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가지 고민들로 잠 못 이루는 밤에 잠식당하는 영혼의 위태로운 날갯짓.
비로 내려 가슴에 박히는 어둠, 이슬로 내려 눈에 맺히는 슬픔.
그 너머 아스라히 내려다보이는 작고 하얀 둥근 보름달.
그 위로 파아란 그림자를 드리우며 스쳐 지나는 작은 소행성.
지겹다.
사람들은 어쩌면 저리도 굳건히 땅에 박힌 나무처럼 서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어쩌면 이렇게 세상을 떠도는 소행성으로 떠다니게 되었을까.
언젠가 기력이 다하면 한 줌 재도 남지 않고 모두 타 없어질 덩어리.
때로는 부드러운 흙이 되어 새싹을 키워내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다.
해야 할 일들, 하고싶은 일들이 밀리고 쌓였다.
하지만 그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피곤함.
세상 모든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 만큼의 피곤함.
아마도 몇 백 만년 전부터 쌓였던 듯 한 피로.
감당할 수 없다, 이제 정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다시 코 끝을 스치는 바람의 냄새.
멀리 아련히 들려오는 코란 읊는 소리.
부드러운 흙먼지의 텁텁하고 씁쓸한 맛.
내 피는 아직도 해발 사천 미터 대기를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는 더이상 버티지 못 할 거라고 나 자신도,
그녀도 비웃듯 얘기했다, 마치 제 삼자의 일인 것처럼.
그 때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렇.게.는.살.수.없.다.
봄은 정말 오고 있는 걸까.
다시 살짝 얼굴만 내비치고 여름으로 가는 걸까.
어찌되든 상관없지. 나는,
계절도 선택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바람도 선택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영혼도 선택할 수 있을 테니까.
세상에 흩뿌려진 수많은 흙먼지처럼 나도,
그렇게 흩날릴 수 있을 테니까. 그때,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되겠지.
그때, 기쁨을 가장한 허탈한 웃음을 웃더라도
그때, 슬픔을 가장한 눈물 한 방울 흘리더라도
어차피 길 위에 있음을, 나도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지만 마찬가지로
정해진 궤도를 돌고 있었음을
느끼며 안도하게 되겠지.
그래서
봄은 정말 오고 있는 걸까.
이 지겨운 어둠 속에서 정말
봄은 오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