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동남아 삽질 여행 19 2/3
말레이시아 페낭 섬
숙소를 찾기 위해 거리를 헤매 다니며 거의 출리아 거리 일대를 한 바퀴 다 돌았다. 화끈하게 더운 여름 날씨, 그것도 햇볕이 가장 뜨거울 낮 시간에.
그러면서 의도하지 않게 중국식 사원이나 아랍식 사원 등을 보게 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다 페낭 섬의 관광명소란다. 슬쩍슬쩍 스쳐 지나갔을 뿐이지만, 그리 딱히 볼 만 한 건 없다.
페낭 섬은 그냥 바다에서 놀겠다거나, 바다가 있는 섬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면 되는 곳.
(페낭 섬의 조지타운에 있는 한 중국 사원. 말레이시아에 있는 화교들은 수시로 사원을 찾아서 향을 피우고 절을 한다. 사원 안에서 기부를 받기도 하는데, 기부를 하면 커다란 장부에 이름을 적는 모양. 어쩌면 21세기 천국은, 기부 한 액수만큼 등급 높은 천국에 가게 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호텔도 급수가 있듯이, 천국도 다 같은 천국은 아닐 테지 아마도. 돈이면 천국도 살 수 있는 시대. 하긴, 옛날에도 똑같았지 뭐, 면죄부를 팔기도 했으니까.)
(중국 사원이든 인도 사원이든, 사원 앞에는 항상 꽃 파는 가게가 있고, 꽃을 바치는 것이 관습처럼 자리잡고 있다. 살아있을 때 죽인 생명체 중에는 꽃이 그나마 예쁘고 의미있는 생명체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살생에 가담했다는 의미에서는 별 다를 것 없을 듯.)
(인디아타운이나 출리아 거리 등 조지타운 안에서는 의외로 쉽게 환전소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여행자거리에 있는 환전소보다는 콤타르라는 시내 중심가의 버스터미널에 있는 은행 옆 환전부스가 환율이 더 좋았다. 이 날 환율은 1 USD = 3.51 MYR. 육지와 별 차이 없다.)
(멀리 아랍계 사원이 보이지만, 땡볕에 걸어가서 구경할 마음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멀찌감치서 사진만 한 컷. 사실 페낭에서는 햇살이 따가워서 딱히 이렇다 할 구경은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도 여름엔 과일을 갈아서 얼음 넣고 스무디인가하는 음료로 만들어 주는 가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물 반 과일 반, 대체로 과일 맛 나는 얼음물일 뿐이다. 그에 비해 동남아 쪽에서 만들어주는 과일음료는 질이 틀리다. 정말 과일 만큼은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동남아~)
(페낭의 어느 세븐일레븐을 들어갔더니 한국라면을 팔고 있는 게 보였다. 여행자 거리에 있는 편의점이라서 그런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일본 과자나 음료도 가게에서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 라면이 있다고 해서 놀라울 건 없었다.)
(출리아 거리 일부 모습. 딱히 특징같은 건 없고, 여행자 거리 답게 외국인들이 좀 많이 보인다. 노점상들은 해 질 무렵에야 하나 둘 판을 펴기 시작하기 때문에 낮에는 먹는 재미가 별로 없다.)
(출리아 거리에 있는 한 게스트하우스 모습. 20개국의 국기가 걸려 있는데 한국 국기도 들어 있는 모습. 딱히 경제순위로 20개국을 선정한 것 같지도 않은데 한국 국기가 그 속에 있다는 건, 말레이시아에서 한국 인지도가 어느 정도 있다는 뜻 아닐까.)
페낭의 여행자 거리인 출리아 스트리트에 들어섰을 때, 수많은 숙소들을 보면서 정말 감격의 눈물을 흘릴 뻔 했다.
싱가폴에서 그 이상한 꼴들을 당하고, 밤 새 한 숨도 못 잔 체 돌아다닌 끝에 마침내 쉴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눈물 대신 땀을 흘렸지만, 어쨌든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출리아 거리의 수많은 게스트하우스들을 다 무시하고 지나갔다.
왜냐면 오늘 만큼은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제대로 된 중급 호텔에서 편하게 자고 싶었기 때문.
그래서 호텔 밀집 지역으로 가서 몇몇 호텔의 가격을 물어봤는데...
아아 가격이 역시 장난이 아니다. 대략 100링깃 선에서 오락가락 하는 수준.
이 날 환율이 1 달러에 3.51 링깃이었다. 그러니까 100링깃이면 거의 30달러 정도 된다는 것.
물론 한국에서는 모텔 값 정도 밖에(?) 안 되는 돈이지만,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말레이시아다. 말레이시아에서 100링깃이면 콜라가 50병이고, 쌀국수가 25그릇... 아, 무엇보다도 방콕까지 가는 국제열차 운임이 111.90 링깃이라는 거.
이건 정말 큰 돈이다. 그냥 게스트하우스에 묵는다면 남는 돈으로 먹을 것들을 마음껏 사 먹을 수도 있고, 군것질꺼리를 입에 달고 살 수도 있으며, 섬 내에서 편하게 택시를 타고 놀러다닐 수도 있는 돈이 아닌가! ...그래서 호텔 들어갔다. ㅡㅅㅡ
가격 더 알아보고 하기도 귀찮아서, 서 있던 곳에서 가장 가까웠던 머천트merchant 호텔이라는 곳에 들어갔다. 싱글룸은 없고, 더블룸이 하룻밤 88링깃. 숙소 안에는 냉장고도 있어서 물 같은 것을 시원하게 해 먹기 좋았다 (이 정도 가격에 냉장고 있는 숙소 구하기는 어렵다).
일단 에어컨부터 빵빵하게 틀고, 욕조에 뜨거운 물 받아서 몸을 담궜다. 아, 역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까 땀띠가 조금 사라지는 듯 한 느낌. 이 때 즘 땀띠가 극에 달해서, 가방을 메고 다니기가 힘 들 지경이었다.
얼굴 다 탄 건 말 할 필요도 없다. 썬크림 안 발랐으면 벌써 흑인이 됐을 듯. 세수도 안 한 얼굴에 썬크림은 꼭꼭 발라주는 수선을 떨었기 때문에 갈색의 색시한 피부색이 되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뜨거운 물에 피로를 풀고 나와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잠이 들었다. 낮 시간에 잠 든다는 게 시간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잠이 쏟아져서 도저히 어쩔 수가 없었다.
(왼쪽은 시티텔, 오른쪽은 머천트 호텔. 사실 머천트 호텔은 중급 호텔 가격에 객실에 냉장고가 있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특징이 없어서 딱히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무난한 중급호텔.)
(머천트 호텔 내부 모습. 더블베드 하룻밤 88링깃. 겉에서 보이는 건물 모습에 비해 객실 내부는 조금 오래된 느낌. 하지만 특별히 불편하거나 지저분하거나 하지는 않다.)
(말레이시아 거리를 걷다보면 삼성, 엘지, 대우, 현대 등의 한국 상표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엘지는 에어컨 쪽에서는 거의 시장을 석권 한 듯 보였다. 역시 에어컨은 엘지~ 이런 식으로 중간에 광고 실어 드릴 수 있음. 후원 바람. ;ㅁ;/
삼성, 엘지, 대우, 현대 중에서 동남아 사람들이 그나마 제대로 발음하는 메이커는 어떤 것일까요~
정답은 엘지와 대우. 엘지야 알파벳 나열이니까 발음이 크게 틀릴 이유가 없는데, 대우는 좀 의외였다. DAEWOO라고 표기되어 있기 때문에 다에우 이런 식으로 발음할 줄 알았는데, 그냥 대우라고 발음했기 때문.
그에 반해 삼성과 현대는 영문자 표기 그대로 발음했다. SAMSUNG은 쌤숭, HYUNDAI는 횬다이. 장난으로 그러는 게 아니고 진짜로 그렇게 발음 한다. 게 중에는 횬다이가 일본 메이커인 줄 아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는 사실. 아마 발음이 그래서 그럴 듯 싶다.
한글 로마자 표기법 중에서 'ㅐ'를 ai로 표기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 규칙 면에서는 맞는지 몰라도, 저것 때문에 외국인들이 이상한 발음을 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그냥 소리나는데로 e로 표기하면 간단하고 좋을텐데. 횬다이HYUNDAI 보다는 횬데HYUNDE가 그나마 좀 낫지 않나?)
(출리아 거리에 있는 바나나 게스트하우스는 항상 서양인 여행자들로 붐볐다. 방이 꽉 차서 없다고 하는데도 어떻게든 들어가려고 애 쓰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은 여기가 굉장히 싸고 좋은 곳이라고 믿고 있는 듯 했다. 과연 론리플래닛의 위력은 굉장하다.
가이드북도 일종의 가이드다. 가이드가 데려가는 곳은 싸지 않은 곳일 확률이 높다.
배낭여행 할 때 이런 방법을 한 번 써 보시라. 가이드북에 나온 숙소나 식당을 일단 찾은 다음에, 가이드북에 소개된 곳은 일단 무시하는 거다. 그리고 그 근처에 소개되지 않은 다른 곳을 찾아 들어가면, 가이드 북에 소개된 곳보다 더 싸고 더 좋은 곳을 찾을 수 있다.)
한 숨 자고 일어나서 어슬렁어슬렁 아침 겸 점심 겸 저녁이나 먹을까하고 거리를 나섰는데, 여기서 꽤 큰 것을 하나 건졌다.
아까 숙소를 찾아서 길거리를 방황하고 있을 때 무심결에 받은 전단지. 인도 음식점이었는데, 본토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면서 자랑하던 곳.
여행자를 위한 숙소들이 많은 곳이 어디냐는 질문에 친절히 길을 가르쳐 줬던 고마움에 그 집을 찾아갔던 거다. 사실은 식당을 찾기 위해 또 방황하는 게 귀찮아서 거길 갔을 뿐이지만.
큰 기대 하지 않고 찾아간 식당이었는데, 의외로 라씨 맛이 아주 좋았다.
라씨는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거트 종류의 음료인데, 새콤달콤한 맛이 기가 막힌 음료. 다른 음식들은 그저 그랬는데, 라씨 하나 만큼은 맛이 훌륭해서 페낭에 있으면서 거의 매일 찾아가는 곳이 돼 버렸을 정도다.
(길 가다가 받은 전단지때문에 찾아간 인도 음식점. 인도 음식 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음식도 팔긴 한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말레이시아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다. 인도 음식을 무난하게 잘 하는 가게니까.)
(탄두리 치킨과 난. 탄두리 치킨은 닭을 탄두리라는 일종의 화덕에 구운 것. 근데 아무래도 이 가게는 탄두리가 성능이 안 좋은지, 인도에서만큼 향과 맛이 우러나지 않았다. 그래도 한국에서 인도음식 먹는 것 보다는 싸기 때문에 가 볼 만 하다.)
(라씨가 맛있기 때문에 거의 매일 들러서 라씨만 시켜 먹고 나오기도 했던 인도식당. 페낭의 조지타운에 가게 된다면 이 가게에 가서 라씨를 꼭 한 번 마셔 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 바나나라씨나 파인애플 라씨 같은 것 말고 그냥 라씨를 추천한다. 과일을 섞지 않은 그냥 라씨는 pure lassi 또는 plain lassi 를 주문하면 된다.)
(배불리 먹고 소화시킬 겸 시내구경. 역시 해가 지니까 노점상들도 나오고, 가게들도 더욱 활기를 띤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는 시원한 데서 자거나 노닥거리고 있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