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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니가 간다] 안 와도 된다
    리뷰 2007. 3. 14. 22:40
    고등학교 때 첫사랑 한 번 잘못 한 바람에 서른 될 때까지 연애 한 번 못 해봤다는 주인공(고소영). 어느날 그녀를 짝사랑했던 전교 일등 모범생이, 연 매출 천 만 달러의 IT 벤처 회사 CEO가 되어 나타난다. 그 범생이는 십 년 넘게 아직도 그녀를 좋아하고 있는데, 그녀는 그와 만나는 자리에서 첫사랑 얘기가 나와서 버럭 하고 뛰쳐 나온다. 이게 다 그놈의 바람둥이 락커 첫사랑 때문이라며 신세한탄 하다가 눈을 뜨니 타임머쉰이 떡 하니 있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 어린 자신을 범생이와 연결 시켜 주려고 무진장 노력한다.

    보면서 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어째서 첫사랑을 망친 것 때문에 인생이 그렇게 꼬이고 망가졌다고 생각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굉장한 패배자에 남 탓으로 덮어 씌우기 고수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범생이가 잘 나가는 사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타 나니깐 번쩍 하고 눈 떠서는 잘 해 보려고 애 쓰는 꼴이라니. 인생이 사랑 하나로 좌지우지 되고, 남자 하나로 내 인생 빛 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가진 전형적인 꼴불견 노처녀 히스테리가 아닌가. 차라리 어린 자신한테 남자 따위 신경 끄고 공부나 하라든가, 그림이나 열심히 그리라고 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인생도 꼬이고 하는 일도 제대로 잘 안 풀리는 것이 어떻게 첫사랑 탓이라고 우길 수 있는지 내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살다보면 이런 놈, 저런 놈, 더러운 꼴, 안 볼 꼴 다 겪고 살면서 커 나가기 마련 아닌가. 걸려서 넘어지고 다쳐도, 딛고 일어서서 꿋꿋하게 저 푸른 들판 달리는 캔디가 되어야 성숙해 지는 것 아닌가 말이다. 모든게 첫사랑 때문이야라며 징징대고 있으니 인생도 꼬일 수 밖에.

    게다가 범생이는, 여자들이라면 한 번 즘 다들 꿈 꿔 본다는 지고지순한 일편단심 민들레다. 십 년 넘게 자기 좋아해 주지, 똑똑하지, 유명하지, 돈도 많지. 외모만 약간 받쳐 주면 이거 완전 백마 탄 왕자님이다. 하긴 왕자나 공주가 다 잘 생기고 이쁜 건 아니다, 수준 이하만 아니면 봐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어쨌든 이제와서 범생이랑 잘 해 보고 싶어진 이유가 잘 나가는 벤처 사장이라서 그런 건가? 만약 대학 시간강사였거나, 평범한 샐러리맨이거나, 장사 같은 거 하고 있었으면 거들떠나 봤을까. 나중에 그 회사 잘 못 돼서 망하기라도 한다면, 또 첫사랑 때문에 인생 꼬이는 거라고 한탄 하려나.

    건전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의도를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은, 어린 자신을 통제해서 바람둥이 대신 범생이와 잘 되는 만드는 데만 온 정신을 집중하고 일을 벌여 나간다. 그런데 시간은 스스로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고, 아무리 과거로 돌아가도 바꿀 수 없는 게 있다는 군. 그래서 그런지 결국 방법만 조금씩 바꼈을 뿐, 일어날 일들은 다 일어나고, 크게 바꿔진 것도 없다. 그래도 수확 하나가 있었으니, 다짜고짜 자기 자신이 그리 못나지 않았다라는 교훈을 얻어 왔다는 것이다. 대체 어디서 그런 교훈을 얻어 왔는지, 혹시 숨겨진 장면이라도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영화 나비효과처럼 더 엉켜서 나빠지지는 않았으니까.

    단지 한심한 처자의 남자로 인생 펴기 대작전일 뿐인가. 그래도 뭔가 하나 남겨 보자. 그래 이 영화의 배경이 된 1994년. 어쩌면 이 영화는 고소영 세대들을 타겟으로 잡아, 그 옛날 아련한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려는 목적도 있지 않나 싶다. 반복해서 흘러 나오는 듀스 노래를 비롯해서, 룰라, 마로니에 등의 노래와 함께 삐삐, PC통신 등의 소품들이 향수를 약간 느끼게 한다. 차라리 그런 추억의 소품들을 대량 활용해서 '그땐 그랬지'로 쭉 나갔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오랜만에 보는 삐삐와 PC통신이 옛날 생각 나게 만들긴 했으니까. 그나마 그런 걸로 향수라도 자극해 줘서 고맙다, 듀스 노래 계속 틀어 줘서 고맙고(언젠가 듀스 노래를 가요무대에서 들을 날도 오겠지).

    * 고소영이 노트북 들고 나오니까 순간적으로 ㄷㅅㅂ가 떠올랐다. 한동안 광고에 많이 나오긴 했나보다. 좋게 말하면 아직 너무 소녀 같은 이미지랄까. 변신을 좀 했으면 싶은 바램이다.

    (www.emptydrea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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