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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자와 소통하는 삶의 기록들 - 인천 배다리 벽화골목
    국내여행/경기도 2011. 7. 18. 12:32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동인천역에서 내려, 배다리 헌책방 거리를 지나 철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허름한 담벽에 벽화들이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한다. 흔히 배다리라 불리던 이 동네는 마을이 소 뿔처럼 생겨 우각리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아무도 살지 않거나 아직도 누군가 생을 이어가고 있는, 다 쓰러져가는 집들 사이로 이미 철거된 공간이 휑하니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곳. 누군가는 그대로 삶을 이어가자 하고, 또 누군가는 좀 바꾸어 보자 주장하며,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곳. 처절한 상처처럼 너덜해진 담장 위로, 곱게곱게 싸 들고 오다가 미끄러져 철푸덕, 떨어뜨려버린 케이크의 데코레이션 처럼 그렇게 벽화들이 자리잡고 있다.



    인천 배다리 벽화골목




    인천 배다리 벽화골목




    인천 배다리 벽화골목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삶의 기록을 위한 벽화들

    외지인으로써는 무엇을 하려고 만들어 놓은 공간인지 알 수 없는 허허벌판에, 사람 발길 닿는 데로 만들어진 꼬불꼬불한 길이 인상적이었다. 불편해도 이미 만들어진 길을 그대로 걸어갈까, 아니면 비 오고 바람 불면 위험하니 곧게 펴서 잘 다진 길을 만들까. 사막같은 벌판의 길 하나를 놓고도 여러가지 생각들이 있을 수 있지만, 개발과 보존의 논리는 사실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어쩌다 한 번 놀러오는 사람의 눈에는 이 모든게 신기하고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한없이 불편할 수도 있는 일. 그저 지나는 나그네의 입장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 준다는 건 오만이다.

    골치 아픈 고민을 애써 주워담지 않아도 되지만, 자신의 생각을 말 해선 안 되고 가능하면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 이방인의 입장. 어떻게 보면 참 편리하고 편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참 쓸쓸하고 외롭다. 그저 말벗삼아 이야기를 들어주며 이왕 그려진 담장의 벽화를 눈에 담을 뿐.




    인천 배다리 벽화골목




    인천 배다리 벽화골목




    인천 배다리 벽화골목




    골목마다 크고 작은 화분들과 텃밭들이 눈에 띄고, 그것을 가꾸는 할머니들의 모습 또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사실 배다리 벽화골목은 딱히 벽화 골목이라 할 수가 없다. 넓은 동네 여기저기 벽화들이 퍼져 있는데, 여느 다른 유명한 벽화골목과 비교해 보면 아직 수도 부족하고 짜임새도 없는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곳의 특징이다. 배다리 벽화골목은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려진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삶을 위해, 삶의 기록을 위해, 그리고 함께 살며 행동하기 위해 그려진 것이다. 마치 집 앞 작은 텃밭처럼, 자신과 마을 사람들을 위해 가꾸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와서 봐도 좋은, 그런 형태다.

    그러니 이곳은 다른 벽화골목처럼 짜임새를 논해선 안 된다. 우리는 철저한 이방인으로써 그들의 삶을 훔쳐보는 역할이니까.



    인천 배다리 벽화골목



     

    인천 배다리 벽화골목




    인천 배다리 벽화골목





    배다리 벽화 골목을 만든 퍼포먼스 반지하

    창영 초등학교 일대에 특히 벽화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이 벽화작업을 주도한 '퍼포먼스 반지하'라는 단체가 이 근처 '풍경'이라는 카페를 모임 장소로 삼아 활동을 해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지하철 1호선 바로 옆쪽으로 난 길에서 창영 초등학교로 올라가는 길모퉁이에 작고 아담하게 자리잡은 '풍경'은, 카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 마을 사랑방이다. 아무나 와서 수다도 떨고, 차도 마시고, 모임도 하며, 하루종일 북적이며 노는 공간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 바로 옆칸엔 아이들을 위한 놀이방도 마련돼 있다.















    '풍경'에 모여있는 활동가들은 2011년 현재 5년째 이 동네에 정착중이다. '요즘같은 시대에 개인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화두로 동네를 찾았다가, 뜨네기로써는 안 되겠다 싶어 정착을 했다 한다. 그리고는 주민들과 함께 텃밭 가꾸기, 화분 농업, 재활용 소품 만들기, 집 수리, 각종 매체를 활용한 삶의 기록, 엄마들과 주민들을 위한 교육 등을 해왔고, 또 해가고 있다.

    벽화 그리기는 그들의 수많은 활동 중 하나다. 처음에는 전문 작가들을 불러서 했지만 여러모로 한계를 느꼈다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직접 참여하는 형태로 바꾸었다. 주로 동사무소에 희망근로를 신청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1~2주의 교육과정을 거친 다음 시안을 만들고 작업을 하는 형태다. 교육은 이들 활동가들 중에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맡는다.

    이런식으로 진행된 공공미술, 즉 벽화 작업을 통해 마을 사람들은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직접 그리고, 느낀다. 그 작업은 결국 자신을 존중하는 쪽으로 향하고,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고 한다. 이런 작업들을 통해 가장 크게 얻는 것은 바로 노인들이 일을 하면서 당당해질 수 있었다는 것. 그렇게 변화된 노인들은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을 이야기 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필요한,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라 한다.

    풍경을 중심으로 모인 활동가들은 이렇게 조금씩, 이 작은 동네를 변화시켜 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풍경'은 지나는 행인들도 카페처럼 이용할 수 있으니, 내키면 들어가 잠시 쉬어가며 이들의 활동을 찬찬히 음미해 볼 수 있다.



    인천 배다리 벽화골목




    인천 배다리 벽화골목





    개발과 보존, 여행과 관심

    인도의 한 유명한 관광지에서, 다 낡은 나무배로 한 움큼의 고기를 잡아서 집으로 돌아가던 노인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크고 화려한 리조트들 사이에서 초라한 행색을 한 그 노인은, 집으로 가던 도중에 말끔한 유니폼을 입은 두 청년들과 말다툼을 했다. 리조트 숙박객들이 레포츠를 즐기는 곳이라는 그들의 입장, 그리고 먼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돌아왔을 뿐이라는 노인의 입장.


    처음에 그 동네에 큰 호텔들과 리조트가 들어서기 시작했을 때, 개발이 되고, 보상을 받을 때만 해도 노인과 주민들은 모두 기뻐했다 한다. 일단 큰 돈을 받았고,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이야기와, 관광객이 늘어나면 장사를 해도 잘 될거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마을 주민들은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사는 대규모 자본들의 깨끗한 상점들이 독차지했고, 관광객은 리조트와 호텔들이 밀집한 깨끗한 타운에서만 배회했으며, 이미 해변에다 어업권까지 팔아버린 그들은 마음놓고 고기 한 마리조차 잡을 수 없었다.

    결국 그들에게 남은 일자리는 호텔 보이나 청소부, 시트 같은 것들을 세탁하는 일 등이었다. 보상받은 돈으로는 이미 올라버린 그 동네 물가로 생활비 충당하기도 벅차다. 그 노인은 차라리 영국 식민지 시절이 좋았다며 너털너털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인천 배다리 벽화골목




    인천 배다리 벽화골목




    인천 배다리 벽화골목




    개발과 보존은 이미 오래된 갈등이고, 널리 알려진 이야기며, 누구나 한 번 쯤 생각해 본 화제다. 저마다 다른 생각과 다른 입장이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무조건 좋고 무조건 나쁜 것은 없다는 것. 그리고 동네와 상황과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이곳 배다리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개발과 보존을 떠나,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이 동네 벽화의 특징은 여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집에 살고 있는 할머니의 이야기, 그 동네 사람들의 희망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니 배다리 벽화를 찬찬히 보다 보면, 여기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조금은 알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벽화로 말 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한 번 들어보자. 동네 큰 길 한켠에 마련된 쉼터에서 쉬고 있는 할머니나, 텃밭이나 화분을 가꾸고 있는 사람들, 혹은 큰 나무 그늘 아래 놓여진 허름한 평상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은 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물론 세상이 험해서 이방인을 꺼리기도 하지만, 운 좋으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여행은 관심이다. 그저 한 번 스쳐 지날 수도 있는 곳이라면 그렇게 해도 괜찮지만, 이상하게 끌리는 곳이라면 한 번 쯤 관심을 가져 보는 것도 좋다. 정성을 다해 관심이라는 씨앗을 뿌리면, 남들은 알지 못해도 내게는 소중한 꽃들이 피어 오를 것이다. 배다리는 스치는 이방인이 진정한 여행자가 되기 위한 연습을 해 보기에 딱 좋은 곳이다.



    인천 배다리 벽화골목




    인천 배다리 벽화골목




    인천 배다리 벽화골목




    참고:

    송현시장, 배다리 헌책방 등을 두루두루 둘러보려면 동인천 역에서 내리는 것이 좋다. 하지만 벽화골목을 맨 먼저 둘러보고 싶다면 '도원역'에서 내리는 것이 더 좋다. 도원역 맞은편 길을 건너면 바로 벽화들이 보인다.

    도원역과 동인천역 사이에 있는 벽화골목을 헤집고 다니면서 오래된 건물들도 함께 구경해 보자. '인천 기독교 사회복지관'은 19세기 말 미국 감리교회가 파견한 여자 선교사들이 쓰던 기숙사로, 유럽풍의 작고 아담한 건물이다. '영화 초등학교 본관동'은 기독교 선교를 목적으로 1910년에 지어졌고, 영화학당은 미국 선교사가 1892년에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학교로 아직도 쓰여지고 있다. 그리고 '창영 초등학교' 본관은 1907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모두 인천의 문화재로 지정된 고풍스러운 건물들이다.

    배다리 주변의 가게와 헌책방들 셔터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한다. 셔터가 내려져 있어야만 볼 수 있기 때문에 때를 잘 맞춰 가야 한다.

    퍼포먼스 반지하 홈페이지: http://vanziha.net



    (도원역에서 영화여자정보고교에 이르는 일대에서 벽화를 많이 볼 수 있다.
    금창동 주민센터 주변의 동네 골목골목에도 벽화들이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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