시간동안 한 열 명 정도 봤다. 도시를 제외한 국토종주 자전거길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본 날이었다. 대부분 여주와 충주 구간만 잠깐 달리는 사람들이었고, 몇몇 대학생들이 국토종주를 하고 있었다. 모두 텐트 없이 숙소를 잡아서 여행한다고 했는데, 대학생들에겐 숙박비가 굉장히 큰 부담이어서 점심도 굶으며 돈을 아낄 지경이었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좀 재미있는 건, 나중에 제주도에서도 몇몇 경우를 봤는데, 친구끼리나 서너명 단체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모텔 같은 곳보다 게스트하우스를 선호하더라.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는 건 똑같고, 모텔이 돈을 모아서 내면 더 싸게 치는데, 3명이 돈을 내면 딱 떨어지지 않아서 그냥 각자 1인분씩 내는 게스트하우스를 선호한다고. 나는 좀 이해가 안 되던데, 어쨌든 그런 사람들이 많더라.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충주 쪽은 자전거길이 참 다양하다. 잘 닦인 아스팔트 길도 있고, 시멘트 길도 있고, 일부 구간은 비포장 길도 있고, 말라 비틀어진 우레탄 길도 있다. 거의 자전거길 종합 백화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하나도 즐겁지 않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남한강 자전거길은 충주조정지댐을 건너서 이어지는데, 이 길을 따라가면 강을 따라 빙 둘러서 충주 시내로 들어가야 한다. 댐을 건너지 않고 작은 차도를 타고 내려가면 탄금교를 통해서 탄금대로 바로 건너갈 수 있다.

 

길을 아는 현지인들은 대부분 탄금대 쪽으로 바로 가던데, 아마도 충주댐을 구경시키려고 공식 자전거길을 그렇게 내놓은 듯 하다. 나도 별 생각 없이 남한강 자전거길 표식이 안내하는대로 따라가서 멀리 빙 돌아서 충주 시내로 들어갔다. 이쪽은 미리 지도를 봐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안 보이는 구간이다.

 

차도를 좀 타야하지만, 굳이 충주 북쪽으로 가야하거나 충주댐을 가야하는게 아니라면, 탄금대 쪽으로 바로 가는 길을 이용하는게 편하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충주 근처 남한강 가에는 낚시터도 많고, 공원도 있고, 쓰레기도 아무렇게나 버려놨고, 총인지 대포인지 뻥뻥 쏘는 곳도 있더라. 이쯤에서 야영을 해볼까 싶었지만 분위기가 영 별로라서 빨리 벗어났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목행교 가는 도중에 또 폭우가 쏟아졌다. 지붕 있는 버스정류장에 들어가서 비를 피하기는 했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 들이 퍼붓는 장대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점점 흐르고 있어서 조금 초조해졌다. 이대로 어두워지면 버스정류소에서 잠을 자야 할지도 모른다.

 

결국 한 시간쯤 지난 후에 어쩔 수 없이 폭우 속으로 그냥 나갔다. 카메라를 꺼내기는 커녕, 고글을 벗어야 겨우 앞이 보일 정도였다. 내 고정관념이겠지만, 충주, 청주는 뉴스를 보면 좀 이상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는 곳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이쪽 동네에선 아무데나 야영을 하기도 꺼려진다. 애초에 충주는 재빨리 통과할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비가 웬수다.

 

쉬지 않고 빗속을 내달려서 겨우겨우 충주역에 도착했다. 충주역 앞쪽 모텔촌에서 자전거족들이 많이 이용하는 모텔은 렉시모텔과 타이타닉모텔 정도인 듯 했다. 유명한 곳으로 가니 역시나 손님 꽉 찼다며 디럭스룸을 비싸게 부른다. 그 바로 앞 모텔을 가니까 빈 방 많던데. 그래서 오늘은 35,000원 짜리 모텔. 비가오니 돈이 너무 많이 드는구나.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국토종주 자전거길: 강천섬 - 비내섬 - 충주역

 

어쨌든 오늘은 중국집에서 저녁도 먹고, 가까운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사먹기도 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도시생활. 너무 들떠서 편의점에서 좀 많이 집어오다보니, 못 먹고 남은 버거는 다음날 아침에 아이스 버거로 먹었다. 뭐 그래도 맛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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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