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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잊혀지지 않은 가난의 기억들 - 인천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국내여행/경기도 2011. 7. 9. 11:41


    해가 졌다.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구석에 드문드문 흐릿한 가로등 불빛이 길을 비춘다. 동네 어귀마다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 집 저 집 밥 짓는 냄새가 지친 발걸음을 재촉한다. 어디선가 악을 쓰며 싸우는 소리. 또 어디선가 요란하게 떠들며 노는 소리. 오늘도 달빛은 무심히 골목을 창백하게 비춘다.

    70년대 달동네. 누군가는 아련한 기억으로 다 지난 추억으로 곱씹을 수 있을 테고, 누군가는 생각도 하기 싫은 악몽으로 아직 남아 있을 테고, 또 누군가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인 삶의 일부분일 테다.

    아마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그때 그 시절을 구질구질하다 여기고 돌이키기 싫은 기억으로 생각하지 않나 싶다. 그러니 지금도 낡은 동네를 흔적도 없이 밀어버리고 높은 아파트로 깨끗하게 새 단장하는 것을 반기는 것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이 절대적 빈곤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그때 그 시절보다 나은 생활을 하고 있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70년대는 무작정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기엔 너무나 아팠던 시절이고, 기억을 조작해서 웃어보려 하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시간이다.

    하지만 그 시간 역시 흘러흘러 언젠가는 역사로 남을 운명. 아직 많은 흔적들이 남아있고, 아직 많은 기억들이 남아있어 비교적 소홀히 대하고 있는 근현대 우리사회 모습들. 인천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은, 달동네 흔적이 모두 사라지기도 전에 그 기억의 파편들을 수집해서 보여주고 있다.








    수도국산


    인천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은 동구 송현동 163번지 송현근린공원 내에 위치해 있다. 송현시장 뒤편으로 깨끗한 아파트들을 따라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면, 언덕 꼭대기 즘 낮고 조그만 박물관 건물을 볼 수 있다.

    흔히 수도국산이라고 부르는 이 산의 원래 이름은 만수산 혹은 송림산이었다. 소나무 숲 우거진 바닷가 작은 언덕이었던 이곳에, 1908년 일제가 송현배수지를 만들었다. 개항 이후 증가한 인구와 선박에 댈 물이 부족해서, 서울 노량진에서 물을 끌어와 이곳에 물탱크를 만든 것이다. 그 때부터 사람들은 상수도를 관리하던 관청인 '수도국' 이름을 따서, 이 산을 '수도국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에게 상권을 박탈당하고, 중국인들에게 일자리를 뺏긴 한국인들이 이 언덕에 모여들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때는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조금이라도 고향과 가까운 곳에 살고 싶은 마음으로 이 동네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이어 60~70년대 산업화와 함께 시골 사람들이 대거 몰려들고,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 또한 이곳에 터전을 마련하면서, 한 때 이곳엔 산꼭대기까지 약 3천 여 가구가 모여 살았다.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 송현동, 송림동 일대가 개발되기 시작해서, 2000년대 초에는 거의 모든 판자집들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은 이 지역에 존재했던 달동네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2005년에 만들어진 테마 박물관이다.



    ▲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입구의 매표소는 복덕방으로 꾸며 놓았다. 공간을 낭비하지 않는 알뜰함을 엿볼 수 있었다. 박물관 입장료는 성인 500원.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 폐지를 주우며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서 신문에 나기도 했다는 한 노인. 전시된 옛 신문에는 이 노인을 '넝마주의'라고 표현해 놓았다. 아마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그런지 스타일'이 될 테다.



    ▲ 초겨울 혹은 늦가을 어느 저녁시간을 구현해 놓아서, 박물관 내부는 다소 어두운 편이다. 하지만 실제로 가서 보면 이동하고 구경하는 데는 큰 불편이 없다. 바닥이 더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 동네 이발소 모습. 이 이발소의 모델이 된 분은 아직도 동네에서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은 1971년 11월 어느 날 저녁 6시를 시점으로 달동네를 재현해 놓았다. 1972년에는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어 마을의 모습이 많이 바뀌기 때문에, 바뀌기 바로 직전의 모습을 선택했다 한다.

    그리고 달동네 공통적인 특징이 아침에는 일어나서 나가기 바쁘고, 낮에는 거의 아무도 없고, 저녁이 되어서야 서서히 살아나는 동네라서, 시간을 그렇게 정했다 한다. 그래서 박물관 내부는 다소 어두컴컴한 분위기로, 약간 으스스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박물관에는 아직도 실제로 남아있는 모습들이 상당히 전시되어 있다. 언덕 뒤편으로 조금만 내려가보면 아직도 달동네 골목길 일부 모습을 볼 수 있고, 박물관에 전시된 이발소의 모델이 된 분은 아직도 동네에서 이발소를 운영 중이다. 어쩌면 이 박물관은 이미 끝나버린 역사를 수집해서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아직 진행중인 삶의 모습들을 채집해서 모아 나가는 곳인지도 모른다.

    규모는 작지만 국내에서 찾기 힘든 근현대생활사 전문박물관이다. 특히 송현시장과 가깝기 때문에, 시장과 함께 하나의 코스로 엮을 수 있다. 박물관 뒤편 언덕 꼭대기로 다시 조금 올라가면 근린공원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인천 시가지 모습을 내려다 볼 수 있다. 그리고 박물관 반대편 쪽으로 넘어가면 아직도 남아있는 옛 달동네 모습들을 엿볼 수 있다.


    ▲ 건물과 바닥을 보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면, 북두칠성이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옛날 수도국산 달동네 사람들은 성냥 만들기 부업을 많이 했다 한다. 달동네마다 부업도 참 가지가지다. 옛날 내가 살던 동네의 주된 부업은 도라지 까기 였는데. 그 덕분에 난 아직도 도라지는 잘 깐다.



    ▲ 화장실 모형. 이곳이 진짜 화장실인 줄 알고 사용하려고 했던 사람도 있었다 한다. 화장실은 박물관 입구 쪽에 아주 깨끗한 최신식 화장실로 잘 마련돼 있다.



    ▲ 지금이라도 바로 문 열고 들어가서 모여 앉으면 21세기 서울이라 해도 믿을만 하다. 사실은 내가 보는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 이 집은 이 일대에서 꽤 잘 사는 집이라 한다. 사실 달동네에 방이 여러개 있을 정도면 부잣집이다.



    ▲ 부잣집 안방엔 TV도 있었다. TV에는 프로레슬링 선수 김일의 모습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티비 채널이 그대로 붙어 있는 걸 보면 정말정말 잘 사는 집인 듯 하다. 내가 봤던 저런 TV는 항상 채널이 쑥 빠져 있었는데.



    ▲ 박물관 한 쪽에는 옛날 만화책도 전시되어 있었다. 몇몇 책들은 뽑아서 볼 수도 있다.



    ▲ 한바퀴 빙 돌아 나오면 기념품 판매소가 나온다. 달동네를 주제로 한 박물관에 어울리는 기념품들이다.






    ▲ 수도국산 꼭대기 송현배수지의 제수변실(제수밸브를 보호하는 시설물) 모습.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시설이다. 송현배수지의 물은 아직도 인천 동구 일부 지역에 공급하고 있다 한다.



    ▲ 송현시장 반대편 너머로 수도국산을 내려오면 아직 남아있는 달동네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물론 박물관에 보존된 60~70년대 모습과는 많이 다른, 요즘 흔히 달동네라 하면 떠오르는 그런 모습들이다.



    ▲ 수도국산을 내려와 배다리 삼거리 쪽으로 가면 헌책방 거리로 갈 수 있고, 금창동 주민센터 쪽으로 가면 벽화골목을 갈 수 있다.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http://www.icdonggu.go.kr/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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