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스포일러 포함)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찾지 못했던 수에메이는 약재상이라는 사람들을 따라 중국의 한 산골로 돈을 벌러 따라 나선다. 거기서 약을 탄 물을 마시고 잠 든 수에메이. 알고보니 7000위안에 팔려 온 것이었다. 이렇게 인신매매를 통해 깊숙한 산골 마을로 팔려온 수에메이는 탈출을 시도하다가 잡히고, 자살 시도 또한 실패로 돌아간다.
그 때 마을의 젊은 아줌마들이 찾아 오는데, 자신들도 모두 그렇게 팔려온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탈출도 시도해 봤지만 모두 허사였고, 그래서 다 포기하고 그냥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었다. 수에메이는 같은 처지에 있는 그들과 친하게 지내면서도, 그들과는 달리 계속해서 몇 번이고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매번 허사. 온 마을 사람들이 감시인이고, 시내 공안(경찰)들까지도 모두 한통속이었던 것이다.
거듭되는 탈출 시도와, 거듭되는 실패 끝에 간신히 집으로 편지를 보내는 데 성공한 수에메이. 아버지가 공안과 함께 마을로 찾아왔지만 마을 사람들의 저항이 만만치가 않다. 수에메이가 탈출에 성공하면 자신들의 며느리들도 가만 있지 않을 테니까.
운 좋게도 영화가 끝나고 나서 감독과의 대화가 있어서 감독에게서 여러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맹산(盲山 Blind Mountain)이라는 제목에서 맹은 볼 수는 없으나 마음으로는 볼 수도 있음을 뜻하고, 산은 자유와 희망을 뜻한다고 한다. 주인공을 대학 졸업자로 설정하여, 자유에 대한 갈망이 산골 마을의 그 누구보다도 강함을 나타내고자 했다 한다.
또한 감독의 말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6여년 전 신문을 보다가 비슷한 사건이 보도되어 영화로 만들고자 결심 하고 취재를 다니기 시작했다 한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60~70년 대에 이런 사건이 비일비재했고, 90년에 이르기까지 계속 있었다고 한다. 요즘은 '줄어가는 추세에 있다'라고 말 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일부는 실화이고, 일부는 픽션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영화들이 화려함만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는데, 자신은 그 속에서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 한 감독. 그 의도답게 이 영화는 보는 내내 사람들의 마음을 조마조마하면서도 갑갑하게 만든다.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면서도 결국 벗어날 수 없는 그 현실.
무서운 것은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에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도 겪거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데 있다. 비단 인신매매가 아니라도 다른 형식으로 말이다.
내게 있어, 내가 살고 있는 갑갑한 산골 깊숙한 마을의 이름은 바로 서울이다. 돈을 벌기 위해 팔려 오듯 떠나와서 어떻게든 벌어먹고 살려고 붙어 있긴 한데, 마음은 항상 저 먼 산 '맹산'을 향해 있다. 떠나야지 떠나야지 하면서 탈출을 시도해 보지만, 결국 여기로 잡혀 오고야 만다. 그놈의 돈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수에메이가 탈출을 시도할 때, 도와달라고 도와달라고 외쳐도 아무도 도와 주지 않는다. 공권력도 교통정리같은 자신의 일에만 충실할 뿐, 한 사람을 도와주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에는 무관심하다. 더군다나 산 속 도로를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오는 차를 잡았어도, '돈 없으니 못 태워준다'라며 그냥 가 버린다. 영화는 결국 현대문명의 돈 이야기이다.
자본주의 세상이다. 인간주의도 아니고, 평화주의도 아닌, 자본주의다. 그러니까 돈이 그 어떤 것보다 우위에 있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세상이라는 뜻이다. 모든 것을 상품화하여 사고 팔 수 있는 세상, 그 속에서의 인간성 말살. 그런 말은 너무나 많이 들어 별로 새롭지도 않은 허공 속의 메아리다.
그래서 우린 그냥 포기하고 이 마을에 정착하여 그냥 산다. 팔려 온 신세 한탄하며 그랬었지 하며 되새기면서 말이다. 아니, 그 사실마저 희미하게 잊고는 하루하루 그냥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거다. '사는게 뭐 다 그렇지 않은가'하며. 도망쳐봐야 쓸 데 없다고 생각하고, 힘들게 탈출하다 다시 잡혀 오는 사람을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며 동정하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다시 감독의 말을 빌리면, 이런 류의 인신매매는 다른 사건으로 인해 세상에 밝혀진다고 한다. 즉, 참다 못한 아내가 남편을 죽여 살인죄로 잡혀 갔는데 알고보니 인신매매였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므로 약간 비약해서 생각해 보자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아주 많은 범죄들에 대해, 2차적인 책임은 사회가 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상황으로 몰아 넣었거나, 방관했거나, 무시했기 때문에 말이다.
그것은 즉, 또 다른 말로 풀이하자면, 이 마을에 사는 모든 이들이 범죄를 저지를 수 있고, 저질러도 특별히 이상하지도 않다는 뜻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세상 속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여러모로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지만, 어떻게 해결책을 마련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갑갑함을 안고 나올 수 밖에 없는 영화였다. 특히 중국인들의 돈에 대한 집착을 경험해 본 적 있는 사람들이라면, 영화가 더욱 사실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중국에서 인신매매로 깊숙한 산골마을에 팔려간 한 여성의 분투를 보고 싶다면 추천해 주고 싶다. 혹시나, 갑갑한 현실에 대해 한 번 즘 생각해 보고 싶다는 분이 있다면 아주 적합한 작품이다. 단, 화두는 던져 주지만 해답은 없다는 것을 알아 두셔야 한다.
(2007 서울국제영화제 상영작/중국/2007 제작/102분/35mm/리양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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