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을 위해 마을 사람들을 내쫓는 임무를 맏고 동네에 들어선 필제(임창정). 동양챔피언을 꿈꾸는 여자 복서 명란과,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아이와, 만담에 일각연이 있는 어린 남매 등과 만나면서 어느새 철거 임무는 뒷전이 된다. 철거촌을 배경으로 한 여러 사연들의 조합들이 흥미를 유발하고, 특히 만담 남매(?)는 이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이 남매가 없었다면 영화의 재미는 절반 이상 줄었을 거라고 생각될 정도.
한 번은 일 관계로 아는 사람들과 술자리에서 얘기를 하다가, 재개발과 철거촌에 관한 얘기가 잠깐 나온 적이 있었다. 그 중 어떤 사람들은 '에이, 요즘 그런게 어딨어.'라고 말 하며, 그런건 이미 옛날에 모두 사라지고 없다고 일축해 버렸다. 생활의 발전이 생각의 제한을 가져왔나 보다. 하긴, 엄연히 존재하더라도 보지 않고 외면하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현실에서 기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영화에서 처럼 한 인간이 다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적이긴 하다. 하지만 당장 삶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은 다들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 걸까. 어찌 어찌 다들 살아가긴 할 테다. 영화의 미학 때문에 그런 구질구질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지만, 어쨌든 삶은 이어지고 사람들은 살아간다. 그렇게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오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후에 번듯한 아파트가 들어서면, 돈 있는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세상 참 좋아졌다'하며 즐겁게 살겠지. 그들에겐 그것이 기적일테다. 그리고 원래 그 곳에 살다가 쫓겨나서 다시 어느 변두리 쪽방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겠지. 그들에게도 그건 기적이다. 기적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아주 신기한 일'. 기적이라는 단어 자체에 좋은 의미는 없다.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일관하던 영화가 끝부분에 가서 씁쓸해 지는 것은 그런 기적 때문이었다.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아주 신기한 일. 하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기가 막히는 일.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일.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힘든 일. 그래서 갑갑한 일. 마을은 지킬 수 없었어도 앞으로 그들의 삶은 밝을 거라는 위안만 가져 본다.
p.s.
때가 때이니 만큼, 철거촌 관련 영화를 보고 '우토로'가 생각났다. 일제시대 강제 징용 간 조선인들이 거주하면서 생긴 일본 교토 외곽의 우토로 51번지. 이제 65세대 200여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남아 살고 있는 곳. 하지만 땅 주인의 철거 통지에 따라 철거 위기에 놓여 있는 곳. 어쩌면 다른 나라에서 날아온 사연 있는 마을이라 더욱 관심을 두어야 할 지도 모른다. 2007년 8월 31일 까지 토지 구입을 하지 않으면 강제 철거 하겠다고 했으나, 다시 한 달 기간을 더 주었다고 한다. 최소한 관심은 가지고, 혹시 마을이 사라지더라도 기억 속에 담아 두어야겠다. (우토로 국제대책회의
http://www.utoro.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