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서 가늘고 짧은 하루를 보내고 아침 일찍 일어나 목포항 국제여객터미널로 갔다. 국제 터미널 하면 뭔가 외국으로 떠나야 할 것 같은 이름이지만, 제주도 가는 배가 여기서 출발한다.

 

목포항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더니, 자전거를 타고 몇십 분 만에 갈 수 있었다. 근처까지 가서 터미널을 찾느라 약간 돌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중간에 혹시나 문제가 생길까봐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갔더니, 오히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문제였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스마트폰에 나름 책도 몇 권 다운로드 받아 갔지만, 글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냥 멍하니 앉아있었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목포 - 제주 배편

 

오전 9시에 목포항에서 출발하는 배는 제주까지 5-6시간 정도 걸린다. 배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제일 싼 32,300원 짜리 객실을 끊었다. 여러명이 한 방에 자리 깔고 눕는 형태의 방이다.

 

만약 제주-부산 배편 처럼 하룻밤을 배에서 자야 한다면 이런 방은 좀 불편하다. 사람보다도 바닥 진동 때문에 잠을 설치기 좋기 때문이다. 나중에 다시 쓰겠지만,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면 돈을 조금 더 내고 침대칸을 잡는게 좋다.

 

어쨌든 목포와 제주는 가까우니, 제일 싼 객실을 잡아놓고 바깥 구경 좀 하다가 객실에서 잠깐 멍때리면 된다. 자전거는 별도로 3,000원을 내야 하는데, 이건 배 타기 직전에 화물 싣는 구역에 가서 돈 내고 맡겨야 한다. 그러면 화물칸에 실어 준다.

 

화물 싣는 곳이 터미널 탑승구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서, 탑승 시작하기 전에 미리 절차를 밟는 것이 좋다. 이걸 모르고 탑승 시간이 다 돼서야 부랴부랴 처리를 한다고 막 뛰어다녔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목포 - 제주 배편

 

자전거 싣는 절차 때문에 우왕좌왕했지만, 어쨌든 끄트머리로 탑승을 하긴 했다. 평일 비수기라 그런지 승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목포 - 제주 배편

 

국토종주 자전거길: 목포 - 제주 배편

 

국토종주 자전거길: 목포 - 제주 배편

 

한동안 목포 연안 섬과 다리 같은 것들을 구경할 수 있다. 출발 이후 일정 시간동안은 거의 모든 승객들이 갑판에 나와서 바다 구경을 하더라.

 

국토종주 자전거길: 목포 - 제주 배편

 

국토종주 자전거길: 목포 - 제주 배편

 

슬슬 볼거리가 없어질 때 쯤 옆으로 누운 배가 하나 나왔다. 세월호다. 이때는 아직 누워 있었다. 제주도행 배를 타고 가면서 세월호를 보니 느낌이 좀 야릇하다. 저들도 이 배에 탄 사람들 처럼, 제주도에서 보낼 즐거운 시간만을 생각하며 가고 있었겠지.

 

국토종주 자전거길: 목포 - 제주 배편

 

국토종주 자전거길: 목포 - 제주 배편

 

국토종주 자전거길: 목포 - 제주 배편

 

섬 몇 개가 더 보이고, 이제 거의 수평선 뿐인 심심한 바다로 접어든다. 이때쯤 되면 승객들은 객실로 들어가 수다를 떨거나 잠을 자는 등, 각자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낸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목포 - 제주 배편

 

배 안에 오락실 같은 것도 있고, 매점도 있었다. 물론 다 비싸다. 그래서 어제 미리 시내에서 빵 같은 걸 사놨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목포 - 제주 배편

 

국토종주 자전거길: 목포 - 제주 배편

 

제일 싼 객실은 이런 분위기. 열 명 조금 넘는 인원이 한 방에 잘 수 있다. 하지만 성수기나 단체로 엄청난 인원이 탑승하지 않는 이상, 이 방을 꽉 채우는 일은 거의 없다.

 

몇 시간만 견디면 되지만, 밖에는 딱히 볼 것 없는 바다만 펼쳐져 있고, 배 안을 돌아다니는 일도 다 끝났다. 객실에 누워 뒹굴거리는 것 밖에 할 일이 없지만, 바닥이 진동이 심해서 누워있는 것도 좀 괴롭다.

 

그래도 이때는 제주도 지도를 보면서 대략 어디쯤에서 숙박을 하고, 어떻게 길을 갈지를 생각해보니 시간이 금방 가기는 개뿔. 계획 따위 십 분이면 끝나고, 시간이 참 길게 느껴지더라.

 

국토종주 자전거길: 목포 - 제주 배편

 

짧은 운항이지만 지금 현재 위치가 표시되는 모니터를 몇 번이나 나가서 들여다봤는지 모른다. 아아 지루해. 멀미 때문에 이런 데서는 책도 못 읽고. 인터넷 뉴스 보는 것도 한 시간이면 싫증나고. 그렇다고 잠이 오지도 않고. 만약 배를 탄다면, 배에서 뭘 할지도 한 번 고민해보자.

 

국토종주 자전거길: 목포 - 제주 배편

 

어쨌든 시간은 가고, 기름 냄새와 진동으로 어지러워질 때 쯤 제주항에 도착했다.

 

목포에서는 제주가는 교통편이 딱히 없어서 배를 탄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부산-제주 같은 경우는 배나 비행기나 요금이 거의 비슷하다. 오히려 항공편이 멀미도 안 하고 시간도 적게 걸리고.

 

하지만 승용차는 물론이고, 자전거를 끌고 갈 경우에도 배편이 낫다. 무게 걱정 안 해도 되고, 각종 귀찮은 절차도 없고. 비행기에 자전거 한 번 실어 본 사람이라면 알 테다.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너무 많다. 돈도 꽤 들어가고.

 

국토종주 자전거길: 목포 - 제주 배편

 

페리 화물칸 입구가 열리자마자 대기해 있던 인부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자전거는 미리 준비해 있다가 그 옆을 먼저 지나간다. 나 말고도 자전거 가지고 온 사람들이 몇몇 있던데, 다들 몇 백만 원 짜리더라.

 

국토종주 자전거길: 목포 - 제주 배편

 

항구 내부에선 우왕좌왕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재빨리 바깥으로 빠져 나와서 한 숨 돌린다. 저 뒷쪽에 산이 하나 있는데, 자전거길을 타면 저기를 넘어와야 한다. 제일 힘든 길은 맨 마지막으로 미루자는 의미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돌기로 했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목포 - 제주 배편

 

오랜만에 타보는 제주환상 자전거길. 제주도는 몇 번 왔지만, 자전거 길을 타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많이 변하기도 했고, 많이 낡기도 했더라. 제주는 요새 올레길을 미는 분위기라, 자전거길 정비엔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듯 한 느낌이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목포 - 제주 배편

 

국토종주 자전거길: 목포 - 제주 배편

 

 

 

배를 타고 왔더니 어질어질. 시내로 살짝 접어들어서 가장 먼저 보이는 편의점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제주에서 첫 끼는 컵라면과 삼각김밥. 딱 좋지 뭐.

 

이쯤에서 중간 정리로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겠다. 여기까지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미처 소개하지 못 했던 이야기들이다.

 

 

*

캠핑을 하다가 자전거 여행을 하는 한 노인을 봤다. 자전거엔 뭔가 둘둘 말은 작은 짐 하나가 묶여 있고, 작은 가방 하나를 등에 졌을 뿐, 짐이 거의 없었다. 한강 자전거길을 달리는 사람들보다 짐이 더 없었지만, 몇 주 여행 중이라고.

 

정자에 자리를 잡았는데, 잠은 거의 그런 데서 잔다 하더라. 늙으면 모기가 잘 안 문다며, 모기향 하나만 피워 놓으면 된다 한다. 둘둘 말아놓은 짐을 펼치니 담요 비슷한 천. 그걸 깔아놓고 오늘 밤 잠자리 마련 끝.

 

그리고 그 근처를 다니며 풀을 뽑더라. 잡풀 뽑는 자원봉사도 아니고 대체 뭔가 하고 물어봤더니, 식량 채집이란다. 가만 보니 아무 풀이나 뽑는게 아니라 골라서 뽑아내더라. 그렇게 한 움큼 뽑더니 물에 잘 씻어서 먹는다. 여기서 내 눈은 완전 휘둥그래졌다. 그 노인이 뽑은 풀과 똑같은 것을 뽑아서 먹어봤는데, 쌉싸름한 풀맛이었다. 정말 굶어죽을 지경이 되면 먹을 수도 있겠다 싶더라마는...

 

역시 난 아직 여행 초짜다. 이런 고수들을 만나면 더욱 그걸 실감한다. 정말 세상엔 숨은 고수가 많다.

 

 

*

자전거도 고물이고, 짐도 있고, 구경도 해야해서 속력을 많이 내지 않는 편이지만, 가끔 지역에서 잘 차려입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추월할 때가 있다. 내가 빠른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느린 거다. 내 평균 시속은 10킬로미터 정도니까.

 

근데 이렇게 추월당한 사람들은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가 꿈틀하나보더라. 중간에 내가 멈춰서 쉴 때가 되면, 굳이 멈추지 않아도 되는데도 다가와서 내게 질문을 던진다. 처음엔 자전거 여행하냐 뭐 그런 질문이지만, 핵심은 하나다.

 

"이 자전거 얼마짜립니까?"

 

한 번은 그렇게 멈춰 선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이, 질문은 해놓고는 자기들끼리 토론을 하더라.

 

"이거, 엠티비도 되고 로드도 되는 여행용 하이브리드 자전거라서 최소 천만 원은 하지."

"그래 한 천만 원 짜리는 돼야 서울 부산 여행도 하고 그러겠지?"

"아 역시 나 같이 300만 원 짜리 타는 놈은 저런 여행 꿈도 못 꿀거야."

"우리도 좀 더 노력해서 연습하고 좋은 자전거 타서 국토종주 하자구! 으쌰으쌰!"

 

그러고 있길래 초코바를 다 먹은 나는 조용히 한 마디 해줬다.

 

"이거, 배송비 포함해서 12만 원요~"

 

갑자기 침묵. 일제히 똥 씹은 표정. 순간 멈춤. 정말 십여 명의 사람들이 눈만 껌뻑껌뻑. 몇 초 후에야 팀 리더가, 이제 다 쉬었으면 가자하고 모두들 휑하니 가버리더라.

 

이런 일은 여행 다니며 수시로 여러변 있었다.

 

 

*

수안보, 문경세재, 부곡온천, 상주, 화개장터 등등. 아무리 비수기라 하지만 주말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인지, 혹은 그런데도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숙박비나 식사비 같은 물가는 시세 맞춰서 점점 더 비싸지더라. 그리고 사람들은 점점 더 싼 곳을 찾아간다. 도미토리 게스트하우스나 편의점 같은 곳 말이다. 여행자는 가난하고 관광지는 비싸고, 한 번 가 본 사람들은 자주 다시 찾아가지 않는다. 뭔가 공멸의 길로 접어든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라.

 

 

에피소드 중간정리 끝.

 

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