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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흐 꿈을 꾸다, 중국의 한 모사 화가 이야기 - 알자지라 다큐멘터리
    리뷰 2018. 2. 19. 11:16

    홍콩 바로 위에 붙어있는 심천(선전, Shenzhen). 그 안에 따펀(大芬)이라는 곳이 있다. '따펀 유화촌 (Dafen Oil Painting Village)'이라는 이름으로 꽤 유명해서, 지하철 따펀역도 있고 관광객들 발길도 끊이지 않을 정도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곳은 유화 그림을 그려서 파는 작가들이 많은 동네다. 그런데 이 유화 대부분이 창작품이 아니라 유명한 화가들이 작품을 모사한 것이다.

     

    80년대 후반에 화가이자 사업가인 황 지앙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거주하면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모방작품을 판매하고, 동시에 다른 화가나 학생들을 모집해서 사업을 키우면서 유화촌이 시작됐다고 한다.

     

    이후 유명 작가의 작품을 그대로 따라 그려서 판매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서, 한때는 전세계 유화 판매의 60%를 차지할 정도였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터진 이후 수요가 많이 줄어들었고, 그에 따라 마을도 쇠퇴의 길을 걷게 됐다.

     

    지금은 중국 국내 수요에 맞는 그림을 그리면서, 관광지로 탈바꿈 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림 작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알자지라의 다큐멘터리 채널인 WITNESS에 최근 올라온 영상 'Dreaming of Vincent: China's Copy Artists'는 이 '따펀'의 한 모사 작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어느날 꿈에서 빈센트 반 고흐가 나타나 자신의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는 주인공은, 고흐 작품 모사만 20년째 하고 있다. 여러 명의 제자 겸 직원을 두고, 마치 공장 처럼 그림을 찍어내듯 그리는 따펀이 스튜디오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이 스튜디오는 그나마 한 사람이 한 작품을 다 그리는 것 같은데, 따펀의 스튜디오 중에는 컨베이어 밸트 식으로 밑그림, 큰 부분, 세밀한 부분을 따로따로 작업하는 방식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따펀에서는 한 스튜디오가 하루 평균 20장의 그림을 제작한다는 말도 있다. 물론 프린터로 인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처음부터 끝가지 유화로 그려내는 것이다. 이건 말로 들으면 에이 설마, 그래도 기계를 조금 쓰겠지 싶겠지만, 직접 영상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지며 수긍할 수 밖에 없을 테다.

     

    어쨌든 이 주인공은 어느날 오래 거래해오며 많은 양을 주문한 고객의 초청을 받는다. 암스테르담에 와서 직접 고흐 그림을 한 번 보라는 제안이었다. 이 작가는 20년간 고흐 작품을 모사하면서도 오리지널 작품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체류 비용은 대 주겠다고 했으면서 비행기표는 직접 구입하라고 했기 때문에 돈 문제로 아내와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어쨌든 결국 주인공과 일행은 네덜란드로 향한다. 거기서 고객을 만나기도 하고, 자신의 그림이 유럽에서는 몇십 배 더 비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이런저런 에피소드 끝에 결국 고흐의 그림 앞에 선다.

     

    고흐 미술관고흐 미술관. 사진: emoro, CC0

     

    알자지라의 위트니스(WITNESS)는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볼 수 있지만 꽤 훌륭한 다큐멘터리들이 많이 올라온다. 얘네들은 어떻게 이 제작비를 다 감당하나 싶을 정도다. 예전에도 흥미롭고 놀라운 영상들이 많았지만, 이번 다큐는 조금 다른 울림이 있었다.

     

    중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 한 가난뱅이 화가가 먹고살기 위해 재능을 살려 그림을 그렸지만, 20년 세월동안 남의 작품을 그대로 베끼기만 했을 뿐이다. 그렇게 대충 하루하루 먹고살다가 어느날 알게 된 더 넓은 세상, 그리고 오리지널 작품.

     

    이제 그는 서서히 변하려고 마음 먹었다. 지금 당장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한 백 년 후에는 누군가 알아줄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나만의 것'을 가져보기로. 그리고 이것은 이 주인공만의 이야기가 아닌, 따펀 동네가 맞이하고 있는 변화의 바람이기도 하다. 개인의 이야기와 그 지역 전체의 이야기를 한데 녹여내면서, 감정적인 어떤 것도 살짝 건드리는 작품이다.

     

    나 역시 감정적으로 느낀 것을 글로 잘 풀어내지는 못 하겠다. 주인공과 비슷한 처지에 처한 사람이라면 뭔가 느낌이 있을 테니, 한 번 직접 감상해보기로 하자.

     

    > Dreaming of Vincent: China's Copy Artists (Aljaze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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