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구름 한 점 없는 푸르고 화창한 가을 하늘에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어, 긴 팔 소매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날씨였다.
하지만 역시 강원도는 강원도. 해가 중천에 떠 있건만 쌀쌀한 날씨에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간단히 알펜시아 리조트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나니, 별로 한 것도 없이 이미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고, 어둠과 함께 겨울이 온 것처럼 몸이 으스스 떨릴 정도로 한기가 느껴졌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그 쌀쌀한 냉기와 어둠 속에서 마치 동네 뒷집 아저씨처럼 허허 웃으며 나타났다. “옛날부터 제 별명이 감자였습니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무릎을 탁 칠 정도로 그는 강원도 감자와 닮은꼴이었다. 강원도 토박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를 만나는 사람들이라면 ‘감자같이 생겼다’라는 말에 다들 동의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함께 갔던 사람들도 모두들 이견이 없었고.
그가 그런 푸근한(?) 인상으로 일반인들에게 와 닿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기자를 거쳐 MBC 사장을 하고 방송통신위원회에서 활동 할 때만 해도 다소 날카로운 이미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상이 좋아졌다는 인사말과 함께 “도지사 생활이 편해서 그런 건가요?”라는 짓궂은 질문에, 허허 웃으며 “강원도 공기가 좋아서 그런 거죠”라는 대답. 아무래도 강원도 공기가 좋긴 좋은가 보다, 사람 인상도 편하게 변화시키는 힘이 있는 걸 보면.
식당 한쪽에 마련된 따뜻한 온돌방에 자리를 잡고, 몸에 온기가 돌면서 나른하니 정신이 풀릴 무렵에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됐다. 원래 질문은 그렇게 하는 법. 하지만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으려고 날카롭게 파고드는 언론사의 인터뷰가 아니므로 서로서로 편하게 이야기가 오갔다. (편의상 도지사의 말도 평어체로 옮기도록 하겠다).
▲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토고미마을 이장 부인 안경순 씨.
도지사 생활 6개월, 기억에 남는 일은
먼저 도지사 당선된 후 지금까지 6개월 동안의 생활이 어땠는지 물었다. 최문순 도지사는 제일 먼저 강원도라는 지역의 특징에 기반한 열악성에 대한 한탄(?)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강원도는 대도시로부터 거리가 멀고, 도로 등의 기반시설이 잘 돼 있지 않는 편이라, 유통비가 많이 들어 물가가 높은 편이다. 그리고 최근에 바다 온도가 높아지면서 점점 물고기가 잘 안 잡히는 문제도 있다. 사실 강원도는 전국에서 알콜 중독자가 가장 많은 곳이라 할 만큼 삶이 팍팍한 곳이다.”
그런 힘든 여건 속에서도 짧은 도지사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라고 했다. 또한 최근에는 춘천 레고랜드 유치 등의 기업유치가 큰 일로 와 닿는다고 답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해서는 도지사라는 입장과 강원도민의 심정을 대변해서 설명을 했는데, 이것은 단순한 올림픽 유치가 아니라 강원도라는 지역의 개발과 발전에 관련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했다. 최문순 도지사는 앞서 강원도라는 지역의 특성과 함께,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의미를 설명했다.
강원도는 국민들이 다들 잘 알다시피 철도, 도로 등의 공공시설이 아주 낙후된 지역이다. 군사분계선이 있기도 하고, 자연을 지키기 위해 묶인 지역도 많으며, 거기다 인구 또한 적어서 투자가 적었다.
따라서 동계올림픽은 그런 공공 인프라 구축을 위한 강원도민의 염원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동계올림픽 유치와 함께 인천공항에서 강릉까지 고속화 철도를 놓아서, 68분 만에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도 세워졌다 한다.
이어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물론 역대 동계올림픽들이 모두 적자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은 운영경비와 경기장 관련 비용 등을 많이 줄여서, 운영경비를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이뤄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한 축하의 목소리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부분들까지 일단 파악은 하고 있는 셈이다. 개발의 부작용과 자금 조달에 대한 의문 등으로 불거져 나오는 우려들에 대해서는 강원도의 특징을 설명하며 이야기했다.
“강원도는 우리나라에서 기후변화가 제일 적은 지역이다. 나무와 물이 많고, 인구가 적어서 주로 청정지역,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온난화와 난개발로 인한 훼손 등의 문제가 강원도에서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관광과 농업을 주 산업으로 하고 있는 지역 치고는 너무 개발이 억제되어 있고, 낙후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최문순 도지사의 말은 “보존 할 것은 보존하고, 개발 할 건 개발 해야 한다”라는 것. 덧붙여 “도지사로써 균형을 잘 잡도록 하겠다”라는 말도 잊지 않음으로, 이제 어엿한 정치인임을 은근히 내비치기도 했다.
관광, 문화, 그리고 사람
강원도의 주 산업이 관광과 농업이라는 말에, ‘관광 산업의 미래’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강원도는 앞으로 어떤 관광 정책이 펼쳐질 것이며, 도지사로써 비전은 어떤 것이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대해 “기본적으로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번에 알펜시아에서 많은 연예인들을 불러 동계올림픽 유치 기념 콘서트를 연 것도 문화 만들기의 일환이고, 최근 춘천 낭만시장 행사 때 각종 공연과 함께 연예인들이 물건판매를 한 것도 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함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MBC 방송국 사장 경력을 살려, 이런 행사들을 계속 유치하고 접목시켜 경제활성화와 함께 문화 가꾸기를 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문화는 결국 사람”이라고 말을 이으면서, 수많은 축제들이 외부 사람들을 불러 치러내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그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화천의 이외수 씨 같은 경우는 그 자체가 문화라며, 그렇게 특정한 사람을 잘 모시는 것도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더 나아가, 지역사회 사람들이 한 데 뭉치고 힘을 합하는 것으로 문화를 가꾸어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며, 각종 축제들의 시스템을 변화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금 대한민국의 수많은 지역 축제들은 관공서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축제예산을 편성하고 기획사에 돈을 주고, 사람들을 동원해서 행사를 치르면 끝이다. 하지만 그런 축제는 결과적으로 별로 남는 것이 없고, 오래 지속되기도 어렵다.
그래서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가꾸어 나가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대표적인 예로 정선의 아리랑축제를 꼽았다 (아아, 강원도지사가 정선 자랑도 해 주시고). 그 축제에서는 주민들이 행사를 직접 준비하고 꾸려서 진행한다며, 그런 축제들이 바로 의미 있는 행사라고 했다.
또한 강원도에서 농업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므로, 농촌과 관광을 접합시킨 ‘농촌체험관광’도 항상 크게 고민하고 있다 했다.
지금 농촌지역은 어디든 할 것 없이, 사람이 없어서 공동체가 해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강원도에서는 농고출신 사람들을 모아 문화와 농업기술을 함께 묶어 이끌고 나갈 수 있도록 해서, 공동체를 다시 복원시키는 작업을 추진 중이라 한다.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관광도 일어날 수 있게끔 말이다.
이 이야기가 나올 즈음에,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던 토고미 마을 이장 부인의 눈이 반짝였다. 토고미마을은 강원도 화천에 있는 작은 농촌 마을로, 친환경 농법을 이용한 농산물을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온라인 판매 등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농촌체험관광으로도 알음알음 알려져 있어, 아는 사람이 은근히 많은 꽤 유명한 마을이다.
이 마을 이장 부인이면서 인터넷을 이용해 농산물 판매도 하고 있는 안경순 씨가 이 자리에 참석했는데, 강원도 농촌 이야기가 나올 때면 조용히 한몫 거들어 현실을 알리는 데 도움을 줬다. 이분은 우리 쪽에서 부른 분이기도 하고, 농촌 문제를 현실에서 직접 겪고 있는 분이기도 해서, 아무래도 이 자리에서 농촌 이야기가 많이 나오게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테다, 강원도지사는 원래 농촌에 관심이 많으실 테다.
어쨌든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농촌 이야기를 하면서 귀농을 유도하는 정책을 언급했고, 또 귀농을 권하기도 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나중에 꼭 귀농하도록 하고, 이왕이면 강원도로 오라고 말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땅 주시면 당장이라도 귀농 하겠다는 말에는 그냥 웃어 넘기셨다는 슬픈 현실.
사실 귀농을 하고 싶은 사람은 많아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귀농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돈이 많으면 귀농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대한민국이 어떠니 저떠니 해도, 돈 많으면 정말 살기 좋은 나라다. 돈이 없으니까 문제지.
그래서 귀농도 결국 어중간한 형편의 사람들이 퇴직금 털어 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런 현실에 귀농이 과연 활성화 될 수 있을까. 생각은 있어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해 과감한 귀농정책을 펼쳐야 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경기도에서 꽤 많이 시도되고 있는 지역공동체 같은 형태를 지원해 주는 형식이나, 지방정부에서 대지를 임대 해 주는 방식 등으로 말이다.
아아 나도 귀농 하고 싶다, 하다못해 지방에 내려가 살고 싶다, 그런데 가면 뭐 먹고 사나. 그게 해결 안 되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움직이겠나. 이 부분은 똑똑한 분들이 많이 고민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해외 관광객 유치
관광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야기는 외국인 유치로 옮겨갔다. 전국이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요즘, 강원도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에 대해,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서도 강원도의 경쟁력은 역시 ‘환경’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강원도의 환경은 나무가 산과 함께 깊이 있다는 것이고, 거기다 눈이 많이 (아주 많이) 내린다는 특징이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만 평생 눈을 못 보고 눈을 감는 사람이 10억에 달한다고 한다. 그래서 강원도의 주 전략은 눈 구경과 함께 DMZ를 둘러보는 것이라 했다.
사실 외국인들 중 DMZ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이것은 다른 관광자원들과는 달리 정치상황에 상당히 민감한 지역이라 쉽게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설악산과 금강산을 남북이 공동으로 관광코스를 개발해보라는 UN의 권고도 와 있는 상태지만, 현재 북한사람을 만나거나, 북한에 가거나 하는 활동을 정부에서 승인해 주질 않아서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한다. 그래서 남북상황을 항상 예의주시하며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일을 추진할 수만 있다면, 중국에서 기차로 동해안을 따라서 금강산과 설악산을 구경할 수 있는 관광코스를 개발하는 것이 최문순 도지사의 바램이라 한다.
그런 관광코스 개발과는 별개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에서 삼척으로 가스관을 놓아, 싼 가스를 공급하는 계획을 진행 중이라 한다. 현재 도시가스 요금이 춘천보다 강릉이 3배나 더 비싼 실정이라, 이런 노력이 지역 물가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농촌 홍보와 블로그 활용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건물을 많이 짓고 행사를 많이 유치하는 것은 업적을 남기기 위해 진실하지 않게 일을 추진해서 그렇다며, 그렇게 쌓아 올린 것들은 돈만 낭비하고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은 연임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나온 이상 제대로 일을 해 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화는 자판기처럼 나오는 것이 아니라며, 사람에게 꾸준히 투자하고, 문화행사도 사람들의 동의와 함께 필요성을 느끼게끔 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 선상에서 농촌 또한 꾸준한 홍보와 변화의 시도가 있어야 한다며, 농촌마을이나 전통시장을 한 블로거가 하나씩 맡아서 일 년 내내 홍보를 맡는다든지 하는 유기적인 관계를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금 농촌에 정보화 마을 운동이라고 하고 있는 것은 다소 현실과 괴리감이 있기도 하고, 또 많은 농촌들이 단발성 홍보로 끝나는 것도 지속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며, 외부인력 유입을 통해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사실 이런 고민은 많은 농촌 마을들이나 관공서들이 하고는 있다. 그리고 현실에 접목하려고 일부 시도해 본 곳이나, 시도하려 하는 곳들도 있다. 그런데 이들의 문제점 중 가장 큰 것 하나를 꼽으라면, 적은 비용 혹은 공짜로 일을 추진하려는 점이다.
물론 농촌 홍보 대사라거나, 홍보 도우미, 농촌 지키미 블로거 등의 타이틀을 달아주면, 너도나도 하겠다고 달려들긴 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가 공짜로 힘든 일을 하려고 하는가. 일년 내내 농사지어 자기 먹을 쌀도 안 나온다면 농사 짓겠는가. 그런걸 요구하니 결국 일은 흐지부지 되고 만다.
사실 흐지부지 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더 심한 경우도 있다. 제대로 비용을 지급하지 않으니 엉뚱한 데서 비용을 빼 먹는 사람들도 생긴다. 결국 무리수를 두게 되고, 나쁜 인상만 박히고, 오히려 안 하는 것보다 못한 상황이 생기며, 실무를 추진한 사람만 뒤통수를 맞고, 임기만 채우면 되는 사람은 그냥 바이바이 떠나버리고, 그런 거다. 안타까움에 사족으로 몇 자 더 붙여봤다, 더 이상은 그렇게 일을 추진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에서.
어쨌든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강원도 자랑을 늘어놓으며 한 말처럼, 강원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척이나 다양하고 재미있는 특징들이 많이 있다. 황태를 말리는 곳에서 반경 2킬로미터만 넘어가도 황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나, 홍천 내면 옥수수가 아주 맛있다는 등의 특징들 말이다.
그런 특징들을 ‘사람이 있는 문화’로 가꾸어 나가면서, 또 농촌과 연계시켜 지역활성화를 이루어 나가야 하는 등, 강원도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하다.
하지만 최근 2014년부터 강원도립대학 등록금을 무료로 하겠다는 계획처럼, 강원도만의 독특하고 특징적이면서도 과감한 정책들을 다양하게 펼쳐 나간다면, 앞으로 강원도는 아직도 미지의 세계처럼 인식되고 있는 이미지를 깨어나 활짝 피어날 수 있을 테다.
아직도 험하고 인간의 손길이 비교적 덜 미친 곳이기에, 아직도 할 일이 많고 나아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한 곳이기에,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강원도에서 활약할 그의 활동이 기대된다.
p.s.이 인터뷰는 강원도청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