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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도 길을 잃는 서어나무 숲 속으로 - 영흥도 십리포 해수욕장, 장경리 해수욕장, 내리 어촌계취재파일 2011. 11. 19. 13:34
하늘이 바다를 머금어 눈부시게 파란 어느 날 문득 섬이 그리워 훌쩍 떠나고 싶을 때, 혹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고 부숴지는 파도처럼 희뿌연 하늘을 보며 문득 섬이 떠오를 때, 영흥도는 육지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배로 갈아타고 하는 불편함 없이 한달음에 길을 달려 도착할 수 있는 섬이다.
시화방조제 길이나, 화성시와 연결된 다른 길을 통해 대부도로 들어가서, 선재대교를 거쳐 선재도로 건너간 다음, 섬 끝 쪽의 영흥대교를 지나면 바로 영흥도로 들어간다.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한 방향으로 쭉 달리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길이다.
서울 쪽에서 대중교통으로 갈 때는 790번 버스가 영흥대교 근처 종점까지 들어가고, 이후는 마을버스를 이용해서 이동할 수 있다.
영흥도
영흥도는 고려 말에 왕족 익령군 왕기가, 고려의 국운이 다한 것을 알고는 무작정 배를 띄워 도착한 섬이라 한다. 당시 왜구가 창궐해서 사람이 살지 못하는 섬으로 인식되어 있었던 섬에서, 버려진 땅을 일구고 짐승을 기르며 고기를 잡는 등으로 일족을 보존했다 한다.
그가 섬으로 들어온 지 3년 후에 고려가 망하고 왕족들이 몰살당하는 비극을 겪었기에,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그의 선택은 옳았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흔적도 남지 않은 옛날 이야기지만, 매일 올라가서 개경을 바라보며 나라를 생각했다는 국사봉이 남아서 그때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전국 어느 섬이나 섬의 대표적인 음식은 해산물이겠지만, 이쪽 섬들은 특이하게도 칼국수 집이 많다.
옛날 대부도를 비롯한 섬의 염전들이 크게 번성할 때,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음식으로 칼국수를 많이 했고, 최근에도 시화방조제 등의 공사들로 인부들이 많아지면서 비슷한 이유로 칼국수를 많이 찾았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선재도나 영흥도에도 섬에서 나는 신선한 바지락을 듬뿍 넣은 바지락 칼국수 집들이 유난히 많은 편이다.
이런저런 역사도 있고 사연도 있지만, 어쨌든 이제 선재도와 영흥도는 여름철 피서지로 주로 각광받는 곳이다. 옛날에는 영흥도까지 가려면 배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들어가야 했다지만, 이제는 뱃멀미에 시달릴 필요 없이 차로만 달려서 갈 수 있다는 편리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됐다.
하지만 여름이나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길이 막혀, 오히려 옛날 배를 타고 들어갔던 것보다 시간은 더 많이 걸릴 수도 있다 한다. 육지가 아니라 섬이라서 딱히 돌아서 갈 수 있는 길이 없어서 일단 길 위에 올랐으면 딱히 대안이 없지만, 그래도 섬에 이르면 고생 끝의 보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십리포 해수욕장
영흥도에서 관광지로 가장 유명한 곳은 십리포 해수욕장이다. 영흥도에서 가장 활발한 포구라는, 영흥대교 옆쪽의 진두선착장에서 십 리 떨어진 곳에 있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데, 여기는 섬이나 해변이면 으레 있을 만 한 일반적인 해수욕장들과 구별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서어나무(소사나무) 군락지다.
해변을 따라 약 300여 그루가 늘어서 있는 이 서어나무(소사나무) 군락지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인위적으로 조성된 소사나무 군락지로 유명한데, 해풍을 막고 농사를 짓기 위해 150여 년 전에 조성된 것이라 나무들의 나이 또한 백 살이 넘는 것들이 많아서 독특하고 희귀한 곳으로 손꼽힌다.
사람들이 많이 몰릴 때면 여기서 텐트도 치고, 음식도 해먹고 해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사람이 별로 없을 때 가면 나무들 사이를 한적하게 걸을 수 있어서 좋다.
특히 구불구불 펼쳐진 나뭇가지들이 마치 춤을 추는 것이나 화염이 피어 오르는 모양을 하고 있어서, 똑바르게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를 걷는 것과는 또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구불구불한 나무들 사이로 넘겨다보는 파란 바다도 인상적이지만, 나무들 사이로 길을 잃고 방황하는 바람의 소용돌이 또한 아련한 곳이라, 이곳에서 남모를 비밀을 말하면 나 대신 나무들이 오래오래 간직해 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십리포 해수욕장에서는, 아니 넉넉하지 않은 시간으로 영흥도를 찾았다면 영흥도 전체를 통틀어서, 서어나무(소사나무) 군락지에서의 산책은 오래오래 깊이 기억에 간직될 인상 깊은 곳으로 추천할 만 하다.
영흥대교와 내리 어촌계
그냥 섬으로 통하는 길로만 알고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영흥대교는 야경으로 유명한 곳이라 한다. 밤이면 주변 환경과 조화된 조명들이 빛나서 다리를 더욱 아름답게 돋보이게 만들어서 촬영 명소로 알음알음 알려져 있다 하니, 밤까지 섬에 머물 수 있다면 한 번 가 보는 것도 좋겠다.
안타깝게도 밤까지 있을 형편이 되지 못해서 영흥대교를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었지만, 그 근처에서 내리 어촌계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멀리 보이는 조그만 섬 쪽으로 나 있는 바닷길을 따라 여러 가지 차량과 경운기 등으로 개펄로 들어가는 행렬을 잇고 있었는데, 해마다 철이 되면 쌍섬 근처 개펄에서 하루 열 시간씩 바지락을 캔다 한다.
어촌계 관할 개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사람들을 통제하던 한 노인은, 햇볕과 염도가 좋아서 영흥도의 바지락, 굴, 동죽 등의 어패류가 맛있다고 자랑하며, 이곳이 TV에도 방영된 곳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했다.
원한다면 어민들을 따라 들어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주겠다곤 했지만, 들어갈 때는 경운기 등을 얻어 타고 들어갈 수 있지만, 나올 때는 시간이 맞질 않아 그 먼 거리를 걸어서 나와야 한다는 사실에 혀를 내두르고 포기하고 말았다.
그 옆으로 보란 듯이 유모차를 끌고 걸어서 들어가는 두 할머니. 멀리 아득하니 보이는 섬 근처 개펄까지 어떻게 걸어서 들어가냐는 말에, 맨날 가는 건데 뭐 하며 별 대수롭지 않다는 대답.
그렇게 힘들게 일해서 벌어도 수익이 그리 많진 않아서, 어패류가 잡히지 않는 시기에는 어선을 타고 물고기를 잡기도 하고, 또 집집마다 포도재배 같은 농업을 따로 하기도 한다. 참 억척스러운 섬사람이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들 사는 모습에 스스로를 반성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평온한 모습 속에서도 아픔은 있었다. 최근 관광지로 각광받으며 외지인들의 출입이 부쩍 늘어나면서, 숙박시설 등의 각종 개발 붐으로 바다환경이 훼손되어, 몇 년 전부터 어패류의 생산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란다. 게다가 최근 뉴스를 보니, 바닷가 모래나 진흙 속에 구멍을 파고 사는 새우를 닮은 ‘쏙’이 크게 번식하면서 어패류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참 여러모로 힘든 상황을 맞이하고 있지만, 그래도 최근에는 어업인 복지회관을 완공해서, 바지락 세척, 선별, 포장 과정을 기계화 하는 등 어업활동 활성화 등을 꾀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개펄로 향하던 그들의 뒷모습에서, 세상도 어렵고 자연도 척박한 이곳에서 힘들게 노력해 일족을 일군 그 옛날의 고려 후손들의 모습이 얼핏 엿보였던 것도 같다.
장경리 해수욕장장경리 해수욕장은 영흥도 서북쪽에 위치한 해수욕장으로, 1.5킬로미터에 달하는 긴 백사장과, 1만 평에 이르는 노송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십리포 해수욕장보다는 인지도가 조금 낮기는 하지만, 주변 분위기가 널찍하고 시원한 느낌이라 그곳과는 또 다른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이곳도 물이 빠지면 넓은 개펄이 펼쳐져서, 어른들은 바지락을 주워담고, 아이들은 개펄에서 뒹구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특히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갯바위는 낚시 포인트로 인기 있는 곳이라 한다.
여름 휴가철 성수기를 벗어나면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라서, 조용히 바닷바람을 몸 속 깊이 들이마시며 솔밭을 거닐다가, 낙조를 즐기며 한적한 백사장을 걷고 싶을 때 찾아가면 좋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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