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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조화의 아름다움 - 창덕궁국내여행/서울 2011. 7. 15. 19:22
창덕궁은 1405년에 지어진 조선의 두번째 궁궐이다. 조선 건국과 함께 지어진 경복궁이 정궁이긴 한데, 두 차례나 일어난 왕자의 난 등으로 아픈 기억이 서려 있는 경복궁보다는 창덕궁이 왕의 거처로 더 많이, 오래 쓰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다시 지어지기도 했고, 일제강점기 때 훼손된 것 등을 계속 복원 중이긴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보존이 잘 돼 있는 궁궐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창덕궁의 조형미와 자연과의 조화는 세계적으로도 인정 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창덕궁 탐방을 시작하며
일반적인 궁궐의 정문과는 다르게 남서쪽 귀퉁이에 세워진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 별 생각없이 드나들지만, 정문이 궁궐 귀퉁이에 세워진 것도 알고보면 자연과의 조화와 종묘를 지키기 위한 장치라 볼 수 있다.
돈화문 안쪽에 진선문이 넘어다 보이는 금천교 앞에서 이번 행사를 추최한 국가브랜드위원회 이배용 위원장과 참여자들을 만났다. 우리문화를 제대로 알자라는 취지로 마련된 이번 행사에서 이배용 위원장은, 서울 시내에 다섯개의 궁과 종묘가 있다는 것은 세계에 자랑할 만 한 것이라는 말로 설명을 시작했다.
이어서 이배용 위원장은 본격적인 창덕궁 설명을 시작하기 전에 궁궐과 문화유산에 대해 몇가지 이야기를 했다. 요즘 K-POP이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것이 이끌고 나가는 동시에 우리의 고품격 문화가 뒤따라 나가야 한다는 것. 그 고품격 문화란 불교와 유교가 조화롭게 융합된 동양문화 속 한국 문화의 특수성, 그리고 자연과 소통하는 문화 등인데, 이런 것이 농축된 것이 바로 궁궐이라 했다.
세계에 자랑을 하려고 해도 뭘 알아야 자랑을 할 수 있고, 문화적 자긍심을 가지려 해도 껍데기만으론 부족하다. 그래서 궁궐에 대해 여러모로 제대로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고, 알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을 스스로 지키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스스로 지키지 못 할 때 과거와 같이 나라를 빼앗기는 일이 다시 찾아올 수도 있다. 지난 일제강점기 때 수많은 문화재를 빼앗겼고, 지금은 나라를 되찾았기 때문에 되새김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그 때의 잔재가 남아 우리는 스스로 우리 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
비원이라는 이름만 봐도 그렇다. 아직도 택시를 타거나 길을 묻거나 하면 창덕궁이라는 이름보다는 비원이라고 해야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비원은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창덕궁 안에 만들었던 관리사무소 이름이다. 궁 이름을 없애기 위해 비원이라는 이름을 부르도록 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는데, 이제 창덕궁이라는 이름을 널리 쓰도록 바로잡아야 할 일이다.
시간이 많으면 밤 새도록 이야기를 펼칠 기세였지만, 안타깝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정해진 시간에 맞춰야 했기에 일단락 짓고 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도 궁궐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 끊임없이 미래에 대한 교훈을 던져주는 곳이니, 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라며 재차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금천과 금천교
일단 정문 안으로 들어서면 금천과 금천교가 보인다. 금천은 배산임수의 요건을 만족시킨다는 의미도 있지만, 부정한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금천교 아래에 현무와 해태상이 놓여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의미다. 그리고 궐 안으로 들어올 때 마음을 깨끗이 씻고, 올바른 정치를 하도록 하라는 의미 또한 숨겨져 있다 한다.
여기서 궁은 임금이 생활을 하는 곳이고, 궐은 정치를 하는 곳을 뜻한다. 운현궁 같은 경우는 생활만 하는 곳이지만, 경복궁이나 창덕궁 같은 경우는 궁궐로, 임금이 생활도 하고 정치도 하는 곳이다. 그래서 창덕궁 안에서는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과 함께 정치를 위한 시설들도 볼 수 있다.
인정전
인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인정전이 보인다.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들의 접견 등의 중요 행사가 행해지는 곳이다. 인정전 앞에는 품계석이 놓여 있는데, 행사가 있을 때 동쪽에는 문관, 서쪽에는 무관이 서열대로 그 앞에 가서 선다.
품계석 옆쪽에 놓인 쇠고리는 천막을 치기 위한 것으로, 비가 오거나 햇볕이 따가울 때를 위한 장치였다. 가만히 보면 쇠고리가 정삼품 바로 앞에서 끝나 있다. 바로 한 발 옆에 천만의 그늘을 두고 들어갈 수 없는 그 심정은 어땠을까, 아니꼬우면 출세 해야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인정전 주변은 박석(넓고 평평한 돌)을 깔아 놓았는데, 다니기 좋게 깔아놓은 역할 외에도, 조명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다. 지금의 박석은 틈새 없이 촘촘하게 땅에 박혀 있지만, 원래는 듬성하게 박혀서 사이에 풀도 나고 했다 한다. 그 자체로 무질서 속의 질서를 표현해서,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한다.
인정전의 용두는 세월의 풍상을 잘 이겨내라는 뜻으로 놓인 것이고, 손오공 일행을 본뜬 잡상은 손오공 같은 꾀로 잘 헤쳐가라는 뜻으로 놓여진 것이라 한다.
인정전 안쪽에는 임금의 자리인 어좌가 있고, 그 뒤로는 일월오봉도가 그려진 병풍이 놓여 있다. 일월오봉도는 사방의 삶을 보살피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라는 뜻이고, 또한 치우치지 않는 조화와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천장에는 봉황이 그려져 있는데, 경복궁에 용이 그려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것으로 창덕궁은 두번째 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봉황이 출현하면 성군이 나타난다는 말이 있어, 이 봉황은 하늘의 마음을 품고 성스러운 정치를 하라는 뜻으로 그려진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 궁궐 문화는 모든 것에 뜻이 있고 의미가 있다.
인정전 앞에는 드므(넓적하게 생긴 독)가 있는데, 이 드므는 방화수 역할을 했다. 사실 불이 나면 이 작은 물로 어찌할 수는 없다. 다만 옛날 우리 조상은 불을 불귀신이 저지르는 일로 생각해서, 그 불귀신을 쫓는 기능을 하도록 배치해 둔 것이다.
선정전
인정전 옆쪽으로 선정전이 있는데, 이곳은 창덕궁의 편전으로 왕과 신하들이 일상적 업무가 행해지던 곳이다. 지붕이 있는 복도는 이곳이 높은 곳이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각종 토론과 논의가 펼쳐졌다. 그리고 선정전은 왕이나 왕비의 관을 묘로 떠나기 전에 보관하는 빈전이 되기도 한다. 또한 80세 이상 되는 사람들을 모아 양로연을 펼치는 곳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건물의 용도도 다양하게 바뀌면서 쓰여졌고, 왕의 정치 또한 건물 여기저기를 옮겨다니며 행해졌는데, 이것은 유연성과 변화를 추구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창덕궁은 얼핏 보면 건물들이 체계 없이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언덕의 높낮이와 주변환경을 그대로 두면서 건물을 조화롭게 배치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주변 환경, 특히 곡선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데, 거기서도 우리 조상들의 미적 감각과 어우러짐의 미학, 그리고 자연에 대한 존중과 유연성 등을 엿볼 수 있다.
희정당과 대조전
희정당은 왕의 침전 및 응접실 등으로 쓰이던 건물인데, 개화기 때 자동차가 드나들게 하기 위해 요즘 호텔 입구처럼 개조된 모습이 특이하다. 희정당 내부 또한 서양식 조명기구와 가구들이 놓여 있어, 개화기 때의 모습을 얼핏 넘겨볼 수 있다.
대조전은 왕비의 침전인데, 특이한 것은 왕의 침전보다 지대가 높다는 사실. 조선시대에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높아서 그런 건 아니고, 자연 그대로 거스르지 않고 건물을 지어서 그렇다 한다.
사실 왕의 권력이면 왕비의 침전이 지대가 높으면 그냥 깎아 내릴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그리 하지 않고, 지대가 높으면 높은 대로 자연을 그대로 두고 인간이 적응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대조전은 왕비를 위한 배려도 보였다. 왕비의 침전과 함께 궁녀들의 생활공간이 있었기에, 대조전이 왕의 침전보다 규모가 큰 것이 자연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왕비를 위한 정원이 크게 마련해 두어, 궐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없는 왕비를 나름 위로하는 역할을 해 주고 있다.
낙선재
낙선재는 창덕궁과 창경궁이 연결되는 부분에 위치해 있는데, 이 일대에는 궁궐의 크고 화려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소박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헌종이 후궁을 위해 지은 곳으로, 주로 왕실 사람들과 왕비들의 근신 공간으로 쓰여졌다 한다. 그래서 단청 없이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고, 고인을 위한 공간임을 뜻하는 홍살문이 배치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주변 경관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낙선재가 소박하다고는 하지만, 곳곳에 신경 쓴 디자인적 아름다움은 세세하게 들여다 볼 수록 화려하게 드러난다. 특히 언덕 위의 정자와 건물들의 배치를 보면, 주인공이 더욱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조금 돌아서서 비켜주는 모습에서 조상들의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오래 묵은 손때에서 묻어나오는 정겨움과 아름다움, 작은 귀퉁이 보잘 것 없는 것 하나에도 기교를 부린 디자인. 주변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짐은 다실 말 할 필요도 없고, 건물과 건물들 사이에도 주인공과 엑스트라가 있어서 서로 상호보완하는 관계를 가지는 배치, 그리고 사방이 확 트이면서도 고즈넉하면서도 적당히 사생활이 보호되게끔 가려주는 구조적 장치들. 건축을 전공한 친구가 극찬을 했을 정도로 낙선재는 현대에서도 이어받아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한 아름다운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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