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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향한 환상의(?) 조건을 갖춘 주인공

 영화라고는 일 년에 한 번 볼까말까할 정도로 별 관심없던 상호는, 고등학교 졸업 전에 후배의 요청으로 영화 프로듀서를 맡게된다. 그 이후 영화 제작에 관심을 가지면서 대학을 진학해서도 영화를 배워 보겠다고 중구난방, 사방팔방으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다.

 장비 하나 구하기도 어려운 대구라는 지방에서, 영화의 영자도 모르는 초짜가 열정 하나만으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설치고 다니는 이야기. 이 영화는 상호의 영화 만들기라는 '꿈'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상호는 최악이라고 할 만한 조건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1.지방(대구)에 살면서 지방대를 다니며, 그나마도 영화와는 아무 관련 없는 학과를 다닌다. 2.집안 형편상 재정적인 지원을 바랄 수도 없다. 돈 벌어 갖다 줘야 할 형편이지만 애써 무시하고 있다. 3.자타가 인정하는 상호의 재능. 상호는 재능이 없다!



재능 없다! 그만 해라!

 어느날 상호가 만든 영화를 보고, 상호의 여자친구는 이렇게 말 한다. "솔직히 오빠가 만든 게, 이게 영화가!".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가난하기도 하지만, 타고난 천재적 재능으로 난관을 극복하는 영화는 많다. 또한 그런 휴먼스토리라면 어설프게나마 감동을 줄 수도 있으니, 그런 식으로 풀고 나가는 것이 대중적(상업적)으로는 올바르다(!). 하지만 이 영화 주인공인 상호는 그 재능마저도 없다, 주인공이라면 응당 가지고 태어나야만 하는 그 천재적 재능 말이다. 이런, 대체 어쩌자는 거냐, 가진게 아무것도 없는 주인공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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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재능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래저래 부딪히며 연애마저 삐걱거리고, 결국 여자친구도 떠나간다. 이제 정말 가진 것 없는 주인공. 늦은 밤 상한 마음 달래던 술자리에서는 후배가 술 취해 상호에게 화를 내며 소리친다. "선배, 재능없다! 영화 관둬라!". 그 말에 상호는 울먹이며 대답한다. "좋은 걸 어쩌겠노, 그냥 해야지..."



하고 싶은 걸 우짭니까

"하고 싶은 걸 우짭니까". 집안 형편도 좋지 않은데 영화 한다고 호통치시는 아버지에게도, 영화를 왜 하냐는 질문에도 상호는 그렇게 대답했다. 단지 하고 싶은 거라고,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그 말 한 마디 만으로 이 영화는, 영화를 만드는 어느 영화인의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 모두의 '꿈'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지금 꿈을 향해 느리고 작은 발걸음이라도 조금씩 조금씩 옮기고 있는 사람들이나, 한 때 꿈이 있었지만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 모두를 위한 이야기이다.

지방이라는 열악한 환경과, 가난해서 밥벌이는 또 따로 해야하는 어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천재적 재능이 없는 주인공. 그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임이 틀림없다. 다만 그가 틀린 점이라면, 그 와중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

 

꿈 꾸는 것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흔히들 말 한다. '꿈이 밥 먹어 주냐'고. 그래서 요즘은 대학생들도 별다른 꿈을 품지 않은 채, 각종 점수 신경쓰며 취업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물론 공무원이 되는 것이 꿈인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다들 먹고 사는 문제로 꿈을 현실 속에 파묻은 채 살아간다. 그걸 '현실적'이라 부르며 꿈을 찾는 사람들은 '몽상가' 등의, 현실적이지 못한 열등한 인간 정도로 취급된다. 물론 꿈을 쫓으면서도 돈이나, 명예, 명성, 권력 등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람들의 평가도 달라지지만, 아무것도 없으면서 꿈을 향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미친놈' 취급 당하기 일쑤다. 그게 현실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아련한 추억같은 시린 마음 한 켠에는 '꿈'이라는 단어에 목말라, 남몰래 마른 눈물 삼키며 아파하는 모습들이 있지 않을까. 나도 꿈을 쫓고 싶었는데, 지금이라도 꿈 꾸고 싶은데, 그 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지금 이 길이 아닐텐데, 라고 말 하고 싶은 그 가슴아픈 심장 한 켠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만약 당신도 그렇다면, 아무것도 없이 꿈을 향해 묵묵히 걷고 있는 그 사람들을 조용히 다독여주자. 당신도 한 때 그런 '미친놈'이 되고 싶었던 적 있었을 테고, 먹고 사는 문제의 끝없는 지겨움을 알고 있을테고, 이게 전부는 아닐텐데라는 의문을 품고 있을 테고, 꿈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한 번 즘 그 길을 걸어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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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이

이 영화의 제목인 '아스라이'를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1.아슬아슬하게 높거나 까마득하게 멀다.
2.기억이나 소리가 분명하지 않고 희미하다.
 
즉 아스라이는, 지금 현재 꿈을 향해 가고는 있지만 그 꿈이 너무나 높고도 멀어서 너무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일 수도 있고, 한 때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잊고 살아가면서 그 기억마저 희미해져버린 사람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래서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아스라하게 흑백으로 진행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컬러였다면 너무나 생생해서 아스라하지 못했을테니까. 그래도 컬러에 이미 익숙한 눈으로는 흑백이 좀 갑갑하게 보였다, 차라리 컬러 톤을 연하게 하거나 흐릿하게 하는 방법을 썼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장면들의 어색함 속에서 약간 지루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짤막한 컷들로 장면전환이 빠른 이유인지 눈은 뗄 수는 없는, 특이한 영화였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감독의 자전적인 내용의 성격이 짙다는 이 영화를 통해서, 어떤 사람은 현재 자신의 상황을 완전히 일치시켜며 공감을 일으킬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옛 추억을 떠올리며 공감을 할 수도 있을테다. 이 영화를 통해서 너무 멀리 있거나, 이제는 사라졌거나, 혹은 아직 찾지 못해 아스라한 꿈을 상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꿈을 기억하고 있는 한, 꿈은 사라지지 않았을 테니까.



p.s.
2008년 1월 17일 현재,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http://indiespace.tistory.com/)에서 상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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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